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27
127
127화 대세 (2)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깔끔하게 정리된 세트장 내부와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뜨거울 정도로 내리쬐는 조명 불빛.
MC와 게스트들의 얼굴을 잡고 있는 커다란 카메라들까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방송 촬영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스타 라디오’
올해로 방송 11년째를 맞고 있는 MBM의 최장수 프로그램이자 독한 예능의 선두주자.
김진상, 윤흥신, 김진국, 차현태. 4인 MC가 게스트의 내밀한 부분을 사정없이 후벼 파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토크 방송으로 우리나라에 몇 없는, 게스트가 돋보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물론 그 돋보임을 견딜 수 있어야 겠지만.’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게스트의 인지도와는 상관없이 MC들 간의 호흡으로 어느 정도의 재미를 일정하게 뽑아내고, 그를 통해 출연한 게스트의 인지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있었다.
대부분의 방송들이 게스트의 이미지를 소모해 프로그램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것에 그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법 놀랄 만한 효과.
때문에 처음 요튜브 측에서.
‘선생님…방송 한번 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스타 라디오 출연을 제의를 해 왔을 때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고 지금처럼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을 때, 사람들에게 나나 회사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면 사업의 순항 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방송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하…진짜 매운 것 좀 못 먹는다고 너무한 거 아니야?”
옆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아까 불 막창 3인분을 먹던 먹방 스트리머였다.
이름이 아마 박정민이었던가? 아까 소개를 하는 것을 들어 보니 프로메테우스TV라는 국내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구독자 수가 한 200만 정도였나?’
방송 전만 해도.
‘하하,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제가 경력 2년차에 구독자 수만 200만이라니까요. 합방도 많이 해 봤으니까. 저만 따라오시면 오늘 이후에 구독자 수 팍팍 올라가는 거 금방일 걸요?’
다른 게스트인 권선아에게 자신감이 넘치는 어조로 말을 걸던 사람이라, 그래도 제법 방송에 잘 적응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자리에서 저렇게 매운 불 막창을 가져오는 게 말이 되냐고. 방송 한다는 사람들이 유도리가 없이 뭐하는 짓이야….”
지금은 그저 싸움에 진 개처럼 혼자서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스텝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자.
저 멀리 방송작가와 김진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마치…….
‘내가 무슨 꿀단지라도 숨겨 놓은 것 같은 표정인데?’
잠시 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큐!”
PD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잠시 멈췄던 촬영이 재개됐다.
그러자 내 앞에 있는 MC 4명이 모두 각자의 이미지에 맞는 표정으로 게스트들을 바라보았다.
“네! 잘 봤습니다 박정민씨. 역시 먹방 프로는 다르네요. 아니, 그거 맵지 않았어요?”
가장 먼저 김진상이 박정민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약간 기가 죽은 표정이던 박정민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예 괜찮습니다. 하하.”
그리곤 언제 방송에 불만을 가졌냐는 듯 얼굴에 화색을 띠운 채 입을 열 타이밍을 재며 입을 달싹였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또다시 기회가 다시 온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자 그럼 다음 게스트 분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김준영! 나이 33살! 오,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그렇죠?”
그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줘도 못 먹으면 다시는 안 준다.’
방송가에 떠도는 말이다.
그에게 주어졌던 지난 3번의 기회가 사라진 이상, 그에겐 이제 카메라가 갈 일이 없어 보였다.
대신 박정민에게 향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그러게요. 얼굴만 보면 한 스물 중반처럼 보이는데?”
4명의 MC 중 가장 진중한 이미지를 가진 김진국이 찬찬한 목소리로 김진상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부럽다, 부러워. 누구는 맨날 샵 다녀도 이 모양 이 꼴인데. 아 혹시 김준영 씨 따로 다니는 샵 있어요? 있으면 소개 좀 해 주세요!”
그 옆에 있던 윤흥신이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어차피 나도 몇 번이나 방송물을 먹은 몸.
“안 다닙니다. 원래 타고난 거라서요.”
