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23
123
123화 이레귤러 (3)
핑크빛으로 꾸며진 방.
소녀소녀한 소품들과 인테리어.
그리고 그 방 분위기와 영 안 얼울리는 커다란 화이트보드.
펭귄 파자마를 입은 아담한 체형의 소녀가 제법 능숙한 몸짓으로 방송장비들을 세팅한다.
그리곤 잠시 뒤.
“안뇽하세용 여러분. 여러분들의 귀염둥이 별이에요! 자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해석해 보려고 하는 데요? 어때요 여러분 기대 되시죠?”
요튜브 공부 방송 2년차, 중견 스트리머 별이가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용자23 : 별이 안녕!] [이용자34 : 용비어천가? 으억 그게 뭐야! 그냥 노래나 불러봐!] [이용자55 : 해동 육룡이 나라샤 모르냐? 으이구 공부 좀 해라] [이용자12 : 미친ㅋㅋㅋ여기 공부하러 온 사람들 있었어? 다들 별이 얼굴 보러 온 거 아니야?]채팅방에 대기하고 있던 시청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채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익숙한 사람들 그리고 익숙한 말들이었다.
이미 2년 가까이 인터넷 공부 방송을 진행해 오면서 많이 봐왔던 채팅 내용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용자23 : 그런데 강의만 하면 드럽게 재미없지 않음?] [이용자33 : ㅇㅇ 그럴 거면 인강을 듣고말지. 별이님 오늘 뭐 잼난 거 없어요?]순간, 채팅방을 보고 있던 별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런 채팅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펭귄 옷을 입고 강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심 자신의 강의력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재미가 없어? 인강이나 듣지? 으···화난다!’
하지만 프로답게 그녀는 금세 웃는 얼굴을 회복했다.
어쨌든 시청자들이 갑이었으니까.
“헤헤 그렇죠! 역시 그냥 하면 재미가 없겠졍? 그래서 오늘은 짜잔!”
그녀가 자본주의 미소를 띠우며 책상을 가리고 있던 천을 치우자.
카메라 앞에 어마어마한 양의 떡볶이와 보기만 해도 오장육부가 녹아내릴 것 같은 색상의 불닭이 나타났다.
[이용자1 : 오, 떡볶이에 불닭ㅋㅋㅋ 그런데 양이 좀 적네? 옆방은 삼겹살 10인분 도전하던데?] [이용자2 : ↑너 저거 안 먹어봤지? 저거 초열 떡볶이야. 캡사이신이 고춧가루 보다 더 많이 들어 있다고!] [이용자3 : ㅋㅋㅋ거기다 미친불닭ㅋㅋㅋ 저거 2인분이면 사람이 먹을 양이 아님. 다음날 죽어죽어,] [이용자4 : 지금까지 별이의 공부 방송을 사랑해주신 여러분께···]그러자 방금 전까지 콘텐츠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던 사람들이 입을 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별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 선택한 먹방이 사람들에게 먹힌 것 같았으니까.
‘으 오늘도 그럭저럭 잘 넘어가겠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매운 걸 전혀 못 먹는 다는 거지.’
마치 시뻘건 용암 같은 떡볶이 국물과 수북이 쌓여있는 떡 그리고 그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불닭을 보자.
벌써부터 그녀의 미뢰가 긴장으로 떨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할 수 있다! 김별! 넌 할 수 있어!’
그녀는 프로.
잘 먹지 못하는 음식도 철근처럼 씹어 먹을 수 있어야만 했다.
때문에 별이는 마음속으론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에이, 저를 뭐로 보고 그러시는 거에용~ 저 정도야 가뿐하죠!”
왜냐하면.
‘언니가 다른 걸로 준비했겠지.’
그녀의 매니저가 센스 있게 맵지 않은 것으로 포장을 내용물을 바꿔치기 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진짜 큰일인데···.’
뭐 약간 걱정되긴 했지만.
[이용자11 : ㅋㅋㅋ 별이님 허세 귀여워!] [이용자23 : 별이 저번에도 저러고 닭발 먹다가 땀 뻘뻘 흘리면서 울었음 ㅋㅋㅋ] [이용자77 : 오 진짜? 레알 개꿀이었겠는데? 하앍하앍 또 울어봐!]시청자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며 그녀의 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긴장어린 표정으로 떡볶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그럼 지금부터 초열 떡볶이 3인분과 미친불닭 2인분, 쿨피스 한 팩을 먹으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당.”
그녀의 젓가락이 천천히 떡볶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뒤.
“헥헥, 여러분 그럼 이쯤에서 잠시 광고 보시고 가실게요!”
떡볶이와 불닭을 반쯤 먹은 그녀가 그녀에게 들어온 기업 광고 중 제일 긴 광고를 걸어 놓고 촬영장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밖에 채팅방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매니저가 바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마치 왜 벌써 나왔냐는 듯한 매니저의 표정.
혹시 무슨 사고가 난건 아닌지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본 별이가 한숨을 파악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에휴, 돈 벌어먹기 더럽게 힘드네. 광고 걸고 나온 거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말고, 담배나 좀 줘.”
방금 전까지 소녀소녀한 아우라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말투.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하는 노병의 눈빛이었다.
별이의 말을 들은 매니저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담배를 건넸다.
그러자 그녀가.
탁탁탁-
능숙한 손짓으로 담뱃갑 밑을 치더니 영웅본색의 주인공처럼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곤.
칙칙-
싸구려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으아 뿅가네. 그건 그렇고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방풍이 안 터져. 팬클럽 관리 좀 해야겠던데?”
핑크색 펭귄 파자마를 입은 소녀가 담배를 피는 그 모습.
