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03
103
103화 성장통 (1)
[선생님! 이번 주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증쇄본이 얼마 남지 않아서 빨리 증쇄 계약하고 책 찍어야할 것 같은데요?]수화기 너머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로비언의 대표 이어진의 목소리였다.
증쇄 계약 같은 일은 밑에 있는 직원들 시켜도 충분할 텐데, 내 계약과 관련된 일은 무조건 자신이 직접 한다는 것 같다.
뭐 나도 대표가 직접 챙겨준다는 데 굳이 다른 담당자를 원할 필요는 없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어떤 책을 말씀하시는 거죠? 인가요? 아니면 인가요?”
내가 묻자.
이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두 책 다죠! 혹시···이번에 판매량 순위 확인 안 해보셨나요?]“···아니요. 제가 요즘 바빠서요. 그런데 순위가 좀 올랐나요?”
[그러셨구나. 네! 물론이죠. 두 책 모두 이번 달 성적이 아주 좋습니다. 은 역사 교양 순위 5위까지 올라갔고 도 아직 2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그는 밝은 목소리로 내 책들의 성적을 알려주었다.
5위와 2위라.
생각보다 성적이 괜찮다.
방송을 통한 간접광고가 끝난 지 이제 한 달.
슬슬 광고의 거품이 꺼질 시기라 의 2위권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1차 증쇄본에 이영근 교수의 이름이 공동저자 이름으로 올라간 것이 주효했는지, 1위인 ESB 수능 교재를 제외한 다른 도서들을 상당 격차로 따돌리고 2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의 판매량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실 벌써 3개월 째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었으니만큼, 이제 슬슬 판매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직도 10위권 내에서 꾸준하게 팔리고 있는 것을 보니,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작가에게 책이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만큼 듣기 좋은 소리는 없었으니까.
“다행이네요. 그럼 제가 스케줄 보고 문자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언제까지 말씀드리면 될까요?”
내가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에이, 그냥 시간 나실 때 알려주세요. 저희 사이에 뭐 그런 걸···.]이어진 대표가 살짝 가벼운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 사이라···
하긴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는 아니지.
‘준영아! 우리 끝까지 가자!’
술에 취해 소리치던 이 대표.
양손에 막창 집게를 들고 춤을 추던 이 대표의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이던지···
‘허허, 저런 주사가 있을 줄은 몰랐구만···.’
이영근 교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참. 그리고 저희 삼촌이 언제 한번 밖에서 뵙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쪽 업계 분들 모임이 있는데 거기 한 번 참석해 보시는 게 어떠냐고···.]이 대표가 이영근 교수의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 모임에서 이영근 교수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났다.
그땐 그냥 흘러가는 말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진짜로 나를 모임에 초대한 생각인 것 같았다.
“음 그래요? 그것도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출판 시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모임인 만큼 나가보면 분명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지금은 일 때문에 바쁜 만큼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친목 모임이니까 생각 있으시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선생님 전화는 언제라도 환영이니까요.]수화기 너머에서 이어진 대표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 뒤로 잠시 잡다한 이야기가 오갔다.
뚝-
전화가 끊기자.
띵동-
[인민은행. 440-910XXX-10307. 입금 47,500,000원. 글로비언]글로비언에서 요번 달 인세가 입금됐다는 문자가 바로 날아왔다.
‘허 이번 달에는 출판 수익만 해도 짭짤한데?’
하나만 있을 때와 비교하면 거의 2배 가까운 금액이었다.
아마 이영근 교수의 인세 비율을 내리는 대신 내 인세가 3% 정도 올라간 덕분인 것 같았다.
‘하긴 15% 인세 비율이 흔한 건 아니니까.’
일반적으로 나 같은 신인 작가가 출판사에서 받을 수 있는 인세는 많아봐야 5~8%였다.
그러니 당초 계약한 12%나 이번에 새로 계약한 비율인 15%는 사실 말도 안 되는 비율의 인세였다.
이 비율의 인세를 받는 작가들은 대부분 이름 하나로 10만부 이상을 팔수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뭐 그래도 내가 발 벗고 나서서 손나윤을 섭외하고 임용석 대표에게 조력을 얻은 것 자체를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 하는 게 맞다.
말마따나 내가 나선 덕분에 이 정도로 판매율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일 테니까.
‘문제는 그걸 깔끔하게 인정할 출판사가 글로비언 밖에 없다는 것이지.’
세상에는 더러운 출판사들이 참 많았다. 그런면에서 글로비언은 조금 답답한 면이 있긴 해도 신뢰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
등 뒤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이아린이 서류를 한 아름 끌어안은 채 비틀비틀 거리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그녀에게서 서류를 받아 들자.
“감사합니다···.”
그녀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과 파르라니 떨리는 그녀의 입술.
감사하다는 말을 받기가 왠지 미안해졌다.
분명 그녀의 안색이 저렇게 안 좋아진 것에는 내가 일을 너무 많이 벌려놓은 것의 영향이 클 테니까.
나는 의자를 가져와 그녀에게 권한 뒤 코코아 한잔을 진하게 타서 내밀었다.
“자 한잔 마셔. 달달해서 괜찮을 거야.”
나는 코코아를 마시는 그녀를 바라보며 서류를 살펴보았다.
음, 서류의 양이 심상치 않아 보이긴 한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의 양이었다.
“아린아, 이거 다 무슨 서류야?”
어쩔 수 없이 슬쩍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직접 정리한 사람이 나보단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자.
