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42. 칼리안의 변심(42/192)
#42. 칼리안의 변심
2024.01.11.
에시카가 리오나와 함께 드레스를 맞춘 뒤로 하녀들의 분위기가 더욱 달라졌다.
대 놓고 그녀의 뒷말을 하거나 피식거리며 무시하던 하녀들은 서서히 입을 닫기 시작하더니 이제 에시카를 보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에시카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안에서 에시카의 권력이 커져 가고 있는 것이다.
셀라는 그런 하녀들의 반응에 뿌듯해했다.
“시녀장 유리요. 돌아올까요?”
에시카의 뒤를 따르던 셀라가 물었다.
“응. 돌아올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브리기트에 사기를 치다가 걸린 아이가 무슨 낯짝으로요…….”
“낯짝이 있다면 유부남의 품에 안기지도 않았겠지.”
“네?”
아무것도 모르는 셀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에시카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집안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감지하고 있었다.
어느 밤에, 유리가 칼리안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일이라던지 말이다.
“손바닥이 언제나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에시카의 입술이 차갑게 달싹였다.
“……유리만을 욕할 것은 없겠지. 클라우스는 전부, 비정상적이니까.”
비틀린 입술 새로 조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셀라는 가끔 에시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후에 지나고 보면, 그제야 그 말이 이 뜻이었구나 하는 것이다.
한편 회랑을 걷던 그녀를 마주친 칼리안이 발을 멈추었다.
칼리안의 뒤를 따르던 펠로페 가문의 후작 가벤과, 기사들도 멈추었다.
십 미터가량의 거리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에시카.”
하지만 칼리안은 거침없이 그 거리를 좁혀 온다.
그는 에시카의 앞에 멈추어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던 그날보다 조금 수수하지만, 오늘의 모습 또한 충분히 넋을 잃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
에시카는 칼리안과 함께 예기치 않은 산책을 했다.
그와 둘이 화원을 함께 걸은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예쁜 꽃들이 많다며 칼리안에게 산책을 권하던 수년 전의 에시카의 모습과…….
차갑게 눈썹을 찌푸리며 바쁜 게 보이지 않냐고 눈치를 주던 칼리안.
그래, 그 이후에 에시카는 칼리안에게 화원 산책을 말해 본 적 없었다.
“당신이 어머니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더군.”
에시카의 옆에 걷던 칼리안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하늘은 지금 칼리안의 기분만큼이나 맑았다.
“……제가, 어머님과 더욱 사이좋게 지내시기를 바라시는군요.”
에시카의 말에 칼리안은 왜 그런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제국의 평화는 가정의 평화에서 시작된다는 초대 황제 폐하의 말씀이 유명하지.”
분수에서는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공기는 쾌청하고 볕은 썩 좋으니 다정한 부부가 함께 걷기 좋은 날이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클라우스의 정원.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는 리오나의 온실이 있다.
귀한 꽃, 스미첸의 국화를 키우는 그 온실은 병력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어 리오나가 아닌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공작 전하께서는 가정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데요?”
에시카의 목소리는 화난 것 같지 않고 가벼울 뿐이었다.
그래서 칼리안은 가벼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와 어머니, 이 아름다운 클라우스 저택, 그리고…….”
칼리안은 잠시 멈추어 서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나의 부인, 에시카. 당신이오.”
말을 하면서도 칼리안은 목이 조금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색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는 에시카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끄럽고 귀찮은 여자, 그뿐이었는데…….
자신이 그녀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에시카도 발을 멈추었다.
지난번 만남에서의 분위기가 좋았기에, 칼리안은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말에 감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에시카, 그녀는 이제야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의 가족으로 인정받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그녀가 그토록 바라오던 일이 아니었던가.
“재미있네요.”
하지만 에시카의 눈동자에 큰 감흥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소 싸늘한 빛까지 감돈다.
“…….”
칼리안은 자신이 잘못한 점을 알지 못했다.
아니, 잘못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완벽한 대답을 한 것일 뿐이니.
“…….”
에시카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리안도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걸었다.
“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생각이에요.”
한 걸음 정도 앞서가는 에시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칼리안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과거의 잘못이라……. 많은 것은 오해였지만, 그렇다고 에시카가 모범적인 공작 부인으로 행세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자기반성쯤은 할 수도 있겠지.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잊고 있었으니까요.”
“……에시카…….”
에시카가 노력하겠다는 소리처럼 들려 칼리안은 기분이 좋았다.