입에서 자연스럽게 대답이 튀어 나왔다.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우우- 소리를 낸다.
아무래도 다들 촬영 정지 전의 암울한 분위기를 타파하고 싶은지 최대한 토크를 뽑아내려는 게 느껴졌다.
“에헤이, 이 사람들이 진도를 못 나가겠네. 다음으로 빨리 넘어가겠습니다. 자, 직업은…이야, 이거 하시는 일이 꽤 많네요?”
MC들의 수다를 헤치고 김진상이 말했다.
그러자 다른 MC들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직업이라…음, 분명 대본에 다 써 있을 텐데?
하긴 방송의 재미를 위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어보는 것이겠지.
나는 기대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몇 가지 안 됩니다.”
그러자 내 대답을 들은 김진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몇 가지가 아닌 데요? 일단 저희가 조사한 것만 봐도…인터넷 방송, 대형학원이랑 인터넷 강의 업체 운영, 거기다 저번엔 책도 쓰셨네요? 허, 이거 참 저도 나름 바쁜 몸이라고 생각했는데 김준영 씨 앞에서는 그런 생각 못하겠어요.”
김진상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인 차현태가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면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하는 거야? 원장님? 아니 원장이 아니라 대표인가? 그것도 아니면 작가님?”
평소 그가 나왔던 영화를 재미있게 봐 왔던 터라 그의 능글맞은 태도가 기꺼웠다.
그동안 영화에서나 봤던 사람이 바로 내 앞에서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거였으니까.
나는 슬쩍 웃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차 배우님 편하신 대로 불러 주셔도 됩니다.”
그러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에이 그래도 제일 익숙한 이름 있을 거 아니에요?”
그의 말을 듣고 내가 막 대답을 하려던 그때.
“대표라는 이름이 제일 좋지 않나? 있어 보이잖아.”
윤흥신이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형이 하니까 없어 보이는데? 형도 엔터 대표잖아?”
차현태가 짓궂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아무리 봐도 장난을 치겠다는 의지가 역력하게 느껴지는 얼굴.
미끼를 물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야 나도 회사 가면 어깨 힘주고 다닌다?”
윤흥신 또한 다르지 않았다.
“힘 줄 어깨는 있고?”
“아니…그건 없긴 한데….”
그렇게 잠시간의 만담이 이어지고 난 뒤.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나는 눈치껏 타이밍을 잡아 김진상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김진상이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김 선생님이라고 하도록 하죠. 자 그럼 김 선생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리곤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송 출연 전 스타 라디오를 모니터링 한 결과.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 게스트를 당혹스럽게 하는 질문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솔직히…한 달에 얼마나 벌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이 안 나와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면 돈독이 올라서 그러는 거예요? 다른 분들도 이미 다 깠으니까. 시원하게 월 수익 한번 까 주시죠.”
독한 질문이 한 번에 훅 들어왔다.
그러자 목표를 포착했다는 듯.
게스트들이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하이에나 네 마리가 실실 거리면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흠, 어떻게 할까…나야 그냥 까 버려도 상관이 없긴 한데…….
‘하지만 이런 건 바로 까면 재미가 없지.’
아무래도 방송의 컨셉상 이런 건 일부러 물어뜯으라고 한 번쯤 빼 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로 벌고 있습니다.”
그러자 MC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거 우리 생각보다 많다는 이야기지?”
은근히 신난 것 같은 표정의 윤흥신과.
“원래 많이 버는 사람들이 더 하거든. 봐봐. 유석재가 방송에서 얼마 버는 지 이야기하는 거 봤어?”
특유의 찌푸린 표정으로 심각한 척 이야기하는 김진상.
그리고 다른 MC들까지 내가 얼마를 받는지 추측하며, 특유의 입담으로 분량을 만들어 냈다.
그러다.
“난 솔직히 형 얼마 버는지도 모르는데?”
차현태가 김진상을 바라보며 은근슬쩍 말을 던지자.
“야! 나한텐 수익 물어 보지 마!”
