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3)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63. 왜 자존심이 상하는 걸까?(63/192)
#63. 왜 자존심이 상하는 걸까?
2024.02.01.
에시카는 결코 모를 것이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레스반의 참을성과 자제력이 그답지 않게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이성과 논리로 움직이는 냉혈한에게 불같은 충동이 깃들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레스반의 표정은 능글맞다고 느껴질 만큼 태연했다.
고수들이야 대부분 그렇다고야 치지만, 레스반은 더더욱, 얼굴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에시카가 레스반을 뻔뻔하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전하의 약속을 믿겠습니다.”
눈썹을 찡그린 에시카의 모습에 레스반은 옅게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영 마뜩잖은 표정으로 그 위에 손을 올리는 그녀를 데리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에시카는 레스반의 손에서 제 손을 빼내었는데, 그것까지 말리지는 않았다.
“에스코트를 이렇게 중단당한 적은 처음이군.”
나직한 목소리에 즐거움이 섞여 들려온다.
“배운 것이 없으니 이해해 주세요.”
에시카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가시 돋친 말은 레스반을 즐겁게 했다.
레스반에게 말을 걸기는커녕 얼굴만 봐도 바들바들 떠는 영애들이 한 무더기라는 것을 에시카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레스반이 농담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건네는 여자도, 하나뿐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에시카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에시카에게서는 달콤한 향기가 났다.
손을 뻗어 잡히지 않는 새를 잡으려면, 새가 기꺼이 들어올 만한 좋은 새장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어? 형님!”
그들의 눈앞에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나타났다.
누군가 오는 기척은 느꼈지만, 피할 수 없었기에 에시카는 담담하게 멈추어 섰다.
황실 제복을 입은 남자는 갈색 머리카락에 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양옆에는 거의 헐벗다시피 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 둘이 요염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붉었고, 그에게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브레이튼 라마렉 루세인, 성년식을 치른 지 얼마 안 되는 열아홉 살의 제2 황자였다.
“…….”
술을 잔뜩 마신 듯한 그는 비틀거리는 시선으로 에시카를 보고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주절대기 시작했다.
“여기, 아름다운 레이디는 애인이십니까? 제 코르티잔들을 빌려드린다고 할 때도 마다하시더니 이유가 있으셨군요.”
레스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지만, 취한 브레이튼에게 눈치란 없었다.
“와아.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레이디가 계셨다니.”
그는 에시카에게 고개를 가까이 들이대며 그녀의 얼굴을 품평하기 시작했다.
‘철모르는 망나니라더니, 사실이군.’
브레이튼을 낳은 황후는 전대 클라우스 공작의 누이이자, 칼리안의 고모였다.
그러니 2황자는 칼리안의 사촌 동생인 셈이다.
이는 클라우스 공작가가 2황자를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에시카 클라우스.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의 부인입니다.”
제게 얼굴을 들이대는 브레이튼과 시선을 맞춘 채 에시카는 딱딱하게 말했다.
에시카의 말에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브레이튼은 뒤늦게 손뼉을 쳤다.
“아, 아! 그…… 철없고 사치가 심하고…… 황궁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이야기만 들어서는 정말 볼품없었는데 아니잖아요?”
브레이튼은 제가 들은 것을 그대로 주절거리며 에시카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아무튼 칼리안 클라우스 공작. 제가 좋아합니다. 제 코르티잔 애쉬도 좋아하구요. 그렇지, 애쉬?”
브레이튼은 제 왼편의 큰 가슴을 가진 코르티잔에게 물었다.
피부가 검은 편에 육덕진 몸매를 가진 그녀는 에시카의 눈치를 보는 듯했으나, 완전히 취해 버린 브레이튼은 할 말 못 할 말을 가리지 않았다.
“네가 그랬잖아, 애쉬. 클라우스 공작이 네 가슴을 좋아…….”
하지만 브레이튼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멈춰야만 했다.
레스반이 손을 뻗어 브레이튼의 턱을 쥐어 잡았기 때문이다.
옆의 코르티잔들은 소리를 지르며 넘어졌고, 브레이튼은 바둥대었다.
근처의 시종들은 모두 입을 닫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혀…… 현님!”
“브레이튼.”
매서운 살기가 섞인 목소리는 취해 물불을 가리지 못하던 브레이튼의 정신을 조금 일깨웠다.
“가여운 아버지께서는 늘 너를 부드럽게 대하라고 하지만.”
“……현님…… 제가, 죄송.”
“오늘은 말씀을 따르기 어렵겠구나.”
