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36
136
136화 앞마당 멀티 (1)
청주 휴게소에서 들러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이제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버스의 운전대를 잡았다.
아무래도 은솔에게만 운전을 맡겨 두기엔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거 은근히 긴장되는데?’
나름 운전에 자신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운전대를 잡자 새삼 긴장이 됐다.
방금 전까지 은솔이 능숙한 대형 운전 실력을 선보였던 만큼, 그 이상의 실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내리눌렀다.
그러나.
‘휴.’
긴장한 채로 운전을 했다가는 실수라도 낼 수 있느니 만큼 긴장은 금물이었다.
대형 차량의 무서운 점은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만큼, 언제까지 긴장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몸 좀 풀어야겠다.’
나는 슬쩍 어깨를 흔들어 몸을 이완시킨 뒤,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부르릉-
엔진이 소리를 뱉으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오늘따라 운전이 잘 되는데?’
아까 긴장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운전이 잘 되는 날이었다. 핸들을 돌릴 때나 엑셀과 클러치, 스틱을 움직일 때마다 한 번의 막힘도 없이 착착 손에 감기고, 차는 차대로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내 말을 들었다.
‘좋았어. 이 정도라면 은솔 쌤한테도 안 밀리겠는데?’
나는 슬며시 웃으면서 은솔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은솔이 심각한 표정으로 버스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응?’
분명 아까 문경을 지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밝게 웃고 있던 은솔이었기에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가 약간 걱정스러웠다.
‘아까 휴게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지만 분명 아까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를 제외하곤 계속 같이 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그동안 같이 보내 왔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약간 걱정이 되었다.
생각 같아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일이라면 대답하기 곤란해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잠시 고민하던 그때.
“선생님.”
은솔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좀 이상하다.
그녀는 마치…….
‘뭐지?’
군대 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왜 그러시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은솔이 약간 주저주저하더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혹시…서울 올라가셔서 노량진이나 대치동 쪽에 학원 알아보실 건가요?”
음, 보아하니 아까 휴게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누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는 것 같다.
“네. 일단은요. 아무래도 그쪽이 제일 최전선이니 빨리 자리를 잡으려면 그곳으로 가야겠죠.”
어차피 그녀에게 숨길 만한 일도 아니었기에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자.
“차라리…지금 있는 소라게 학원을 확장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무래도…노량진이나 대치동으로 바로 가는 건 좀….”
그녀가 예의 그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뭔가 했더니…….
이쯤 되니 그녀가 아까 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대치동은 너무 갑작스럽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너무 갑자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들어가려는 그 시장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학원 강사라면 은솔처럼 반응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대치동.
우리나라 재개발 아파트의 신화인 은마 아파트가 있는 곳이자.
소위 명문고로 불리는 J고, K고, W고, C대부고, D대부고, Y고, J고, J여고, K여고, S여고 등 일명 강남 8학군 명문고들이 모여 있는 곳.
그리고 전국에서 학원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노량진과 수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수험생들의 피와 땀 그리고 희망이 서려 있는 땅이다.
뭐 노량진이야 내가 작년에 재수학원 강의를 하면서 그나마 경험해 보긴 했지만…사실 대치동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으니만큼, 그녀가 지금처럼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이곳은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강사들이 한 번쯤 꿈꾸는 목표임과 동시에. 먹고 먹히는 싸움이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세계.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한 온갖 계책들이 오고가는 전쟁터였으니까.
“제가 예전에 그쪽에 출강했었는데…학원 경영이라면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거긴…약간 좀 특이하거든요.”
은솔의 말을 들으니 예전에 그곳에 처음 갔었던 때가 생각났다.
아마 학원 일을 막 시작했을 때쯤, 강사하면 한 번쯤 가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무작정 대치동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본 대치동의 모습은 정말 특이했다.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이라곤 모두 다 학원. 학원. 학원. 학원. 학원.
‘설마 이런 곳에도 학원이?’ 싶은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학원 간판을 보다 보니 나중엔 정말.
‘질린다, 질려.’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거기다 자기 몸보다 더 큰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오가는 학생들의 모습과 초조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약간 소름이 끼쳤다.
왜냐하면.
‘입시! 오로지 입시뿐! 다른 건 배울 필요 없어!’
그 풍경이 말하는 바가 제법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노량진이 우리나라의 취업 시장의 모순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이라면, 대치동은 우리나라의 과열된 교육열과 학벌 만능 주의를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대치동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그리고 생일도 없었다.
오로지 공부. 공부. 공부.
명문대를 향한 전력질주가 끝나기 전까진, 학부모가 만들어준 마라톤 트랙을 끝까지 다 완주하기 전까진 그들에겐 자유란 먼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에이, 어머님. 초등 150, 중등 180. 고등 반은 적어도 300 정도는 예상하셔야죠. 네? 흐음, 과외요? 그거야…강사 나름 아니겠어요?’
돈이 됐다.
때문에 실력만 있다면 그곳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강사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31살 대치동 수학 강사, 강남 한복판 320억대 빌딩 매입!] [연 100억 수입,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스타강사의 세계’]꿈을 현실로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아무렴 자기 자식만 좋은 대학에 보내 준다면 과부 땡빚을 내어서라도 자식을 가르치려는 게 바로 우리나라 부모들인 만큼. 그 부모들의 최종 진화 형태인 대치동 부모들은 마치 자식의 성적에 목숨을 건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움직였다.
