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07
107
107화 새로운 영토
‘튈까?’
소라게 학원에 일일 인부로 투입된 박철형의 머릿속에 ‘탈주’라는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왜냐하면.
“철형아! 여기 실리콘 한 박스만 가져다줘!”
“네!”
“알바! 여기 시멘트 1포대!”
“네!”
“학생! 여기 타일!”
“네!”
.
.
군 휴학을 하고나서 경험해본 공사 현장들 중에, 여기보다 더 빡세게 일을 시키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쉴 새 없이 일을 시키는 지, 지난 3개월간 나름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던 다리가 벌써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아 좀 쉴 시간 좀 줘라···.’
박철형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는 다리를 주무르며, 바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스윽스윽-
양손에 흙손을 들고 시멘트를 바르고 있는 미장이.
탕탕탕탕-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나무에 못을 박고 있는 목수.
서걱서걱-
자신의 몸만 한 단열재를 자유자재로 재단하는 사람까지.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휴. 아니 왜 이렇게들 열심히 하냐고.”
박철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공사현장 일이라면 마냥 어렵고 힘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의 눈치와 요령만 있다면 건설 현장만큼 쉬는 시간이 많은 일도 드물었다.
아침에 조금 일하다가 간식 시간.
그리고 또 조금 일하다가 담배.
그러다보면 바로 점심시간이 찾아오는 게 바로 건설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그런 농땡이가 통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간식을 먹거나 담배는 피기는커녕, 잡담 한 마디 없이 맹렬하게 일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진짜 튈까?”
박철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반쯤은 진심 또 반쯤은 푸념이 섞인 말이었다.
정말 이대로라면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때.
“밥 먹고 하자!”
커다란 체구의 사내가 박철형 있는 층으로 올라와 외쳤다.
그러자.
“으아! 가즈아! 밥 먹으러 가자!”
“반장님 오늘은 좀 천천히 먹지 말입니다?”
“오늘도 기름칠 합니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박철형은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밥 먹는 게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박철형이 3개월 동안 건설현장을 경험해본 결과.
건설 현장 밥이라는 게 사실 거기서 거기였다.
다 식어빠진 배달 음식이나 정성 따윈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함바 식당의 음식들.
그런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밥을 먹는 다는 느낌보다는 밥을 뱃속에 채워 넣는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곤 했다.
그러니 점심시간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순간.
‘그래 튈 땐 튀더라도 밥이나 먹고 튀자.’
호기심이라는 녀석이 박철형의 마음속에 자라났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식사기에 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그는 아까 사람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소라게 학원의 1층에 마련된 간의 식당.
‘뭐야 이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박철형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가 앉은 식탁 위에 그가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이익-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고기들.
항정, 삼겹, 목살 같은 돼지고기부터 각종 양념에 재워져있는 닭고기까지.
보기만 해도 신선함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들이 불판 위에서 춤을 추고, 그 옆으론 생선구이, 찌개, 갓김치, 명이나물, 각종 젓갈 등의 반찬들이 정갈한 담음새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산해진미.
임금님의 수랏상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다양한 음식들이 눈앞에 펼쳐져, 과연 어디서부터 젓가락을 가져다 대야할 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니 이게 점심이라고?’
박철형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식당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간이 주방에서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요리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오늘 무슨 날이에요?”
박철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옆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면수어 구이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고 있던 옆 사람이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왜? 밥 때문에? 괜찮지?”
그러면서 이면수어를 한 점 발라내 입에 넣고 행복한 미소를 띠운다.
마치 어머니가 해 준 음식을 먹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박철형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요?”
벌써 3개월 동안 이런저런 공사현장을 경험했던 박철형이었지만, 어느 공사 현장이 이런 밥을 챙겨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조금 괜찮았던 곳에서 점심때 삼겹살을 조금 구워 먹긴 했지만, 이건 그것과 수준이 달랐다.
아니 단가로 치면 1인당 몇 만원은 족히 나올 것 같은 퀄리티의 음식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그만큼 일이 빡세잖냐. 안 그래?”
박철형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말했다.
하긴, 오전 작업량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현장 같으면 오후까지 끌어야 했을 양의 일을 오전 안에 끝내버렸을 정도로 작업량이 많았으니까
‘엉덩이 한 번 붙일 시간이 없었지.’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식사라니···
왠지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기가 꺼림직 했다.
‘그러고 보니···일급도 다른데 보다 3만원이나 더 준다고···뭔가 수상한데···.’
심각하게 굳은 박철형의 표정을 본 옆 사람이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안 먹을 거야? 오후에는 더 빨리 움직여야할 텐데? 너 쓰러져도 모른다?”
그 말을 들은 박철형의 안색이 변했다.
‘아니 오전에도 빡셌는데 그것보다 더 바쁘다고?’
오전 내내 일 한 것만으로도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는 참이었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바쁘게 움직인다니···
‘먹는 척만 하고 튀어야겠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구체적인 탈주계획이 섰다.
물론 3만원이나 더 주는 것이 아깝긴 했지만 오후에 힘들어질 거라는 그 말을 듣자 그나마 남아있던 의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 적당히 몇 점 집어먹고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튀는 거야.’
박철형이 결연한 표정을 짓은 채 천천히 음식을 집어갔다.
‘음 뭐 먼저 먹을까···.’
그의 눈에 간장게장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박철형의 입 속에 침이 고였다.
