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0)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80. 친정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남편(80/192)
#80. 친정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남편
2024.02.18.
유리는 언제나 에시카의 자리를 욕심내어 왔다.
에시카는 멍청하여, 공작 부인이라는 위치에서도 늘 당하고만 살았지만 똑똑한 자신은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대부인도 한풀 꺾였을 테고, 이제 공작 부인이 되면 공작가는 유리의 세상일 것이다.
유리는 힘이 들 때면 눈을 감고 미래의 제 모습을 상상했다.
넓고 화려한 방에서 드레스 숍에서 온 카탈로그를 보며 드레스를 고른다.
지루할 때는 귀족 부인들에게 티파티 초대장을 보낸다.
피곤하구나, 하는 한 마디에 하녀들이 달려와 따뜻한 물로 발을 씻겨 주고.
역시 가장 힘이 나는 상상은 공작 부인으로서 황궁에 가는 일이었다.
칼리안은 자신의 액세서리처럼 멋지게 빛날 것이고, 자신은 그의 탄탄한 팔에 팔짱을 낀 채 주목을 받으며 입장하게 될 것이다.
좋은 집안 출신인 귀족들과 아네시스가보다 훨씬 작위가 높은 황실의 관리들이 유리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제 눈에 들어 보려고 알랑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난 이 나라의 가장 높은 곳 중 하나까지 왔어.
“…….”
유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조사관인 백작은 다시는 그녀가 클라우스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말은 협박일 뿐일 테다.
배 속에 클라우스 공작가의 아이가 있는데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언젠가 자신을 협박한 백작도 혼을 내 줄 것이다.
공작 부인이 될 자신에게 버릇없이 굴다니.
“유리 아네시스, 심문입니다.”
병사 하나가 와서 독방의 열쇠를 풀어 주었다.
유리는 귀족 부인처럼 턱을 치켜들고 고고한 걸음걸이로 심문실로 갔다.
심문실에는 오늘은 백작 말고 다른 나이 든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작이랬던가,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유리는 눈썹을 꿈틀 움직이고, 그 맞은편에 앉았다.
“리하임 백작께서는 클라우스 공작가의 일로 바쁘기에, 내가 오늘 당신을 대리 심문하겠소.”
“클라우스 공작가의 일이라니요?”
유리의 눈썹 끝이 올라갔다.
“독방 안이라 소식이 늦나 보구려.”
“…….”
심상찮은 분위기에 묘한 불안이 일어났다.
“물론 당신의 일과는 별개요, 유리 아네시스. 그저…….”
남작의 눈썹 새에 깊은 주름이 져 있었다.
잠시 말해 줄까 말까 고민하던 듯한 남작이 말을 이었다.
“클라우스 공작가는 불경하게도 황실의 군납 자금을 횡령한 죄목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소.”
“…….”
유리의 눈썹이 확 일그러졌다.
“군납 자금이라니요?”
“나라의 군납 자금을 횡령하여 그 돈을 취헨에 투자한 모양이더군. 서부 거점으로 취헨이 선정되지 않자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저택을 팔아도 군납 자금에 필적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있소.”
“…….”
유리는 멍하니 남작을 바라보았다.
방금 들은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실의 군납 자금을 횡령하였다고? 그리고 그 돈을 취헨에…….
“…….”
취헨, 분명 들은 적 있는 지명이었다.
리오나와 집사 한스가 대화할 때였던 것 같다.
그곳 땅을 사면 돈이 몇 배로 불어난다고 했었는데.
리오나의 눈동자는 탐욕으로 번뜩였었고, 그녀가 욕심을 부리는 얼굴은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라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뭐, 클라우스의 자산이 느는 것은 향후 공작 부인이 될 자신에게 좋은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뭐라고?
“……설마요.”
“저택과 알려진 자산 외에도 숨겨 둔 자산이 있는지는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 리하임 백작께서는 유능하신 분이라 은닉 재산의 탐색에도 일가견이 있소.”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남작이 말하고 있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유리의 입가에 일그러진 미소가 떠올랐다.
“아, 이거…… 그거죠? 일부러 저에게 거짓말을 해서, 실토하게 하려는 거.”
“…….”
“클라우스는 이미 망했으니, 에시카를 죽이려 한 것을 부정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라. 그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겠지. 하지만 어떡하죠?”
유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에시카를 죽이려 한 적 없어요. 어때요. 원하는 답이 아니죠?”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남작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군.”
