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6)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56. 이혼을 막을 방법(56/192)
#56. 이혼을 막을 방법
2024.01.25.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슈페르트가 에시카를 찾아왔다.
슈페르트는 딱딱하게 굳은 눈썹으로 티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곧장 이야기를 꺼냈다.
“에시카, 이혼하거라.”
그러나 에시카는 차분한 표정으로 차를 홀짝일 뿐이었다.
그녀는 슈페르트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부인인 리오나 클라우스가 3년 동안 며느리를 미워해 괴롭힌 데다가 얼마 전에는 사람을 써서 에시카를 죽이려던 것이 발각되어 조사받고 있다는 것이 전해졌었다.
그에 더해 클라우스 공작이 에시카에게 외도의 혐의를 씌우려 했는데, 오히려 제가 외도해서 유리 아네시스의 배에 그 작자의 아이가 있다는 것이 들통났다는 이야기까지 소문이 퍼졌으니…….
에시카를 아끼는 슈페르트가 수도 토레스까지 달려온 것도 당연한 일이다.
“칼리안 클라우스가 그런 작자인 줄 알았다면, 끝까지 네 결혼은 반대했을 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외도는 이혼을 요청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 놓고 정부를 들이는 고위 귀족이 많은 이유는, 부인이 이혼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명망 높은 귀족 가문에서는 여식이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오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겼으니까.
그러나 브리기트는 달랐다.
태생이 평민 출신인 신흥 귀족이었고, 소남작 슈페르트 브리기트는 명예보다는 여동생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의 클라우스에는 제게 돌려줄 지참금이 없어요. 그들이 살고 있는 대저택을 팔면 모를까.”
“……뭐? 네가 얼마나 큰 돈을 가져갔는데!”
외도를 이유로 이혼하게 되면 부인이 가져온 지참금을 돌려줘야 했다.
그리고 에시카가 시집갈 때 브리기트에서 준비한 지참금은, 브리기트의 재정이 잠시나마 휘청였을 만큼 엄청난 금액이었다.
“대부인의 사치와, 투자에 사용했거든요. 얼마 남지 않은 클라우스의 자산까지 몽땅.”
서부 거점 선정을 앞두고 있는 취헨에 말이다.
“제기랄, 망할 자식들.”
슈페르트가 이를 으득 갈았다.
“그렇다면…… 지참금을 포기해도 좋으니…….”
무거운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이 지옥 같은 곳에 있지 말거라, 에시카.”
귀족들 사이에 파다한 불륜이나 고부 갈등 같은 스캔들은 호사가들의 입을 타고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되었지만.
이번의 클라우스 스캔들처럼 큰 사건은 사교계에서도 없었다.
리오나 클라우스, 그녀가 누구인가.
패전국의 왕족 출신으로 선대 클라우스 공작과 내연 관계에 있다가 본부인을 쫓아내고 공작 부인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와의 사이에서 본 아들 칼리안 클라우스를 선망받는 공작 2세로 키워 내었다.
내연녀 출신이었다는 이야기가 언제나 그녀에게 뒤따랐었지만, 기품 있는 태도와 치밀한 정치력으로 사교계의 부인들을 사로잡으며 어느 순간부터 뒷소문은 쏙 들어갔다.
그녀야말로 가장 클라우스다운 부인이고, 그 아들인 칼리안 클라우스처럼 유서 깊은 클라우스에 적절한 후계자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 보았자 근본은 속이지 못한다.’라고.
“이곳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격한 걱정이 묻어나는 슈페르트의 목소리에도 에시카는 빙긋 미소 지을 뿐이었다.
잠시 뒤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제가 여기서 이혼하면 이 결혼은 실패한 경험이 될 뿐이겠죠.”
그 말에 슈페르트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여기서 버텨 보았자 성공한 결혼이 될 수 없어. 내가 칼리안 클라우스를 불같이 사랑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에시카, 널 생각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이제는 지옥 속에서…….”
“오라버니, 저는 더 이상 칼리안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 말에 슈페르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에시카가 칼리안과 결혼하게 해 달라며 식음을 전폐했던 일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러나 지금 청명한 푸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에시카는, 그때와는 달랐다.
철없고 고집스러운 과거와는 달리, 섬뜩하리만큼 선연한 어둠이 그녀의 눈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에도 뭔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확신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제가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칼리안 때문이 아니에요. 이 결혼을 재차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확신해서도 아니고요.”
찻잔을 내려놓는 에시카의 손동작은 우아했다.
“아버지께서는 늘 말씀하셨어요. 멍청한 자는 진주 하나를 백 링을 주고 사지만, 현명한 자는 링 하나로 진주 열 개를 얻는다고.”
“……에시카.”
