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1)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71. 순수한 나는 죽었다(71/192)
#71. 순수한 나는 죽었다
2024.02.09.
그러니 남편과 아내 둘 다 바람을 피웠어도 여인의 죄가 중한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칼리안의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었다가는 자신에 대한 에시카의 혐오가 더욱 짙어질 것이 뻔했다.
취한 와중에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황태자를 사랑해?”
칼리안이 이 순간 가장 알고 싶은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에시카의 손에서 황태자의 반지를 빼서 던져 버리고 싶었다.
두 사람이 속닥거리는 것을 보면 물이라도 끼얹고 싶다.
지독한 질투심이 뱀처럼 심장을 조여 온다.
특히나 에시카가 제게는 이리 싸늘하며, 황태자에게 곱게 대하는 것을 보면 그 불안은 산처럼 커져 왔고 말이다.
“……글쎄요.”
에시카의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어둑한 밤인데도 그녀의 미모는 유독 또렷이 빛났다.
어떤 사내이건 간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여자, 에시카.
그런 그녀가 가슴을 칼로 베듯 고통을 준다.
달콤한 향기가 날 것 같은 입술에서 차가운 말을 내뱉으며 말이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어떤 것 같은데요?”
확답보다 더 상처를 주는 것은 고통스러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칼리안에 대한 고통스러운 상상에 아주 오랫동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 그러한 밤들에는 숨을 쉴 때마다 지독한 흉통을 느꼈었다.
이제 그에게서 받은 고통을 되돌려 줄 시간이다.
“에시카…… 제기랄, 에시카!”
칼리안은 절규하듯 외쳤다. 모든 것이 변했다.
밥을 주지 않아도 되는 물고기, 그녀는 한때 그런 존재였을 뿐이다.
그런 그녀가 다른 사내를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라는 대답 하나면 충분한데, 그 답을 하지 못한다.
가슴이 욱신거리고, 쓰라리고, 타오르는 것 같다.
“……그대는 그러면 안 돼…….”
칼리안이 들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나를 사랑해야 해. 나는 그대의 남편이라고…….”
“아니요, 칼리안.”
에시카의 차가운 목소리가 현실을 일깨웠다.
이 순간마저 아름다운 그녀가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말했잖아요.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에시카!”
목 끝까지 분노가 차올랐고, 어깨를 꽉 잡았던 손은 힘을 잃고 풀렸다.
하지만 그 손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는데, 칼리안이 손을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이 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답답함과 열망을, 원망을, 질투를, 분노를 어찌 풀어내야 할까.
에시카는 그가 위협적으로 손을 올렸는데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어둠 속, 선연히 빛나는 그녀의 눈에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차갑고 고요한 눈과 마주한 칼리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신은 잔인한 여자야.”
그는 차마 에시카의 뺨을 향해 손을 내려치지 않았다.
“그리고 더러운 여자야. 에시카…… 에시카 클라우스! 당신이 이런 여자인 줄 알았더라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제기랄, 제기랄…….”
칼리안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손찌검을 하지 않는 것은 본능적인 판단일 것이다.
에시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차분하지만 충분히 위압적이었으니.
“술에 취하면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죠.”
에시카의 입술이 차갑게 달싹였다.
한때 그녀가 사랑했던 칼리안 클라우스는, 덜 자란 애새끼였다.
자랄 희망도 없는, 평생 그렇게 자기중심적 사고만을 하며 늙어 죽을 애새끼.
“이렇게 형편없는.”
툭 튀어나온 에시카의 반말에 칼리안의 눈썹이 더욱 굳었다.
하지만 칼리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에시카에게 멱살을 쥐어 잡혔기 때문이다.
“……!”
칼리안의 눈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 흔들리고 있었다.
에시카의 푸른 눈에서 쏘아지는 매서운 살기는, 날것의 그대로였다.
에시카의 주변으로 푸른 기운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고강한 기사들의 전투에서나 나타나는 마나의 흐름이다.
“……다…… 당신…… 당신 누구야!”
칼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멱살을 잡아 쥔 에시카의 자세는 놀랍도록 균형 잡혀 있다.
소드 오러에 다다르지 않은 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에시카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시카가 어지간한 기사급은 뛰어넘는 무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내 아내…… 내 아내는 어디 있어. 당신은 에시카가 아니야.”
에시카의 눈을 마주한 칼리안은 당황한 채 외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에시카의 음성일 뿐이었다.
“칼리안 클라우스, 똑똑히 들어.”
서늘한 소름이, 그녀의 목소리를 전해 들려왔다.
“내 안에 있던, 그 순진무구함은.”
“……에시…… 카……?”
에시카의 입술이 달싹였다.
“죽었어. 그리고 한 번만 더 귀찮게 한다면.”
