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7)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87. 이혼(87/192)
#87. 이혼
2024.02.25.
에시카, 그녀의 전생의 이름은 천영령이다.
영령은 천마교주의 딸로서, 천마신교에서 하는 많은 사업에 대해 어릴 적부터 듣고 배운 적 있다.
암살 대행업, 독약 판매, 암시장, 어둠의 표국 사업.
이런 사업을 맡길 때 교주인 아버지께서는 책임자에게 항상 수익권을 일부 나누어 주었다.
책임 의식이 없으면 물건 전체를 들고 튀는 작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잃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장의 이득에 눈이 멀어.
그래서 에시카는 경험에 의한 사업의 운영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체의 지분 4할은 자신이 소유하되, 남은 지분은 사업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사업에 필요한 각종 계약과 장부 관리를 할 한스, 레시피를 개발하고 케익의 제조를 총책임질 헤모스, 제품의 포장과 정리를 담당할 셀라.
셋에게 각각 1할의 지분을 나누어 주었다.
셋의 반응은 격하거나 독특했다.
한스는 눈을 크게 뜨고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헤모스는 지분이 무슨 의미냐며 그걸로 술집에서 술값을 계산할 수 있냐고 되물었었다. 그리고 셀라는…….
“부인…… 저는 이걸 받을 수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이미 부인은 제 원한을 풀어주시고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셨어요. 저는 부인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요.”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가, 한때 제 밥에 독을 섞었던 그 애였다니…… 사람의 변화는 재미있다.
셀라는 에시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냥 평생 부인의 옆에서 하녀로 살고 싶어요. 다른 일을 하려고 부인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예요. 그 지분은 한스에게 주세요. 저는 관심 없어요.”
그녀는 정말이지 에시카를 소중히 여기는 모양이었다.
똑똑하고 빠릿하지는 않아도 지조가 강한 아이였다.
피식 웃은 에시카가 말했다.
“네 뜻은 알겠지만 지분은 가지거라. 아쳄벨에 네 가족들이 편히 살 수 있을테니. 그리고 새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은 존중해 주도록 하지. 나도…… 네가 없으면 조금 불편할 것 같으니.”
대부인에게 핍박받던 시절부터 에시카의 옆을 지킨 그녀는 에시카의 취향을 전부 꿰뚫고 있었다.
“부인……! 정말 앞으로도 부인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거죠?”
기쁜 듯 외치는 셀라를 보며 에시카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약속은 지키는 성격이다. 너에게 무공을 알려 주기로 했으니 우선 그것부터 해야겠구나. 오늘부터 시작하지.”
“무공…… 아, 그 아름다워지는 비법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가부좌를 틀어 보아라.”
“가부좌요?”
에시카는 셀라에게 가부좌를 틀게 하고 자세를 고쳐 주었다.
영령이었을 적에도 그녀는 누군가에게 무공을 가르쳐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마도 셀라는 전, 현생을 통틀어 영령에게 첫 제자가 될 예정이었다.
“단전 호흡을 알려 주마.”
그녀는 신이 난 셀라에게 호흡법을 알려 주었다.
당연히 셀라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웠고 눈만 깜빡이며 입을 오물오물했지만…… 원래 처음은 그런 것이다.
‘자질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제 몸을 지키는 방법은 알게 될 테니, 너에게도 손해는 아닐 것이다.’
에시카는 셀라에게 제가 일러 준 대로 호흡을 하라고 시키고 창 너머를 보았다.
잠시 후 에시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저택 바깥에서 비척비척 걸어오는 누군가가 보였기 때문이다.
멀리서 얼굴만 보았는데도 술 냄새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에시카는 마냥 여유롭고 평화롭던 얼굴을 조금 굳혔다.
이제 긴 악연의 담판을 지을 때였다.
**
칼리안 클라우스, 그는 작위 계승 서열로 치자면 네 번째 아들이었다.
