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9)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69. 완벽한 무대를 위해(69/192)
#69. 완벽한 무대를 위해
2024.02.07.
칼리안은 딱딱한 표정으로 레스반에게 말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오실 줄 알았으면 더 공들여 준비했을 텐데 말입니다.”
“음식과 술은 이미 최상의 것으로 보이는데, 빈말은 되었네.”
와인 잔을 든 레스반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에시카의 어깨를 감싼 칼리안을 바라보는 그의 금안은 서늘했다.
“와인은 경이 고른 것인가? 끝맛이 달콤하며 가볍군.”
칼리안이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잠시 하인을 불러세우려는데 에시카가 칼리안의 손을 털어 내며 입을 열었다.
“차렘벨산, 24년 된 와인입니다. 프리하츠 지방의 해풍을 맞고 자란 포도예요.”
제 손을 밀어낸 에시카를 칼리안은 흠칫 바라보았다.
“비싼 값만큼 유명한 와인은 아니라 손님들의 입맛에 맞을까 걱정했는데, 황태자 전하께서 좋아하신다니 고른 보람이 있군요.”
사무적인 어투였지만, 적어도 자신을 대하는 최근의 모습보다는 성의가 있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본 칼리안의 가슴에서 불같은 어떤 감정이 들끓었다.
제게는 미소 한 번 쉽게 건네주지 않으면서, 레스반에게 친절히 답하고 있는 그녀가 미웠다.
그리고 그는 사내로서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눈앞의 황태자가, 제 아내인 에시카를 매력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어떤 남자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에시카를 마음에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시카.”
칼리안은 질투를 숨기지 못하고 에시카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제게 시선을 옮긴 에시카에게 말했다.
“황족이 참여하는 파티에서는 이름 모를 와인보다는, 황실에서 인증한 팔레시온 상표가 있는 와인을 준비하는 것이 관례야.”
황실에서 인증한 포도 농장들이 제국에는 다섯 군데 있다.
와인을 사랑했던 팔레시온 황제의 이름을 따서, 인증된 포도 농장에서 생산된 와인은 팔레시온 상표가 붙는다.
그러니 칼리안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는 이 점을 지적해서, 외간 사내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더니 웃음까지 나누고 있던 에시카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다.
박학다식한 사내로서의 위엄을 그녀에게 드러내고 싶었고.
레스반을 조금이나마 무안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말이다.
“송구합니다. 제 부인이 예의에 익숙지 못하여…….”
“관례 이야기는 침침한 눈으로 잔소리를 해 대는 늙은이들이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경은 의외로 고루한 면이 있군.”
그러나 레스반은 태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레스반의 눈빛은 강자가 약자에게 농담을 건네듯 여유로워, 오히려 칼리안을 당황하게 했다.
“전하.”
“모름지기 관례를 따지겠다면 내 하나 가르쳐 주지.”
레스반의 차가운 금안이, 지금은 갈 곳을 잃은 칼리안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황족과의 사사로운 자리에서 관례를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며.”
“…….”
“황족을 대할 때 부인의 몸을 더듬는 것,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세. 경.”
레스반의 말에 칼리안의 손이 흠칫했다.
이내 그는 눈썹을 굳힌 채 레스반을 보았다.
레스반은 제 할 말을 마치고 태연하게 와인을 넘기고 있었다.
목울대를 따라 부드럽게 와인이 내려간다.
칼리안의 짙은 눈동자 속, 아우성이 울리고 있었다.
레스반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에시카는 제 여자라고 말이다.
바라보지도 말고, 대화하지도 말고, 그녀의 웃음을 받아 가지도 말라고.
꾹 쥔 칼리안의 주먹이 옅게 떨렸다.
“…….”
에시카는 서서 레스반이 몇 마디로 칼리안의 입을 닫게 만드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에시카가 보기에 레스반은 확실히 말이 많은 사내는 아니다.
과묵하며 꼭 필요할 때만 말을 하는 사내.
그러나 그가 꺼내는 말은, 작은 웅덩이에 주먹만 한 돌을 던지듯 주변에 큰 파동을 만든다.
“……명심하겠습니다.”
칼리안의 대답이 들렸다.
“경은 영 재미가 없군.”
레스반은 남은 와인을 한입에 털어 넘겼다.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격하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레스반이 빈 잔을 내밀자 하인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잔을 회수했다.
“…….”
레스반의 입꼬리 끝이 차갑고 옅게 올라갔다.
어떻게 보면 지독히도 위압적이고 고고하게 황족다우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날것처럼 야성적인 사내이다.
오늘의 레스반은 두 가지 모습을 다 가지고 있었다.
잠시 그를 보던 에시카는 시선을 내렸다.
**
공작가의 화려한 파티는 무르익어 갔다.
리오나는 잔을 든 채 자신의 친구들인 볼란과 마샬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번에 그런 이유로 알헤미츠 부인이 아카데미를 뒤집어 놓으셨다니까요.”