‘그래 기왕 먹는 거 게장이나 먹고 가자.’
젓가락으로 간장게장을 집어든 철형이 단호한 표정으로 게장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잠시 뒤.
‘너무 맛있어···.’
박철형의 얼굴이 녹아내렸다.
솔직히 어머니가 해주셨던 것보다 더 맛있는 게장이었다
‘엄마 죄송해요.’
그때부터 박철형의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서는 빨리 밥을 먹고 탈주를 한다는 생각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소라게 학원의 건축주이자 화려한 식탁을 주문한 당사자.
준영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즐겁게 식사를 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준영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작업반장이 말했다.
“뭘요?”
준영이 묻자, 작업반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매일 이렇게 점심, 저녁을 챙겨주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 아닌가 해서 말이지. 내가 저번에 이야기 했던 거 때문에 그러는 거면 이제 괜찮으니까 내일부터라도 그냥 함바식당에서···.”
아, 무슨 소리를 하는 가 했더니만···
그러고 보니 저번에 시공사 직원과 대화를 마치고 반장에게 공사를 맞아 달라는 말을 했을 때, 반장이 그런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끼니 때 마다 맛있는 밥 차려줄 수 있으면 오케이!’
리모델링 비용이 50%로 줄었기 때문에, 반장이 어느 정도 높은 조건을 불러도 수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준영으로서는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간단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꽤 중요한 조건이었다.
육체노동의 특성상 먹는 것이 부실하면 그만큼 능률이 떨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게다가.
“에이, 오가는 시간이나 뭐 이런 거 따지면 이게 낫죠. 왔다갔다 번거로우니까요.”
뭐 함바식당 같은 경우도 잘 찾으면 괜찮은 곳을 찾을 수는 있지만, 일단 현장에서 그곳까지 오가는 시간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때문에 준영도 두말하지 않고 반장의 조건을 받아들여, 학원 내에 간의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어차피 빈 교실은 많았으니까.
“혹시 입맛에 안 맞으세요?”
준영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묻자.
반장이 당치도 않다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니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면 도둑놈이지. 난 그냥 후임한테 너무 부담되는 게 아닌가 해서.”
“에이, 그럼 그 만큼 더 잘 지어주시면 되죠.”
“그건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내가 이 지역 어느 학원보다도 더 멋지게 만들어 줄 테니까.”
반장이 자신만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준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응?”
“공사가 언제쯤 마무리 될까요? 대략적인 날짜를 알아놔야 학원 이전 스케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준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만큼 학원 이전 같은 것들을 생각해야할 시기였다.
그러니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더라도 대략적인 날짜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 했다.
“가만있어 보자···.”
준영의 말을 들은 반장이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며 손가락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개인의 컨디션, 날씨 같은 요소에 의해 하루 작업량이 차이가 나는 현장일의 특성상 바로 언제까지 가능하다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뒤.
계산을 끝낸 반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바짝 조이면 한 나흘 정도는 더 빨리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그 이상도 가능하긴 한데 그럼 마감이 퀄리티가 영 떨어질 것 같으니까···알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반장의 말에 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 이상으로 공기를 줄이면 퀄리티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겠지.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준영은 예상했던 나흘이나 공기를 당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제까지 잘 견뎌왔는데 고작 며칠을 버티지 못해 퀄리티가 떨어지는 결과는 원하지 않았으니까.
‘좋아.’
준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정말 멀지 않았다.
며칠만 더 있으면 이 거대한 학원.
예전에는 바라봐야만 했던 이 성을 온전히 준영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 * *
며칠 뒤.
지난 7년간 폐허, 혹은 흉물로 불리던 옛 정본학원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몰렸던지 학원 버스 5대가 넉넉하게 들어갈 만한 공터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고 학원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흉물로 소문이 났던 건물이 불과 몇 주 사이 몰라보게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자 그러면 지금부터 간판 개막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건물 옆 작은 연단에 자리하고 있던 사회자가 말했다.
그러자 학생, 학부모 그리고 소라게 학원의 멤버들까지.
학원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학원 건물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내가 처음 학원을 시작할 때부터 같이 해왔던 사람들이었다.
“개막식에 참여해 주실 분들은 연단 위로 올라와 주세요.”
사회자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 몇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연단 위에 놓인 흰 줄을 잡았다.
참여한 사람은.
지성형님.
원장님.
은솔.
그리고.
이 학원의 주인인 나.
흰 줄을 잡고 공터 쪽을 바라보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확연히 보였다.
개막식에 참여하지 못해 살짝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연아.
한창 대학을 다니느라 바쁠 텐데 자리에 참석해준 박일한.
아웅다웅하면서도 꼭 붙어 다니는 박수한과 김자영.
이아린, 임용석, 임동훈, 이형태, 이어진···이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그리고 소라게 학원 멤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내 등 뒤에 있는 나의 학원까지.
이 순간.
이 시절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자 제가 신호를 드리면 네 분 모두 동시에 줄을 잡아당겨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연단 위에 있는 사람들을 확인한 사회자가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표정에 기대가 어렸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었다.
천천히 사회자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자! 하나.”
“둘.
“셋.”
“당겨주세요!”
사회자의 말에 따라 줄을 세게 잡아당기자 현판을 덮고 있던 흰 천이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소라게 학원]정오의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간판이 사람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하 1층 지상 4층.
총 수용인원 500명을 자랑하는 이 거대한 학원이 온전히 내 손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