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2)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92. 새 며느리(92/192)
#92. 새 며느리
2024.03.01.
통나무로 만든 단층의 오두막집은 지어진지 오래되어 꽤나 허름했다.
칼리안은 어둡게 굳은 얼굴로 그곳의 문을 열었다.
끼익- 하는 녹슨 경칩의 듣기 싫은 문소리가 들렸다.
장갑이 없는 손으로는 문고리조차 잡기 싫을 정도의 집이다.
어둑한 오두막의 안에는 방이 두 개 있는 것 같았는데 거실에는 낡은 담요가 깔려 있었고, 그곳에 두 여자가 있었다.
리오나와 유리였다.
칼리안을 본 리오나는 반색하며 칼리안에게 달려나왔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칼리안의 볼을 매만졌다.
“……공작…… 왜 이리 얼굴이 상하셨습니까.”
칼리안은 어둡고 화난 표정으로 제 어머니를 보았다.
하지만 리오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볼을 매만졌다.
“그래도, 황후 전하께서 클라우스의 뿌리를 잊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이 어미를 감옥에서 꺼내 주었고, 우리에게 집도 구해 주셨습니다.”
“……집이요?”
칼리안의 굳은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이내 분노를 쏟아 내며 입을 열었다.
“이게 정녕 집으로 보입니까?”
그 말에 리오나는 잠시 어깨를 움찔했다.
클라우스 대저택에 살던 그들에게는 저택의 헛간만큼도 못한 공간이었다.
아니, 차라리 지내기에는 마굿간이 더 편안할 것이다.
침대는 부서져 있었고, 전 주인이 사용했던 것처럼 보이는 낡은 거적대기에는 이가 드글드글해 태워 버렸어야 했다.
이 순간에도 지붕 위에서 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살 공간이냐는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라도 살아야지…… 견디다 보면 좋은 때가 올 겁니다. 황후 폐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실 거예요.”
“제기랄!”
칼리안은 답답한 듯 바닥에 굴러다니는 주전자를 걷어찼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주전자가 찌그러졌다.
주먹을 꾹 쥔 리오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때,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던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배는 많이 나와 있었고, 출산은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유리는 칼리안의 앞에 서서 말했다.
“이게 다 에시카 때문이에요.”
그녀의 붉은 눈이 에시카에 대한 증오로 번뜩이고 있었다.
칼리안은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유리를 바라보았다.
유리는 말을 이었다.
“공작 전하가 저택을 넘긴 뒤, 저택을 팔아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자금을 마련해 빚을 갚고 저택을 자기가 가졌대요.”
“…….”
“애초에 저택을 욕심내어 공작 전하에게 이혼과 양도 계약서를 요구했던 거라고요!”
아름다운 클라우스 저택, 그 주인은 에시카가 아닌 자신과 제가 낳은 아들이 되었어야 했다.
눈 뜨고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 느낀 유리는 분통이 터졌다.
“그게 정말이야? 그 망할 년이 저택을 집어삼켰다고?!”
리오나가 눈을 부라리며 유리에게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다 에시카 그 마녀 때문이에요.”
유리는 분노에 들끓는 눈으로 말했다.
“사실 제가 얼마 전 황후 폐하를 알현했어요.”
그 말에 리오나는 흠칫했다.
유리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시카가 얼마나 지독한 년인지, 어느 순간부터 뭐가 씌인 듯 정신 나간 언행을 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어요. 황후 폐하께서는 제 말을 주의 깊게 들으셨고 저를 다시 부르겠다고 하셨어요. 분명 에시카를 혼내주실 거예요!”
황후는 유리를 불러 에시카에 대해 고하게 했었고 유리는 에시카의 사악함에 대해 잔뜩 떠들고 왔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황후 폐하께서는 아무나 만나 주시는 분이 아니야. 나조차 알현도 못 하고 쫓겨났다고.”
리오나의 말에 유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에시카가 제게 독살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전에, 제가 황후 폐하께 편지를 드렸거든요. 타메론의 뜻을 거역하는 마녀가 클라우스를 집어삼키려 한다고.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되고 나서야 황후 폐하께서 깨달으신 거죠!”
황후는 제 온 삶을 타메론에게 바쳤다고 말하고 다니는 신심 강한 종교 신봉자이다.
순수한 신봉을 넘어 이단적인 교리에 빠졌다는 소문도 있고, 유리의 편지가 그녀의 방향에 들어맞았으면 유리를 만날 법도 했다.
“……클라우스가 망한 건 에시카 때문이 아니야.”
하지만 유리의 말을, 칼리안이 끊었다.
“에시카는 마녀도 아니고.”
차라리 그녀를 순수하게 증오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칼리안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렸고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모든 재앙을 불러일으킨 원인은 에시카가 아니었다.
칼리안은 미간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군납 대여금까지 욕심내어 무리하게 취헨에 투자한 어머니 때문이지.”
“공작……!”
칼리안의 비난에 리오나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리고, 어머니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긴 저 때문입니다.”
“…….”
칼리안의 말에 리오나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칼리안은 굳은 얼굴로 둘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 황후 폐하께 호소하며 에시카에게 뒤집어씌워도, 변하는 건 없어. 난 이제 쉬어야겠어.”
