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1
11
011화 하룻강아지 그리고 전국연합학력평가 (3)
아무도 없는 교무실.
그곳에 슬며시 들어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9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시험지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어제 김준영의 가슴에 비수를 꽂던 김연서다.
그녀는 잠시 시험지를 내려다보다, 이내 시험지로 손을 뻗는다.
[김준영]김준영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는 시험지.
김연서는 준영의 시험지를 그러쥐면서, 천천히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준영의 얼굴.
자신이 그 어떤 모진 말을 쏟아낸다 해도, 여유로운 웃음으로 넘겨 버리던 그.
그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녀는 알고 싶었다.
‘설마··· 이번 시험은 역대급 난이도였어. 내가 받은 95점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점수라고.’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는 불안감을 애써 잠재우며 그녀는 시험지의 겉표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니겠지.’
팔락-
그러나 그 순간.
김연서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랗게 질렸다.
* * *
[9월 모의평사 역대급 난이도! 올 해 수능은 사실상 ‘헬수능?’ ··· 상위권 변별력 더 커질듯.] [지난 OO일 치러진 9월 전국연합학력평가의 난이도에 대한 의문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입시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9월 모의평가의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의 경우 지난해 수능 난이도와 비교했을 때 비슷하거나 다소 어렵게 출제됐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이번 평가가 ‘역대급 난이도’를 보였던 지난해 수능과 비슷하다는 뜻은 수험생들의 체감난이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의미로 11월에 있을 수능에서 상위권 변별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언어 영역’의 경우 만점자가 단 한 명밖에 나오지 않았을 정도의 난이도로···]
달칵-
어제 있었던 9월 전국연합학력평가의 난이도에 대한 기사다.
그 뒤로도 잠시 우라까이 기사들로 도배된 포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이내 기대를 접고 꺼 버렸다.
쓸모 있는 기사가 별로 없었다.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 수능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기사들.
한강 수온을 묻는 리플과 그것을 조롱하는 댓글들뿐.
새로운 정보나 수능에 대한 전망을 정밀하게 분석한 글은 보이지 않았다.
어휴-
돌아보니 고등부 수학 선생이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시험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제1교무실. 아직 수업은 바뀌지 않았지만 명목상 박훈에게 수업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뭐 박훈은 인수인계를 할 생각이 없는지 내 책상에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자신의 책상을 옮겨 놓은 상태였지만.
그 덕분에 고등부를 감도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나야 아직 중등부 수업만 맡고 있었으니 이번 시험 이후에도 문제 될 게 없었지만 고등부 강사들의 경우 생각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듯싶다.
9월 전국연합학력평가는 11월 수능의 체험판. 수능과 가장 유사한 유형과 난이도의 시험이었으니까.
물론 평가원도 바보가 아니니 여론을 수렴해 가면서 수능 난이도를 조절하겠지만 역대급 헬 난이도, 그것도 초열지옥급으로 문제를 만들어 놨으니 모의평가의 공신력을 위해서라도 난이도를 많이 낮출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수학, 영어. 국어 교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벌레를 씹은 것처럼 구겨져 있었다.
특히나 이번에 수험 유형 체크에 헛발질한 강사들일수록 표정이 살벌했다.
출제위원이 옆에 있으면 후려갈길 것 같은 표정.
하아-
게다가 복도를 오가는 학생들의 얼굴도 밝지 않다.
어떤 학생들은 숫제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자그마치 12년. 수능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이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니까.
혹자는 난이도가 높아진다고 해도 변별력이 강해지는 것뿐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
중위권 학생들의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보면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고 오히려 떨어진다면, 그리고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던 이들과 비슷한 점수에 머무른다면 어느 누가 담담하게 그 현실을 받아들일까.
후우-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전체적으로 학원 안의 분위기가 난장판이었다.
나만 빼고.
드륵-
갑자기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강사 하나가 친근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자 채로 다가왔다.
고등부 영어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 평소에 인사조차 하지 않던 사이다.
“준영 선생님도 이번 시험 보셨어요? 왜 저번에 고등부 시험 신청할 때 선생님 이름도 본 것 같은데?”
단순히 내가 이번 모의평사 시험을 봐서 그런 건가?
그런데 그런 것 치곤 너무 이상하게 친근한 표정과 말투다.
생각해보니 오늘 출근할 때부터 나를 마주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뭔가 경원시 되는 느낌.
가까이 있지만 다다가선 안 될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눈앞의 그도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 있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이기에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뭐 봤죠. 저도 감은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뭔가 다 알고 있다는 표정.
끄덕끄덕 거리는 폼이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
“그렇죠. 이제 고등부 수업도 맡으실 테니까. 어때요 선생님도 어려웠어요? 아니다 선생님한테는 쉬웠을 수도 있겠구나.”
뭐지? 이 몹쓸 믿음은?
나와는 말 한마디 섞어 본 적 없던 이가 가지기에는 너무나 확고한 믿음이었다.
“아 네 저는 뭐 그럭저럭 풀 만하더라고요.”
