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26
126
126화 대세 (1)
“망했군.”
고품격 음악방송, 들리는 TV를 표방하고 있는 MBM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
‘스타 라디오’
그 스타 라디오의 메인 MC를 맡고 있는 김진상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바로 옆에 있던 다른 MC 윤흥신이 그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아직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우.”
그도 새어 나오는 한숨을 어쩔 수 없는지 카메라가 자신을 잡지 않을 때 작게 한숨 내쉬었다.
그리곤 촬영장 바깥에 있는 PD와 작가들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앞에는 지금.
“헉…헉.”
화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잘 차려입은 20대 청년이, 시뻘건 막창볶음을 먹으며.
“저…정말 맛있지요잉?”
별 재미있지도 않은 방송 리액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박정민.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 유라시아TV에서 먹방 콘텐츠로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트리머이자 오늘 스타 라디오의 게스트로 초대된 사람.
오늘 스타 라디오의 컨셉인.
‘최근 매스컴에 제일 이름이 많이 오르내리는 일반인’
이라는 기획에 어울릴 것이라 기대를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미 촬영이 시작된 지 벌써 1시간 째.
박정민의 뻘짓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드립 욕심에 원래 계획되었던 방송 일정이 헝클어져 있었다.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는 정말 최악.
벌써 3번째 촬영이 중지 됐다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만간 또 멈추겠구만….’
김진상이 박정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촬영 중지를 생각하기가 무섭게.
“컷!”
PD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슬쩍 돌아보니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PD와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작가, FD들의 모습이 보였다.
상황이 이쯤 되자 처음 몇 번은 웃으면서 박정민을 격려하던 MC들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자 땀을 뻘뻘 흘리며 막창을 먹고 있던 박정민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리곤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아까 촬영이 멈췄을 때처럼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거나 SNS에 쓸데없는 글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휴….”
그 모습을 바라본 김진상이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오늘 출연한 사람들이 연예계 종사자라면 큰 소리라도 한번 버럭 지를 텐데.
‘선배님. 오늘 나오는 사람들은 일반인이니까. 좀 살살해 주세요….’
하필 일반인들 세 명을 대상으로 한 촬영인지라 쓴 소리 한번 마음대로 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오늘 방송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만큼, 김진상의 쓴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김진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텝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심각한 얼굴로 긴급회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로서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지, PD의 찡그려진 인상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컨셉 자체가 무리였어. 아니 일반인들을 섭외해서 무슨 예능을 진행한다고….’
그는 애꿎은 물만 벌컥벌컥 마시며 어서 스텝들의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사실 처음 녹화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제법 괜찮았다.
‘안녕하십니까 고품격 라디오 방송 스타 라디오입니다. 오늘은 아주아주 특별한 게스트 분들을 모시고 방송을 진행해 볼 생각인데요! 여러분 환영해 주시죠. 연예인보다 더 유명한 일반인!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일반인! 국내외 방송 플랫폼의 대표 스트리머 세 분을 모셨습니다!’
그가 처음 게스트들을 소개할 때만 해도.
‘먼저 프로메테우스TV에서 200만 구독자를 달성한 먹방 스트리머 박정민 씨! 그 옆에 유라시아TV에서 가수보다 더 가수 같은 스트리머로 유명한 김선아 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튜브 퀴즈 대회의 우승자! 김준영 씨입니다!’
일반인이라고는 하지만 카메라에 익숙한 스트리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인데다가.
벌써 11년 째 방송을 진행 중인 메인 MC들과 숙련된 스텝들의 힘이 있는 한 그 어떤 게스트가 오더라도 재미를 뽑아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안전장치도 준비해 뒀었고.’
당초의 방송 계획은 초반에 스트리머 각자의 방송 콘텐츠로 자신의 소개를 한 뒤, 본격적인 토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방송을 진행한다면 설사 스트리머가 실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토크에서 4명의 베테랑 MC들이 그들의 실수를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인터넷 방송과는 다른 공중파 방송 환경에 눌린 박정민이.
‘앗…그러니까 그게…죄송합니다. 다시 가겠습니다….’
‘방금 거는 제가 그러고 싶어 말한 게 아니고요….’
‘아하하…매워서 그러는데 우유 좀 주시겠어요?’
아까부터 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자신의 콘텐츠인 먹방에서도 처참한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오늘 거 날리고 다른 방송으로 다시 찍자고 할까?’
오죽했으면 예능 인생 20년에 만에 처음으로 재촬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을까.
그런데 그때.
“선배님…괜찮으세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진상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스타 라디오의 작가들 중 한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방송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대책을 마련한 스텝들이 바뀐 촬영 내용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나야 괜찮은데…이제 어쩔 거야? 그러게 일반인들 데리고 방송하는 거 힘들다니까.”
김진상이 작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작가가 안 그래도 잘 알고 있다는 듯 진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PD님한테 벌써 어마어마하게 까였어요……. 분명 미팅할 때나 모니터링 했을 때만해도 괜찮았었는데……. 갑자기 이런 데서 터지네요.”
