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02
102
102화 품격(品格) (4)
“아직 확인 안 하셨군요?”
준영이 희미한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자.
“확인? 무슨 확인?”
이영근 교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준영과 이어진 대표를 바라보았다.
영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영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어쩐지 아까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기세등등하다 했더니 역시나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고 들어온 것 같았다.
‘아니···확인은 했겠지. 아마 ’옛날‘ 자료를.’
사실 본격적으로 광고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준영의 문제집인 의 판매량이 이영근 교수의 책의 판매량에 밀리고 있었다.
어쨌든 이영근 교수의 책은 근래 5년간 학습서적 판매량 10위권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으니까.
그러나.
가 방송되고 난 뒤 그 성과에 고무된 임용석 대표가 전폭적인 광고지원을 시작하면서, 여간해선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우열관계가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렸다.
물론.
“무슨 소린지 정말 말 안 할 건가? 자네 계속 이런 식으로 장난치면 나중에 더 곤란해질 텐데?”
이영근 교수는 아직까지 그 변화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듯, 고압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잠시 이영근 교수를 바라보던 준영이 이어진 대표에게 입을 열었다.
“···이 교수님께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러자 이어진 대표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이 교수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죠.”
이 대표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치 마속을 참하는 제갈량 같은 표정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이영근 교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다들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이 대표 이게 무슨 소린가?”
그러나.
“휴.”
이 대표는 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한번 확인해 보시죠?”
준영이 이영근 교수에게 A4용지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이 교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A4용지를 받아 들었다.
순간, 이 교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3월 학습서적 판매 순위]1위 : ESB 수능특강 영어영역 (저자 ESB편집부)
2위 : 국어의 품격(저자 김준영)
3위 : 고등급 한국사(저자 최OO)
.
.
6위 : 오지게 쎈 수학(저자 홍OO)
7위 : 국어의 정석(저자 이영근)
“···이···이···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자료를 쥔 이영근 교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준영과 이어진을 바라보았다.
‘판매 순위 3위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분명 2주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압도적인 격차로 김준영을 앞서 나가고 있었으니까.
‘말도 안 돼! 뭔가 잘못 본 게 틀림없어!’
이영근 교수가 안경을 벗었다.
그리곤 허둥지둥 안경알을 닦은 뒤 다시 썼다.
준영과 자신의 책 이름이 워낙 비슷했기 때문에 자신이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위 : 국어의 품격(저자 김준영)
7위 : 국어의 정석(저자 이영근)
아무리 천천히 자료를 확인해 봐도 순위는 변하지 않았다.
5천 부 vs 2만 5천 부.
판매부수만 보면 4배는커녕 5배를 훌쩍 뛰어넘는 차이.
당초 준영이 호언장담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스코어였다.
“허······.”
이영근 교수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분명 이 주일 전까지만 해도 준영의 책이 2만 5천부는커녕 2500부도 채 팔리지 않은 것을 확인했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 자신의 판매부수를 초월해, 넘을 수 없는 4차원을 벽이라 불리는 ESB 수능특강과 1, 2위를 다투는 위치에 올라갔다니······.
정상적인 경우라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그 순간.
이 교수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래··· 그 방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이영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한 방법이라면 충분히 2주 안에 판매 순위를 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 방법은 바로.
‘책 사재기’
출판사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편법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매수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사재기를 했다는 사실이 발각됐을 때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위험이 존재하지만, 베스트셀러 몇 권의 판매량이 전체 책 판매량의 50%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출판 시장의 특성상.
‘안 걸리면 그만. 걸리면 병신.’
이런 평가를 받으며 제법 넓고 깊게 이뤄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이 교수가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 대표가 그럴 리가 없겠지.’
지금까지 글로비언이 단 한 번도 사재기 같은 편법을 사용한 적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재기? 그런 짓거리 하는 것들은 책장사를 하면 안 돼! 그게 사기꾼이지 장사꾼이야! 뭐? 남들도 다 한다고? 에라이, 야 넌 남들이 죽으면 따라 죽을 거야?
이영근 교수의 귀에 전 대표의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그 동안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우직하게 회사를 경영해 온 전 대표를 생각하자.