뭔가 이상하다. 대답을 하며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다들 시선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대놓고 보는 사람과 은근하게 곁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박훈과 입맛을 다시는 마귀할멈.
심지어 이런 데 관심 없어 보이는 은솔까지.
“에이 너무 겸손하시다. 선생님 이번 국어 시험 만점이라는 거 소문 다 났는데. 아니 어떻게 그 동안 그 실력을 숨기고 계셨데?”
아. 이거였구나.
뒤이은 영어선생을 말을 듣자 오늘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이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니 어제 문제와 정답이 발표되고 난 뒤. 채점을 마친 문제지를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놓았던 것이 생각났다.
모의평가 만점이야 학생들도 심심하면 맞는 것이었으니 시험 본 당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게다가 분명 잠깐이었고 누군가 들춰본 흔적도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그 잠깐사이에 누군가 교무실로 들어왔었나 보다.
“뭐 강사라면 당연한 거죠.”
뭐 억지로 숨기려 한 것은 아니니 상관없지만 막상 저런 눈빛을 받으니 어색하긴 했다.
쓰게 웃을 수밖에.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호의가 짙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도 쉬엄쉬엄 풀어 봤는데 운이 좋은 정도로는 못 풀겠던데? 이거 원, 해가 갈수록 어려워만 지니······.”
하지만 모두가 호의 섞인 눈빛을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고등부 국어 선생들.
특히 그중에서도 박훈은 살벌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박훈 선생님도 시험 본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저번에 제가 영어 신청할 때 같이 신청 하자시던 게 기억나는데요?”
그때 은솔의 목소리가 교무실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박훈에게로 모였다.
박훈은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자신에게 향하자 당황한 듯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하하 제가 그때 신청은 했는데 뭔가를 잘못 먹었는지 당일에 급체를 해서요···”
아까 나에게 말을 걸었던 영어 강사가 지그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냐, 아냐. 박 선생님 차 어제 시험장에서 본 것 같은데? OO재수학원 아니었어요? 나도 어제 영어 시험 보러 갔었으니까.”
박훈의 얼굴이 진짜 급체라도 한 것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아아 그거요··· 막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심해져서 말이죠··· 바로 병원으로······.”
강아지도 안 믿을 표정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짙은 의혹이 서렸다.
“흐음 그래요? 그러셨구나··· 몸은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영어 선생이 슬몃슬몃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박훈의 표정이 더더욱 어색해졌다.
이 사람 그 동안 몰랐는데 물 먹이는 방식이 아주 수준급이다.
“오··· 오늘 아침에 보니 말끔하게 나았더라고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박훈이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이자 사람들의 시선이 떨어져 나갔다.
다들 입가에 비웃음을 한가득 물고 있다.
뭐 이제 중등부로 내려가면 박훈의 자리도 사라질 테니 강사들의 저런 태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시험 하나가 몰고 온 파장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큰 변화였다.
달칵-
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박훈의 손에 잡힌 시험지가 우그러들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책상 밑에서.
교무실 안에 있는 다른 강사들이 절대 시험지라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구깃구깃하게.
채점된 그의 시험지에 적힌 점수는 92점. 현역인 연서보다도 낮은 점수였다.
사실 어제 시험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모의평가 성적만 잘 나온다면 그걸 바탕으로 원장과 딜을 해 볼 생각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모두 다 저녀석 탓이다.’
그의 눈동자가 준영을 향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김준영은 장밋빛이던 자신의 학원 생활을 망친 원수였다.
발아래에 까는 깔개라고 생각했던 김준영의 역습 때문에 고등부 자리와 돈을 날린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오늘은 공개적으로 망신까지 당해야 했으니.
김준영의 이름을 새긴 인형에 바늘이라도 꼽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그는 이미 준영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상태.
사지가 잘려 위리안치(圍籬安置)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배신자들.’
주위를 둘러보지만 호의적인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면 좀 나았을까?
그러나 자신 스스로 준영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박훈의 머릿속에서 준영의 위치는 언제나 자신의 아래 있었으니까.
그때 원장이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박훈의 시야에 들어왔다.
“왔어요?”
원장은 들어서자마자 준영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지만, 준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싸가지 없는 자식.’
박훈에게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림짐작하기에 급여에 대한 협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받았어야 할 것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자 시험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 * *
쉬는 시간.
학원 밑 편의점으로 진군한 김연아 외 20군단은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김밥과 컵라면을 해치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학원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때문에.
박훈이 교무실 문을 열고나오며 쓰레기통에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것을 김연아가 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장면을 본 것이 만약 다른 학생이거나 혹은 선생이었다면 별 다른 문제는 없었을 것이었지만.
하필 그 장면을 본 것이 김연아라는 것이 문제였다.
박훈이 씩씩거리며 지나가고 난 뒤, 쓰레기통에 다가간 김연아의 손엔 어느새 구깃구깃 접혀 있는 시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 이게 뭐다냐?”
김연아외 20군단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호기심이라는 마물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순간.
박훈의 시험점수가 낱낱이 드러났다.
“대박! 박훈 점수 우리 언니보다 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