대견하며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른 시일 내 같이 밤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2세를 보는 것을 너무 지체했다.
벌써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초야를 보내지 않았다니.
“지금부터라도 공작 부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면 나도 그대를 지원…….”
칼리안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에시카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에시카의 푸른 눈은 넓은 화원을 담고 있었다.
“……선전 포고 정도로 받아 주세요.”
에시카가 싱긋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칼리안 클라우스와의 간격을 유지해야만 했지만…….
때로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의 충동을 느꼈다.
아마 지난 세월 동안 가슴에 쌓인 화증 때문이리라.
“선전 포고라,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러는데…… 노력하겠다는 건가?”
칼리안이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에시카에게 물었다.
확실히 어떤 부분에서 칼리안은 무지하고 순수하다.
그러나 그 무지와 순수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칼리안은 죽을 때까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네.”
그러니 죽기까지 뉘우칠 수 있도록 노력할 수밖에.
에시카는 꽃 한 송이를 꺾으며 웃음을 흘렸다.
그가 생각하는 노력과 제가 말하는 노력은 그 방향이 다를 것이다.
칼리안을 만날 때 불안함과 기대로, 이 몸에 각인된 듯 저도 모르게 울렁이던 가슴의 상태는 이제 편안함이 익숙했다.
칼리안에게 가족은 리오나와 자신이며, 에시카는…… 언제나 그 축에 끼지 못했다.
이방인. 그녀는 단 한 번도 이 저택에 속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음에도 더는 그가 남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정점을 찍은 거부감이 뱀처럼 머릿속에서 넘실댈 뿐이다.
“풋, 그대도 싱겁군.”
칼리안은 에시카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저택의 많은 눈이 이곳을 보고 있었다.
아마 오늘도 소문이 돌 것이다.
공작 전하께서 부인에게 푹 빠지셨다고.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이다.
**
그날 밤, 칼리안의 방.
환한 전등석은 늦도록 빛나고 있었고 칼리안의 손에는 편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저를 꺼내서 복귀시켜 주지 않으면, 에시카에게 그날 밤의 일을 말하겠어요.’
유리가 청사 감옥에서 보낸 편지 끝부분에 적힌 이야기에 칼리안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내 분노 섞인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리 아네시스. 감히…… 나를 협박하는 건가?”
처음에는 그녀를 가엽게 여겼다.
멍청하고 사치스러운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는 청초한 소꿉친구라니.
알렛 반지를 그녀의 손에 끼워 줄 때만 해도, 제 부인이 에시카가 아니라 유리였으면 하고 바랐으니까.
“공작…… 전하…….”
그러나 그녀를 책임질 생각은 없었다.
칼리안은 유리를 바랐으나 품지 않았고, 그리하여 더욱 에시카에게 당당했다.
에시카의 발작은 유리의 위로를 얻기에 좋은 핑계가 댈 수 있었다.
그 마음이 완전히 뒤집힌 것은 한참 후였다.
그 둘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꽃처럼 피어나는 에시카와, 그녀에 비해 지극히 평범하여 유약해 보이는 유리.
아마 처음부터 에시카가 유리보다 아름다웠을 것이다. 단지…… 에시카에 대한 오해가 그녀에 대한 자신의 진짜 마음을 가렸기 때문이었겠지.
유리에 대한 마음이 꽃이 지듯 사그라들고 있었으나, 술이 문제였다.
에시카에 대해 서운하고 복잡한 마음을 토로하다가 유리와 자 버렸다.
언젠가 에시카가 따졌던 그 일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칼리안은 유리와 외도 관계를 지속할 생각이 없었다.
아네시스 가문은 브리기트보다도 격이 떨어지지 않는가.
그저 실수로 보낼 하룻밤일 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시집가게 되면 예물이나 많이 마련해 주면 된다.
그런 방식으로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리가 에시카의 보석을 횡령하려 하다가 고발당하는 일이 생겼다.
에시카를 설득해 유리를 도와주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고, 칼리안은 제가 손을 뻗기보다는 그대로 두었다.
몇 번 편지를 보내오는 간격이 뜸해지길래 포기했나 싶었더니…….
“하…….”
칼리안은 종이를 펴고 깃펜을 집었다.
그리고 굳은 눈썹으로 뭐라고 편지를 끄적인 칼리안은 몇 번이고 나직한 욕설을 내뱉었다.
편지를 접은 뒤 그는 한스를 불러 명령했다.
“이것을 청사 관리에게 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칼리안은 꽤나 기분이 나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