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9)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59. 황태자의 인내심(59/192)
#59. 황태자의 인내심
2024.01.28.
“……이런 암시장은 무슨 일로 드나드시는 건가요?”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수상하다는 듯 말을 거는 그녀를 보며 레스반은 피식 웃었다.
뭐…… 할 말이 없긴 하다.
클라우스 공작 부인이 이런 곳에 드나드는 것도 영 이상한 일이니 말이다.
“알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런데 그게 꽤 어려운 정보라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구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서 왔어요.”
“그대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길가에 몰려 있는 몇몇 사내들이 연인으로 보이는 둘을 힐끔대는 것이 보였다.
에시카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자들도 있었으나, 체격 좋은 연인이 함께 있으니 쉽사리 말을 걸지는 못했다.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 들렸다.
“진지하게 상대해 줄 자는 없을 듯하군.”
레스반의 지적에 에시카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진지하게 상대하게 할 방법이 있긴 한데…… 역시 너무 주목을 끌겠지.
“누가 봐도 외부인 같아 보이죠?”
번화가에만 나가도 널리고 널린 차림새였다. 비싼 드레스 샵에서 맞춘 지 얼마 안 되는 티가 나는 정숙한 중산층 여성의 드레스.
하지만 암시장에서는…… 바깥에서 정상적인 차림의 이 드레스가 이렇게 눈에 띌지는 몰랐다.
사람들이 저렇게 힐끔댈지도 몰랐고 말이다.
시끄러운 것은 딱 질색인데 말이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결국 에시카는 레스반의 손을 이끌어 암시장 골목에서도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잠시 가려…… 주실 수 있어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어색한 표정으로 머뭇머뭇 말하는 에시카의 말에 레스반은 그녀의 앞에 마주 보고 섰다.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가 궁금했다.
제 앞에 마주 선 레스반을 응시하는 에시카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움직임과 동시에,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부욱-
치맛단이 뚜두둑 뜯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꽉 막혀 있던 드레스의 단이 뜯기고 그녀의 하얀 무릎이 드러났다.
너덜너덜해진 옷은 그녀를 이곳의 사람처럼 보이게 해 주었다.
새 드레스를 만족스럽게 헌 드레스로 만든 에시카는 제 기지에 뿌듯해하며 무릎을 내밀고는 레스반에게 말했다.
“이제 눈에 띄지 않겠죠?”
하지만 그녀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레스반의 표정이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은 눈썹과 서늘한 눈매 속 짙은 금안, 갈증에 찬 듯한 짐승, 혹은 혼돈 속 절벽 위에 있는 맹수…….
그래, 저런 눈빛을 뭐라고 해야 할까.
레스반은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리고 조금 흐트러진 에시카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대는…….”
붉은 입술이 달싹이며 아찔한 음성을 흘려보낸다.
어둠 속 보이는 그의 얼굴은, 언제나 감정을 알 수 없는 평소의 표정과는 달랐다.
“내 인내심을 끊임없이 건드리는군.”
흉포하리만큼 뇌쇄적인 눈빛에 가슴이 덜컹거렸다.
레스반의 숨소리가 들린다. 오늘의 그는 언제나처럼 정돈되고 빈틈없는 황태자의 모습이 아니었고, 지금 이 순간은 더더욱 그러했다.
금안에 언뜻 실 하나가 신기루처럼 비추는 듯하다.
얼핏 잘못해서 끊어져 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듯한.
“…….”
여기서 뭔가 더 말하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에시카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에야 레스반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조금 돌렸다.
어지러운 빛과 어둠을 배경으로, 그의 옆선이 보인다.
아찔하리만큼 높게 이어지는 콧대와 유려한 턱선, 툭 튀어나온 목울대.
그리고 어쩐지 조금 붉게 보이는 그의 얼굴.
오늘은…… 이상하다. 에시카는 시선을 내려 뜯어진 드레스 조각을 바라보았다.
**
두 사람이 암시장 골목의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검은 복면을 쓴 사내가 나타나서 레스반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조금 부끄러워진 에시카는 황급히 레스반의 손에서 손을 빼내었고 레스반은 더 붙잡지 않고 놓아주었다.
‘아까부터 어색해.’
이상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후로 레스반은 에시카에게 더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딱딱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끌 뿐이었다.
몸에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 걱정될 정도이다.
아무튼, 마주친 남자는 어느 건물 안으로 레스반을 안내했다.
“곁에 계신 분은…….”
“믿을 수 있는 자야.”
레스반의 말에 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도박장이 보였다.
매캐한 연초 연기와, 여기저기에서 돈을 내고 잃고 따는 백여 명의 사람들.
