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30
130
130화 끝장반 (2)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서울 소재 명문대 국문과 출신 공시생 남윤제.
그는 문제를 풀다가 나온 지문을 보며 쓰게 웃었다.
‘예전에 많이 봤던 작품이네.’
아마도 그가 대학을 다닐 때쯤. 아직 푸릇푸릇함이 남아 있던 시절 학술 발표를 했었던 작품 중 하나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는 학과회장이자 동아리 회장.
과외 한번 받지 않고 명문대에 합격한 가족들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흔하디흔한 공시생 1에 불과하지….’
그는 눈을 감았다.
“후….”
그리곤 한숨을 내쉬며 펜을 내려놓은 뒤, 뻑뻑해진 두 눈 부비며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익숙하고 작은 천장. 몸 하나 뉘일 곳 없는 고시원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를 다 펴지 못할 정도로 작은 침대와 30분만 앉아 있어도 허리가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책걸상.
그리고 수북하게 쌓인 책과 빛 한 점 들어올 곳 없이 꽉 막힌 벽까지.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벗어나고 싶다.’
남윤제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마다 이 말을 되뇌었다.
이 안에서 살아가는 날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가슴 한쪽이 바스러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는 게 아니라 버틴다.
그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는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고시원을 벗어나, 지금 보고 있는 문제집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에휴.”
언제나처럼 생각으로 그칠 뿐이었다.
‘윤제야, 너도 이제 적당한 자리를 찾아야 할 것 아니냐. 아버지도 이제 정년인데 아버지 정년 하시기 전에 빨리 자리도 잡고, 결혼도 해야….’
하루하루 늙어 가시는 부모님과.
‘오빠, 나 이번에 결혼해. 축하해 주러 올 거지?’
‘우리 애기 이번에 돌잔치야. 꼭 와라!’
‘철형이 이번에 취업했다더라. 취업 턱 쏜대! 같이 가자.’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오빠 화이팅!’
5년간 사귀어 온 여자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잉여인간이 될 순 없으니까.’
지금이 당장이 힘들다고 한 걸음 물러선다면 이젠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현재를 버텨 나가야만 했다.
‘정신 차리자, 남윤제. 정신 차려. 올해는 꼭 붙어야 해. 올해는 꼭!’
남윤제는 흔들리려는 정신을 다 잡았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자아자! 할 수 있다! 남윤제 할 수 있어!]눈높이쯤에 써 놓은 다짐과.
4시 기상. 노트줄 세우기. 아침 공부.
7시 강의.
8시 50분 아침 식사.
9시 10분 스터디.
10시 30분 강의.
.
.
11시 10분 취침.
빽빽한 스케줄이 보였다.
통칭 ‘세븐일레븐’이라 불리는 공시생 전용 시간표. 7시 기상 11시 취침은 이미 그에겐 일상이다.
‘…휴.’
하지만 볼 때마다 부족해 보기는 스케줄이기도 했다. 그의 경쟁자들이 이것과 비슷하거나 더 치열한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물론 그가 처음부터 이런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4년 전,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남들처럼 영어 회화를 공부하거나 방학마다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착실하게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고 있었다.
‘뭐 이 정도면 대기업도 비벼 볼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 험했다.
‘귀하의 자질만큼은 높이 평가….’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지원해 선발에 어려움….’
‘제한된 인원을 선발해야 하는 부득이한 상황….’
한 해 한 해 점점 줄어만 가는 기업 채용인원. 그에 따라 높아지는 경쟁률 때문에 이름 있는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기본 스펙은.
1. 인서울. 아니면 적어도 지방거점국립대학 이상의 학벌.
2. 3.5 ~ 4.0대의 학점.
3. 800점 이상의 토익 점수.
4. 영어권 국가로의 어학연수.
5. 직종관련 자격증 2개 이상.
6. 공모전 입상경력.
7. 관련직종 인턴십 경력.
8. 봉사활동,
9. 그 외 대외활동과 아르바이트 경력.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높고, 넓어졌다.
그러니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곤 하지만 남윤제의 스펙으로는 서류에서 탈락, 설혹 운이 좋아 서류를 합격하더라도 면접에서 탈락이었다.
그렇게 취준생으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낮아진 자존감과 텅빈 지갑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정년보장! 퇴직 후 연금! 정시퇴근! 다양한 복지 혜택!’
공무원 시험 학원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순간, 그는 생각했다.
‘그래 이 길이라면….’
이 길이라면 그가 지난 2년간 손에 쥐기 위해 노력한 것. 삶의 질과 사회적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공무원 시험이야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과목으로 하는 거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그렇게 그는 합격의 희망을 품고 공시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길 또한 쉽지 않았다.
‘…이게 뭐야 내가 합격자 명단에 없다고?’
연이은 실패, 실패, 실패.
상황이 이쯤 되자 부모님도 조심스럽게 공시를 그만두는 게 어떠냐는 뜻을 내비췄다.
‘윤제야 이제 그만하고…그…아무 데라도 들어가는 게 어떠냐?’
그러나.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만약 이제 와 포기한다면 지난 시간 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 삶의 질과 사회적 안녕도 먼 곳으로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그는 딱 내년까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부모님과 담판을 지은 뒤. 합격 커트라인이 낮은 소방과 경찰 직렬로 목표를 수정. 내년 초 시험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내년엔 무조건 합격한다.’
그렇게 그는 마음을 다잡고 또다시 하루를 버텨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띵동-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뭐지?’
근 1년 동안 대부분의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살던 중이라 딱히 연락 올 만한 곳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시간은 오전 5시 30분.
누군가에게 연락이 올 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약간의 의아함을 가지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윤제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바로.
[지원♡]지난 5년간 만나 온 그의 여자 친구였다.
