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62. 장난스러운 입맞춤(62/192)
#62. 장난스러운 입맞춤
2024.01.31.
에시카가 황궁에 들자 시종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레스반에게로 안내했다.
황태자를 찾은 손님 중 이렇게 즉각적으로 안내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레스반은 자신의 전용 연무장에서 수련 중이었다.
셔츠와 제복 바지를 입은 그가 검을 들고 수련하는 모습이 차츰 눈앞에 드러났다.
돔 형태의 연무장, 레스반이 들고 있는 검 주변에 기운이 응축된 바람이 불고 있다.
기운이 섞인 바람은 레스반의 머리카락을 살랑이게 하고 그의 옷자락을 펄럭이게 했다.
‘오러…….’
에시카는 레스반이 든 검의 푸르스름한 기운을 보며 생각했다.
저것은 극한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소드 오러가 틀림없다고 말이다.
무림에서는 이를 ‘강기’라 불렀다.
검의 강기만으로 바위를 두부 썰듯 자를 수 있다.
전생의 에시카, 즉 영령 또한 강기를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깨달음에 비해 수련과 내공이 부족한 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어쩐지 순수한 부러움이 가슴에 솟아났다.
“…….”
레스반은 검을 휘둘렀다.
공중에 매달린 목각 인형들이 하나씩 박살이 나기 시작한다.
검이 닿지도 않았는데도, 검에서 튀어나온 강기 덩어리들이 인형을 박살 내는 것이다.
아마 전쟁에서도 수많은 적이 레스반의 동작 하나하나에 박살이 났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일찍 경지에 다다랐을까.’
무림에서도 이 나이에 화경이나 극마의 경지에 오르려면 운 좋게 공청석유와 같은 영약을 발견해서 섭취하거나, 기연을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절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오를 수 없는 계단인 것이다.
영령도 이미 극마에 오른 독영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절대 극마의 문턱에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하세츠와의 인연과 관계가 있을까. 내가 그에게…….’
레스반은 쪽지로 언급했던 이후, 에시카의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 본 적이 없다.
그와의 인연에 대한 실마리가…… 아직은 부족하다.
파닉스가 준 민간 요법의 약을 먹었으니 그것이 효과가 있다면 점점 떠오를 법도 한데.
콰과광-
마지막 목각 인형을 폭발시킨 레스반은 느긋하게 검집에 검을 넣었다.
그리고 에시카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에시카가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한 눈빛이다.
에시카는 예법대로 레스반에게 인사했다.
“……대단하시군요. 검의 움직임이…… 맹수가 뛰어노는 것 같았어요.”
레스반은 에시카를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늘 에시카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혹은 뭔가, 갈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시종에게서 재킷을 받아 걸친 레스반이 에시카에게 말했다.
“집무실로 가지.”
**
암시장에서의 만남 이후 첫 만남이었다.
은은한 향이 풍기는 황태자의 집무실, 에시카는 레스반을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레스반의 단추 몇 개가 풀려 그의 쇄골을 드러내고 있었고, 레스반은 딱딱하기보다는 조금 나른한 표정이었다.
그의 뒤에 있는 큰 창문 너머로 화사한 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음 주에 폐하께서 서부 거점에 대해 발표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시종이 찻잔과 차를 내왔다.
레스반은 찻잔 고리에 손가락을 끼우며 말했다.
“그대의 엘뮤르가 거점지에서 탈락하게 될까 걱정인가.”
레스반의 직설적인 질문에 에시카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딱딱한 표정으로 레스반에게 물었다.
“……제가 엘뮤르를 구입한 것을 알고 계셨군요.”
“내가 그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을 리가.”
혹시 뒷조사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차명으로 구입해 달라고 슈페르트에게 부탁했었다.
그러나 레스반의 정보망을 벗어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레스반의 짙은 금안이 에시카를 향했고, 그의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암시장에서 보고 느낀 것이 있을 텐데. 나는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많이 알고 있거든.”
“…….”
에시카는 그에게 조금 얄미운 감정이 들었다.
“늘 그대에게 묻고 싶었어.”
레스반은 조금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에시카에게 물었다.
“어째서 엘뮤르에 그대의 전 재산을 투자한 것이지?”
“제가 솔직히 대답해 드려야 하나요.”
“묻기 위해 왔다면, 솔직해져야 솔직한 답을 기대할 수 있겠지.”
역시 얄밉도록 태연한 얼굴을 보며 에시카는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서부 거점으로 취헨이 아닌 엘뮤르를 선정하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유를 듣고 싶군.”
“취헨의 위치와 접근성이 좋다고 하지만, 그만큼 보안에 취약합니다. 서부 거점은 군사 거점을 뜻하는데 그렇게 사방으로 길이 뚫려 있는 지형은 적들이 드나들기에도 좋죠.”
레스반은 손으로 턱을 살짝 괴었다.
에시카를 바라보는 그의 금안에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에시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엘뮤르는 취헨보다는 접근성이 좋지 않지만 도시 밖으로 드나드는 길이 단 세 곳뿐입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요새의 지형이 적을 드나들기 어렵게 하죠. 그리고 드나드는 세 길은 모두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부 거점은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귀족들은 정치적이거나 상업적 관점만 생각할 뿐, 군사적인 부분은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의견이야.”
