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08
108
108화 새로운 사람들 (1)
고사(告祀)
이사를 하거나 가게를 열 때, 돼지머리와 술, 시루떡, 음식 등을 차려 놓고 풍요와 행운이 찾아오도록 신(神)에게 비는 제의를 말한다.
물론 요즘에는 고사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간략하게 진행하는 경우도 제법 많아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가게를 새로 개업할 때에는 으레 고사를 지내고, 고사떡을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오늘 간판 개막식이 끝난 뒤.
소라게 학원 앞 공터에도 웃는 돼지 머리가 놓였다.
물론.
진짜 돼지머리는 아니었지만.
“으아 귀여워!”
“아따 요즘엔 저런 것도 있구만.”
“허허 세상 참 좋아졌어.”
돼지머리 대신 나타난 것은 바로.
웃는 돼지머리 모양의 떡 케이크.
다소 그로테스크할 수 있는 실제 돼지머리와 달리 귀여움이 강조된 디자인의 떡 케이크였다.
‘약간 장난스러워 보일 순 있지만···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사실 실제 돼지머리를 쓸 수도 있었다.
어차피 시장에 가면 두당 3~5만원이면 살 수 있는 게 돼지머리였으니까.
하지만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돼지머리의 비주얼에 충격을 받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실제 돼지머리와 비슷한 크기의 떡 케이크를 특별 주문해서 돼지머리를 대신하기로 했다.
‘나부터도 돼지머리는 좀···.’
때문에 돈이 약간 더 들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나중에 처리하기도 곤란한 돼지머리보다야 떡이 나았다.
“자 그럼 김준영 원장님부터 시작하시도록 하죠.”
돼지머리가 제상 위에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사회자가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음, 아무래도 처음은 내가 하는 게 맞겠지.
근 백 명에 넘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자리라 약간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400~500명 강의도 진행해본 몸.
등을 돌린 채 강의를 한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제상 앞으로 다가갔다.
먼저 돼지머리 앞에 꿇어앉아 향을 피운 뒤.
천천히 삼배를 지냈다.
떡으로 만들어진 돼지 머리에 절을 하려니 모양이 다소 우스웠지만, 그래도 내 학원의 복을 기원하는 제의인 만큼 정성을 다했다.
그런데 그때.
“자, 사실 고사의 하이라이트는 절이 아니죠. 우리가 궁금해 하는 건 단 하나! 과연 김준영 원장님이 돼지 머리에 얼마를 꽂을까. 그거 아니겠습니까?”
사회자가 말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사람들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사람들의 반응을 본 사회자가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오늘 돼지머리에 꽂힌 돈들은 지역 봉사 단체에 기부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원장님. 좋은 날에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시고 거침없이 꽂아 주세요!”
사회자의 말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원래 돼지머리에 꽂힌 돈은 복돈이라 해서 가게를 차린 사람이 가져가 것이었으니까.
음, 사전에 사회자에게 슬쩍 말해두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말을 해 버릴 줄이야.
이렇게 되면 원래 계획이 헝클어지는데···
원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금액만 돼지에 꽂아 놓은 뒤, 나중에 돈을 추가해서 봉사단체에 기부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계속 이 지역에서 학원을 운영할거라면 지역사회와 되도록 원만한 관계 유지하는 것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된 거, 처음부터 과감하게 나가는 모습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기회에 통 큰 모습을 보여주자.’
나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놓았던 돈을 꺼내, 떡하니 벌어져 있는 떡 돼지의 입에 돈을 꽂아 넣었다.
‘많이 먹어라.’
그러자.
돼지의 입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크게 벌어졌다.
사회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야 이거 처음부터 세게 나가시네요?”
마치 그 정도의 금액을 단번에 꽂아 넣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내가 돼지 입에 꽂은 돈의 액수는 바로.
1,000만원.
단번에 꽂아 넣기엔 약간 큰 금액이었으니까.
* * *
고사가 끝난 뒤.
뒤풀이가 이어졌다.
“으하하 내가 그래서 그 놈한테 ‘저승사자다’라고 딱 하니까. 그놈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저 멀리서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업반장과.
“어휴, 그때 준영 쌤이 ‘공부’하러 간다고 새벽에 깨어서···”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임동훈과 임용석.
그리고.
“준영 쌤이 ‘우린 모두 꽃이다’라고 했을 때 애들이 막 눈물 흘리고 난리가···”
은솔과 김연아에게 재수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있는 이아린까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학원 앞 공터 이곳저곳에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으아 마셔!”
“풍악소리가 왜 이리 작은 게야! 풍악!”
“어머, 여기 음식 너무 괜찮다!”
작년도 학생들의 학부모, 리모델링에 참여한 인부, 근처 상가 사람들, 일을 도와준 지자체 직원 등.
하나하나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뒤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공터 한 쪽에서 작게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이건 뭐 고사가 아니라 잔치구만 잔치야.”
“그러게. 내 생전 이렇게 큰 고사는 또 처음보네.”
“아무튼 이번에 이 학원 차린 사람이 제법 잘 나가긴 하나 봐.”
“대충 들었는데 학원가에서 먹어 주는 사람이라는데?”
“그래? 이거 친하게 지내야겠네?”
보아하니 주변에 있는 상가 사람들 인 것 같았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사실 고사가 끝나고 나면 간단하게 편육에 막걸리를 곁들인 술자리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점심시간이었던 데다가, 그 동안 고생해준 사람들 그리고 고마웠던 사람들을 간단한 편육 몇 점 먹이고 보낼 수는 없었다.
때문에 리모델링을 할 때 섭외했었던 요리사들을 다시 불러, 학원 앞 공터를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 버렸다.