잠깐이나마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하긴 우리 이 대표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
30년 동안 회사를 경영해 오며 정도가 아니면 걷지를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후계자가 이와 같은 편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제외하자.
남은 가능성은 단 한 가지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휴.”
그가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가능성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한참동안 고민하던 이영근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준영의 얼굴이 들어왔다.
서율대 학사 학위 하나 없는 입시 학원 강사 나부랭이.
이제 막 출판 시장에 발을 내딛은 애송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한숨이었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답이 눈앞에 있는데···그걸 무시하다니.’
이제 이영근 교수가 마지막까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가능성.
그것을 인정해야만 할 시간이었다.
속에 있는 감정을 모두 게워낸 이 교수가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판매순위가 적혀있는 자료를 준영에게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이걸···부정할 순 없겠군.”
마치 종이에 베인 듯 아픈 표정이었다.
어렵사리 말을 꺼낸 이 교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졌네. 약속대로 다음 증쇄 계약 때 인세비율을 재조정하도록 하지,”
의외로 담담한 어조였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이 대표가 놀란 표정으로 이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이영근 교수는 이렇게 쉽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교수님···.”
이어진 대표가 복잡한 표정으로 이 교수를 바라보았다.
울지도, 그렇다고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이 교수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이 대표,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이 대표 생각대로 됐으니 웃어야지.”
잘못 들으면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이영근 교수의 얼굴이 너무나 초탈해 보여, 나쁜 의도를 담고 있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이어진 대표의 표정이 흐려졌다.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수님···그건 좀···그냥 없던 일로 하고 가시죠?”
뜬금없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 고생을 해놓곤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준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어진을 바라보았다.
호구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란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그의 말이 얼마나 황당했으면 당사자인 이영근 대표마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 대표를 바라볼까.
“남아일언중천금일세. 내 말이 천금은 못되더라도 백금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게나. 그러니까 이 대표도 그냥 못이기는 척 받아주게. 형님껜 말씀드리지 말고.”
이 교수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곤 마치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를 보는 표정으로 이 대표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이 대표가 흐린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이 교수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자, 이 대표가 울상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난 뒤.
이영근 교수가 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진지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듯 그의 입속에서 말이 맴돌았다.
준영이 과연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이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잠시 말을 고르던 이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했네. 내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으이. 이젠 그럴 일 없을 테니, 앞으로 우리 조카 좀 많이 도와주게나.”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시···내 이름이 필요하면 말만 하게. 네 두말하지 않고 바로 빌려주지. 뭐 자네 책 판매량을 보니 별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나.”
말을 마친 이 교수가 후련한 표정으로 준영과 이어진을 돌아보았다.
“······.”
이 대표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이 교수를 바라보았다.
당황할 만도 했다. 아무리 명명백백한 증거가 눈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패배를 그리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 힘든 법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떤가?”
이영근 교수는 한 치의 미혹도 남아 있지 않은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사람이 저렇게 갑자기 바뀔 수 있다니···
준영은 이영근 교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준영에게 이영근 대표가 한 제안은 불감청고소원이었다.
비록 이번에 임용석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학습서적 판매량 2위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임용석 대표에게 매달릴 수는 없었으니까.
때문에 한두 달 반짝 팔고 끝낼 것이 아니라면 실제 수요자들인 수험생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은 학습서적 시장에서 강호초출에 가까운 몸.
아직까진 이름만으로 수험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 이럴 때 이영근 교수 정도의 네임밸류가 있는 사람이 준영에게 이름을 빌려준다면 수험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실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의 입을 애초에 원천봉쇄해버릴 수도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준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빌려주신다면 저야 환영이죠.”
대답을 들은 이영근 교수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 대표를 바라보았다.
“이 대표도 괜찮지?”
긴장으로 굳어 있던 이 대표의 표정이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 내렸다.
“물론이죠.”
그 동안 쌓인 모든 앙금이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이영근 대표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준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 우리 이 대표 좀 잘 부탁하네.”
준영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순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대표실 내부에 감돌았다.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 대표가 ‘아’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럼 그런 기념으로 저희 오늘 셋이서 오붓하게 식사나 할까요?”
그러자 준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도 파인 다이닝인가요?”
준영의 말을 들은 이 대표가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같은 날은 막창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