김진상이 버럭 화를 내는 척 말을 받았다. 김진상이 현재 수십억 규모의 빚을 갚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 써먹은 드립이 아닌 듯, 말을 하는 차현태도 말을 받는 김진상도 그리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역시 예능의 세계는 냉정한 법.
웃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아픔까지 갈아 넣는 저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잠시 차현태와 아웅다웅하던 김진상이 가까스로 안색을 회복한 척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내가 빨리 빚을 갚던가 해야지….”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너무 적어서 그러는 건 아닌가요? 아까 박정민 씨는 한 달에 3천만 원 정도 번다고 하시고, 권선아 씨도 그 비슷하게 번다고 하시던데…. 음, 아니면 혹시…선생님도 빚이?”
설마 그럴 리가…….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학원 운영 수익으로는 한 달에 한 3억 정도 나오고 있고요. 제가 진행하는 방송에서는 2천만 원, 그리고 인강 회사에서는 한 달에 한 5억 정도, 마지막으로 책 출판 같은 경우는 요즘에 좀 올라서 5천만 원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말한 금액이 그들의 예상 보다 좀 더 높기 때문인 것 같았다.
“허허 그럼 대충 한 달에 8억에서 9억 정도 나온다는 건가요? 총 매출이요?”
잠시 뒤 김진국이 담담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역시 전성기 때 수십억을 벌어들였던 사람이라선지 말에 여유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니요. 순이익입니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답하자.
“음…제 예상보다 좀 많네요?”
그 또한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편.
“아직 미혼이라고 그랬죠?”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던 김진상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 사람 또 뭔 질문을 던지려고 저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어?
“네.”
내가 살짝 긴장하며 대답하자.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한번 만나 볼 생각….”
그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잠자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차현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김준영 선생님! 이 형이 소개해 주는 사람은 절대 만나면 안 돼요!”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차현태와 김진상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김진상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 왜! 내 지인 중에 괜찮은 사람 많아!”
“아니, 그러다 형처럼 되면….”
“야 인마!”
음…이 사람들 아까도 느낀 거지만 드립 수위가 제법 과격하다.
김진상이 이혼한 상태라는 건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아는 걸 텐데…. 설마 그걸 가지고 드립을 칠 줄이야…….
그래도 지금 토크 덕분에 아까 박정민이 잡아먹었던 촬영 분을 만회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방송이 재미가 없다면 나와 회사의 인지도를 높인다는 당초의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이었으니까.
잠시 뒤.
“…그러고 보니 김 선생님.”
차현태와의 토크를 끝낸 김진상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내가 대답하자.
그가 또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요튜브 퀴즈 대회 예선을 만점으로 통과하시 뒤에, 결국 그 대회 우승도 하셨잖아요?”
아, 뭔가 했더니.
이제야 본격적인 토크가 시작되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나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만 물어본 것이었으니까.
그러자.
“아, 그거? 나도 예선에는 참여했었는데 엄청 어렵더만. 그런데 그 게임 김 선생님이 우승자셨어요?”
방금 전까지 김진상을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던 차현태가 능숙하게 김진상의 말을 받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네. 그랬었죠.”
내가 대답하자.
김진상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죠. 전국에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을 위해 과연 선생님의 실력이 진짜인가 한번 테스트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70문제 전부를 맞춰 주신 분이었으니 저희가 드리는 문제도 수월하게 푸실 수 있겠죠?”
의도적인 도발을 던졌다.
“네.”
하지만 나는 그 도발을 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상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럼 바로 문제 들어가겠습니다. 저희는 뭐 준비하고 그런 거 없거든요.”
그리곤 바로 문제가 나왔다.
“1번 문제. 다음 중 울릉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150조의 가치를 가진 보물선의 이름은? 1번 센트럴 아메리카, 2번 산 호세, 3번 돈스코이. 자 5초 안에 맞춰 주시….”
제법 어려운 문제.
하지만.
“답은 3번 돈스코이 홉니다. 1905년 러일 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이었던 군함으로, 현대가치 150조원대로 추정되는 금화, 금괴들을 싣고 있었던 배죠.”