말이 네 번째지, 본처의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어찌 내연녀가 낳은 아들이 공작의 작위를 노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리오나는 어린 칼리안에게 말했었다.
“내가 너를 꼭, 클라우스 공작으로 만들 거야.”
놀랍게도 리오나의 그 말은 이루어졌다.
본처와 아들들이 나가고, 저택에 들어왔을 때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그리고 고용인들은 모두 리오나와 칼리안을 꺼리고 두려워했다.
상상하기 힘든 악독한 방법으로 그들을 쫓아냈다면서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죽거나 실종되거나, 공작가를 나가게 되었다.
그때의 칼리안은 어렸고, 클라우스 공작은 병중이었으며…… 칼리안이 성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공작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공작이 될 수 없는 자신을 공작으로 만들어 준 어머니였다.
믿고 의지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무한한 신뢰가 결국 파멸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
칼리안은 술이 취한 채 비틀비틀, 공작저로 가는 길을 걸었다.
말은 이미 주점에 갈 돈을 얻기 위해 팔아먹은 지 오래였다.
새로운 거처에는 본처의 아들들에게서 온 소송 판결문이 꽂혀 있었다.
칼리안도 어머니가 나쁜 수를 서서 그들을 쫓아낸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쎄…… 그 정도로 질이 나쁜 방법일 줄이야.
그는 제복을 입고 있었으나 그것은 제복이라기보다는 누더기에 가까웠다.
그가 길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 댔다.
“나라의 군자금을 횡령하다니, 도둑놈이나 다름없지.”
“어머니가 아내를 죽이려고 했대. 그 와중에 아내의 친구에게 제 아이를 배게 하고…… 귀족들도 하는 말만 고상하지 저렇다니까.”
“그 형제들이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또 어떻고. 본처가 억울해서 목 매달아 죽었다잖아.”
“리오나 클라우스와 칼리안 클라우스는 클라우스 가문도 도둑질한 거야.”
사실 칼리안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이런 처지에까지 이르렀는지,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를 비난할 뿐이었다.
하지 말아야 했을 행동을 하였고, 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칼리안은 그저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늘 그렇게 행동하도록 교육받았고 그것만이 칼리안에게 바른 길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소용없어졌다.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오셨군요.”
저택에 당도하자 에시카의 모습이 보였다.
“뭐, 일찍 끝내 버리는 것도 좋지요.”
드레스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깔끔하고 단정했기에 제 거지 같은 모습과 비교되었다.
에시카의 눈썹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아름답고 싱그러운 모습이다.
왜 과거에는 에시카가 이리도 가치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몰라보았을까.
“깃펜은 제가 준비했어요. 이제 여기…….”
에시카는 저번에 보여 주었던 이혼 서류를 칼리안에게 내밀었다.
그 뒤에는 빚을 포함한 재산의 양도에 대한 계약서도 있었다.
‘이혼에 합의함’이라는 글자 옆에 빈 칸이 있었다.
그녀가 그곳에, 제 이름을 채워 넣길 바란다는 사실에 가슴이 뻐근했다.
한스의 설득으로, 빚쟁이가 되어 평생 도망다니는 것만은 피하기 위해 이혼 서명을 하러 오기는 했지만 칼리안은 깃펜을 들 수가 없었다.
속상하고, 억울하고, 간절한 마음이 가슴에서 들끓었다.
“……에시카.”
그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그 애절한 눈빛에 에시카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제기랄, 길어지리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는 술 냄새를 풍기며 에시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에시카의 앞에 섰다.
“……나는 당신 없이 살 자신이 없어.”
“…….”
에시카는 제 앞에 선 칼리안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모습은 참으로 초라했다.
한때 잘나 보이던 얼굴을 까칠하게 빛을 잃어 있었고, 눈 밑은 짙게 다크 서클이 져 있었다.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술 냄새는 고약했고 듬성듬성 난 수염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를 포장해 주었던 것은 클라우스의 이름 하나였다.