레스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턱에 괸 손을 빼었다.
그리고 에시카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생각하지 않은 관점이 있어. 그것은, 보급이다.”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취헨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곡물 생산지가 매우 근접하게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군사 거점지로서의 중요한 요건이었다.
그러나 에시카가 여전히 엘뮤르를 택했던 이유는, 그녀가 알고 있는 미래였다.
‘설마 책 내용이 바뀌기라도 하는 거야?’
“엘뮤르는 취헨의 이점을 따라갈 수가 없어.”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가슴이 철렁했다.
슈페르트의 편지 속 내용이 맞는다면…… 지금까지 애써 세워 온 계획은 몽땅 무너지는 것이다.
망할 그 책 내용만 기억하고 클라우스의 실패에 베팅했는데, 까딱하다간 클라우스를 승승장구하게 하고 에시카가 망할 지경이었다.
“……내가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취헨의 허점에 대해 보고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하지만 레스반의 입술 새에서 나오는 그다음 말에 에시카는 흠칫했다.
레스반이 짙은 금안으로 에시카를 응시하고 있었다.
“…….”
에시카의 푸른 눈동자가 일렁였다.
레스반은 지금 에시카를 시험하고 있었다.
자신은 서부 거점을 엘뮤르로 바꿀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레스반은 황제 다음의 권력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에시카는 그를 찾아온 것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가 엘뮤르를 위해 레스반을 찾은 이 순간도, 그의 계획이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제게 바라는 게 뭔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시카는 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요한 일은 엘뮤르의 거점 선정이니까 말이다.
책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엘뮤르를 밀겠다는 확신이었다.
레스반은 입술을 달싹여 낮은 목소리를 냈다.
“나는 내 것을 돌려받기를 원해.”
“전하의 것이 무엇인데요?”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 나쁜 습관이야.”
레스반은 집무실의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큰 키의 그가 일어서자 그의 키보다 더 큰 그림자가 에시카를 향해 졌다.
레스반은 책상 표면을 손끝으로 쓸며 에시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앉아 있는 에시카의 앞에 섰다.
“에시카…… 에시카, 브리기트.”
그의 입술이 달싹이며 낮은 음성이 귀를 간질인다.
한참의 정적이 있고서야 에시카는 눈썹에 힘을 주고 입술을 뗐다.
“하세츠에서 제가 정말…… 전하를 책임지겠다고 했나요?”
슈페르트는 에시카의 잃어버린 과거 속, 하세츠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에시카와 1급 수배 소년과의 만남.
아마도 그는 분명 레스반 데온 루세인이었을 것이다.
“…….”
레스반은 상체를 숙여 에시카의 귀 가까이 입술을 대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서로와의 간격이 가까웠다.
낮은 목소리가 치밀하게 흘러든다.
“그곳에서 나는 죽음과 아주 가까이 있었지.”
그의 목소리에 등골을 타고 싸늘한 소름이 번져온다.
“내가 왜…… 더 살아야 하는 건데. 너무 고통스러워.”
소년의 절망 어린 목소리가 문득 뇌리 안을 뚫고 지나간다. 환상처럼 짧고 강하게.
이내 흉포하리만큼 강렬한 그의 금안이 에시카의 눈 바로 맞은편에 와닿았다.
그녀는 제 심장이 뛰는 박동을 느끼며 레스반을 바라보았다.
파닉스가 주었던 약의 효능인가?
레스반은 손을 올려 에시카의 볼을 감쌌다.
“강제로 내 멱살을 잡고 숨을 불어넣은 것은 그대였어.”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물에 빠진 듯 숨이 가빠 올 뿐이었다.
“다시는 떠나지 않을게.”
머리에 맴도는 이건 누구의 목소리일까.
“그러니 그대가 어서 털어 내지 않으면 사로잡아서라도.”
에시카는 손을 뻗어 레스반을 조금 밀어내려 했지만 레스반의 다른 손이 에시카의 팔을 붙잡았다.
“그대를 갖고 싶은 충동이 솟아오르고는 해. 나는 너무 오래 기다렸거든.”
에시카는 눈썹을 세우려 했지만 레스반의 말에 흠칫했다.
어쩌면 에시카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클라우스의 손을 들어, 성공한 리오나가 에시카를 쫓아내게 하고, 몰락한 에시카를 잡아 오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리고 그 머뭇거리는 틈을 타 레스반은 턱을 비스듬히 돌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
키스라고 하기보다는 접촉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은, 찰나의 건조한 입맞춤.
거칠면서도 속을 알 수 없고, 제멋대로이면서도…… 깔끔한 남자.
“…….”
레스반은 입술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이없게 입맞춤에 휘말려 버린 에시카는 흔들리는 눈으로 레스반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꼭 쥔 주먹이 떨리는 찰나 레스반의 입꼬리가 꽤나 장난스레 올라갔다.
“그래도, 엘뮤르의 손을 들어 줘야겠지.”
그를 한 대 때리기라도 하려 했던 에시카는 손에 힘을 풀었다.
그의 눈동자가 유독 쓸쓸해 보였다.
“그대에게 미움받지 않으려면…….”
레스반은 건조한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