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6)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76. 기다리던 서부 거점 발표(76/192)
#76. 기다리던 서부 거점 발표
2024.02.14.
에밀리아가 나가고 다시 백작과 둘만 남았다.
유리는 맹렬하게 두뇌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에시카를 죽이려 했다는 혐의가 확정되면, 최소 교수형일 확률이 높다.
아무리 클라우스 공작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더라도, 에시카는 공작 부인이고 자신은 아직 한낱 내연녀일 뿐이다.
교수형을 당한다면 시기는…… 출산 후가 되겠지.
‘절대 그럴 수는 없어.’
아기를 빼앗기고 사형대에 서는 미래가 떠오르자 유리는 주먹을 꼭 쥐었다.
‘나는 공작 부인이 될 여자라고. 그렇게 당하지는 않을 거야.’
“그럼 동기에 대해 묻죠. 공작 부인을 독살하려 한 것은 역시 질투 때문입니까?”
“백작님…… 저는 정말 아니에요.”
유리의 볼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리는 남자들이 여자를 가엽게 여기는 포인트를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움츠린 채 여리게 떨리는 어깨와 맑은 눈, 겁먹은 듯한 표정.
이전의 청사에서 조사관을 설득했을 때처럼 유리는 최선을 다해 감정에 호소했다.
“에시카를 질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해치다니요. 그 애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온 소중한 친구예요.”
“그 소중한 친구의 보석을 빼돌리려 거짓 편지를 썼고요.”
“그건…… 그건, 그저 과거의 일이에요.”
목소리에 조금 힘이 들어가 버렸다.
유리는 다시 헛기침을 한 뒤 목을 가다듬고 그에게 말했다.
“대부인께서 에시카를 너무 괴롭혀서,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뜻으로 진주를 드려야만 했어요.”
유리는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떨어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길 때, 그녀는 항상 이런 식으로 사건의 중심에서 빠져나왔다.
자신은 관련이 없는 척, 피해자인 척하면서 말이다.
“그런가요?”
백작의 말에 유리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에게 동정을 느끼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대는 몇 초도 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그런데 왜 클라우스가의 하녀들은 모두 같은 증언을 했을까요. 시녀장 유리 아네시스가, 공작 부인을 앞장서서 괴롭혔다고.”
유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애들은 다 대부인의 편이어서 에시카의 친구인 저에게 불리한…….”
“……하인들, 그리고 공작 부인의 직속 하녀인 셀라 양의 증언도 같네요. 심지어 주방에서 일하는 주방장의 증언마저 모두 당신의 악독함을 지적하고 있어요.”
백작은 ‘약한 척’, ‘모르는 척’이 통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저는 그저…… 대부인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에요. 제가 괴롭히는 척을 하지 않으면 대부인은 더욱 악랄하게 에시카를 괴롭힐 테니까요.”
“괴롭혔단 것은 인정하는 것이군요.”
“……그…… 그게…….”
“그런데 대부인, 리오나 클라우스 부인 말입니다…… 그렇다면…….”
백작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공작 부인에게 독약을 먹인 일에 대부인도 연관이 되어 있는 겁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유리는 당황했다. 그는 마치 사냥감의 약점을 노리는 사냥개처럼 집요했다.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아 오한이 돋았다.
유리가 입을 닫자 백작은 옅은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유리의 앞에 신문 하나를 툭 던졌다.
“머지않아 대질 심문을 해 보면 알게 되겠지요. 클라우스 대부인의 혐의도 한두 개가 아니라서.”
유리는 그가 던진 신문의 메인 기사를 보았다.
중앙의 큰 활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클라우스 공작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명하시다!]**
마지막 격전지에서의 승리 소식이 들려왔다.
레스반이 직접 출전하지 않았고, 전령으로 지휘만 했을 뿐인데도 그들은 가볍게 적들을 물리치고 원래의 고토를 탈환했다.
클라우스가의 충격적인 소식으로 제국 사교계가 흔들리고 있었지만, 황궁만은 그러한 소식이 닿지 않은 것처럼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레스반의 걸음걸이는 언제나처럼 위풍당당했다.
시종들은 허리를 잔뜩 숙이고 있었고, 이내 그의 발소리는 황제의 집무실까지 울려 퍼졌다.
지병에 시달리다가 조금 병환이 나아진 황제는 책상에 앉아 서류 몇 장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선 레스반은 예법대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눈 밑 더욱 짙어진 검은 그림자는, 그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침내 이 전쟁도 끝이 보이는구나.”