그것을 잃은 그는 거리의 부랑자들보다 더 볼품없어 보였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깨달았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 없이 혼자 사는 건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워.”
칼리안은 제 진심을 담아 내기 위해 애썼다.
“제발…… 한 번만 더 생각해 줄 수 없겠어?”
아름다운 그녀를 원하는 마음은 논외로 하고서도, 지금 칼리안은 오로지 에시카밖에 기댈 곳이 없었다.
리오나는 감옥에 가 있고, 저택은 빚쟁이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래도 에시카는 몸 뉘일 곳은 있겠지.
그녀의 친정인 브리기트는 건재했으니 말이다.
“……나는 당신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
칼리안의 굳게 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브리기트의 도움을 받지 못해 모든 자산이 날아가더라도, 에시카의 남편으로만 살 수 있다면 평민들처럼 지저분하고 더러운 일을 할 염려는 없다.
그는 지난 일주일간 거리를 떠돌았다.
그리고 자신이 도저히 그곳에서는 살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탁을 어떻게 하는지, 손톱을 어떻게 다듬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혼자 살 수 있단 말인가.
목욕 시중부터 신발끈을 매는 것까지 모든 것에 고용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던 칼리안이었다.
리오나는 고귀한 사람이 될 몸이라며, 칼리안이 어릴 때부터 그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았고 말이다.
“이제는 오로지 당신만의 남편이 될게.”
“…….”
“어머니와는 인연을 끊을 거야. 유리, 그 여자도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에게는 당신 하나뿐이야. 에시카.”
여기서 이혼하게 된다면 평생 그녀의 그림자를 밟기도 어려울 것이다.
칼리안 자신에게는 지금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게 희망이자 기댈 곳이자,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은 에시카 하나뿐이었다.
“어머니를 버리겠다고, 에시카.”
끝내 칼리안은 무릎을 꿇고 에시카에게 애걸했다.
에시카는 차가운 눈으로 칼리안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필요 없어요.”
“다 어머니 때문이잖아. 어머니……. 그래, 우리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어머니 때문이야. 난 어머니에게 조종당해서 진실을 보지 못했을 뿐이고. 이제야 어머니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어머니가 내 인생을 망친 거야!”
칼리안은 지금 에시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동자에는 보편적인 인류애조차 더욱 차게 식어 가고 있었으니까.
“제발, 나는 당신 없이는…….”
칼리안의 말을 에시카가 끊었다.
“저 없이 살 자신이 없다면…….”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서 비수처럼 꽂혔다.
“그냥 죽어 버려요.”
“……어떻게……. 내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에시카.”
칼리안의 비난 같은 말에도 에시카는 독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요. 당신…….”
에시카의 차가운 눈동자 속에 칼리안이 있었다.
“단 한 번도, 내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지.”
“……!”
에시카의 그 말은 칼리안에게 먼 과거를 회상하게 했다.
유리와의 일을 따지던 에시카를 밀어 다치게 하고, 그녀가 보이지 않자 이렇게 생각했었다.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꼭 쥔 칼리안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분명 그랬었었다.
그때 정말로 에시카가 죽었다면 자신이 후회나 슬픔을 느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칼리안은 알고 있었다.
그 시기의 칼리안에게 에시카는 거치적거리는 쓰레기일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에시카가 칼리안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다.
“에시카…….”
“서명.”
에시카는 종이를 툭툭 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세요.”
“…….”
끝났다. 이제, 조금도 되돌릴 방법이 없다.
에시카의 눈빛과 태도, 이 상황, 모든 것이 칼리안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칼리안은 결국 깃펜을 들었다.
그리고 꾹, 꾹, 힘을 눌러 그녀가 제게 원하는 유일한 것을 주었다.
칼리안이 남편으로서 에시카에게 주는 최초의 선물이었다.
채워지길 기다리던 빈 서명란에 그의 이름이 적혔다.
긴 악연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