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49)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49. 그녀를 위한 선물(49/192)
#49. 그녀를 위한 선물
2024.01.18.
에시카는 단 한 번도 유리에게 무릎을 꿇거나 빌라고 명령해 본 적이 없었다.
둘에게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지만 유리를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에시카는 위엄 있으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명령하고 있었다.
유리는 눈썹을 굳힌 채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시녀장 따위가 공작 부인의 비품 수령을 방해하려 하다니 그 죄가 크잖아?”
“……!”
“게다가 반말이라. 윗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버릇은 따끔하게 고쳐 줘야겠구나.”
턱을 살짝 올려든 채 고고하게 명령하는 에시카의 말에 유리는 주먹을 쥐었다.
하녀들은 움츠린 채 다른 곳만 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에시카의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지금까지 에시카가 유리를 친구로 여겼던 것은 호의였을 뿐이다.
하녀들이 에시카를 무시했던 것도 대부인의 용납 아래여서였고.
그러나 이제 판도가 뒤바뀌었다.
에시카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에시카를 천대했던 하녀들은 이제 그녀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방금 셀라를 괴롭힌 일도 유리가 조장해서 거든 것일 뿐.
“…….”
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에시카 따위가…… 에시카 따위가 제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다니.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공작 부인.”
유리는 에시카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멋대로 비품을 훔쳐 가려는 하녀를 혼내 줬을 뿐이에요. 제가 뭘 잘못했다는 건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에시카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비품 관리가 언제부터 시녀장의 소관이었지?”
그 말에 유리의 눈썹 끝이 꿈틀 움직였다.
“대부인께서 제게 권한을…….”
“그러니까 셀라가 내 베개를 받아 가는 것을 방해하라고, 대부인께서 네게 명령하셨다?”
에시카의 말에 유리는 흠칫했다.
“그건…… 아니지만, 저는 대부인의 뜻에 따라 공정하게 비품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풋.”
에시카의 입술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노골적인 비웃음에 유리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렇다면 말해 보렴. 푸른 백조의 깃털로 만든 베개를 내가 가져가는 것이 어찌해서 공정한 비품 관리가 아닌 것인지.”
“푸른 백조는 황실의 하사품이에요. 귀한 깃털이라 공작 전하께서만 사용하시죠. 공작 전하께서 특별히 허락하셔서 대부인께서도 쓰고 계시지만 부인은 달라요.”
“그러니 공작 부인이 사용하기에는 마땅치 않다는 말이구나.”
에시카의 말에 유리는 한술 더 떠서 말했다.
“맞아요. 주제넘은 짓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
에시카는 팔짱을 끼고 유리를 내려다보았다.
“비품 장부 목록은 십 년 넘게 보관되지. 그렇다면 대부인께서 공작 부인이시던 시절 푸른 백조 깃털을 사용하셨는지 살펴보면 되겠구나.”
그 말에 유리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에시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그건…….”
유리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대부인의 하녀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대부인의 걸어다니는 귀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가는 사달이 날 것이다.
“공작 부인이 푸른 백조 깃털을 사용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라고, 시녀장인 유리 아네시스가 말하였다. 이렇게 대부인께 전해 드리면 되겠니?”
유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말이 전해진다면 대부인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겠지.
그녀는 유리가 에시카를 괴롭히길 바라되 그 모욕이 제게 튀길 바라지 않는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니, 네 윗분께 여쭐 수밖에 없지 않겠어? 유리?”
유리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리 경우 없이 행동하는 것조차 대부인의 뜻 안에 있다면 더더욱 교육을 요청드려야겠지.”
“공작 부인!”
유리는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에시카를 노려보았으나 반박하지 못했다.
이전 같았으면 에시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처참하게 자신이 무너지다니.
“제게 이러시면……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 예요.”
유리는 에시카를 노려보며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바닥에 무릎이 닿고, 제 허벅지 아래쪽에 흉터가 닿으며 그날의 굴욕이 전해져 온다.
에시카는 무릎을 꿇은 유리의 턱을 올렸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그리고 손을 들어 유리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찰싹- 소리가 나며 유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셀라는 흠칫 놀라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하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리는 볼이 붉어진 채 에시카를 노려보았다.
“사과를 받기 전 먼저 네가 셀라에게 주었던 거, 돌려줄게.”
