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7)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97. 대공녀(97/192)
#97. 대공녀
2024.03.06.
제국의 황태자와 황자 둘 다 약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은 제국 곳곳에 퍼졌다.
2황자와 하인즈 대공 여식인 아리아 하인즈와의 결혼은 예견했던 사람이 많지만, 황태자에 대한 소식은 사교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우선 황태자 레스반 데온 루세인이 누구인가.
검은 머리카락에 빛나는 황금안을 가진 그는 ‘전쟁광’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적에게서 빼앗긴 영토와 보물을 다시 되찾은 혁혁한 전공으로, 그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지만 좋은 남편감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었다.
레스반에게는 늘 혈향이 짙게 풍긴다고 했고 그가 목을 베었던 수천의 적의 원혼이 그를 따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게다가 침실에도 검을 차고 들어갈 정도로 그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형형한 살기에 오금이 저리니 곱게 자란 귀족가의 여식이 감당하기에 그는 너무 벅찬 남자였다.
물론 황태자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었다.
힘 없는 집안의 여식을 지목해 황명을 내린다면, 어찌 거절하겠는가.
하지만 황태자의 약혼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에시카라니.
수년간 클라우스에서 학대당해 오다가 집안이 쫄딱 망해 이혼한 에시카 클라우스 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혼 후 클라우스 저택에 딸린 빚까지 갚아 버리고 혼자 과부처럼 그 안에 살며 클라우스의 이름으로 사업을 한다는 여자.
“저기 와요. 어머나.”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부인들은, 멀리서 입장하고 있는 그녀의 실루엣을 보고 입을 닫았다.
오늘은 황후가 준비한 티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명목은 황태자와 2황자의 약혼을 맞이하여, 소수 정예의 고위 귀족 부인들이 황태자비와 황자비와의 담소를 나누는 것이지만 이를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일 이는 없었다.
마리엘라 황후가 누구인가. 에시카의 전 남편인 클라우스 공작의 고모이다.
제 조카와 이혼한 여자가 의붓아들의 아내가 된다니…… 에시카 클라우스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게다가 품계상으로는 황태자비가 황자비보다 높은 위치이겠지만, 이혼녀인 에시카와 하인즈 대공가의 고명딸 아리아 하인즈는 그 배경이 다르다.
아직 본격적인 약혼도 진행하지 않은 지금.
빤히 보이는 둘의 격차는 황태자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2황자의 위상을 올리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
긴장한 것은 아리아 하인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굳은 눈으로 멀리서 다가오는 에시카 클라우스를 보고 있었다.
뒤에서 황후의 시선이 느껴졌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푸른빛이 도는 드레스를 입고 온 에시카 클라우스의 미모는 사내들의 혼을 뺄 만큼 아름답기는 했다.
클라우스 공작 부인이 이리 미인이라는 것은 몰랐는데, 생각하며 부인들은 흠칫한 눈빛으로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어쩜 저리 피부가 고울 수 있다는 말인가. 사파이어를 박아 놓은 듯한 눈빛은 영롱하다.
게다가 그녀의 예법은 확실히 황궁의 정식 예법이었으며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
황후는 자리에 앉은 채로 제게 인사하는 에시카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환영하네.”
문자적 의미와는 다르게 분위기는 쌀쌀했다.
그러나 에시카는 이를 전혀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차가운 느낌이 감도는 그녀의 미소는 아리아 하인즈보다 더 자연스러웠고, 고위 귀족 부인들보다 이곳에 익숙해 보였다.
황후는 그녀의 그러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꼬투리 잡을 것이 없어 살짝 입술만 깨물었다.
‘잠깐 사이에 어디에서 예법을 배운 것이지?’
튜레시안 황궁 예법은 복잡하다.
비슷하게라도 따라 하려면 최소한 한 달은 걸릴 것임을 생각해 티 파티를 보름 뒤로 잡았었다.
지적하지 않고도, 에시카의 엉성한 몸가짐에 대한 말이 부인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를 원했으니까.
하지만 에시카는 완벽한 황궁 예법과 몸가짐으로 오히려 감탄만 불러일으켰다.
“저, 황후 폐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때, 아리아 하인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아리아에게 쏠렸다.
그녀는 붉은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를 가졌으며, 에시카보다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가져온 물건을 황후에게 내밀었다.
“……세상에나.”
황후의 입술 끝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너는 에시카 클라우스, 그 이혼녀와 비교해 평가받게 될 거야. 하인즈 대공가로서는 치욕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에시카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 또한 브레이튼의 어미로서, 네가 내 아들의 체면을 세워 주기를 바란다.”
그녀는 아리아와 이미 일주일 전에 독대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부유하고 유복한 하인즈 대공가에서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에게, 부담감을 심어 주었다.
“예비 며느리에게 받는 첫 선물이라, 특별하구나.”