구석에는 엉키고 엉켜 영 민망한 짓을 하는 남녀들도 있었고, 약에 취한 듯 해롱거리며 주저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에시카는 영령이었을 시절, 종종 도박장에서 돈을 땄다.
‘여기나 저기나, 사람 사는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군.’
바라보는 자의 관점이 양지이냐, 음지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당연하게도 레스반이 그곳에 도박을 하러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에시카는 레스반의 뒤를 따라 도박장을 지나 더 깊게 들어갔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집무실 같았는데 특이하게도 창문이 없었다.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바깥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창문은 없었지만 붉은빛을 내는 조명등이 천장에 하나 달려 영 홍등가 같은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짙은 피 냄새가 난다. 많이도 죽였군.’
에시카는 집무실의 가구에 밴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이내 아까는 보지 못했던, 중절모를 쓴 남자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여성분을 대동하셨군요, 마스터.”
그는 레스반과 에시카에게 차례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저는 파닉스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파닉스라면 아마도 가명이겠지.
“반갑습니다.”
에시카는 짧게 인사했다. 물론 구태여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남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에시카의 눈을 바라보았다.
상대를 파악하는 데 능숙한 자이다. 에시카 역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옅은 미소를 띤 남자가 시선을 내렸다.
그 모습에 레스반의 입가가 옅게 비틀렸다.
“그녀가 찾는 물건이 있다더군. 그것이 무엇이건…… 도와줘.”
“아, 그렇습니까.”
레스반의 명령에 파닉스는 에시카에게 말을 꺼냈다.
“토레스의 암시장에서 저만큼 발이 넓은 자는 없으니, 말씀해 주신다면 용의 비늘이라도 구해 보도록 하죠. 보스의 특별 손님이시니.”
파닉스가 에시카에게 주절거리고 있는 사이 레스반은 집무실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쌓여 있는 서류 뭉치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물 위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 아래 치열하게 벌어지는 정보전은 승리를 이끄는 주역이며, 세상에서 배척받는 암시장과 암흑가는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섯 놈들의 목만 쳐도, 적군 500명을 사살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으니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셀릭서라. 이에 대해 떠드는 자들이 몇몇 있었죠. 일주일 뒤에 오시면 정보를 정리해 두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보수는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마스터의 손님께 보수는 받지 않습니다.”
싱긋 웃는 파닉스를 보던 에시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 더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그녀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하세츠에서 겪으셨던 일들.”
그와 자신의 인연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은 역시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레스반은 그녀에게 기억해 내라고만 할 뿐,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그건 저도 곤란할 것 같습니다. 손님.”
파닉스는 조금 난처한 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는 법이라면 하나 알고 있습니다.”
한참 뒤 에시카가 돌아섰을 때 멀리에서 레스반이 일어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가 보던 서류는 잠시 접혀 있었다.
“데려다주지.”
“괜찮아요, 혼자 갈 수…….”
하지만 에시카의 말이 끊기기 전에 레스반은 다가와서 손목을 잡았다.
어림도 없다는 듯.
**
“세상에, 너무 예뻐요.”
방 구석구석 장식된 꽃병에는 파미나스가 한 다발씩 꽂혀 있었다.
셀라는 달라진 방의 분위기에 감탄하고 있었다.
과연 스미첸 왕국의 국화답게 달콤한 향기는 방의 품격을 더해 주었다.
“…….”
하지만 에시카는 별 감흥 없이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제국의 역사, 그 이면의 미스테리한 사건’이라는 책이었다.
‘내가 참견할 건 아니지만, 추측이 맞다면 그곳은 튜레시안의 비밀 정보기관이겠지.’
그들이 에시카에게 줄 정보는 아마 제국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보일 것이다.
잘된 일인데, 레스반을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 한쪽이 아릿하다.
굳이 저택 앞까지 자신을 데려다주며 그가 하던 말.
“다음에는 차라리 하녀의 옷이 적절할 듯해. 눈을 뽑고 싶은 놈들이 한두 놈이 아니었으니.”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똑똑-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에 다가가 문을 연 셀라가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에시카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문 바깥에 서 있던 칼리안이 천천히 걸어 에시카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칼리안은 언제나처럼 흰 제복을 입고 있었고,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며칠은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눈 아래가 시커멨고,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입술이 말라 있었다.
병이라도 든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얼굴.
“……무슨 일이시죠?”
에시카는 차갑게 물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하지 않고 방에 무작정 들어온다는 것은, 아무리 부부지간이라고 하더라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과거의 에시카는 자신을 만나 주지 않는 칼리안의 방에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칼리안은 경멸의 어조가 담긴 경고를 했었지.
그런데 오늘은…… 칼리안이 그 예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부인…….”
사랑에 빠진 간절한 눈빛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