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34
134
134화 가장 가까이에서 (3)
‘자고 일어나니 낯선 천장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소설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났더니 낯선 천장. 아니 낯선 공간이었다.
소설이었다면 이쯤에서 옆을 돌아봤을 때 뜻밖의 인연이 자리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지금 내 옆에는 연인은커녕 높게 쌓인 생수나 즉석밥, LED 손전등, 담요 같은 구호물품들만이 가득했다.
이 모든 게 어젯밤.
‘선생님 저희랑 같이 나가시죠? 아무래도 여기선 편히 못 쉬실 텐데….’
공무원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어제 10시가 좀 지나자.
‘당직들만 남고 나머지는 숙소 다녀오세요.’
재난 대응 센터에 나와 있던 공무원들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필수적인 인력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은 집으로 귀가하거나 아니면 방어리 남쪽 외동읍으로 나가 숙소를 잡는 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강당이 이재민들로 가득한 상태인 데다가 인근에 숙소로 삼을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인 듯했다.
그러다보니.
‘저희랑 같이 가시죠? 대피소 쪽은 대부분이 가족 단위라 선생님 혼자 계시면 불편할 텐데.’
거의 유일한 외부 자원 봉사자인 나에게도 자신들과 같이 숙소를 잡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나름 호의가 담겨 있는 제안.
‘괜찮습니다. 저야 버스에서 자도 되니까요.’
하지만 나는 공무원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외동읍 쪽으로 나가 숙소를 잡으면 비록 몸은 편하겠지만, 지진이라는 놈이 밤낮을 가리지 않는 다는 게 문제였다.
아직도 몇 시간에 한 번씩 여진 계속되고 있는 만큼 혹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물론 그 덕분에.
‘아 그냥 따라갈 걸 그랬나.’
버스 좌석과 비상용 침낭이라는 불편한 잠자리를 감수해야 하긴 했지만.
“하아.”
숨을 내쉬자 허연 입김이 새어나왔다.
젊었을 때엔 침낭 하나로 혹한기도 버티고 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 정도 추위에도 몸이 힘들었다.
그나마 이곳이 서울보다 남쪽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서울과 비슷한 위도이거나 혹은 산간 지방이었다면…….
‘몸살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았겠지.’
아무튼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밖을 보니 벌써 잠자리에서 일이나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여진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대피소에 있는 인원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늘도 제법 할 일이 제법 많을 테니까.
“휴우.”
한숨을 내쉬며 눕혀 놓았던 카시트를 바로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자.
우둑- 우둑-
뼈마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으윽.”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그러나 어제 하루 종일 충전을 안 해 놓았던 탓인지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전화기가 켜지지 않았다.
급한 일들은 대부분 정리하고 내려온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약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강당으로 가서 충전해야겠다.’
그런데 그때.
톡- 톡-
누군가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연아 또래의 여학생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학생이 입을 벙긋하며 뭐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버스 유리문 밖이라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지?’
혹시나 급한 일이 있나 싶어 주변을 돌아봤지만,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운전석으로 가 차 문의 개폐 스위치를 눌렀다.
푸식-
압력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버스의 문이 열렸다.
문 앞에 있던 여학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버스 밖으로 나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잤어?”
내 말을 들은 여학생이 수줍은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런데 아까 뭐라고 한 거야? 버스 안이어서 잘 안 들리더라.”
나는 슬쩍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아, 선생님. 아침 식사하시래요.”
여학생이 대피소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 별일은 아니구만.
대피소 쪽을 바라보니 동네 주민들이 집에서 가져온 자재들과 음식재료, 그리고 구호물품들로 식사를 차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수가 많고 주변에 식사를 해결할 만한 곳도 없는 터라,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모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식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까.
“고마워. 그나저나 학교에선 연락 왔어?”
내가 묻자.
“네. 일단은 계속 휴교래요. 아직 여진이 다 끝난 게 아니라서 위험하다고….”