뭔가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에 별이의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하루 이틀 봐온 것도 아니긴 했지만 볼 때마다 약간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지. 그래서 조만간 우량주들 데리고 정모 한 번 할 생각이니까 너도 기억해놔.”
매니저가 담배연기를 손으로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담배를 쭈욱 빨아 재끼던 별이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에이, 그런 자리는 가기 귀찮은데···.”
아무래도 정말로 가기 싫은 모양.
하지만.
“돈 벌기 싫어? 또 옛날처럼 갓뚜기 스프에 햇반 말아 먹을래?”
매니저가 엄한 표정으로 갓뚜기와 스프를 입에 담자.
“아니! 절대 싫어!”
별이가 듣기도 싫다는 듯 거세게 도리질 쳤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학원들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밥벌이에 고민했었던 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가 시키는 데로 해. 저번 달에 실버등급 받고 나서 애들 유입 괜찮으니까. 이대로만 가자 알았지?”
매니저의 말을 들은 별이가 초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휴, 내 팔자야···강의하랴 먹방하랴 이쯤 되니 내가 먹방 스트리먼지 공방 스트리먼지 헷갈린다니까?”
약간의 자괴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짙은 피로를 숨기고 있는 말이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걸 어쩌겠어. 시청자들이 까라면 까야지. 뭐 그리고 너만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자괴감 가지지 말고.”
“아니 왜 그 김준영인가 하는 사람 있잖아. 저번에 보니까 그 사람은 먹방이나 뭐 이런 것도 하나도 안하고 골드 등급 찍었던데?”
“걔? 걔는 뭐···잘생겼지, 강의 잘하지, 거기다가 적중률도 미쳐버렸잖아 거기다가 이번 요ㅤㅌㅠㅂ 대회도 우승하고···그리고 또 게스트들도 빵빵···”
그런데 그 순간.
“흥, 빵빵하기는 무슨···내가 더 빵빵하더만.”
별이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아담한 키.
뽀얀 피부.
전체적으로 빵빵하다는 수식어보다는 귀엽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아···네. 그럽습죠.”
매니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쳇, 그런데 이번에 그 사람한테 메일 하나 오지 않았어? 그 김준영이라는 사람.”
별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번 주에 그녀의 계정으로 메일 하나가 날아온 것을 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긴 왔는데···.”
“뭐래? 혹시 합방? 으아 언니 합방이면 나 할래!”
“얼씨구. 왜 관심 있어?”
“아니···그런 건 아닌데···그래도 골드잖아! 궁금하지 않아?”
매니저의 말에 별이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을 본 매니저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신경 꺼. 쓸데없는 메일이었으니까.”
방금 전 김준영을 칭찬하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차가운 대답이었다.
별이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왜? 뭐였는데? 컨텐츠 베끼지 말라는 건가? 그쪽 건 베끼고 싶어도 베낄 수가 없어서 포기했잖아?”
“그런 건 아니고···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무슨 꿈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
“응? 무슨?”
별이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에이, 넌 몰라도 되니까 방송 준비나 해! 얼른 담배 끄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별이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별이가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짜 말 안 해줄 거임? 어허 고용주의 명령이다! 김 매니저는 어서 고하라!”
장난기가 묻어있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약간 진지한 표정.
말해주지 않으면 화를 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쯤 되자 매니저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없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그의 고용주는 엄연히 별이었으니까.
매니저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요튜브에서 같이 인강해 볼 생각 없냐더라.”
그러자.
“옹? 인강? 아니 어떻게?”
별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인강하면 대형 학원들 플랫폼이 먼저 떠올랐으니까.
“음···요튜브 쪽이랑 무슨 딜을 했다고 그러던데?”
매니저의 말을 들은 별이가 감탄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 역시 글로벌하게 노는 사람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달라. 그런데 왜? 내 생각에는 괜찮은 거 같은데?”
그리곤 괜찮지 않냐는 듯한 표정으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쯧, 생각을 해봐. 다른 회사에서 안 했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괜찮았으면 다른데서 벌써 시도했겠지.”
매니저는 부정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흠 그런가?”
“당연하지.”
매니저의 단호한 표정을 본 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매니저의 말을 들어서 잘못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어 별아! 광고 끝나간다 얼른 들어가!”
채팅방을 모니터링 하던 매니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별이가 지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휴, 나도 먹방 말고 그냥 벗으면 안 돼? 진짜 먹기 싫은데···왜 다른 애들 보니까 그냥 막 벗어재끼고 밤풍을 갈퀴로 긁어 모으더만.”
그 말을 들은 매니저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소리 마! 넌 작아서 벗어도 소용없어! 얼른 들어가!”
가혹한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쳇, 알았어! 소화제 하나만 먹고!”
그렇게 별이가 촬영장 안으로 들어간 뒤.
[네! 여러분 이제부터 본격적인 별이 방송을 시작···]큰 사고 없이 방송이 재개된 것을 본 매니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아까 별이가 물어봤었던 것.
준영의 제안을 생각해 보았다.
‘인터넷 강의’
말만 들으면 그럴 듯한 제안이었다.
요튜브를 인터넷 강의 플랫폼으로 쓴다는 발상 자체도 참신한데다, 그 말을 꺼낸 준영의 계획도 탄탄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지.’
현재 자신이 맞고 있는 별이 방송의 구독자 수는 총 [133,002명]
굳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돈이 들어 올만한 위치였다.
그러니 괜히 쓸데없는 짓을 벌이다가 그나마 있는 구독자들마저 다른 방송에 빼앗기는 것보다는 지금 있는 구독자들을 유지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게다가.
‘공짜 인강이라니 말도 안 되지’
그 도전 정신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래도 그 몽상 속에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절대 성공할 리 없어.’
그만큼 그의 믿음은 확고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