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10
110
110화 새로운 사람들 (3)
탁-
분필이 칠판에 부딪치는 소리.
짧은 판서를 마친 강하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간접 높임은 말 그대로 주체의 신체 부분, 성품, 심리, 소유물을 높임으로서 주체를 간접적으로 높이는···.”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강의.
이젠 눈을 감고서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벌써 수십 수백 번 그녀의 입에서 되풀이 되었던 말이었으니까.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또 다시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원죄.
학벌이라는 이름의 사슬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젠 벗어나고 싶어.’
물론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다.
처음 대학을 졸업했을 때만 하더라도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보다 얼마만큼의 능력을 갈고 닦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지 5년.
그녀의 나이 벌써 28살.
그 동안 보습학원, 공부방 강사, 학습지 교사 전전하던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학벌이라는 녀석의 이름이 더 크고 무섭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선생님. 아시잖아요. 이 바닥 원래 이런 거.’
남들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열심히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지방대 출신의 학원 강사라는 비웃음 뿐.
자신보다 수업에 대한 열의도 준비도 부족한 사람이 단지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수업을 대신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살아 선 희망이 없어.’
이대로 점점 더 나이가 들면 아마 그나마 다니던 학원에서도 버림받고 아무 연고도 없이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위기감이 그녀를 잠식했다.
때문에 과감하게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두 달 동안 대형학원에 이력서를 넣었다.
어떻게 해서든 학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쌓아올려 위로 올라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안녕하십니까 OO학원입니다. 이력서를 결과를 수차례 검토한 끝에 저희 학원이 추구하는 목표 방향과 귀하께서 추구하는 목표 방향에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과연 대형학원의 벽은 높았다.
그녀가 지원했던 학원들 모두.
탈락. 탈락. 탈락. 탈락. 탈락. 탈락. 탈락. 탈락. 탈락. 탈락.
그렇게 두 달을 이력서 광탈로만 지새우다 보니 그녀의 멘탈은 찢어지다 못해 가루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휴 내 주제에 무슨···그냥 학원으로 돌아갈까?’
다 포기하고 그냥 다시 학원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그때.
[강하나 선생님! 소라게 학원입니다! 혹시 이번 달 15일에 시강이랑 면접 가능하신가요? 시강 범위는 저희가 보내드리겠습니다.]마치 기적처럼 마지막 기회가 그녀를 찾아왔다.
‘세상에!’
처음 답장을 받았을 때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답장을 보낸 곳이 요 1년 사이 입시 학원 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곳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낚시는 아니겠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장난 같지는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소라게 학원의 면접날을 기다리며 미친 듯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절박했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다른 기회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오늘.
“···이상입니다.”
그녀는 그 동안 연습했던 모든 것들을 다 풀어낼 수 있었다.
“잘 들었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현대시를 시강을 들어보도록 할까요? 제가 사전에 말씀 어떤 작품을 준비해 오셨나요?”
김준영이 강하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꿀걱-
강하나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종환의 으로 시강하겠습니다.”
준영이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강하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시를?’
분명 좋은 시였지만 다소 임팩트가 약한 시였다.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강의력을 뽐내야 하는 시강 주제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작품 유형.
그래선지 시의 제목을 들은 은솔과 지성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녀보다 앞서 시강을 진행한 사람들은 대부분 ‘있어 보이는 작품’을 시강했었으니까.
하지만.
준영의 입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만이 감돌뿐이었다.
“기대가 되네요. 그럼 시작해 주세요.”
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강하나의 입에서 천천히 시가 흘러나왔다.
흔들리고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
잠시 뒤.
“···마지막으로 이 시는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꽃이 피듯이, 우리의 사랑과 삶도 그렇게 완성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십니다.”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강하나의 시 시강이 끝났다.
‘역시 잘하네.’
준영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하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처음 강의실 안으로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사람이 분필을 잡자마자 말과 표정에 여유가 생겼다.
성격 자체는 내성적이지만 그걸 내리 누를 정도로 경험과 연습이 많았다는 말.
준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이 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간단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
준영의 질문이 나오자마자 강하나의 얼굴에 다시 긴장이 찾아왔다.
‘응? 내 질문이 그렇게 긴장할 만한 건가?’
준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강하나 선생님?”
