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1)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81. 뒤늦은 후회(81/192)
#81. 뒤늦은 후회
2024.02.19.
칼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일련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에시카가 이혼 요청서를 내밀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에게 일말의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스스로가 부정하더라도, 그 미련은 절대 사라지지 않으리라.
에시카 클라우스가 누구인가.
한때…… 그토록 귀찮게 자신을 쫓아다니는 여자가 아니었던가.
제 어머니가 그녀를 그리도 학대하고 친구가 칼리안의 아이를 임신했음에도 이혼의 뜻을 전하지 않던 여자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에시카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남을 보는 것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눈빛.
“……부인.”
칼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많이 화가 난 것은 알고 있어. 당연히 화가 났겠지.”
“…….”
“갑작스레 집이 뒤집어졌고, 하녀들과 하인들도 떠났으니.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어.”
이내 칼리안은 손을 뻗어 에시카의 어깨 위로 올렸다.
그리고 눈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모두 일시적인 것일 뿐이오.”
“…….”
“클라우스는 결국 일어날 거야. 우리 가문의 뿌리는 깊어서 결코 이런 비바람에 쓰러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비록 가지는 조금 흔들릴지라도…….”
“이상하네요.”
에시카는 새침하게 말하며 손을 들어 제 어깨를 짚은 칼리안의 손을 떼어 냈다.
매몰찬 손짓에 칼리안이 흠칫했다.
“그렇게 뿌리 깊은 클라우스 가문의 공작께서, 도움을 청할 곳이…… 왜 한낱 지방의 상인 가문인 브리기트밖에 없는 것일까.”
에시카의 말에 칼리안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이내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에시카가 정곡을 찔러서인지, 혹은 브리기트가 정말 마지막 보루여서인지 칼리안은 화를 내지 않았다.
단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인지 알고 있지 않소.”
“…….”
“부인이 신문에 알렸지 않소. 내 어머니의 출신이 미진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사교계에서 어머니와 교류하던 모든 귀족가가 등을 돌렸어.”
비난의 기색은 결국 숨기지 못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적인 원한으로 클라우스에 먹칠을 해 놓고, 왜 누구도 돕지 않냐고 묻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칼리안의 말에 에시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말씀은 제대로 하셔야죠, 공작 전하. 제국에 사기를 쳐서 클라우스에 먹칠을 하신 것은 어머님이세요. 그리고 공작께서는 어머니의 사기 행각의 수혜자였죠.”
“부인!”
칼리안의 목에 핏대가 섰다.
아름다워 눈이 멀 것 같았던 그녀가 오늘은 작은 악마처럼 보였다.
그녀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 칼날과 가시가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기도 했다.
리오나가 스미첸의 왕녀라고 스스로의 신분을 거짓말하지 않았더라면, 전대 클라우스 공작의 누이인 황후가 동생의 재혼을 인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리오나는 절대 공작 부인으로 자리잡지도 못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랬더라면 칼리안이,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을 일도 없었겠지.
칼리안은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항변했다.
“……나는 부인의 남편이야. 그리고, 어머님은 부인의 가족이오. 부인은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돼.”
“어머니께서 그러셨어요. 너는 공작 부인답지 않으니, 공작 부인 취급을 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에시카는 클라우스 저택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장기간 이어지는 학대가 시작될 무렵이었지.
“……그건…….”
“교육일 뿐이었다고요? 네, 저는 그 말씀으로 큰 교훈을 얻었어요. 교육의 목적은 교훈을 얻는 것이니까요.”
“……에시카……!”
“남편다워야 남편이며, 가족다워야 가족인 거예요. 그러니까 칼리안…….”
에시카의 입술은 미소 짓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당신은 한 번도 내 남편이었던 적도, 가족이었던 적도 없어.”
쿵- 하고 무거운 추가 칼리안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에시카는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던 건가.
어쩌면 자신이 인식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클라우스의 파멸을 알고, 그것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아니, 그럴 리 없다. 다 끝났을 리가 없어……. 잘 구슬리면 가능성이…….
“……그러니까 이혼해요.”
다음으로 나온 에시카의 말은 가슴에 내려앉은 추에 쐐기를 박았다.
그녀의 매몰찬 표정은 칼리안이 하고 있던 생각들이 모두 착각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에시카는 조금도, 칼리안과 타협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남편을 향한 존중심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태도로 그녀는 팔짱을 끼었다.
“……에시카…….”
칼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뒤에 보면, 법률 자문을 받아 작성한 이혼 사유서가 있어요. 따지자면 수십 가지는 되지만 가장 증명하기 간단한 것들로 했어요.”