브레이튼의 탁한 금안이 두려움에 일렁이고 있었다.
온실 속에서 자란 브레이튼은, 전쟁에 미쳐 사는 레스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걸러 하루 전공을 세우는 이복형을 질투하면서도, 대적한다는 상상은 감히 할 수도 없을 만큼 레스반을 두려워했다.
그런 브레이튼이 레스반에게 똑바로 눈을 맞추고 말할 수 있을 때는 술에 취했을 때뿐이었다.
가끔 껄렁대는 말을 해도 레스반은 벌레 보듯 할 뿐 넘겨 주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죽일 듯 자신을 보는 레스반의 모습에 브레이튼은 제가 선을 넘었음을 깨달았다.
“형님…… 제가, 컥, 잘못했습니다.”
레스반이 손에 힘을 주자 턱이 깨질 듯 아파져 오며 숨이 막혀 왔다.
그의 차가운 금안에는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절망이 덮쳐 올 무렵에야 레스반은 브레이튼의 턱을 놓아 주었다.
“내 손님을 또 모욕한다면, 혀를 다시 쓸 수 없을 것이다.”
황태자답게 단정하고 매끈한 목소리였으나 그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브레이튼은 눈물범벅이 되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크헉…… 크억…… 아…… 알겠습니다. 형님.”
넘어졌던 코르티잔들이 브레이튼의 옆에 달라붙어 그를 걱정하며 훌쩍였다.
미동도 없이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에시카에게, 레스반이 말했다.
“……못 볼 꼴을 보여 유감이군.”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던 그 살기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갈무리되고, 이전의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는 레스반은 다른 사람 같았다.
“괜찮습니다.”
갑자기 보게 된 황실의 치부에, 에시카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황궁은 클라우스 공작가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화려하면서도 엄숙했다.
그러나 20년 전, 외세의 침입과 반란에 수많은 황자와 황녀들이 무참히 살해되었지.
그 모든 역사를 겪은 레스반과, 온실에서 태어나 자란 브레이튼은. 둘 다 황제의 아들이지만 등에 지고 있는 무게가 다를 것이다.
어쩌면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콜록, 콜록…….”
원작의 내용상, 결국 레스반 데온 루세인이 황제가 된다.
그리고 황위에 오르자마자 브레이튼을 죽인다.
**
세워진 클라우스 공작가의 마차가 보였다.
에시카는 잠시 멈추어 서서 레스반에게 예법대로 인사를 했다.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예법의 교본 같은 몸가짐이었다.
레스반은 처음보다도 표정이 사라졌다.
브레이튼 때문이겠지.
“애쉬. 칼리안 형님이 네 가슴을 좋아…….”
브레이튼이 혀 꼬인 목소리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던 말이 귓가에 생생했다.
잠시 가만히 있던 에시카는 담담하게 레스반에게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레스반은 짙은 금안으로 에시카를 응시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칼리안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레스반의 진심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에시카가 클라우스와 절연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칼리안의 황궁 안에서의 일을 말할 법도 한데 말이다.
“…….”
레스반의 감정 섞이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그대도 클라우스 공작의 추문에 대해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다른 뜻은 없었어.”
에시카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레스반의 표정은 태연했고 그의 금빛 눈동자 역시 그러했다.
하긴…… 귀족이 코르티잔들과 놀아나는 일은 흔하디흔한 일이다.
개중에 내연녀를 들이는 이도 있고, 이미 공작가에는 유리 아네시스라는 내연녀가 들어앉았지.
“……그랬군요.”
칼리안이 원래 문란하게 놀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딱히 실망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결혼 첫날밤 다른 여자와 관계하는 그를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
이전의 에시카라면 몰라도, 지금의 에시카는 그를 사랑하지 않으니 가슴이 아프지 않다.
유리의 배 속에 칼리안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만큼.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에시카는 마차 안을 향해 돌아섰다.
그래, 분명 칼리안에게 분노나 슬픔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레스반이 이미 칼리안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괜히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체 이 감정은 뭐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레스반이 브레이튼의 턱주가리를 잡고 그를 죽이려 했을 때는 더욱 오묘한 느낌이었다.
그 싸늘한 눈빛조차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에시카는 제 감정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문이 닫히자 창문 밖 레스반이 보였다. 바람에 살랑이는 검은 머리카락과, 그에게 어울리는 검은 제복.
천천히 돌아서는 그의 모습에 괜히 목이 따끔거렸다.
“…….”
에시카는 손을 들어 괜히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