5초가 지나기 전에 답한다.
그러자 김진상이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작가들 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나를 바라본다.
“자, 문제가 너무 쉬웠죠? 음…사실 이 문제는 몸풀기였습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지금부턴데요. 자, 다음 문제! 다음 중 쇼핑 중독을 의미하지 않는 말은? 1번 오니오마니아, 2번 어플루엔자….”
아무래도 이번엔 준비된 문제 중 제일 어려운 문제를 뽑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답은 3번입니다.”
이번에는 문제가 다 끝나기도 전에 답을 맞혀 버렸다.
“어…네, 답은 3번 파라노이아인데요…어떻게….”
“오니오마니아는 ‘물건을 구매하는 데 있어 비이성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충동을 일컫는 말’이고, 어플루엔자는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말이니 답은 3번이겠죠.”
“허허….”
김진상이 정말 놀랐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아, 참고로 파라노이아는 편집증이나 피해망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야, 작가들! 이거 사전에 문제 유출된 거 아니야?”
김진상이 스텝들을 바라보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척을 했다.
하지만 잠시 뒤 바로.
“음…아니라고 하네요? 음…사실 저희가 준비한 문제는 더 많았는데…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선생님. 저희가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예전에 노량진 재수학원에서 강의를 하실 때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신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가 기대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노량진 학원이라…퍼포먼스? 아!
“아, 혹시?”
내가 살짝 놀란 어조로 말하자.
김진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마 생각하고 계신 게 맞을 겁니다. 저희 막내 작가 친구가 그때 선생님 강의를 들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아니, 형 그게 뭔데?”
차현태가 김진상에게 물었다.
돌아보니 나와 김진상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본 김진상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글쎄 이 분, 아니 김 선생님이 문제만 딱 들으면 어느 책, 몇 페이지, 몇 번째 문제인지 딱 맞혀 주시고 지문 해설에 답까지 해 주신다니까?”
그러자.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퀴즈야 그러려니 하지만 음….”
“흐음…이건 좀….”
사람들이 의심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을 본 김진상이 도전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상황이 이런데…선생님 혹시 지금도 가능하신가요? 힘드시면 말씀하시고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문제 다 가져오세요.”
내 말을 들은 김진상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오호, 자신감 넘치시는데요? 저희가 못 가져올 줄 아셨나 봐요? 작가들 문제 많이 뽑아 놨지? 다 가져와!”
잠시 뒤.
쾅-
어마어마한 양의 문제지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와 김진상의 공방전이 시작됐다.
“…제망매가에서 화자의 인식변화구조로 알맞은 것은? 1번…”
“상비교육. 문학2 평가문제집. 47페이지. 4번 문제. 답은 4번….”
“…이 노래의 시적 형상화 방법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번…”
“만재교육. 육감도. 123페이지. 12번 문제. 답은 2번인데…음, 이거 2019년 개정판에서는 빠진 문제예요.”
“…‘달’의 상징적 의미로 적절한 것은? 1번…”
“ESB. 수능특강. 97페이지. 2번 문제. 답은 5번….”
“…학생이 발표 유인물로 활용한 자료이다. 자료를 보며 발표를…”
“어라? 이번엔 모의고사로 가져오셨네요? 2018년 전라북도 5월 고등학교 3학년 모의고사. 국어 2번 문제. 답은 3번이에요. 이건 기출문제집들에 다 들어 있는 문제긴 한데…대뮬에서는 122페이지….”
.
.
김준영과 김진상의 공방전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진국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 자신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MC들과 게스트, 스텝들 그리고.
‘이건 대박이다!’
라는 표정으로 씨익 웃고 있는 PD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공방전의 임팩트가 너무 큰 만큼,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방송 분량을 뽑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김진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현재 페이스는…스타 라디오 11년의 역사에서도 레전드가 될 만한 장면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게스트 중 한 명인 권선아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출연은 가능할까요? 아무래도 저희 분량은 없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