‘어? 지원이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대학교 4학년 때 만난 여자친구.
나이는 분명 자신보다 어리지만 가끔은 자기보다 더 어른스러운 사람.
요즘엔 서로 바빠 연락이 뜸했던 상황이라 갑작스런 그녀의 문자가 반가웠다.
하지만.
[오빠. 오늘 시간 좀 괜찮아?]문자의 내용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모티콘 하나 없는 건조한 문자. 평소 그녀가 보내던 문자를 생각하면 너무나 차가운 문자였다. 순간, 그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여자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일이 있는 거면 자신이 그쪽으로 가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아니야 난 괜찮아. 오빠 공부 끝나는 시간에 보자. 내가 오빠 집 쪽으로 갈게.]또다시 무미건조한 답장이 도착했다.
* * *
겨울비가 내렸다.
남윤제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오빠. 미안해…이젠 나도 견디기 힘들어. 우리 이제 그만하자.’
어젯밤.
윤제의 고시원으로 찾아온 여자친구는, 그 동안 윤제가 주었던 모든 선물들과 편지들을 상자에 담아 내밀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통보에 윤제는 여자친구, 아니 여자친구였던 사람을 잡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일 뿐. 가지 말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사실 그도 언젠간 이런 일이 닥칠 것이란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벌써 4년째 그가 취업준비다 공시다 해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그녀는 벌써 졸업을 하고 제법 괜찮은 회사에 취업을 한 상태였으니까.
“후….”
그렇게 여자친구‘였던’ 사람을 떠나보낸 뒤.
윤제는 감옥 같은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있는 강의에 나가려면 어떻게든 잠을 자야만 했다. 그것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목표였으니까.
그러나.
“…….”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잠을 자려 할수록 정신이 점점 더 또렷해지기만 했다.
그러자 억지로 내리 눌러 놓았었던 자괴감이 슬그머니 머리를 치켜들었다.
‘쓰레기.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가 버릴 정도로 구제불능. 병신새끼. 오죽했으면 그 착한 애가 떠나가겠냐.’
마치 악마가 귓가에 속삭이듯. 그의 머릿속에 어두운 글자가 떠돌았다. 그 동안 애써 외면했었던 현실이 악질 채권자처럼 그를 엄습했다.
“젠장….”
견디기 힘들어진 그는 고시원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만약 그대로 있었다면 자기 스스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걸었다. 우산도 없이 맨몸으로 천천히, 노량진에서부터 한강대교, 노들섬을 지나 용산, 서울역, 숭례문, 회현 사거리까지 정신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어느새 명동에 위치한 옛 미쓰꼬시 백화점, 현 신세대 백화점에 다다랐다.
윤제는 바라는 것도, 사고 싶은 것도 그리고 돈도 없이 은회색 빛 건물들을 사이를 거닐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잡지도, 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이 도시에 그 어떤 연고도 없는 부랑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잉여인간. 아니 장외인간.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 이름이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시간은 오후 2시.
내리던 비가 다 그친 하늘은 너무나 푸르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에에에에에엥-
민방위 훈련의 긴 사이렌이 감싸고, 거리를 오가던 모든 차들이 갑자기 정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순간, 윤제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들어가고 싶었던 세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세계가 멈춰선 순간.
윤제는 그 동안 자신이 꿈꿔왔던 미래가 비누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 동안 그가 바라마지 않던 세계가 다가갈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두려워졌다.
위태로이 흔들거리는 그의 팔과 다리.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그를 피하고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마주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상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발길을 재촉하다 보니 그는 어느새 백화점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찰칵-
작은 소리와 함께 옥상 문이 열렸다.
아무래도 누군가 담배를 태우거나 무언가를 옮기려고 올라왔다가 닫아 놓는 것을 깜빡한 것 같았다.
그렇게 홀린 사람처럼 옥상에 다다른 윤제는 천천히 옥상의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곤 백화점 앞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개미떼처럼 오고가는 사람들.
수많은 소음에 휩싸인 정오의 도시.
방사형의 도로 위를 질주하는 이름 모를 차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그가 있는 옥상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과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허탈해졌다.
어떻게 할까.
그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옥상에서 살 것이 아니라면 결국엔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조금 빠른 방법과 조금 느린 방법.
어떤 것을 택할지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조금 빠른 방법 쪽으로 그의 마음이 기울어 갔다.
어차피 노량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으니까.
단 사람이라도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도 그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마지막 한 번쯤은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띵똥-
가볍지만 동시에 무거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소라게 아카데미! 하반기 공무원 추가채용, 끝장반 모집!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날아 볼 분들만!]* * *
드륵-
문을 열었다.
그러자.
송곳처럼 날카로운 시선들이 내게 날아와 꽂혔다. 서로 다른 100쌍의 눈동자. 서로 다른 열망을 담고 있는 눈빛들이었다.
나는 천천히 강의실 안을 걸어 교탁에 섰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강의실에 자리한 사람은 총 100명.
그들은 모두 올해 시험을 망친 2년차 이상의 공시생들이었다.
내가 TK측과 협의한 내용은 단 한 가지.
단기간 안에 내가 TK측 에서 인정할 만한 성과를 입증한다면, 내년으로 예정된 TK사의 IPTV 입시 강의뿐만 아니라 공시 강의까지 내가 맡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만했다.
그리고 마침.
[2019 지방직 9급 추가채용]그 성과를 입증할 만한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내말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연차가 쌓인 공시생들 같은 경우 자기 스스로에 대한 아집도 상당했으니까.
그렇게 해서 모인 100명의 사람들. 이 사람들은 선착순으로 모인 사람들 중 내 말에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각서를 작성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긴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모두 올해 안에 합격시켜 드리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