“작위를 돈을 주고 서로 사고파는 세상이에요. 이 또한 진주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나요?”
서늘한 에시카의 눈빛에 슈페르트는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의 에시카는 더는 그가 알고 있던 철부지 막내가 아닌 것 같았다.
에시카의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저는 아버지나 오빠처럼 유능한 상인이 아니지만, 손해 본 것에 대해서 몇 배로 받아 낼 자신이 있어요.”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슈페르트에게 당부했다.
“그러니까 한 번 더 저를 믿어 주세요.”
멍하니 에시카를 바라보던 슈페르트는 생각했다.
‘설마…… 클라우스를……?’
슈페르트는 유능한 상인이었다. 연 수백 건이 넘는 거래를 했고 사람의 기량을 읽는 데는 빠삭하다.
눈앞의 에시카는 제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이룰 것처럼 자신이 있어 보인다.
‘평범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눈빛이 아니다.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달라진 거지?’
**
어둠에 휩싸인 칼리안의 방. 노크를 한 리오나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에는 술 냄새가 강하게 풍겼고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휘날리고 있었다.
발코니의 의자에 쓸쓸히 앉아 있는 칼리안의 모습에 리오나는 가슴이 욱신거렸다.
칼리안의 곁에 다가간 리오나가 멈추어 섰다.
“……공작.”
칼리안은 리오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세상 그 무엇보다 리오나를 우선시했던 칼리안이었는데, 이제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앉아 있을 뿐이다.
일렁이는 눈으로 칼리안을 보던 리오나는 칼리안의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칼리안은 굳은 얼굴을 돌려 어머니를 보았다.
“…….”
아무리 리오나를 외면하고 싶은 칼리안이라고 해도, 제 앞에 무릎까지 꿇은 리오나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일어나세요.”
칼리안은 리오나의 가녀린 손목을 붙들었다.
그러잖아도 흰 편이었던 리오나의 피부가 더 창백한 것을 보자 칼리안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칼리안은 힘을 주어 리오나를 제 자리에 앉혔다.
어머니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썩 아팠다.
“나는…… 그저 공작이 잘되기를 바랐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리되어 버려 공작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다 내 죄인데…… 으흐흑…….”
리오나는 칼리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
칼리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해 보았자 엎질러진 물이다.
“어머니께서는 에시카에게 그러지 않으셨어야 합니다.”
꾹 쥔 리오나의 주먹이 움찔 움직였다.
절대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칼리안은, 이제 에시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그녀를 비난한다.
“그리고 저도…… 그녀에게 그러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잘못된 일이었어요.”
“공작, 자책하지 마세요.”
앉아 있던 리오나는 팔을 벌려 서 있는 아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다 어미의 죄일 뿐입니다. 공작은 잘못한 것 없어요.”
그래, 칼리안의 말대로 상황이 이 지경이 될 줄 알았더라면 일을 키우지 않았을 테다.
망할 유리 아네시스! 이 상황도 애초에 그년을 소꿉친구랍시고 데려온 에시카 때문이다.
두 망할 년들 때문에 클라우스는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
잠시 그대로 서 있던 칼리안은 리오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녀에게서 몸을 빼냈다.
그리고 눈썹을 굳힌 채 입술을 열었다.
“오늘…… 에시카의 오라비가 그녀를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필시 이혼을 종용했겠죠.”
이혼이라는 말에 리오나의 눈동자가 잠시 일렁였다.
“설마요. 그저 동생이 잘 있나 위로하러 온 것일 뿐이겠죠. 이혼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귀족가에서는 여식의 이혼을 불명예로 생각한다.
“그들은 브리기트입니다. 명예보다는 실속을 중요시하는…….”
칼리안의 말에 리오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혼을 요구한다면, 클라우스에서는 내줄 지참금이 없었다.
칼리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당연하게도 칼리안은 지참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 제 잘못입니다. 그날 유리를 안지만 않았더라도.”
불같은 후회가 들끓고 있었다. 정말 에시카가 이혼 요구를 한다면…….
칼리안은 에시카를 보내 줄 자신이 없었다.
에시카 클라우스…… 늦게야 깨달은 진정한 사랑.
그녀가 자신을 경멸한다 하더라도, 그는 제 곁에 에시카를 두고 싶었다.
잠시 말없이 주먹을 꼭 쥐고 앉아 있던 리오나가 입을 열었다.
“칼리안…….”
취헨의 서부 거점 선정은 아직도 소식이 없고, 이제 그들은 어떻게든 에시카를 붙잡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러니 리오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어미가 돕겠습니다. 에시카가 클라우스를 떠날 생각을 접도록.”
그녀는 내키지 않지만 방향을 변경하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 잘 대해 주면, 금방 누그러질 겁니다.”
리오나의 말에 칼리안의 눈동자가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