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2
12
012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1)
“그러니까 박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원장의 표정이 서늘하다.
급여 협상을 하려던 참에 끌려나온 것이라 그렇다.
평소의 박훈이라면 움찔할 상황.
하지만 오늘의 그는 이상하게 자신만만했다.
“크흠, 원장님 지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원장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속고 있는 겁니다.”
“뭘 속고 있다는 거예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박훈을 바라보는 원장. 그러나 동시에 호기심이 드는 모양이다.
“지금 김 쌤이랑 급여 협상 하시려는 거 아닙니까?”
“······.”
원장의 얼굴이 굳었다.
박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처럼.
“역시··· 원장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얼마 정도로 예상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박훈의 말을 들은 원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불쾌한 것 때문도 있지만, 박훈에게 주던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책정하기 있었기 때문에 당사자 앞에서 이야기하기 꺼려지는 것도 있었다.
박훈은 재차 말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그냥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시죠. 저 그렇게 입 싼 놈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
원장은 이 학원에서 제일 입 싼 이가 박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굳이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난 3년간 입 속의 혀처럼 행동해 주었던 것이 떠올라 어찌할까 고민하던 차였다.
“원장님··· 저 박훈입니다.”
박훈이 한 번 더 이야기하자, 원장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고정은 한 50프로 정도 올리고 비율은 7:3 정도···”
박훈의 표정이 약간 흔들렸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조건은 아니었으니까.
준영의 고정 급여가 200만 원 남짓이었으니 50프로를 올린다 한들 4대 보험과 근로소득세를 제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다.
문제는 고등부 비율.
사실 7:3이라면 그렇게 좋은 비율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면 이 바닥 기본은 5:5니까.
박훈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그나마 다행이군요. 김 쌤 고정급은 얼마 되지 않으니··· 문제는 비율인데···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네요? 오히려 적절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원장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박훈의 말을 정정한다.
“···김 쌤의 고정급에서 50%이 아니라 박 쌤의 고정에서 50%에요. 비율은 김 선생님이 7이고.”
순간 박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잘못 들은 건가?
“······.”
원장은 약간 머쓱한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박훈은 진심으로 원장에게 미친 거냐고 묻고 싶었다.
대부분의 학원에선 고정급이면 고정급, 비율제면 비율제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학원처럼 일정 금액까지는 급여를 보장해 주고 이 이상을 비율로 책정해 주는 학원도 있었지만 흔치는 않다.
아니 그런데 아무리 김준영이 요즘 색다른 행보를 보인다고는 해도 7:3이라니······.
박훈은 자신이 몇 년 동안 5:5 밖에 보장받지 못했었던 것을 떠올렸다.
한참 동안의 침묵 이후, 박훈의 입이 열렸다.
“···원장님 김준영 선생은 그 정도의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원장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알죠··· 그런데 요즘 김 선생님 소문이 학생들이랑 학부모들에게까지 퍼졌어요. 잡지 못하면 당장 빠지는 학생들이 있을 텐데 난들 어쩝니까?”
원장도 내심 김준영의 급여를 높게 책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이 학원에 김준영이라는 강사가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많아졌다. 게다가 이 지역의 큰 손인 김연아 부모와의 약조도 걸려 있었다.
더군다나 오늘. 지역에서 단 한 명뿐인 이번 모의평가 만점이 준영이라는 소리까지 들려왔으니 원장으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잡아야만 하는 블루칩.
그것이 현재의 김준영이었다.
“그래도 학원에 생태계라는 것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시면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영향이 있을 텐데요.”
박훈이 선생들과의 형평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지만, 원장은 의외로 단호한 표정이었다.
어차피 이 바닥이 이런 곳이니까.
실력만 있다면, 설령 실력이 아니라 이미지일 뿐이라도 먹히면 돈을 번다.
“그러니까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 방법이 있었으면 나도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하나.”
다만 원장도 준영에게 당했던 것(?)이 생각났는지 은근한 표정으로 박훈을 떠보았다.
방법이 있다면 따르겠다는 은근한 뉘앙스였다.
그러자 박훈의 눈이 빛났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 * *
차갑게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씁쓸한 맛이 혀 속으로 파고든다.
원장이 타 주는 커피는 원래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건 정말 최악이었다.
가만히 커피 잔 속을 내려다보자, 박훈과 원장의 얼굴이 커피 위로 떠올랐다.
두꺼비와 개구리. 그 둘의 밀회가 꽤 길어지고 있었다.
찰칵-
원장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들어선다. 나갈 때와는 딴판이었다.
“아이고, 김 선생님 이거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져서요.”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어조와 표정. 하지만 뭐 원장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인가.
“자,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 볼까요?”
원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자리에 앉는다.
“그러시죠.”
내가 수긍하자 원장은 잠시 차갑게 식은 커피로 목을 축이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 요즘 김준영 선생님이 잘해 주시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 성적도 척척 올려 주시고, 고등부 내신 기출도 팍팍 잘 찍어 주신다는 소문이 파다하니까요. 거기다가··· 어제 시험 이야기도 들었고······.”
원장의 말이 제법 장황하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말들일 뿐.
정작 중요한 말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제가 잘 챙겨 드려야 하는데··· 사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요즘 학원 운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아시죠?”