칼리안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당신을 죽여 버릴지도 몰라.”
“……아니야, 에시카…….”
칼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눈앞이 가물가물하다.
이 상황에서조차 그녀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 차가운 눈에 온기라고는 조금도 없다.
그녀를 안아 달래고 싶고, 설득하고 싶은데 팔에 힘이 풀린 듯 올라가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일까, 꿈일까.
말을 마친 에시카는 거칠게 칼리안의 멱살에서 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경멸하는 시선으로 칼리안을 한참 동안 바라본 뒤 뒤돌아섰다.
칼리안은 망연자실한 눈으로 에시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에시카…….”
그리고 그대로 잠들었다.
**
주먹을 부르는 그 답답함에 멱살을 잡아 버린 에시카는 조금 후회했다.
‘괜히 그랬나.’
어쩌면 더 귀찮아질 수도 있지 않은가.
에시카에게 악마가 들렸다며 괜히 신관들을 불러온다든가…….
‘……그래도 충분히 취했으니, 헛것을 보고 들은 것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지.’
예전에 제 방에 들어왔을 때 혈도를 짚어 그를 기절시킨 뒤, 그가 깨어나자 너무 취해 쓰러졌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에시카는 운기조식을 위해 바닥에 가부좌를 틀며 혼잣말을 했다.
“내일부터 클라우스에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르겠군.”
드디어 내일, 기사가 제국 곳곳에 뿌려진다.
클라우스의 명예에 아주 치명적일 기사가 말이다.
열심히 파티를 준비했던 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서부 거점이 발표된다.
클라우스는 알거지가 될 것이고, 반대로 알부자가 된 에시카는 이 저택과 클라우스의 자산을 그대로 흡수하면 된다.
원래의 집주인들은 사이좋게 내쫓고 말이다.
쿵쿵쿵-
“X#$@#!”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장 돌아가세요!”
하지만 오늘은 마라도 낀 날인지, 쉽게 넘어가지 않을 모양이었다.
문밖에서 저리도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새된 유리의 목소리는 잔뜩 흥분해 있었고, 셀라는 그녀를 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저렇게 흥분했는지는 뻔하다.
에시카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셀라에게 외쳤다.
“셀라, 들라 해.”
셀라는 결국 머뭇머뭇 유리를 방에 들였다.
씩씩대는 유리가 발을 쿵쿵 굴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에시카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 에시카!”
유리의 몰골은 전 같지 않았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고, 골방의 추위 때문에 피부도 거칠어졌다.
찬물로 씻어서인지 손은 부르터 있었다.
예전의 에시카 자신이 떠오르는 비루한 몰골.
“어머님의 생일 파티에 왜 나를 부르지 않은 거야!”
유리의 눈의 흰자는 군데군데 붉었다. 분노에 실핏줄이 터지기라도 한 듯 말이다.
“나는 자격이 있어. 나는 클라우스의 시녀장이었고, 내 배 속에 클라우스의 아이가 있다고!!”
정말 분한 대접을 받기라도 한 듯 화를 내는 그녀가, 참으로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그래, 유리…… 클라우스.”
에시카의 말에 유리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이내 그녀는 화색을 띠며 웃었다.
“이제, 이제야 너도 인정하는구나?”
그리고 에시카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그 자리는 내 거야. 공작 전하의 아이를 임신한 내가 진짜 공작 부인이 되어야 한다고!”
유리의 핏대는 솟아 있었고 눈썹 끝 역시 훅 올라가 있었다.
독기 어린 그녀의 눈매 속 붉은 눈동자는 탐욕에 가득 차 있었다.
“너 따위는…… 너 따위는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돼! 너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알아?”
“그래?”
감흥 없는 에시카의 모습에 유리는 더욱 약이 올랐다.
저보다 잘난 것도 없는 에시카는, 태어나면서부터 저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운 좋게 클라우스 공작 부인이 되어서야 그 보잘것없는 정체가 드러나 냉대받던 주제에…….
“듣기 좋네, 유리 클라우스. 이 천치 같은 가문의 안주인으로 어울려.”
“너, 클라우스를 모욕하는 거야?”
유리의 눈동자가 희번덕거렸다.
에시카에게 한마디도 못 하는 대부인보다 더 유리를 절망스럽게 하는 이는.
뒤늦게 그녀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클라우스 공작이었다.
“전에도 말했잖아, 클라우스는 말똥으로 가득 찬 마차라고. 그리고 넌 그 안에 타기에 딱 어울려.”
“하, 오늘 네가 한 말. 공작 전하께 모두 말씀드릴 거야. 네가 그분을 얼마나 낮잡아보고 있는지, 어떻게 클라우스를 모욕하고 있는지 말이야.”
“괜찮아. 클라우스는 이미 절벽으로 밀어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