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of Reborn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8)
악녀의 시집살이는 즐겁다 98. 존귀한 존재로서(98/192)
#98. 존귀한 존재로서
2024.03.07.
황궁을 나오는 에시카의 뒤에,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에시카 클라우스 전 공작 부인!”
그 목소리에 발을 멈춘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굳은 표정의 아리아 하인즈가 또각또각 굽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성공적으로 끝낸 티파티 내내 제게 적의와 경계가 뒤섞인 눈빛을 보내는 것을 눈치챘었지만, 에시카는 굳이 그에 응수하지 않았다.
에시카의 앞에 선 아리아는 에시카를 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일찍 자리를 뜨시는군요. 뭔가 급한 일이 있으신가 봐요?”
“…….”
“혹은 자리가 많이 불편하다던지?”
에시카는 옅은 미소만 지을 뿐 아리아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반응에 눈썹을 꿈틀 움직인 아리아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낮고 은밀했다.
“오늘 일로 나를 이겼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아무리 다른 귀족 부인들의 환심을 사도 황후 폐하의 눈에 브리기트의 이혼녀보다는 하인즈 대공가의 여식이 나은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말을 마친 아리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황실 내에서 당신은 내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스물여섯이랬던가.
이렇게 으름장을 놓는 모습이 참으로 어리고, 순진하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서 자신감은 충만한 것 같으나……. 이미 두 번의 실패한 결혼생활을 맛본 에시카에게는 애송이의 치기일 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말이다.
“최선을…….”
에시카의 입술이 달싹였다.
“뭐라고요?”
아리아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반문했다.
에시카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최선을 다해 보세요. 그래서 꼭 정당한 황실 가족으로 인정받아 보세요. 그럴 수 있다면 말이죠.”
“……하……!”
물론 에시카는 영령이었을 때도 이처럼 치기 어리지는 않았으나, 아리아의 속은 훤히 알고 있었다.
비슷한 감정을 가졌을 때도 있었으니까.
남편의 가족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면, 당연히 가족으로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신은 정말 속을 모르겠군요!”
아리아는 적대하는 눈으로 에시카를 보며 말했다.
중원의 황실에서, 후궁들은 모두 황태후의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저 그녀의 도구이자 말이었을 뿐.
세상에는 며느리를 천하게 대하는 시어머니만큼, 귀하게 대하는 인성 좋은 시어머니도 많았다.
그러나 중원에서의 황태후는…… 그리고 지금의 황후는, 지독하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이다.
많이 비뚤어졌을 뿐이지 적어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충만한 리오나와도 궤를 달리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잘난 존재가 자신이며, 자식마저도 그저 자신을 빛내기 위한 도구일 뿐인 여자.
눈앞의 이 치기 어린 대공녀는 언제쯤 알 수 있을까.
예쁨받고 싶어 하는 어린 여자의 순수한 마음은, 때로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악독한 인간에게 휘둘리기 좋아 인생을 옭매는 족쇄가 될 뿐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의존하지 않고 결국 스스로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속지 않아요. 말은 그렇게 해 놓고, 뒤에서는 황후 폐하께 선물을 보내겠죠. 당신이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하나만 말씀드리죠. 황자비.”
은근히 말을 낮추는 에시카의 어조에 아리아는 눈썹을 꿈틀했다.
그녀는 에시카를 바라보았다.
끔찍한 괴물 같은 아주버님, 레스반 데온 루세인 황태자의 비가 될 이해하지 못할 여자.
그리고 제가 이 황실에서 가장 견제해야 할 여자……. 그녀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녀의 푸른 눈동자 속에, 거뭇한 심연이 보이는 것 같아서 문득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아까 몇 번이나 눈을 마주쳤을 때는 이런 기분이 든 적 없었는데, 이상하다.
마치 맹수가 갑자기 앞에 나타난 듯 엄청난 존재감이 밀려든다.
붉은 입술이 달싹이며 말을 뱉어낸다.
“황자비가 황후 폐하의 예쁨을 받기 위해 굴러 대는 것은 내 관심 가질 바가 아니나.”
나직한 목소리는 귓가에 톡톡 박혀들었다.
아리아는 에시카의 말이 설마, 진심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분수도 모르고 황태자비의 자리를 받아들인 것을 보면 야망이 큰 여자일 테고, 당연히 황제와 황후의 호의를 받아 그들을 구워삶으려 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에시카의 말은, 그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만큼 강렬했다.
“그 지루하고 유치한 신경전에 나를 끌어들인다면 정말…….”