오죽했으면 예의 그 스타 강사가 하나가 인터넷 강의를 런칭하려고 했을 때.
‘인터넷 강의 반대! 만점자가 많아지면 우리 애 대학 못가잖아! 차라리 우리 애 학원비를 더 올려!’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이 통했을까.
때문에 나도 이 사업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동안 대치동 학원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서 실제 강의를 한다거나 아니면 강의를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내가하려는 것은 단순한 강사 자리가 아닌, ‘소라게’라는 이름을 가진 오프라인 학원의 개원.
그러니 어지간한 준비를 하고 뛰어드는 것이 아닌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니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죠.”
나는 결정을 내렸다. 바로 대치동 그리고 노량진까지 단번에 진출하기로.
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자, 은솔이 엷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조금 더 준비를 하시고 들어가시는 게…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러나.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그녀의 제안처럼 천천히 돌다리를 두드려보며 학원을 개원하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때문에 나는 그 방법 대신 보다 과감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배짱 멀티’
어렸을 적 나는 ‘별들의 전쟁’이라는 전략 시뮬레이션에 미쳐 있었다.
그 게임은 서로 다른 종족을 골라 맵에 있는 자원을 채취해 상대방을 멸절시키는 게임으로, 게임의 승패는 대부분 자원을 얼마나 많이 채취, 소모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었다.
때문에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원 포인트에 확장을 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게임에서는 이것을 ‘멀티’라고 했다.
그리고 이 멀티를 하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바로 방어시설을 철저하게 세우고 난 뒤 확장을 하는 방법과 과감하게 확장을 먼저 한 뒤 나중에 상황에 맞춰 방어 시설을 올리는 방법.
두 방법 모두 각각 장단점이 뚜렷했지만. 그 당시 내 마음에 드는 플레이를 보여 주는 쪽은 단연 후자였다.
왜냐하면.
‘그쪽이 더 높은 승률을 보여 주었으니까.’
비록 후자의 방법이 멀티의 초반 방어가 위태롭다는 단점 있긴 했지만, 플레이어의 전략, 전술적 능력만 받쳐 준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도 없었다.
그러니 마치 ‘별들의 전쟁’에서처럼 학원의 확장 또한 확장 당사자의 전술적 능력과 전략적 시야만 받쳐 준다면, 굳이 천천히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겐…….
‘USB가 있지.’
세상 그 무엇보다 더 뛰어난 전략, 전술적 아이템이 있었다. 그것이 내 손 안에 있는 한 멀티는 과감할수록 좋았다.
그렇게 잠시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은솔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노량진이랑 대치동에 학원을 개원하시려면 정말 자금이 많이 들어갈 것 거예요. 아마 소라게 학원만 한 곳으로 알아보신다고 하더라도 100억 원은 족히 있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자금적인 문제가 크긴 했으니까.
내가 개원하려는 학원이 동네 보습학원처럼 작은 규모의 학원이 아닌 만큼 초기 투자 금액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하긴 돈이 많이 들긴 하지.’
현재 내가 가진 금액은 약 50억 원 정도. 아무리 내가 최대한 은행 융자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두 군데에서 학원을 동시에 개원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꼭 제 돈만 가지고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돈만을 가지고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내게 자본을 투자해 줄 사람만 있다면, 두 군데 모두 학원을 개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니까.
* * *
부릉-
오랜만에 듣는 아우디 R8 V10 RWS의 배기음.
잔 떨림과 함께 순식간에 치고 오르는 속도.
버스를 타고 올라올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시원한 주행에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차를 탄 지도 벌써 2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라게 학원을 처음 운영했을 산 차.
그땐 2억 가까이 되는 차량의 가격이 무척 부담스러웠었는데,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을 정도에 가격에 불과했다.
‘뭐 그렇다고 바꿀 생각은 없지만.’
아까.
‘꼭 제 돈만 가지고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은솔과 대화가 끝날 때쯤 우리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은 3시 30분. 약속시간까지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을 때였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약속 장소가 하필 서울 중심부 쪽이었기 때문에, 크고 둔중한 버스를 타고 가서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은솔을 학원에 내려 준 뒤, 바로 학원에 세워둔 내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 편이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리고 다행히…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차. 사람들의 시선과 스쳐 지나가는 주변의 풍경. 그것들을 거슬러 올라,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끼익-
나는 멈춘 뒤 천천히 오늘의 약속 장소를 바라보았다.
[호텔 백제]언덕 중턱에 자리한 고급스러운 호텔이 보였다.
잠시 뒤.
내가 호텔 안 카페로 들어서자.
“김 대표님. 나오신 기사는 잘 봤습니다. 정말 좋은 일을 하셨더라고요.”
요튜브 코리아 콘텐츠 관리부 총괄 매니저 장훈이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처음 뵙겠습니다. 요튜브 코리아 전략 투자부의 민경훈이라고 합니다.”
그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악수했다. 그리곤 자리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시간도 많지 않으니 바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할까요? 식사는 그 다음에 하도록 하시죠. 어떠신가요?”
장훈이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군더더기 없는 미팅. 그것이라면 나도 바라는 바였다.
왜냐하면 오늘의 약속은 바로 앞으로의 확장.
그리고 그것을 위한 투자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으니까.
내가 빠른 시일 내에 확장을 하고 싶은 만큼, 허례허식으로 그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좋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 대표님의 제안은 저희 측에서 면밀하게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그의 입에 집중했다.
“투자…승인이 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