내가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 원장은 자기가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학원 생리라는 게 사실 실력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실력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아니면요?”
내가 묻자 원장은 애써 조심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학부모들한테··· 믿음을 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학력 같은 것 말이죠.”
난 또 뭔 말을 하는가 했더니.
급여 협상을 할 때 단골로 나오는 멘트가 아닌가. 어떻게든 급여 수준을 낮추려는 학원과 높이려는 강사의 싸움.
이때 무기로 사용되는 대게 강사의 학력, 학벌, 경력 등이었다.
학원은 깎아내리고 강사는 부풀리고.
본래의 나라면 그 무기 중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언제나 백전백패하는 게 당연했다.
아니, 당연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우스울 뿐이다. 거참 이 양반 그렇게 망신당해 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저는 선생님을 믿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니까··· 지금처럼 중등부에 계시다가 시험기간에 고등부 일을 좀 봐주실 수 없나 여쭙는 거죠.”
나는 잠자코 있었다.
“고정 급여는 저번에 말씀 드린 대로 인상해 드리고 고등부 비율도 5:5 정도로 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주변 어딜 가도 이 정도로 해 주는 학원은 없을 테니 우리끼리만 아는 것으로 하구요.”
“······.”
“거기다 고등부 경력이 쌓이면 온전히 고등부를 맡으실 수도 있는 거고요. 그 전까지만 박 선생님이랑 잘 협의해서··· 아시죠?”
원장의 표정이 자신만만하다.
내가 자신의 제안을 따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
전형적이다. 작은 욕심에 눈이 멀어 큰 걸 바라보지 못하는 자의 눈이다.
“···말씀 다 하셨나요?”
내가 천천히 입을 열자, 원장의 표정이 일변한다.
그때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얼굴.
하지만 늦었다.
커피는 이미 식었다.
더 이상 이 학원에 있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학력, 학벌, 경력. 압도적인 실력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장식일 뿐이다.
“그만두겠습니다.”
* * *
교무실에서 짐을 챙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차피 2교무실에서 1교무실로 자리를 옮길 때 부피가 큰 짐들은 다 처리해 둔 상태라 작은 상자 하나에 모두 다 담을 수 있었다.
“준영 선생님 어디 가세요?”
영어선생이었다.
교무실에 남아 있는 강사들 모두 갑작스런 상황에 눈이 동그래진 상태다.
심지어 은솔마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하긴 이 사람들 입장에선 당황스러워 할 만했다.
좋은 일로 나간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 짐을 챙기니 내심 짐작하면서도 궁금할 수밖에.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들 비슷한 입장이기 때문에 단지 내 입에서 확인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거참 원장 제정신이야? 아이고 준영 선생님 같은 사람을 왜 버려? 나가 원장이면 당장에라도 모시고 가겠네.”
영어선생은 자신이 더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혀를 찬다.
쓰게 웃을 수밖에.
그러나 동시에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난 5년간의 기간 정도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힘들었던 기억도 많은 곳이니까.
사실 USB를 얻었을 때 바로 나가지 못한 것은 나의 미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준영 선생님 가실 곳은 정했어요? 아니면 내가 아는 곳 소개시켜 줄까? 선생님이라면 버선발로 튀어나올 데도 몇 군데 있는데.”
아쉬움을 담은 그의 말이 고마웠지만 정중하게 사양했다.
어차피 그가 말하는 학원도 이 학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일 테니까.
“그럼 모두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제 번호는 바뀌지 않으니까 언제라도 연락 주시죠. 그땐 제가 살 테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교무실을 나섰다.
학원 강사의 마지막이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어느 날 말없이, 혹은 크나큰 상처를 입고 입히면서 떠나게 마련. 그러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을 떼며 학원가를 영영 떠나가곤 했다.
굳게 닫힌 원장실 안에서 원장의 고성이 튀어나오고 있다.
나오는 말을 들어보니 박훈도 이 학원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아직 학생들이 등원하기 전이라 학원 안은 한산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 * *
꼬끼오-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OO학원 중3 김연아]전화 액정을 바라보자 이젠 볼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름이 떠 있다.
잠시 멈칫했다가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누른다.
[선생님! 왜 왜 그만 뒀어요!]전화 스피커에서 김연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당장에라도 쫓아올 것만 같은 다급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됐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끔 학생들 생각한다고 나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는 강사들도 있지만 언제나 그 끝은 좋지 않았다.
끝날 때는 확실하게, 매정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끝을 내는 게 나았다.
[후, 나랑 약속했잖아요? 안 지킬 거예요? 이게 맨날 말하던 어른이 사는 방식이야? 못됐어 정말!]뚝-
뭐지?
자기 할 말만 다다다 해 버린 녀석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당황해 보는 것 같다.
그런데 3분 뒤.
꼬끼오-
또 다시 울리는 전화벨.
[OO학원 중3 김연아]액정에는 똑같은 이름이 떠올라 있다.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통화버튼을 누른다.
[선생님! 학원 어디로 옮겨요? 지금 막 학원 그만뒀어요! 애들도 다 옮긴데요.]녀셕의 대책 없는 말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니 학원 그만두는 일을 무슨 햄버거 시키듯이 하냐······.
내심 어이가 없으면서도 약간 뿌듯해졌다.
모니터 창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