이아린이 코코아 잔을 잠깐 내려놓은 뒤, 예의 그 힘없는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이번 달에 등록한 학생들 자료구요. 밑에 있는 것 몇 장은 기자재 결재 비용이에요.”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슬쩍 보아도 수백 장은 족히 넘어 보이는 서류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많은 자료들 중 대부분이 이번 달에 등록한 학생들의 자료라니···
“정말?”
내가 놀라 표정으로 묻자.
“그럼 정말이죠.”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 몇 주 정도 확인을 안 했다고 이 정도로 쌓일 수가 있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류의 산을 바라보았다.
분명 작년에도 확인해야할 서류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땐 많아봐야 수십 장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정도의 양이 쌓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작년 초에 비해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으니까.’
작년 이 시즌 때만 해도, 이제 막 학원을 차리고, 방송을 시작한다 만다 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작년 이맘때는 새 학기 치곤 그리 바쁘지 않았었다.
어차피 그 때에는 상담을 하거나 성적을 확인해야할 학생의 수가 현저하게 적었으니까.
‘어쩐지 그 동안 너무 쉽게 간다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가 커지고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새삼 실감났다.
‘뭐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이 정도라면 할 만한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으니까.
지루한 서류 확인 작업이지만 하다보면 손에 익고, 손에 익으면 재미있을 수도···
“아 맞다. 선생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깜빡하고 안 가져온 서류가 있었어요.”
응?
아린아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서 더 있다고? 이미 저 책상이 부러질 것 같은데?
그러나 내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아린이 미지근해진 코코아를 쭈욱 들이키고 자신의 자리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뒤.
이아린이 제법 두꺼워 보이는 서류 뭉치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쿵-
그리곤 아까 부려놓은 서류 옆에 새로운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
내가 말없이 그 서류들을 바라보고 있자.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몇 장 안돼요.”
이아린이 수줍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휴, 뭐 어쩔 수 없지. 이번에 가져온 건 무슨 서류야?”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아린에게 묻자.
이아린이 내게 다가와 서류 몇 장을 꺼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거는 등록 대기자들 명단이에요. 나이랑 이름, 전화번호, 사는 곳, 학교, 대략적인 성적 같은 것들 정리해 놨어요.”
그녀의 손을 따라 서류를 바라보니.
[17세/기나래/010-XXXX-2365/방배동/문상고등학교/내신···] [18세/황나애/010-XXXX-9902/서초동/종달고등학교/모의고사···] [18세/홍민주/010-XXXX-1174/청담동/휘망고등학교/논술···]이아린의 말처럼 입원 대기자들의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야무진 솜씨였다.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정말 정리능력 하나만큼은 발군이다.
하지만 그녀가 정리한 서류에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류 안에 있는 글씨가 너무나 작다는 것.
보아하니 9포인트 아니면 8포인트인 것 같았다.
내가 이아린을 바라보자.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쓰다보니까 10포인트로 답이 안 나올 것 같아서요. 종이도 너무 많이 나오고···.”
화사하게 웃는 그녀를 바라보니 눈이 시원해졌다.
하지만.
“아린아 다음부터는 12포인트로 부탁해. 이렇게 몇 장 되는 건 종이 아낄 필요도 없으니까.”
그래도 계속 9포인트는 너무했다.
종이야 아끼면 좋았지만 그래도 그거 아끼려다 내 눈이 먼저 망가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이아린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 보였다.
왠지 주저주저하는 표정, 말할까말까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왜?”
내가 묻자.
그녀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선생님이 지금 보신 게 다가 아닌데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아까 그녀가 내 앞에 꺼내 놓았던 서류를 가리켰다.
“이게 다 아니야?”
그러자 이아린이 어색한 웃음을 띠우며 입을 열었다.
“네···사실 저기 있는 게 다 대기자 명단이에요.”
그러면서 방금 전에 가져온 서류뭉치를 가리켰다.
“······.”
순간.
할 말을 잃고 그녀가 가져온 서류의 탑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 많은 서류들이 전부 다 입원 대기자?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빽빽하게 정리된 자료를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이 아려왔다.
“휴, 다 해서 몇 명 정도야?”
내가 묻자.
“잠깐만요. 사실 저 중에 허수가 좀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위에 추려놓은 것들만 보면···다 해서 504명이에요.”
수첩을 확인한 그녀가 야무진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고맙다 아린아. 다 확인하고 나서 말해 줄게.”
그러자 아린이 꾸벅 고개를 숙인 뒤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
남은 것은 나와 서류의 산뿐이었다.
“에휴, 해야지 뭐.”
그래도 서류를 직접 만든 사람보다는 훨씬 손쉬운 일이라 생각하며 한 명씩 한 명씩 입원 대기자들을 확인해 나갔다.
사실 다른 학원이었다면 이런 일은 불필요했다.
왜냐하면 다른 학원들은 학원 공간에 비해 학생 수가 적은 게 일반적이니까.
하지만 우리학원은 다르다.
작년 그리고 올해.
학원의 역사와 규모에 비해 학원의 인지도가 훨씬 빠르게 자라면서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약간의 여유가 있었던 공간이 올해는 정말 빡빡하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비좁아졌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은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버텨왔다.
그러나 오늘 입원 대기자의 명단을 보고 있노라니 더 이상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말마따나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500명이 넘어가는데 받아들일 공간이 없어서 돌려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흠, 이제 어쩔 수 없나?”
고개를 들었다.
아늑한 교무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처음으로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곳.
은솔과 지성, 원장님과 함께 지난 1년을 보내온 곳.
이젠 이곳을 벗어나야만 할 것 같다.
‘원래 소라게란 덩치가 커지면 집을 옮기는 동물이니까.’
스륵-
나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파일의 이름은.
[소라게 입시전문 학원 확장 계획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