그리고 뒤돌아서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
칼리안의 냉담한 태도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리오나의 손목을 잡으며 유리가 말했다.
“정신 차리세요, 어머님.”
“뭐?”
금방이라도 화풀이로 유리의 뺨을 내리칠 기세였지만, 유리가 손목에 힘을 주고 있어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못했다.
유리는 사나운 눈으로 리오나에게 말했다.
“공작 전하께서 저리도 상심해 계시니 우리라도 정신을 차려야죠.”
“……우리?”
리오나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네, 우리요. 공작께서 에시카와 이혼했고, 제 배 속에 공작 전하의 아이가 있으니 이제 제가 이 집안의 며느리예요.”
유리는, 황후가 에시카에 적의를 가지고 있는 이상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리는 서늘한 눈빛의 황후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언젠가 황후가 에시카를 벌하면, 그녀가 앗아간 것들을 모두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어머님과 제가 힘을 모아 상황을 헤쳐 나가면, 언젠가 우리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공작 부인, 그리고 배 속의 이 아이는 클라우스의 후계자.”
유리의 손이 볼록 나온 제 배를 쓰다듬었다.
물론 리오나는 쫄딱 망해 버린 이 상황에서도, 유리는 칼리안의 짝으로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마녀가 낫다. 저런 탐욕에 찬 불여우보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역정을 내며 유리를 쫓아내면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유리가 떠나면 제 손으로 직접 빨래와 밥을 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공들여 관리한 아름다운 손인데 말이다.
“……칼리안의 얼굴이 많이 상했다.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준비해.”
그녀는 유리를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팔짱을 끼며 돌아섰다.
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유리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공작가의 후계자를 임신한 제게 집안일을 시키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뭐?”
“황후 폐하께서 클라우스가의 아이를 잘 지키라고 하셨어요. 악마들에게 선량한 아이까지 희생되는 것은 두고 보시지 않을 거라고.”
유리는 할 생각이 없다는 듯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리오나는 이 건방진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유리에게 전해 들은 황후의 말은 귀를 솔깃하게 했다.
황후가 유리의 배 속 아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그녀의 도움을 받을 확률은 높아진다.
유리는 리오나의 표정을 보며 다시 제 배를 쓰다듬었다.
“배 속의 아이가 감자 스프와 신선한 과일들이 먹고 싶대요. 뭐, 수십 년간 대부인으로 살아오시기는 했지만…….”
유리는 입술 끝을 올리며 말했다.
“어머님께서도 스미첸에서는 직접 가족들에게 음식을 해 먹이셨을 거 아니에요. 집안일도 하셨을 테고.”
까발려진 제 과거를 언급하는 유리의 말에 리오나의 눈동자에는 일순간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당장에 머리채를……. 하지만 리오나는 다시 주먹을 꾹 쥐었다.
‘애만 낳아 봐라. 네년을 죽여 버릴 거다.’
**
저택 뒤, 셀라가 묻혔다.
바람이 살랑이는 에시카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고, 헤모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한스는 작은 한숨과 함께 셀라의 무덤을 보았다.
셀라가 죽었던 날, 한스는 괴한에게 맞아서 기절했고 헤모스는 시장에 나가 있어서 화를 피했다고 한다.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셨어요. 저는 부인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요.”
검시자가 시신에 대해 보고했다. 그녀는 죽기 전 고문을 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에시카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천마신교가 몰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그러했다.
차가운 이성과 복수만이 에시카가 애도하는 방식이었다.
‘나의 진짜 원수는…… 황태후였구나.’
한스에게서 황후의 초상화에 대해 받아 본 뒤 운명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수레바퀴처럼 과거의 업이 이번 삶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칼리안, 전생에서 황제의 환생.
그는 이번 생에서도 여전히 미련하고 제 줏대를 잡지 못했다.
그는 에시카가 갚아 주어야 할 사람이었고, 그만큼 갚아 주었다.
일그러진 모성애로 자신을 핍박한 그의 모친 리오나도, 그리고 친구라는 거짓 허울로 자신을 농락하다가 칼리안과 바람을 핀 유리 아네시스는 전생의 원수는 아니었지만,
모두 에시카에게 준 만큼 되돌려 주었다.
그러나 그때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전생에서 현생으로 이어지는 지독한 악연의 원수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악독하고 잔혹하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덜 귀하게 여기는 그 여자.
그녀는 전생에서는 영령의 친정인 천마신교를 몰살시켰고,
이번 생에서는 셀라를 잔혹하게 죽였다.
에시카의 가슴속으로 검을 밀어넣었으며, 그녀의 팔과 다리를 자르기 위해 앞으로도 안간힘을 쓸 것이다.
초상화 속 그 얼굴과 눈빛은 전생과 현생이 놀랍도록 동일했다.
‘너를 위해 꼭 복수해 줄게, 셀라.’
에시카가 뒤를 돌아보았다.
셀라의 무덤과는 먼 곳에 레스반이 서 있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편이었으며 자신을 뒤따랐던 남자.
그의 짙은 금안이 에시카를 담고 있었다.
에시카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눈에, 문득, 어쩌면 처음으로 물기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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