“…….”
“유리 배 속에 있는 당신의 아이. 외도의 증거죠.”
확실히 외도는 이혼 소송을 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보통의 귀족 부인들은 남편이 외도를 저질러도 이혼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여자라도, 이미 남편이 망해 버렸다면 그 꼴을 더 봐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저번에 내게 가한 폭력에 대한 증거도 있어요. 의사에게 진단서를 받았죠.”
“……안 돼, 에시카.”
칼리안은 이혼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에시카 하나뿐이었다.
“한때 그대에게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지금, 지금의 나는 그대가 필요해.”
과거의 에시카였다면 자신이 필요하다는 칼리안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품에 안겼을 것이다.
칼리안은 그 시절의 에시카가 그리웠다.
단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그 바보 같은 에시카가 말이다.
“저는 이혼 동의서가 필요해요. 그리고 하나 더, 매매 계약서도요.”
“…….”
“저택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고, 군납 대여금 횡령에 따른 책임도 톡톡히 져야 할 테죠? 하지만 이 난관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에시카는 정말 좋은 해결책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저택과 빚을, 동시에 제게 넘기는 거예요.”
칼리안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에시카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에시카는 고개를 돌려 저택을 보며 말했다.
“저택과 영지를 날리겠지만, 빚도 날아가는 거니까. 적어도 빚은 없는 몸이 되시는 거잖아요? 넉넉잡아 횡령 책임으로 작위를 강등당한다고 쳐도…….”
그녀의 목소리는 평이했고, 슬픔과 절망은 오로지 칼리안의 몫이었다.
“어딘가에서 그럭저럭 먹고는 살 수 있을 거예요.”
에시카의 입술 끝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칼리안은 제게 이런 거래를 제안하는 에시카에 대해 화가 치솟았다.
현실 부정과 절망이 원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냐고!”
칼리안은 눈썹을 굳힌 채 에시카에게 화를 냈다.
“당신과 이혼하고 당신에게 클라우스의 모든 것을 넘기라고? 클라우스 공작인 내게? 내 저택과 내 영지와 내 모든 것들을 빼앗아가겠다고?”
“…….”
“처음부터 클라우스의 재산을 노리고 시집온 건가? 내 저택을 먹어치우려고? 탐욕스러운 상인 가문의 딸답게, 그래, 애초에 돈 생각밖에 없었던 거지?”
그는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브리기트의 도움을 줄 생각은 없는 거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에시카를 부인으로 맞은 이유가 클라우스의 재정 문제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는 눈빛에 살기를 담아 흘렸다.
“전부 연기였어. 그래…… 내가 부인에게 속았던 거야. 내 어머니를 자극해 괴롭힘당한 것도 모두 거짓이고…… 우리 가문이 이렇게 된 것도…….”
“정신 똑바로 차려, 칼리안 클라우스.”
그가 주절주절 분노를 쏟아 내고 있을 때 에시카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눈빛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칼리안은 갑자기 변한 에시카의 눈빛에 턱 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에시카의 입술이 달싹였다.
“잘 봐. 전부 끝났다고. 당신 모친의 투자와, 당신의 방치 때문에.”
또렷한 그녀의 독설이 칼리안의 귓가에 생생히 박혀 들었다.
“그러니 과거로 되돌아갈 방법은 없어.”
눈앞의 그녀는 잔인한 악마 같았다.
믿기 싫은 현실을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칼리안의 눈 흰자위는 붉어져 있었다.
꼭 쥔 그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에시카의 말이 이어 들렸다.
“빚쟁이가 되어 평생을 쫓겨다니지 않는 방법은, 나와 이혼하고 저택과 빚을 내게 통째로 넘기는 것뿐.”
에시카 클라우스, 그녀는 한때 그가 멸시하던 상인 집안의 딸인 에시카 브리기트로서 말하고 있다.
꽤 괜찮은 값을 주고 네 재산을 사 주겠다고.
남편, 가족, 이 따위 수식어에 이혼 요청서로 선을 긋는다.
그녀는 클라우스의 몰락을 전혀 슬퍼하지 않고 있다. 칼리안은 그에 분노했지만 더 이상 따질 수가 없다.
“시간은 사흘 줄게요. 좋은 결정을 하길 바라.”
말을 마친 에시카가 뒤돌아섰다.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에시카가 떠난 자리에는 차가운 냉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제…… 칼리안에게는 에시카조차 없었다.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재물도, 사람도, 모두가 그를 떠났다.
“아아악!!”
칼리안은 하늘을 보고 절망을 담아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