그리곤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게스트 석에 앉아있는 박정민을 바라본다. 하지만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박정민인지라, 그녀의 원망어린 시선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진상이 작가에게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꺼 날리고 다른 날 다시 찍는 거야?”
아무래도 그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뇨 그건 힘들죠. 아무래도 스케줄 문제도 있고 또 후원사 문제도 있으니까요.”
작가가 그건 힘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번 기획의 경우, 11년 동안 비슷한 포맷을 유지해 온 것에 한계를 느낀 스타 라디오 측과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스트리밍 업체들 간의 딜을 통해 성사된 기획이었다.
때문에 단순히 게스트의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제 와서 판을 뒤엎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미 대형스트리밍 업체 3군데서 후원을 끌어와 놓고 이제 와서 자사의 스트리머들을 못 쓰겠다고 해 버리면, 앞으로의 후원도 어려울 테니까.
그러나.
“그럼 그냥 이대로 가겠다고? 허 지금 후원사가 무서워서 재미를 포기하겠다는 거야?”
그것과는 별개로 방송의 재미 측면에서는 답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선지 작가의 말을 들은 김진상의 표정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아무래도 그에겐 후원사 같은 방송 외적인 요소들 보다 방송의 재미 그 자체가 중요했으니까.
자칫 잘못하다간 그동안 참고 있었던 그의 분노가 터져 버릴 것 같은 상황.
김진상의 표정을 본 작가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뇨! 전혀 아니죠. 만약 그랬다가는 이대로 방송 나갔다간 홈페이지에 난리가 날 테니까요.”
그리곤 김진상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박정민씨 분량을 최대한 줄이고 다른 분들 분량을 늘려서 가기로 했어요. 아까 권선아 씨 노래 부르는 건 괜찮았잖아요? 마침 저희 방송이 고품격 음악 방송이기도 하고….”
작가의 말을 들은 김진상이 슬쩍 고개를 돌려 게스트 석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권선아의 모습이 보였다.
권선아.
유라시아TV에서 가수보다 더 가수 같은 스트리머로 박정민에 앞서 자신의 콘텐츠를 소개했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콘텐츠는 바로 ‘노래’.
그것도 여성이 소화하기 힘든 남성 가수들의 노래를 편곡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김진상은 아까 그녀가 노래를 부르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흐음…아까 흥신이 형 노래를 괜찮게 부르긴 했어.’
제법 괜찮은 실력, 그리고 제법 괜찮은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방송 전체를 커버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수준에서의 이야기.
안타깝게도 이곳은 그 정도의 실력과 비주얼로는 어디 가서 자랑하기도 힘든 연예계였다.
그러니 다음 방송 시청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권선아의 분량만으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김진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아까 노래는 괜찮았어. 그런데 그렇다고 주구장창 노래만 부르는 것만 방송에 내보낼 거야? 사실 우리 방송에서 주를 차지하는 건 노래가 아니라 토크잖아, 안 그래?”
김진상의 말을 들은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스타 라디오는 어디까지나 고품격 음악 방송을 표방하기만 할 뿐. 주로 케이블보다 더 독한 토크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이라는 것을 작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아직 안 풀어 본 선물에 기대를 걸어야죠.”
작가는 걱정 없다는 듯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김진상이 고개를 갸웃하며 작가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아직 남은 사람 있잖아요. 저기 저 사람이요.”
작가의 시선이 게스트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김진상의 눈이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랐다.
그곳에 있는 것은 바로…·.
오늘 초대한 세 명의 스트리머 중 한 명.
아직까지 컨텐츠를 설명하기 전이라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남자.
3개월 전에 있었던 요튜브 퀴즈대회 우승으로 300만 달러라는 거금을 획득한 자.
김준영이었다.
김준영은 주변에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준영의 모습을 확인한 김진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작가를 바라보았다.
“설마 기대를 걸고 있는 게 저 사람이야?”
그리곤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비밀무기 치고는 너무 평범해 보였으니까.
그의 말을 들은 작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사실 이 기획 자체가 저쪽. 그러니까 김준영 선생님을 보고 만든 기획이니까요.”
작가의 말을 들은 김진상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김준영을 바라보았다.
그가 본 김준영은 그저 잘생기고 아는 것 많은 학원 강사, 아니 스트리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을까? 저 사람이 요튜브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건 알지만…·. 사실 이미지만 봐서는 먹방하던 박정민이랑 비슷할 거 같은데? 게다가 저 사람 공부 방송이라며? 지루한 이야기만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선지 그의 말 안에는 여전히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맛있지요오옹? 이게 나을라나?”
김진상의 눈에 혼자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 박정민의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그래 뭘 해도 저거보단 낫겠지.’
김진상의 마음속에 김준영에 대한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설사 김준영이 국어책을 읽더라도 저거보다는 낫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진상 딱딱한 표정을 본 작가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아마 괜찮을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작가가 틀림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작가의 표정을 본 김진상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뭔가 특별한 게 있어?”
그 말들 들은 작가가 게스트 석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주 특별한 게 있죠.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