그러자 그녀가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넷! 저···저는 그러니까···이 시가 올 해 아니면 내년에 수능이나 모의고사에 기출문제로 나올 거라 생각해서···중고등 출제비율도 높은데다가 이번 문체부 장관이 이 사람이기도 하고···.”
강하나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러자 은솔과 지성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작품을 고른 이유가 참 걸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둘과 달리 준영은 만족한 얼굴로 입을 열 뿐이었다.
“잘 들었습니다. 그럼 간단한 질문을 하도록 할 텐데요.”
* * *
“수고하셨습니다. 나가시면서 데스크에서 면접비 꼭 수령하시고요. 합격 여부는 저희가 추후에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준영의 말을 들은 강하나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어때요?”
준영이 은솔과 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음 괜찮은 거 같은데? 성격은···약간 소심한 거 같기는 해도 강의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
“저도요. 목소리 톤이나 딕션도 좋고, 준비를 많이 한 티가 나요.”
나쁘지 않은 평가였다.
정확한 평가는 세 사람이 작성한 점수표를 취합해 봐야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면접을 봤던 사람들 중에 제일 합격선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았다.
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원자들의 명단에서 강하나의 이름에 체크를 해 두었다.
그런데 그때.
“김 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진행할 생각이야?”
지성이 약간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준영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오늘 준영이 채택한 방식이.
‘일단 면접이랑 시강에 집중하도록 하죠. 이력서는 그 다음에 보도록 하고요.’
학원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채용 방식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었다.
“네. 일단은 계속 사용해 볼 생각이에요.”
“음,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지성의 말에 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우려하는 것이 뭔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 좀 아끼자고 문제점이 뻔히 보이는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학원가에서 사용하는 채용 방식.
그러니까 이력서의 기재된 내용으로 강사들을 거른 뒤, 시강과 면접으로 채용 인원을 확정하는 방식은.
‘강사의 실력을 종이 한 장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게 나을 것 같아서요. 기존 방식은 저랑 좀 안 맞아서···.”
일반적으로 이력서에 기재되어 있는 사항들 중 학원 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크게 4가지였다.
학벌, 외모, 나이, 경력.
이 중 학벌은 최소한 서울 소재 혹은 지방거점국립대학 이상.
외모는 다른 사람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정도에는 되어야 하며.
나이는 서른 초중반 정도가 가장 적절하나 마흔은 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력은 대형학원일수록 그리고 그 기간이 길수록 높게 평가 받았다.
얼핏 보면 굉장히 그럴듯한 기준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빈틈이 많은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방금 전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강하나 같은 경우, 일반적인 학원의 채용기준을 가져다 댄다면 시강은커녕 면접조차 못보고 바로 광탈할 테니까.
그러니 준영은 자신의 몸이 좀 피곤할지언정 다른 학원들처럼 이력서로 지원자들을 떨어뜨리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일도 있었던 데다.
자신의 학원을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흠. 아무리 그래도 학벌이나 경력 같은 걸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텐데? 일단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이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지성의 말에 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강사의 학벌이나 경력, 나이, 외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아무리 원장이 이력서보다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들은 바로 이력서에 들어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지성이 지금처럼 걱정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일단 실력이 우선이라고 하더라도, 학력이나 경력 같은 걸 아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지성이 이야기한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준영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USB를 얻기 전까지 온몸으로 경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실력이 우선입니다. 이건 타협할 수 없어요.”
준영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학벌, 외모, 나이, 경력.
물론 중요한 것이었다.
일단 학부모들이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내가 채워 줄 수 있는 거지.’
어차피 화려한 학벌이나 경력 같은 것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것.
USB를 통한 압도적인 성적 향상만 있다면 그런 것들이야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강사들을 채용할 때 먼저 봐야 할 건 오로지 기본적인 실력뿐이었다.
하지만.
“그래 나도 그게 더 중요하나고 보긴 하니까. 그런데 김 쌤.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 ‘실력’이라는 걸 판별할 건데? 김 쌤도 알다시피 그건 20분 남짓한 시강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지성이 말한 대로 강사의 실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가늠하기 힘든 것.
게임의 레벨처럼 수치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강사의 그것을 잴 수 있는 정확한 잣대가 없다면, 결국 준영이 말한 ‘실력’이라는 것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준영에게는 이미 그 ‘실력’을 잴 수 있는 절대적인 잣대가 존재했다.
그것도 아주 예전부터.
준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지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다 방법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