에시카는 고운 미소를 띤 채 유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너는 감히 내게 충고할 위치가 아니란다. 마냥 빌어야 할 위치이지.”
유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에시카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판단 똑바로 해. 그러다가 내가 네 배라도 걷어차면 어떡하겠어.”
그 말에 유리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유리의 당황스러운 눈동자 속에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허튼 추측일 것이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유리는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공작 부인.”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대부인의 뜻이 아닙니다. 전부 제가 잘못 판단하고 건방지게 행동한 결과입니다. 대부인께 묻지 말아 주세요.”
유리는 주먹을 꼭 쥔채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청했다.
유리가 완전히 굴복한 모습을 본 대부인의 하녀 모두 소리 한 번 낼 수 없었다.
약하고 보잘것없던 공작 부인은 이제 없다.
**
유리와 하녀들에게 벌을 세워 두고 오는 길, 셀라는 계속 훌쩍였다.
“으흐흑…… 부인…….”
눈이 빨개져서 자신을 뒤따르는 셀라를 보며 에시카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베개는 며칠간은 쓰지 못하겠구나.”
셀라의 품에 안겨 있는 푸른 백조 털 베개는 반쯤 젖어 있었다.
셀라의 눈물 때문이었다.
“죄…… 죄송해요. 부인…… 흐흑…….”
셀라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제가 잘 말려서 내일은 꼭 푹신한 베개를 쓰게 해 드릴게요.”
셀라는 에시카의 뒷모습을 보며 지난날을 후회했다.
왜 부인이 이렇게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금방이라도 썩을 것 같은 빵을 가져다주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게다가 부인에게 독을 먹이려 하다니. 죽어 마땅하다.
셀라는 속으로 결심했다.
에시카 클라우스 공작 부인은, 아랫사람으로서 충성을 바칠 가치가 있는 분이라고.
그리고 자신 역시 목숨을 다해 에시카를 보필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깟 베개가 뭐라고. 풋.”
에시카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편안하고 좋은 침구도 그것만으로 마음을 편하게 할 수는 없다.
단잠을 이루게 만드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였다.
**
눈을 감으면 코끝에 달콤한 향기가 흘러드는 듯하다.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이 점점 뚜렷해졌다.
그 잔잔하지만 강인한 눈동자 속에는 짙은 확신이 서려 있었다.
소녀의 입술이 달싹이자 가슴 속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마도 삶의 의지였을 테이다.
잿더미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같은 의지.
한때 자신을 살려냈던 그것.
“나는 영영 꿈에도 잊지 못하는데…….”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바깥을 바라보던 레스반은 입술을 달싹였다.
낮은 목소리가 옅게 비틀리는 입술 새에서 흘러나온다.
“그대는 참으로 얄궂군.”
찬란한 금안 속 황궁 정원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
레스반은 눈을 감았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눈썹을 간질인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데, 그녀는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다.
그래도 신중해야 할 때라는 것은 안다.
애써 찾아낸 흰나비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황태자 전하.”
다가온 시종이 레스반에게 고했다.
“페르토스 리하임 백작입니다.”
고개를 까딱인 레스반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황실 조사단의 단장, 페르토스 리하임 백작이 오고 있었다.
부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공정한 성품의 사내이며, 창처럼 단단한 촉을 가졌다.
또한 황실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충신이었다.
백작은 레스반에게 허리를 깊게 숙여 예를 표했다.
그리고 입술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 명령하신 대로 그들에게 증언과 증거를 얻었습니다.”
백작은 레스반의 대답을 기다렸다.
보통의 경우대로라면 소환장을 보내는 것이 먼저였다.
클라우스는 주요 가문 중 하나였고, 불미스러운 일에 조사를 받게 되더라도 그들의 명예를 지켜 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레스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요란스럽게 굴고 오라.”
“…….”
레스반의 입꼬리 끝이 옅게 비틀렸다.
“잊을 법하면 상기시킬 수밖에.”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다림마저도 과정이라 생각하면 즐겁지만 간혹 보풀 같은 짜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백작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아마도 그가 보낸 것들은 그녀에게 시기적절한 선물이 될 것이다.
안전을 나서는 백작이 제 뒤의 단원들에게 명령했다.
“다들 준비하거라. 지금 클라우스 공작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