“그자가 감히 우리 제드를 혼냈다잖아요. 동급생들끼리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호호. 애들이 서로 괴롭히며 크는 거지…… 고작 자작 나부랭이의 아들 좀 괴롭혔다고 알헤미츠 백작 부인의 심기를 거슬리다니, 생각이 부족한 거죠.”
그녀들의 말을 듣던 리오나는 회상에 빠진 듯 말했다.
“자식을 키우는 건 참으로 어려워요. 우리 칼리안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죠. 요즘 선생들이란…… 기본 소양이 부족하다니까.”
귀족 자제들은 열세 살부터 성인이 되는 열여덟에 이르기까지 아카데미에서 학습했다.
칼리안도 그러했었고 말이다.
칼리안의 아카데미 시절 리오나의 패악으로 잘려 나간 선생만 셋이었다.
그 선생들이 잘린 이유는 다양했다.
칼리안이 열세 살 때 반복적으로 과제를 해 오지 않았다고 지적한 선생.
칼리안이 열다섯 살 때 입맛이 없다고 반찬 투정을 하며 점심을 먹지 않은 것을 방치한 선생.
칼리안이 열일곱 살 때 집에 돌아온 칼리안의 단추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 이유를 보고하지 않은 선생.
“선생들이라 해 봤자 하급 귀족들이니 그 태생에 뭘 바라겠습니까. 그래도 공작 전하께서 이렇게 잘 성장하셔서 고생한 보람이 있으시겠어요.”
볼란의 말에 리오나는 자랑스러운 듯한 눈으로 칼리안을 바라보았다.
칼리안은 그녀의 인생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세상에.”
“저것 좀 봐요.”
하녀와 하인들이 엄청나게 큰 접시를 들고 오고 있었다.
그것을 덮은 양철 뚜껑 돔은 케이크 다섯 개는 들어갈 만큼 컸다.
하녀와 하인들은 파티장의 중앙에 설치된 테이블에 그것을 조심스레 올렸다.
그리고 덮고 있는 돔형의 뚜껑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집중되었다.
“……이건?”
나선형의 빵이 여러 방향으로 쌓인 그것은 마치 벌집 같았다.
딸기와 커스터드 크림이 층층이 잘 발라져 있었고, 치즈의 형태는 조금 독특했다.
그리고 맨 위에는 눈을 뿌리듯 금가루가 잔뜩 뿌려져 있었다.
확실한 것은 이것이 케이크 종류의 디저트인데 매우 크고,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라는 것이다.
“어머, 신기하게 생긴 케이크네요?”
“그러게요. 맛있어 보이기는 한데…… 이걸 어떤 방법으로 먹는 걸까요?”
볼란과 마샬이 입맛을 다시며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 에시카가 나섰다.
“오늘 어머님을 위해 스미첸 왕족의 전통 케이크를 준비했어요.”
그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리오나는 손을 움찔했다.
스미첸은 멸망한 왕국이며 리오나 클라우스는 그곳의 왕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멸망한 나라의 음식을 먹거나 복식을 따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라의 번영을 위해 튜레시안은 사멸한 문화들도 좋은 것들은 흡수하고 있었고 음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튜레시안에서 가장 유행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건너온 음식들이다.
“세상에, 클라우스 공작 부인께서는 효심이 깊으시군요.”
손님 중 한 사람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에시카는 싱긋 미소 지으며 리오나를 보았다.
제가 준비한 선물이 어떻냐고 묻는 듯.
에시카를 보는 리오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어렵게 조리법을 찾아 주방장에게 부탁했습니다. 여기 스미첸 왕국의 전통 케이크인 가마슈는 왕족들의 생일처럼 특별한 날만 제작해 먹었다고 알고 있어요. 어머님께서도 종종 드셔 보셨겠죠?”
“…….”
“오늘은 어머님의 생일이시니, 찬란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겹겹이 쌓은 케이크의 모습은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리오나에게 향했다.
“클라우스 대부인께서 스미첸의 왕족 출신이셨나요? 저는 처음 알았어요.”
“예술과 학식의 나라의 왕족이셨으니 저리 품격있으시지.”
리오나의 배경에 대해 모르는 젊은 부인들의 대화가 들려 왔다.
비운의 왕녀라…… 오늘 그들에게는 리오나에 대한 동경이 깊어질 것이다.
칼리안은 아직도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에시카가 리오나를 위해 이런 케이크를 준비했다는 것에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리오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애써 고정한 채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지. 종종…… 먹었단다.”
리오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파티에서 맛본 음식들이 워낙 훌륭했기에, 사람들은 케이크의 맛을 기대했다.
볼란 역시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손님들께 드리도록 하거라.”
“어머나, 어머님.”
하지만 에시카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잊은 것 없냐는 듯 리오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정말 스미첸의 왕녀 출신이었다면, 해야 할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