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09
109
109화 새로운 사람들 (2)
“언니 야식 먹을래?”
이아린이 언니의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그러자 마스크 팩을 한 채 누워 있던 아린의 언니가 누운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응? 뭐 시켰는데?”
일어날 생각 따윈 전혀 없다는 포즈였다.
잠시 자신의 언니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린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떡볶이랑, 순대랑, 닭발 그리고 음 곱창볶음?”
아린의 말에 언니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너 먹고 싶은 거 말고, 뭐 시켰냐니까.”
그러자.
“다 시켰는데?”
아린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린의 언니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어? 너 이 시간에?”
그리곤 얼굴을 덮고 있던 마스크 팩을 걷고 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는 아린은 이 시간에 과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아린을 위아래를 훑어보던 언니는 곧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요즘 많이 말랐긴 했네. 기집애,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니까.’
완연한 44사이즈.
경옥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피곤이 묻어나는 눈매까지.
요 몇 주 새 급격하게 가벼워진 아린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보니 많이 먹긴 먹어야겠네. 계집애 대학 들어간다고 다이어트를 그렇게 하는 거 같더니만 이젠 안 되겠지?”
아린의 언니가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린이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다이어트? 그런 거 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왜냐하면 그녀에게 다이어트란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언니는 그런 아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 지 혀를 쯧쯧 찰 뿐이다.
“으이그, 그러게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니까. 너 그러다가 가슴도 작아져.”
순간.
아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언니가 그녀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이쯤 되면 이건 언니가 아니라 웬수였다.
“아 언니! 쫌!”
아린이 언니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곤 언니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꼬집었다.
“아하하, 알았어! 미안해 살려줘!”
언니가 아린의 손을 피해 몸을 뒤틀었다.
그런데 그때.
띵동-
현관 벨소리가 들렸다.
아마 아까 시켰던 야식이 온 모양이었다.
잠시 숨을 시근거리던 아린이 언니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씨이, 일단 먹고 나서 봐.”
아린의 언니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그녀들의 앞에 온갖 야식들이 펼쳐졌다.
치즈가 담뿍 올라간 떡볶이며.
뜨듯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순대.
그리고 갖은 야채에 버무려진 곱창 볶음까지.
11시라는 마성의 시간이 그녀들의 젓가락질을 부채질했다.
그녀들은 잠시 휴전을 하고 야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머 역시 떡볶이에는 치즈지. 아린아 우리 곱창에도 치즈 뿌려볼까?”
“···으 그게 무슨 맛이야. 싫어!”
아마 아까 화를 내던 건 기억 저 멀리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야식이 어느 정도 사라질 때쯤.
“그런데 정말 아니야? 너 요즘 살이 쪽쪽 마르던데? 혹시 너 학원에서 알바 한다더니 그 쌤이 밥도 안주고 일 시켜?”
아린의 언니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아린에게 물었다.
그러자 순대를 떡볶이 소스에 찍고 있던 아린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에휴. 그런 거 아니야. 삼시세끼 꼬박꼬박 많이 먹어. 그런데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
아린의 말에 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얼마나 일이 많았으면 저렇게 잘 먹는 아이가 살이 쪽쪽 빠지는 걸까.
“아니 일이 얼마나 많은 거야.”
언니가 묻자.
다시 젓가락을 집어들던 아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야. 장사 너무 잘 돼.”
* * *
만지작만지작-
준영이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어젯밤부터 계속 귀가 간지러웠기 때문이었다.
‘누가 내 욕이라도 하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근래에 다른 사람한테 욕먹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음, 있다면 아마 현장소장이나 이젠 기억조차 희미한 박훈 정도?
하지만 그들이야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죗값을 받고 사라진 사람들.
지금에 와서 귀가 가려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영이 슬쩍 옆자리를 바라보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솔의 얼굴이 보였다.
바로 옆자리라선지 준영이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준영이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어제부터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서요.”
은솔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혹시 귀 속에 뭐가 들어간 거 아닐까요? 괜찮으시면 제가 한 번 봐 드릴 게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TV에서 벌레가 귀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준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럼 잠시만요.”
은솔이 준영에게 다가왔다.
어느새 꺼내들었는지 그녀의 손에는 작은 핀셋까지 들려있었다.
그렇게 막 은솔이 준영의 귀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선생님! 이거요!”
준영의 등 뒤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응?”
은솔과 준영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제법 무거워 보이는 파일더미를 든 채 거친 숨을 몰아내 쉬고 있는 아린의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파일들을 들고 바쁘게 뛰어온 모양이었다.
‘아니 굳이 뛰어올 필요까진 없는데···.’
잠시 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볼을 바라보던 준영이 ‘아차’하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에게서 파일들을 받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아린이 팔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준영이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아린을 바라보았다.
‘조만간 데스크도 뽑기는 해야 하는데.’
지금도 계속 데스크 인원 면접을 보고 있었지만 왠지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다.
‘아린이 때문에 눈이 너무 높아 졌어···.’
준영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린아 이건?”
그러자.
“이력서에요. 내일 면접 보실 분들 걸로만 정리해 왔어요.”
아린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은솔과 준영의 파일들을 바라보았다.
제법 무거워 보이는 파일 더미.
대략 20개 정도 되어 보이는 그 파일들 안에 그들이 심사해야할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강사모집 공고를 내고 난 다음 정해진 기간 안에 지원한 사람의 수는 총 125명.