노쇠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의 정적 후 레스반이 입을 열었다.
“일전에 제게 상을 물으셨었죠.”
낮은 그의 목소리가 집무실 벽에 부딪혀 잔잔히 울렸다.
황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것을 정했더냐.”
“정했습니다. 아버지.”
정복 전쟁의 시작에, 황제는 레스반에게 약속했다.
언젠가 나라의 고토들을 모두 수복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어제, 황후 전하께서 폐하께 간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레스반의 말에 황제의 눈썹 끝이 조금 움직였다.
어제 황제를 찾은 그녀는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
젊은 황후의 눈가에 고인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만큼 간절해 보였다.
“……그랬지.”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스반은 황후가 무슨 부탁을 했는지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황후의 입지와 연관이 큰 클라우스 공작가를 포함해, 친 클라우스의 귀족들이 대부분 취헨의 토지와 자산을 매수했다.
차기의 황제가 이미 정해진 것과 같은 현재의 구도에서 황후와 2황자가 그나마 입지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귀족 세력이었다.
전쟁을 일으켜 물자를 차출하는 황태자보다는, 황후와 2황자 쪽에 쏠린 것이 귀족들의 마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부 거점에 엘뮤르가 선정된다면 황후와 2황자의 입지는 무너지는 땅처럼 불안정해질 것이다.
“서부 거점을.”
황제는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레스반을 보았다.
레스반은 서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집무실 내에 꽉 차 있었다.
**
“이제 오늘이네.”
에시카는 정원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리오나는 하루 종일 산책 한 번을 나오지 않았다.
듣기로 리오나는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사재를 처분했다고 한다.
아끼던 드레스까지 팔았다고 하니 급하기는 한 모양이다.
‘그런데 왜…… 개운하지 않지?’
황궁에 돌아간 레스반은 황제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는 에시카를 도와준다고 했었고, 필시 엘뮤르를 서부 거점으로 확정해 달라고 말했겠지.
그렇다면 발표될 거점은 분명 엘뮤르일 것이다.
‘뭔가 놓친 것처럼…….’
“부인.”
셀라가 디저트가 든 트레이를 가져왔다.
트레이 위에는 케이크를 포함해 달콤한 디저트들이 몇 종류 있었다.
헤모스가 꽤 신경을 쓴 것 같았다.
“머리가 아플 땐 달콤한 게 좋아요.”
셀라는 탁자에 접시를 올려놓으며 주절거렸다.
“부인에게, 이렇게 대놓고 맛있는 간식을 가져다줘도 된다니. 요즘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
“전에는 애니나 루사 같은 하녀들이,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고 빼앗고…… 정말 말도 아니었죠. 하지만 이제 그 애들도 알 거예요. 대부인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셀라.”
냅킨 위 포크를 바라보며 에시카는 말했다.
“네가 만일 어떤 것에 모든 것을 털어 넣었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네?”
“도박을 생각해 봐. 도박판에 네 평생의 돈을 걸었어.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음…….”
잠시 생각하던 셀라는 말했다.
“아주 간절히 바라겠죠. 제 평생이 걸린 일이니까요.”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겠지. 하나의 목표에만 매진한 나머지.”
“그렇죠.”
“그래,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야. 클라우스가 취헨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
에시카는 여전히 포크를 집지 않았다.
그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접시를 바라볼 뿐이었다.
뭔가 놓친 것이 있는 느낌.
“……저건, 황태자 전하의 말인데요?”
문득 저 먼 길, 저택을 향해 말을 탄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황궁 명마답게 늠름한 흰 말에 타고 있는 자는, 황태자의 제복을 입고 있는 레스반이었다.
에시카는 멈칫 그를 바라보았다.
해를 등지고 있어서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가까이 다가온 레스반의 말이 에시카의 앞에서 멈추어 섰다.
말에서 가뿐히 뛰어내리는 레스반이 에시카 앞에 섰다.
작게 먼지 바람이 일었다.
셀라를 포함해 하녀와 하인들은 멀찌감치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다.
에시카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레스반을 보았다.
감정을 알 수 없는 저런 표정은, 긴장의 싹을 솟게 한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레스반을 향해 살짝 인사를 했다.
레스반은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에시카의 볼을 감쌌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이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무의 그늘에 가려져 있기에 다른 층에서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에시카의 귀에, 레스반의 나직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이내 에시카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주먹을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취헨은 서부 거점으로 선정되지 아니하였다.”
에시카는 긴장해서 잠시 멈추었던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클라우스에게서 승리했다.
“축하해, 에시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