어차피 학원을 운영해 나가면서 계속 부대껴야 할 사람들이라면, 이 기회에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예상 했던 데로 주변 상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한가지뿐이었다.
* * *
간판 개막식과 고사가 모두 다 끝나고 난 뒤.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선생님 이건 쓰실 건가요?’
‘네. 그건 써야죠.
‘선생님 이거는요?’
‘아니요. 그건 너무 오래 되서···.’
‘그럼 이거는요?’
‘아, 그건 절대로 버리시면 안돼요!’
3일간의 학원 방학 기간 동안, 전 학원에 있었던 짐들을 선별하고 버리는 것 때문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전 학원에 있었던 짐을 다 옮길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 새 학원으로 이전하면서 전 학원을 부동산에 내놓긴 했지만, 그래도 규모가 꽤 큰 학원인 만큼 그렇게 쉽게 학원이 팔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필요한 것만 옮기고 다른 건 나중에 옮기지 뭐.’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은 금세 위기를 맞았다.
‘이 학원 터가 좋다는 소문이 돌아서 그런지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평균 시세보다 50%는 더 올랐는데. 어떻게 할까요?’
‘······.’
‘사실 지금 아니면 점점 값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그냥 좀 더 두고 볼까요?’
예상했던 것과 달리 학원을 부동산에 내놓은 지 단 하루 만에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내가 원장님에게 처음 학원을 인수했을 때 보다 50%는 더 높은 가격에 학원을 팔 수 있었다.
문제는.
갑자기 전 있던 짐들을 모조리 새 학원으로 옮겨와야만 했다는 거였지만.
물론 처음엔 그리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원래 이사라는 것이 그렇듯, 처음 짐을 다 옮겨 왔을 때만해도 눈에 띄는 물건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본격적으로 짐을 풀고 정리하기 시작하자.
‘휴, 이거 3일 안에 끝이 날까요?’
만만치 않은 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리하고 또 정리해도 뭔가가 계속 나왔으니까.
물론 손쉬운 방법은 있었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물건들만 슬쩍 빼놓고 나머지는 쓰레기 수거차량을 불러 처리해 버린다면 3일은 커녕 하루도 걸리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아주 가끔씩 나타나는 중요한 물건들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예를 들어.
[수학의 정석 초간본]이런 것들.
책 더미 안에서 뽀얀 먼지에 둘러싸인 그것을 봤을 때.
나는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그저 지루한 [수학의 정석]일 뿐이지만, 학원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름 의미가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일이란 시간이 흘러.
모든 짐을 다 정리하고 난 뒤.
“나님 등장!”
“으아 새 건물 냄새!”
“와 건물 겁나 좋은데?”
드디어 학생들을 맞이했다.
“우아! 쌤 여기 어마어마한데요?”
“레알 강의실에서 축구해도 되겠다.”
“헐 엘리베이터도 있어!”
학원에 들어온 학생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학원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그 전 학원 같은 경우에는 거의 포화 상태였던지라 교실 안에서 몸 한번 움직이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이 학원에서라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두 팔을 벌려 체조를 하더라도 옆 사람과 부딪칠 걱정이 없었다.
그렇게 학원에 들어온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학원 이곳저곳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들은 독서실로.
또 어떤 학생들은 강의실에 가서 새 책상에 앉아 보기도 했다.
학원 안이 학생들의 발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그런데 잠시 뒤.
김연아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쌤! 우리 이제 방송 안 해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녀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을 보니 벌써 학원 안을 한 바퀴 돌아본 모양이었다.
어쩐지 아까 학원에 들어오자마자 부리나케 위층으로 올라가더라니···
보아하니 4층에서 1층까지 돌아보면서 인터넷 방송 촬영장을 찾아본 것 같다.
“사람들이랑 인사도 못했는데···.”
그녀가 원망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김연아가 더 방송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원장실은 가 봤어?”
“으 아뇨···거긴 왠지 교장실 같아서 좀···.”
그녀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학원에서 교장과 비슷한 사람이 원장이긴 했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교장실이라니···
나름 산뜻하게 리모델링을 다 해놨는데 약간 충격이었다.
“아직 문 안 닫아 놨으니까 한 번 가 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김연아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쌤 혹시?”
“그래. 거기가 새 촬영장이야.”
그러자 김연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쌤 고마워용!”
그리곤 누가 잡을세라 계단 위로 올라가 버렸다.
‘녀석, 몇 걸음만 더 가면 엘리베이터 있는데.’
사실 이번에 학원을 옮기면서 원장실을 어떻게 쓸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가 원장이라고 하더라도 벌써부터 동떨어진 원장실 전체를 쓰고 싶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만들어 놓은 공간을 그냥 놀릴 수도 없었다.
그러다 고심 끝에 원장실을 촬영장 개념으로 쓰고 교무실 한쪽에 따로 내 자리를 마련해 두기로 했다.
‘어차피 촬영장도 필요하던 차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선생님···.”
누군가 내게 쓰러지듯 다가왔다.
깜짝 놀라 한걸음 물러서자.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는 이아린이었다.
“아린아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묻자.
“이거요.”
이아린이 별일 아니라는 듯 내게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응 이게 뭔데? 결재서류?”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명 어제 처리해야할 서류들은 대부분 처리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 냈었던 강사 광고 있잖아요? 그거 보고 연락 온 사람들 명단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학원을 이전하기 전에 광고를 냈었던 게 생각났다.
그녀에게서 자료를 받아 확인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소라게 학원 강사 지원자 명단]1. 김슬비 국어 25세 010-XXXX-1203
2. 이용호 국어 27세 010-XXXX-3384
3. 김영웅 수학 31세 010-XXXX-5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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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12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