황후의 칭찬에 아리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리아가 황후에게 선물한 것은 진주 보석함에 든 향수였는데, 외국에서 수입한 일곱 종류의 향수가 든 길쭉한 병에는 다양한 보석이 박힌 반지가 달려 있었다.
한 방울에 천 링을 호가할 만큼 귀한 향수였고, 반지들 또한 굉장히 값비싼 것이었다.
귀족 부인들의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런 귀한 선물을 받으시다니, 황후 폐하께서는 얼마나 좋으실까.
“…….”
아리아는, 벌써 승리한 듯한 눈빛으로 에시카를 힐끔 바라보았다.
브리기트 출신은 태생부터 황실에 발을 들이밀 만한 깜냥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클라우스의 이혼녀라니, 그녀를 손윗사람으로 모시게 된다는 사실은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러니 이렇게 기를 죽여 놓으면…….
“축하드립니다. 정말 멋진 선물이군요.”
그러나 에시카는 눈썹 한 번 꿈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순수하게 감탄했다는 듯 차분한 눈빛으로 미소 지었다.
아리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에시카와 시선을 맞추었다.
‘이 순진한 반응은 뭐지?’
에시카는 싱긋 미소 지으며 황후에게 말했다.
“송구하지만 저는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황후 폐하를 뵙는 날인데, 성의가 부족했던 점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황후는 입꼬리를 비튼 채 에시카를 보았다.
이게 그녀가 원하던 그림이었다.
2황자인 브레이튼의 약혼녀 아리아 하인즈와 비교되는, 레스반의 약혼녀 에시카.
예의도, 성의도 없는 여자.
조금 당황하는 얼굴이면 더 좋으련만, 아쉽지만 원하는 격렬한 반응이 나오지는 않은 것 같다.
‘황후 폐하께서 제게 미리 편지를 보내셨잖아요. 선물을 가져오면 받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저는 가져오지 않은 것뿐인데……!’
이런 식으로 반론한다면 그런 적 없다며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뒤집어씌우고, 완벽히 평판을 망칠 수 있는데.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고위 귀족 부인들은 이미 에시카의 부족한 성의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하기 시작할 테고, 이렇게 첫 시작부터 어그러뜨리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사과드리는 차원에서…….”
에시카는 말을 이었다.
이내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황후 폐하의 존함으로, 여기 계신 모든 부인들에게 메르힌 마르넬 프리미엄 에디션을 선물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모든 잡음이 멈추었다.
황후의 눈썹은 꿈틀 움직였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아리아의 입꼬리 역시 그러했다.
곧이어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메르힌 마르넬 프리미엄 에디션이라고요?”
“세상에나. 메르힌 마르넬 케익 말씀인가요?”
“일주일 전부터 품절되어, 어디 가도 구하기 힘들었는데!”
메르힌 마르넬 케이크는 현재 사교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케이크의 제작자가 황제의 요리사로 불려갈 만큼 굉장히 실력이 있었으며, 소위 말해 사교계의 핫한 인물들은 마르넬 케이크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었다.
하급 귀족들은 케이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렸다.
레시피가 꽤 보급되었고 이를 표방하는 가게들도 생겨났으나, 이미 메르힌이라는 브랜드가 자리잡혀 모두가 메르힌 마르넬 케이크를 먹고 싶어했다.
이 와중에 일주일 전부터 일어난 품절 사태는 부인들의 애를 태웠다.
그런데 메르힌 마르넬 프리미엄 에디션이라니.
그것은 곧 출시할 것이라고 예고된, 다른 풍미의 케이크 세 개에 와인 하나로 구성된 세트였다.
이보다 열망하던 선물이 있을까.
“세상에나!!”
“너무 좋아요. 부인.”
모여 있는 귀족가의 부인들은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아리아 하인즈가 황후에게 아무리 아름다운 선물을 바쳐 보았자, 눈으로 구경밖에 하지 못하는 그 감흥은 금방 잊혀진다.
하지만 직접 돌아오는 이익에 대해서는, 누구든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황후 폐하께서 부인들께 내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는 에시카의 선물이라는 것을.
황후는 눈썹 끝을 미미하게 세웠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는 없었다.
예비 며느리가 황후의 존함으로, 귀족 부인들에게 인기 제품을 돌린다고 하는데 이를 지적하거나 꾸중할 만한 명분이 없다.
에시카를 보는 귀족 부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황후는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이, 에시카의 위상만 높아지는 꼴이 되어 버렸다.
기뻐 흥분한 표정들의 부인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에시카는 황후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참으로…… 기대 이상이로구나…….’
아래로 늘어뜨린 소맷자락에 반쯤 덮힌 황후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20240306155251703153_EC9585EB8580EC9D98+EC8B9CECA791EC82B4EC9DB4EB8A94+ECA6.png a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