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68. 황태자의 방문(68/192)
#68. 황태자의 방문
2024.02.06.
“공작 부인. 이게 얼마 만인가요!”
단정하게 머리를 틀어 올린 메르힌 부인은 에시카를 보고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부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에시카를 피했지만 에시카는 오로지 메르힌만 보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부인의 소식을 들었어요. 편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클라우스 공작가의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했겠지.
메르힌 남작가와 같은 작은 가문은, 클라우스에 밉보이는 것만으로도 큰 불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괜찮아요. 잠시 걸을까요?”
메르힌은 반갑게 수락했고 둘은 홀의 변두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칼리안의 눈이 제 동선을 뒤따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면 어차피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으니까.
“대부인께서 하신 행동에 대해 들었어요, 세상에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죠……?”
메르힌은 눈썹을 굳히고 분노하듯 에시카에게 말했다.
“대부인께서 부인을 괴롭히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반역의 잔당들에게 부인을 죽이라고 사주하다니…… 공작께서도 너무하세요. 그런 일을 겪은 부인께 대부인의 생일 축하 자리에 함께하라고 하다니.”
“…….”
“저라면 절대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
메르힌의 꼭 쥔 주먹이 미미하게 떨렸다.
“저는 부인이 꽤 좋아요.”
에시카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파티장에 모인 귀족들을 보았다.
대부분이 2황자파였으며, 클라우스 공작가와 크게든 작게든 관계가 있는 가문들이었다.
그리고 이 중 많은 수가 취헨에 투자했을 것이다.
“겉치레에 신경 쓰느라 상식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이지만.”
에시카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부인만은 제가 생각하는 상식인의 범주 안에 들어 있으니까요.”
“부인…….”
“그러니 부인에게 작은 힌트를 드리겠어요.”
에시카의 눈길이 메르힌 부인에게 향하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난 티파티에서도 느꼈지만 에시카 클라우스는 아름답고 강한 여자였다.
“힌트라면…….”
“취헨에 투자한 모든 지분을 처분하세요. 서부 거점이 발표되기 전까지.”
“……!”
메르힌 부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시카는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 투자한 것보다 훨씬 비싼 값에 넘길 수 있을 거예요. 찾아보면 이 중에도, 사겠다는 사람들은 줄을 설 테고.”
“하지만…….”
곧 취헨이 거점으로 발표되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취헨에 투자한 지분의 가격은 미래의 가치가 선반영되어 값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저는 부인을 좋게 보았기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말해 드렸고.”
에시카는 싱긋 미소 지었다.
“선택은 부인의 몫이에요. 그럼, 남은 파티 즐기시길.”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메르힌 부인을 둔 채 에시카는 발을 옮겼다.
사람들은 헤모스가 내놓은 최고급 디저트에 감탄하며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클라우스를 먹어 치운 뒤에도, 믿을 만한 인맥이 필요하니…….’
에시카는 잔에 든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며 생각했다.
‘메르힌 부인은 썩 괜찮지.’
그녀의 가문도 그렇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조언을 실행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클라우스 공작가에서도 천대받는 공작 부인의 말에, 가문의 투자금을 움직인다니…….
그녀가 정말 에시카를 믿고 있거나, 혹은 혜안이 있지 않는 이상 말이다.
한참 혼돈의 감정이 섞인 눈을 하고 있던 메르힌 부인은 뭔가 결심했는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 모습을 보던 에시카가 하인에게 빈 잔을 돌려줬을 때였다.
“황태자 전하께서 오십니다!”
돌연 입구 쪽에서 하인들의 요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흘러나오고 있던 연주도 뚝 끊겼고 말이다.
에시카 역시 갑작스러운 소식에 손을 흠칫했다.
“…….”
황궁에서 누군가 축하하러 온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방계의 황실 친척 중 한 명이 황후의 축하장 정도를 들고 오리라 생각했었다.
2황자는 주색잡기에 바빠 외숙모의 생일 파티에 올 것 같지 않았고.
황후 역시 올케의 생일 축하를 위해 들르기에는 종교의 일로 바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레스반 데온 루세인, 황태자라니.
“……황태자 전하라고요?”
환히 미소 짓던 리오나의 입술 끝이 굳었다.
그들은 얼마 전 가족의 일로 황태자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에시카를 불륜으로 몰아 이혼시키려던 계획이, 황태자 때문에 완전히 망해 버렸지.
그의 앞에서 덜덜덜 떨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황태자께서 왜…….”