에시카의 입술 끝이 옅게 올라가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떤 위압적인 기운이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것 같았다.
“……피곤해질 각오는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아리아의 손이 옅게 떨리고 있었다.
“위계는 똑바로 해야겠지요. 다음에 볼 때는 바른 호칭으로 불러 줬으면 좋겠군요.”
‘좋겠군요’는 부드러운 희망사항의 전달이었지만, 듣는 아리아로서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확실히 황태자비가 될 에시카는 황자비가 될 아리아보다 윗사람이었다.
황실의 여인이 된다면 이전의 출신은 그저 꼬리표일 뿐이다.
아리아는 문득 레스반을 처음 만났던 그날이 떠올랐다.
피칠갑을 한 갑옷과 소름끼치는 그 분위기…… 현기증이 올 것 같은 공포감은 숨막히도록 닮았다.
아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문득 두려움이 몰려든다. 황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런 여자를 상대해야 하는 건가?
**
“하인즈 대공녀, 브레이튼의 여성 편력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더군요.”
“뭐, 하인즈에서도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대공녀의 귀에 흘러들어가도록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모름지기 결혼 전의 일은 결혼 전의 일로 묻어 두는 게 관습이기도 하고.”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스는 에시카를 태우고 저택으로 향했다.
“그래도 사교계에서 들리는 소문은 있을 텐데, 전혀 모른다면 의외이군요.”
언젠가 잠시 마주했던 브레이튼 황자의 모습을 떠올린 에시카는 흐음,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자의 양옆에 있던 코르티잔들과 어지간히도 취한 모습.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런 방탕함이 사라질까?
“뭐,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겠지.”
당연히 에시카는 아리아에게 황자에 대해 악담을 할 생각은 없었다.
조언해 줘 봤자, 도끼눈을 뜬 채 제 라이벌이 저를 음해한다고 여길 터.
정신 차리지 못하는 아이는 혼이 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황태자 전하께서 함께하시지 못하는 자리라 많이 아쉬워하셨는데, 그래도 당당히 끝마치고 오신 것 같아서 제 마음이 기쁩니다.”
오늘 레스반은 전쟁의 최종적인 마무리를 짓기 위해, 종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녁쯤 또 그녀를 찾아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를 바라겠지…… 생각하며 에시카는 미소를 지었다.
레스반을 떠올리면 가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참, 저택에…….”
갑자기 한스가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후 그가 말을 이었다.
“클라우스 대부인께서 찾아와 계십니다.”
“…….”
에시카의 눈썹이 조금 굳었다.
“부인을 만나게 해 주지 않으면, 황실에 투서를 쓰겠다고 발악을 하여…… 어쩔 수 없이 들여 놓았으나, 만나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풀에 지치면 떠나시겠지요.”
“약이 오른 반응이었어?”
“네. 아주요. 황태자 전하께서 부인과 약혼한다는 소문이 이미 제국 전역에 퍼졌으니, 이를 듣고 가만히 있으실 수 없었겠죠.”
움직이는 바깥 풍경을 보며 잠시 생각하던 에시카는 입을 열었다.
“……까짓것…….”
“예?”
“만나 보도록 하지. 심심하던 차였다.”
에시카의 입꼬리 끝이 비틀렸다.
**
황궁의 후원, 꽃이 가득한 온실에서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고 있던 황제에게 시종 하나가 나가왔다.
황제의 얼굴은 병색이 뚜렷했으나, 시종의 속삭임을 들은 그는 이내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시종은 오늘 황후의 티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샅샅하게 말이다.
아리아 하인즈가 황후에게 어떤 선물을 주었는지, 그리고 황후가 어떤 반응이었고 에시카가 어떤 반응이었는지.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일들과 귀족 부인들의 반응까지 말이다.
각 귀족가에 메르힌 에디션 세트가 도착하고 있다고 했고, 에시카의 명망이 한층 높아졌다고 했다.
이혼녀 에시카가 아닌, 사업가 에시카, 그것이 사교계에서 자리잡아 가는 그녀의 새로운 얼굴이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황제의 입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이었지.”
황궁의 여인들의 세계는, 남자들의 세계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냉혹했다.
약한 여인은 도태되고, 살아남는 여인은 더욱 독해진다.
그저 황제는 에시카가 황태자의 곁에 어울리는 여인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가 해내는 것들은 그의 기대 이상인 것 같았다.
“그러나 괜한 걱정인 것을 알겠군.”
황제의 중얼거림에 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래. 그 녀석이 택한 여자인데, 어련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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