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0)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90. 빈 집(90/192)
#90. 빈 집
2024.02.28.
황의가 사흘간 치료해 준 덕분에, 에시카는 몸을 상당히 회복했다.
단전의 내공도 무리 없이 이전처럼 순환시킬 수 있었고 몸의 컨디션도 거의 전과 같이 돌아왔다.
만약 에시카가 보통의 여자였다면 회복에 한 달 이상은 걸렸을 것이다.
“……날씨가 좋구나.”
한스에게는 편지를 보냈다.
돌아올 때까지 당분간 일을 맡아 달라고.
어차피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자금줄을 대는 것뿐이었는데, 이 또한 한스가 관리하고 있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여관 밖으로 내려온 에시카는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수도 토레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녀가 깨어난 다음 날, 레스반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황궁으로 돌아갔을 테다. 이곳은 수도와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오지이고 황태자인 그는 할 일이 많으니.
그래도 그녀를 위한 마차를 보내겠다고 했었다.
“……왔구나. 그래, 이제 돌아가야지.”
먼 곳에서 들리는 마차의 바퀴 소리를 들으며 기지개를 켜던 에시카는 눈썹을 움찔했다.
엄청난 호위 병력, 그것보다 그녀의 가슴을 덜컹하게 하는 것은…….
잠시 후 에시카의 앞에 황궁의 마차가 멈추어 섰다.
“데리러 왔다.”
레스반이 마차의 문을 열며 에스코트하듯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선한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살랑이게 한다. 서늘한 눈매 속 깊은 눈동자는 에시카만이 아는 절제된 온기를 담고 있었다.
일렁이던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에시카의 입술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레스반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렸다.
그와 마주 앉은 마차 안에서, 에시카는 꽤나 어색함을 느꼈다.
직접 데리러 오다니…… 그냥 마차만 보낼 줄 알았는데 말이다.
레스반의 시선은 계속 에시카를 향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결국 정적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에시카였다.
“전하께서 구해주지 않으셨더라면, 힘들었을 거예요.”
그 말에 레스반의 입꼬리에 피식, 미소가 고였다.
“힘들었겠지만,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말로 들리는군.”
우선 심장을 비켜 간 곳을 찔렸고, 출혈로 부상이 심하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잘 단련된 몸이라 쉽게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자의 검은 내공이 실린 것도 아니었고, 찌르는 품새도 전혀 칼을 쓸 줄 모르는 자였으니까 말이다.
“부정은 하지 않겠어요. 전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요.”
매우 솔직한 에시카의 말에 레스반은 풋, 웃었다.
여자들이란 항상 그의 앞에서 떨거나 혹은 잘 보이려 긍정만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제국에 에시카 같은 여자는 유일무이하다.
그녀를 바라보던 레스반이 웃음기를 잠시 거두고 말을 이었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쫓고 있다. 하지만 꽤나 철저한 자들인지라 급히 도망치는 와중에도 중요한 단서는 필사적으로 지우고 갔더군.”
“엄청난 실력자가 둘 있었어요. 검은 가면을 쓴 남자들이었는데…….”
움직이는 창밖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던 에시카가 말했다.
“튜레시안에서는 평민 출신의 기사라도 무위가 월등하면 작위를 받는다고 했죠. 전쟁터에서 전공만 세워도 자작위 정도는 받을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제국에 그 정도의 강자들은 많지 않다.
레스반 자신은 논외로 하고, 그의 부관들도 매우 일부만이 그러한 실력을 가졌다.
이제는 에시카의 전남편이 된 칼리안. 그도 그 정도의 실력은 되었지만 만약 칼리안이었다면 그들과 검을 맞댄 에시카가 알아채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사도 하나 있었죠.”
“마법사는 실력 있는 기사들보다 드문 존재들이다. 제국에서는 국교의 교리에 따라 마법과 같은 사술을 금하기에, 더욱 찾기 어렵고.”
“……하지만 정작 저를 찌른 자는 검이라고는 만져 보지도 못한 보통 사람이었죠. 그리고 신과 관련된 구결을 읊었어요. 나이가 든 여자의 목소리였는데 흥분한 듯 목소리가 펄펄 끓고 있어서 본래의 목소리는 아닐 것 같아요.”
“…….”
“저를 마녀라고 칭하더군요. 아주 경멸하는 것 같았죠.”
악마의 하수인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녀를 대했다.
그리고 제가 하는 것은 신이 부여한 아주 신성한 임무인 것처럼 행동했지.
웃기지도 않는다, 광신도 주제에.
서늘한 눈매 속 레스반의 눈동자에는 복잡미묘한 빛이 감돌았다.
잠시의 침묵 후 그가 입술을 뗐다.