생일 당사자인 리오나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에 물들었고, 칼리안 역시 눈썹 끝이 굳었다.
장차 강력한 황위 계승권자로 여겨지는 레스반은 그가 비위를 맞추어야 할 사람이었지만, 칼리안으로서도 영 달갑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의 열렬한 내적 불환영에도 불구하고 입구로부터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
칠흑 같은 새카만 머리카락과 찬란한 금안.
황태자의 지위를 드러내는 금사 박음질이 된, 무수한 훈장이 달린 제복. 허리춤에 차고 있는 황제의 하사검.
걸음걸이는 사내다우면서도 기품이 있었고, 서늘한 표정 역시 그러했다.
전쟁광 황태자. 피와 공포를 몰고 다니는 두려움의 대상.
모인 귀족 모두가 긴장한 채 레스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를 향해 멈추어선 길을 걷던 레스반의 시선이 문득 에시카와 마주쳤다.
“…….”
또렷하고 분명한 시선이다.
에시카의 푸른 눈과 마주한 레스반의 입꼬리 끝이 옅게 비틀린다.
그 모습에 에시카는 저도 모르게 다른 손으로 왼손의 반지를 더듬었다.
미래, 그녀의 아군이 될 수 있을 황녀의 반지.
레스반의 등장에 화기애애한 파티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리오나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레스반은, 리오나의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황족이 오면 아무리 고위 귀족이라도 예를 다해서 대우해야 한다.
“누추한 자리를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리오나는 굳은 입매를 억지로 올려 미소 지으며 말했다.
레스반은 딱딱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황실을 대표하여 클라우스와 대부인의 안녕을 비는 바이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서 안부를 전해 달라시더군.”
“황실의 깊은 호의와 관심에 더할 나위 없이 감사드립니다.”
형식적으로 오가는 대화들이었지만 모두가 집중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대부분 2황자파로, 황후나 클라우스 가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튜레시안의 작은 태양께서 방문하시는 것을 미리 알지 못해 준비가 미흡하지만, 부디 넓은 마음으로 즐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알겠소.”
듣는 사람이 민망해질 만큼, 딱딱한 대답이었다.
리오나의 축사를 전한 레스반이 돌아섰지만 여전히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꽂혀 있었다.
리오나에게 축하를 전하기 위해 레스반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조차, 멍하니 레스반을 보고 있었다.
“…….”
레스반은 하인의 트레이에 올려진 화이트 와인이 든 잔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울여 입술 새로 흘려보냈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키가 커서 유독 높이 솟아 있는 머리와, 근육이 배겼을 것 같은 넓은 어깨.
단정한 제복으로도 옷 속의 태는 숨겨지지 않았다.
제국의 미남 중 하나인 칼리안 클라우스 못지않은 외모는 젊은 여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두려운 기색을 숨기지 않는 자들도 여전히 많았다.
예를 들어 일전에 레스반의 야차 같은 모습을 보고 기절할 뻔했던 영애들이라든지 말이다.
그러니 그사이에 홀로 기품있고 또렷이 빛나는 에시카의 모습은 더욱 눈에 띄기 마련이다.
레스반은 잔을 든 채 에시카 가까이 다가왔다.
에시카는 어색한 표정으로 레스반에게 황족을 대할 때 하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예법은, 오랜 세월 대부인의 자리를 지켜 온 리오나만큼이나 완벽하다.
“전하께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반가웠나?”
“……네?”
에시카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녀의 귀에 닿을 만큼 고개를 그녀 쪽으로 숙인 레스반이 입술을 달싹였다.
“맹세컨대, 여기에 있는 이 중, 내게는 그대가 가장 반가운 사람이거든.”
그 말에 에시카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레스반이 조금 능글맞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에시카는 어깨를 세웠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중요한 듯 하지 마십시오.”
에시카는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레스반은 피식 웃으며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
“별거 아니라니, 너무하군.”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도회에 참석한 귀족들이 몽땅 친황후파, 친 클라우스의 귀족들이라는 것은 뚜렷한 사실.
그러니 레스반에게 그렇게 친밀하게 다가갈 만한 귀족들은 없었다.
단지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본 칼리안이 성큼성큼 둘에게 다가왔다.
칼리안은 굳은 표정으로 레스반에게 인사했다.
“튜레시안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클라우스 경.”
레스반은 칼리안에게 손을 내밀었고 칼리안은 그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악수를 마친 칼리안은 슬쩍 에시카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제 것을 보호하듯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레스반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