서울이나 서울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에 한 해서 지원한 것 치곤 제법 많은 숫자였다.
물론 그들 모두가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전문 강사들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말마따나 학원 공고를 내도 사람이 오지 않아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강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써야하는 경우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았으니까.
“음 오늘은 일단 20명 정도만 오는 거였지?”
준영이 물었다.
그러자 아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요. 아무래도 지원한 사람들이 많아서 한 번에 다 보기는 힘드니까요. 일단 선착순으로 20명씩 잘라서 연락해 놨어요.”
역시 일하는 것 자체가 달랐다. 굳이 참견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다 처리해 놓았으니까.
‘시급 더 올려줘야겠는데?’
그렇게 준영이 흐뭇한 표정으로 이아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선생님. 어떤 식으로 뽑으실 건가요?”
한쪽에서 이력서를 살펴보고 있던 은솔이 준영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 같이 심사를 할 은솔에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미리 말해뒀어야 했는데.’
일반적으로 학원에서 강사를 뽑는 방법은 제법 간단했다.
먼저 ‘훈장XX’이나 ‘XX마을’ 같은 강사 구인구직 사이트나 인맥을 통해 강사들을 모집.
그 후.
학원에서 원하는 수준의 강의력을 가지지 못한 강사들이나,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는 폭탄들을 이력서와 면접 그리고 시강으로 걸러내는 과정을 거쳤다.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방법이었다.
대부분의 학원에서 이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보장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 방법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이력서에서 광탈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력서에 걸려 탈락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준영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혹시, 다른 학원이랑 비슷하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은솔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준영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다른 학원과는 조금 다르게 뽑아야죠.”
* * *
다음날 소라게 학원의 대강의실 앞.
“음운 변동이란 두 음운이 만나서 형태가 바뀌는 현상···중얼중얼···음운 변동이 일어나는 이유는···중얼중얼···.”
소라게 학원 국어과 지원한 [22번] 지원자 강하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손에 들린 자료를 읽어 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자료에 집중하려해도 긴장으로 얼룩진 머리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바보야. 정신 차려! 여기 놀러왔어?’
강하나는 입술일 질끈 씹으며 돌아가지 않는 자신의 머리를 탓했다.
여기서 떨어져버리면 또다시 동네 보습학원, 공부방 강사, 학습지 교사를 전전하며 하루하루 위태롭게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뭘 그렇게 중얼중얼거리고 있어요. 예쁜 얼굴 망가지게.”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시강을 준비하던 강하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21번]자신의 바로 앞 번호였다.
“아···걱정이 돼서요. 시강 범위가 너무 넓어서···.”
강하나가 슬쩍 시선을 내리면서 말했다.
그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니 왠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에이, 그런 거 안 해도 되요.”
21번의 입에선 영 뜬금없는 말이 새어나왔다.
“네?”
강하나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학원 면접에서 시강 준비를 안 해도 된다고?
순간, 강하나는 자신이 잘못들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거 그냥 요식행위라니까.”
뒤이은 사내의 말을 듣는 순간 강하나는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학원 원장이 서율대 국교과 17학번이니까. 뭐 선배한테 막 하기야 하겠어?”
그의 말을 들은 지원자들 중 몇이 ‘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밝은 웃으며 그때까지 보고 있던 서류들을 집어넣고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사내와 같은 서율대 출신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이 바닥에서 학연과 지연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찰칵-
대강의실의 문이 열리고.
“21번 지원자 분 준비 다 되셨나요?”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원자들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창백한 안색의 미인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21번이 침을 한 번 삼키곤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끝나셨으면 들어오세요.”
그러자 창백한 미인.
이아린이 21번 지원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빨리빨리 끝내도록 하죠!”
21번 도전자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이아린을 따라 대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
하지만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벌컥-
“하···내가 이까짓 학원. 더러워서 안 다닌다!”
21번 지원자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강의실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숨을 씩씩 내뱉는 그의 모습에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다른 분들도 준비하셔야 해서요.”
그의 뒤를 따라 나온 이아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던 21번 지원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후우.”
그렇게 잠시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을 달싹이던 그가 이내 입을 꾹 다물고 학원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대강의실 앞 복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뭐야 무서워···.’
강하나는 이아린을 바라보았다.
분명 생긴 거만 봐서는 예쁜 대학생 같은데, 분위기는 완전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었다.
그런데 그때.
“22번 지원자 분 준비 다 끝나셨나요?”
이아린의 입에서 강하나의 대기번호가 튀어나왔다.
“네넷!”
강하나가 엉겁결에 대답하자.
“준비 다하셨으면 들어오세요.”
이아린이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강하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천천히 이아린에게 다가갔다.
“저···혹시 아까 저 사람 왜 떨어진 거예요?”
강하나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묻자.
“아? 아까 그 사람이요?”
이아린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강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을 본 강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왜 떨어졌는지 알면 좀···.”
면접에 도움이 될 만 한 내용이라면 알려달라는 태도였다.
그러자 이아린이 희미한 웃음을 띠우며 그녀의 다가갔다.
“간단해요.”
아이린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하나가 이아린의 말에 집중했다.
“준비를 하나도 안 해왔더라고요.”
말을 마친 아린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찰칵-
그러자 곧 강하나의 앞에.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준영과.
이아린 보다 더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은솔.
그리고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는 지성의 모습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