대답을 기대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유리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한심함과 동정의 시선이 섞여 있었다.
유리는 말없이 당당한 눈으로 남작을 보았다.
곧 그가 입을 열 것이다.
당신 정말 똑똑해, 어떻게 내 계획을 알아챘지? 그래, 클라우스가 망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그렇게 대단한 위세의 공작가가 망했다는 거짓말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허술했군.
하지만 그 입에서는 유리가 원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클라우스가 망할 리가 없잖아요.”
긴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유리였다.
배 속에서는 아기의 태동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클라우스 저택의 주인이 될, 아버지를 이어 클라우스 공작이 될 아기였다.
유리는 이 아이의 어미인 자신이 칼리안의 모친인 리오나보다 더 화려한 영광을 누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불행하게도.”
남작이 유리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심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오. 유리 아네시스.”
유리는 여전히 일그러진 미소를 띤 채,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작을 바라보았다.
남작이 돌아서서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 그럴 리가 없다. 클라우스가 무너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이것은 유리에게서 거짓 증언을 끌어내려는 간악한 계획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 것이지?
유리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클라우스의 정원.
테이블과 화병들, 그리고 울타리까지 다 뜯어간 탓에 아름다웠던 정원은 이제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에시카는 그곳에 서서 노란 꽃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향도 짙지 않고 색도 그렇게 예쁘지 않다.
정원의 꽃 중 가장 가치 없는 꽃들이었기에 이 꽃들만이 무사했다.
원래 사람의 탐욕이란 가장 귀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에 타오른다.
누구도 세상의 본질을 보려 하지 않지.
그녀의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발걸음. 하지만 그는 이내 말을 걸었다.
“부인.”
에시카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앞에는 칼리안 클라우스가 서 있었다.
그의 몰골은 꽤나 좋지 않아 보였다.
언제나 깔끔했던 얼굴에는 깎지 않은 잔 수염이 보였고, 빳빳하게 다림질된 제복이 아닌 구김이 많이 간 옷을 입고 있었다.
하인들도 하녀들도 대부분 떠났으니 대저택의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에시카는 화사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제법 다정한 손길로 칼리안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단추를 새로 다셔야겠네요.”
에시카의 손길에 칼리안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달랑달랑하니.”
에시카는 서늘한 눈으로 칼리안과 시선을 맞추었다.
클라우스의 운명 역시 달랑달랑했다.
지금 칼리안이 자신을 찾을 이유는 단 하나이다.
“이런 말…… 매우 염치없다는 것은 알고 있소.”
리오나는 횡령에 대한 조사를 위해 황실 조사단에 연행되어 갔다.
아마 그곳에서 유리를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부탁할 곳이 이제 부인밖에 없어.”
칼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눈썹은 굳어 있었다. 절대로 하기 싫은 말을 내뱉듯 말이다.
그래, 이제 자존심 따위는 내던져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그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나를…… 도와주시오.”
그는 브리기트의 자금을 필요로 했다.
지금 급한 곳을 틀어막으려면 최소 오백만 링은 필요했다.
저택을 다 팔아도 횡령 자금과 빚을 갚기에 충분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칼리안은 에시카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필요하오. 지금 그대의 오라버니에게 부탁해서…….”
“공작께서 그런 부탁을 할걸 알고 있었어요.”
에시카는 칼리안의 말을 끊었다.
에시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기에 칼리안의 눈이 일렁였다.
그것을 수용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그에게 감동의 물결이 밀려들려 할 때였다.
“그래서 대답을 준비했답니다.”
에시카는 오늘 칼리안이 제게 올지 알고 있었던 듯, 가지고 있던 봉투를 그에게 내밀었다.
“……?”
칼리안은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의아한 눈빛으로 에시카를 보았다.
에시카는 서늘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칼리안은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천천히, 접힌 종이를 펼쳤다.
“…….”
칼리안의 눈이 종이의 글자를 훑어 읽어 나갔다.
그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갔다.
정원에 바람이 불어왔다. 곧 가을이 올 것이다, 쌀쌀한 겨울이 오면 관리되지 않은 초목들은 모두 죽어 버리겠지.
“이게 무엇이오……?”
칼리안의 말에 에시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쓰인 그대로입니다. 클라우스 저택과 빚을 포함한 모든 자산의 양도 계약서.”
“…….”
“그리고 아래의 종이는 이혼 요청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