“역시 한 사람밖에 의심할 수 있는 자가 없군.”
“……누구죠?”
에시카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범인을 잡으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찔렸을 때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그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보고 이야기하도록 하지. 섣불리 움직이는 것보다는 신중하게 다가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
원래부터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지, 레스반의 눈빛은 거칠었다.
황태자인 레스반조차 신중하게 지켜보되 곧바로 잡지는 못하는 사람이라.
의심되는 사람은 황실에 있다는 것이군.
아마도 고귀하고 지체 높은 자일 확률이 높겠다.
한 사람이 떠오른다. 서부 거점지 선정을 방해했던…….
합리적인 추리를 끝낸 에시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도 당장 소득이 없는 일에 날뛰지는 않겠어요.”
어쨌든 지금의 에시카는 레스반에 의해 무사히 회복했고, 단서를 남기지 않은 자들을 잡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 다시 고개를 들 테니, 그때를 기다려야죠.”
에시카는 때로 화를 숨기지 않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이기도 했다.
의미 없는 일에 힘을 허비하지 않고 적이 있다면 완벽한 파멸을 위해 최선을 기한다.
클라우스를 무너뜨린 그 저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러한 차분함도,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드는 것을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저를 죽이려 했던 걸까요. 전 높은 분들께 척을 진 일이 없는데.”
“우월한 존재에 대한 그릇된 믿음은 눈을 가리는 법이지. 신의 생각을 핑계로, 제멋대로 세상의 이치를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
레스반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변을 불행하게 하고, 스스로의 정신까지 집어삼켜 버려. 제때 멈추지 않으면 말이다.”
“큰 위험 요소라는 말이군요.”
“나도 한때는 그릇된 믿음을 가진 적이 있어.”
레스반의 말에 에시카는 조금 놀란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신이니, 종교니, 이런 것들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그도 믿음을 가진 적이 있다고?
“검과 전쟁의 힘을 믿었지. 복수가 나의 신이었고, 그 외에는 전부 가치없는 것들처럼 느껴졌었다.”
역시, 레스반의 믿음의 대상은 최소한 신은 아닌 듯했다.
“……지금은, 아닌가요?”
에시카의 목소리가 들리자 레스반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했다.
“주객을 잃게 된다. 복수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인지, 전쟁을 위해 복수의 이름을 덧씌우는 것인지 스스로도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버리지.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그릇된 믿음에 주도권을 넘겨 주는 것이야.”
“…….”
“중독, 믿음은 중독의 씨앗이지.”
레스반의 말을 들은 에시카도 생각이 많아졌다.
복수라, 다른 방식이지만 그녀도 그것을 원했었다. 결국에 잘 해냈고.
그러나 통쾌한 기분과는 별개로 아직도 목이 마르다.
“전하께서는 삶의 주도권을 되찾으셨나요?”
에시카의 말에 레스반이 피식 웃었다.
“되찾았다고 할 수 있지. 어쩌면 전쟁보다 더욱 매혹적인 것을 찾았거든.”
“…….”
“이전보다 무해한 새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어.”
그의 말에 에시카의 눈동자가 순간 일렁였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아서 괜히 손끝이 찌릿했다.
“둘 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같지만, 전자를 해낼 때마다 오묘한 불쾌함이 남아 있다면 후자는…….”
레스반이 상체를 가까이 숙여 에시카의 얼굴 가까이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저 입맞추고 싶어서 안달나게 하지.”
레스반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그의 금안 표면에 에시카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에시카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손을 움찔거렸다.
어떻게 표정 한 번 바뀌지 않고 저런 말을 하지?
**
에시카는 레스반과 함께 클라우스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은…… 어쩐지 조용했다.
지금쯤이면 셀라가 뛰어나오고도 남았는데.
에시카는 문득 익숙한 불안감을 느꼈다.
아주 오래전의 언젠가…… 이러한 불안을 느낀 적 있었다.
“…….”
에시카의 표정이 굳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레스반이 에시카와 함께 걸었다.
에시카는 저택 안으로 들어가 층계를 올랐다.
돌 층계에 탁- 탁- 하고 구두가 닿는 딱딱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마치 빈 관을 두드릴 때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이 감정…… 느껴 본 적이 있다.’
아직도 명확히 떠오르지 않은 죽음의 이유.
영령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누군가에게 당해 죽을 팔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성격도 아니다.
자신이 만약 죽음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당한 만큼 되돌려 주기 위한 것이리라.
“……에시카.”
방문을 하나씩 열어 보던 레스반이 멈칫했다.
그리고 눈썹을 굳힌 채 그녀를 보았다.
에시카는 레스반을 스쳐 그쪽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레스반이 에시카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바닥에 피 묻은 손톱 조각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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