여학생이 한숨을 포옥 내쉬며 대답한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예정대로였다면 바로 이틀 후가 수능 날이었을 테니, 그녀의 불안감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걱정 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여학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아침 먹고 공부 시작하자, 알았지?”
그러자 여학생이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제.
‘어르신. 학생들 좀 모아 주시겠어요?’
내가 노인에게 말했을 때.
안타까운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노인이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뒤.
‘하나, 둘, 셋…의외로 많네?’
내 앞에 10명 남짓한 수의 학생들이 모였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고3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법 많은 숫자의 학생들이었다.
아무래도 인근에 냉천 지방 산업단지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학생들 수가 어느 정도 되어야 수업을 진행할 분위기가 될 테고 그래야 불안한 학생들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진정될 테니까.
게다가 마침 대피소가 설치된 곳이 초등학교인지라.
‘깨끗하게만 사용하시면 됩니다.’
간단하게 양해를 구해 수업을 할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쌤, 의자가 너무 작은데요?’
초등학생들 용이라 의자가 너무 작다는 게 문제였다.
‘도대체 일체형 책걸상은 누가 만든 거야.’
하는 수 없이 전쟁기 학교에서처럼 다들 담요를 깔고 바닥에 앉아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분명 낯설고 불편할 환경일 텐데도 학생들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아무래도 대피소 한 구석에서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야, 약간 불편하더라도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안이 좀 가라앉을 테니까.’
그래도 다행히 다들 수능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참이라 수능에 대한 학습은 끝내 놓은 상태였다.
때문에 나는 이번 수능에 나올 만한 지문들에 대한 내용과 주의해야 할 문제 유형을 강의하고. 내심 불안해하고 있을 학생들의 멘탈을 케어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이럴 때는 오글거리는 것도 효과가 좋지.’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수능이 연기되기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음을 일깨워,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것이었다.
그래야 떠나간 후에도 학생들의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 모든 강의는.
[이용자1 : 어 준영쌤! 이 시간에 왠일임요?] [이용자5 : 오잉? 그런데 배경이 이상한데? 아기자기한게 꼭 초등학교 교실 같아. 준영 쌤 컨셉 바꾸셨나?] [이용자20 : ㅋㅋㅋ 컨셉이 아니라 레알루다가 초등학교 같은데? 뭐지?]저격 방송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전국에 계시는 저격 방송 시청자 여러분 저는 오늘 경주시 남단 방어리에 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방어리에만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되도록이면 많은 학생들의 멘탈을 케어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피소에서도 휴대폰은 볼 테니까.’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용자40 : ㅠ_ㅠ 수능 미뤄져서 고민이 많았는데 준영쌤 방송을 보니 좀 위로가 되네요] [이용자5667 : 저도 지금 경주 시내 대피소 와 있는데…흑흑 방송보고 멘탈 챙기고 있습니당] [이용자331 : 방어리면 저희 동네 바로 옆인데…혹시 저도 가도 될까요? 휴교 때문에 갈 곳이 없어요]아니 오히려 예상보다 더 효과가 좋은 것 같았다.
밤늦은 시간에 시작한 깜짝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내 방송을 보고, 채팅을 남겼다.
그렇게 잠시 내가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아, 선생님. 선생님 주무시는 사이에 다른 자원 봉사자 분들 좀 오셨어요.”
앞서 걷던 여학생이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음, 약간 뜻밖의 이야기였다. 방어리처럼 애매하게 외진 곳 같은 경우 지원의 손길이 그렇게 빨리 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뭐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대응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했으니.
그런데.
“그리고 그분들 중에…아, 아니다 어서 가요!”
응?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배시시 웃는 여학생의 모습이 뭔가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굳이 물어볼 만한 것이 아니기에,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여학생의 뒤를 따라갈 뿐이다.
그러자 곧 초등학교 강당 앞 만들어진 간의 식당의 모습과 그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걸 보니 아침은 소고기 뭇국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김준영 선생님.”
등 뒤에서 폭풍한설 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지은 죄가 없는 데도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여기서 들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돌아보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은솔이 손에 식칼을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부재중 통화 21통] [문자 65] [카톡 95]꺼져 있던 전화기를 충전하며 전원을 살리자, 못 받은 연락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중 제일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은솔 : 선생님. 결국 수능 연기라고 하네요. (。•́︿•̀。)a] 20 : 23 [은솔 : 혹시 오늘 학원에 안 오시나요? 학원에 안 계셔서 (。ŏ_ŏ。)] 21 : 45 [은솔 : 지성 선생님께 들었는데…선생님 혹시 경주 내려가셨어요?] 22 : 59 [은솔 : 선생님…] 23 : 11.
.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 바로 은솔이었다.
“선생님. 말씀이라도 좀 해 주고 가시지…휴, 위험하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제가 지성 선생님한테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은솔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파를 다지며 말했다.
그녀의 손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파아란 파가 뎅겅뎅겅 잘려나갔다.
꿀꺽-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죄송해요. 어제 충전한다는 걸 깜빡해서….”
은솔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내뱉었다.
본의 아니게 무참하게 연락을 씹어 버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시고 오셨어요?”
그러자 은솔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 어제 밤에 저격 방송 하시는 거 봤어요…그런데 마침 주말이기도 하겠다. 내려오시기 전에 고3 학생들 하루 정도는 쉬게 하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내려온 거예요.”
아, 보아하니 그녀도 어제 저격방송을 본 것 같았다. 어쩐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내려왔었는데 용케 알고 찾아왔다 했다.
“…그건 그렇고 언제 올라가실 생각이세요? 요즘에 일 때문에 바쁘시던 것 아니었나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의 말처럼 요즘이 한창 바쁜 시기이기는 했다. TK측과의 인강 채널 런칭이 결정된 만큼, 강사들 교육, 교재 출판, 마케팅 협의, 요튜브 관계자와의 만남 등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선생님 애들 다 모였어요! 빨리 오세요!”
나를 바라보며 밝게 웃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떠나 버린다면, 학생들은 또다시 강당 구석에 모여 앉아 멍한 표정으로 수능을 준비해야 할 테니까.
나는 학생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은솔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네요. 적어도 여기 일이 마무리 되지 전에는 올라가기가 좀….”
그러자.
“…역시. 일단 그럼 먼저 가 계세요. 저도 정리하고 바로 뒤따라 갈 테니까.”
은솔이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은솔이 은은한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수능에 국어만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사실 저도 같이 도와 드리려고 내려 온 거예요. 선생님이 하시는 일.”
그리곤 지금까지의 속도는 워밍업에 불과했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음식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니 왜?”
내가 묻자.
은솔이 살짝 부끄러운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일단 가르치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칼질에 집중했다.
“…….”
순간, 심장어림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재료 손질에 집중하는 듯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교실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런데 그때.
덥썩-
“저기! 잠시 만요!”
갑자기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헥헥, 김준영 선생님 맞으시죠?”
내 팔을 꼭 잡은 채,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멀리서부터 내가 있는 곳까지 뛰어온 듯한 모습이었다.
혹시나 아는 얼굴인기 싶어 자세히 그의 얼굴을 확인해 봤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음, 하지만 내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온 것을 보니 분명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네. 맞는데 누구시죠?”
내가 의아한 어조로 묻자.
“아 저는….”
가까스로 숨을 바르게 한 그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고려일보 사회부 기자 이한영]국내 굴지의 대형 신문사.
빅3 중 하나.
고려일보의 사명이 박혀 있는 명함이었다.
내가 명함을 확인하는 것을 본 이한영이 내게 말했다.
“김 선생…아니 김 대표님. 혹시 지금 인터뷰 가능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