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38
138
138화 D-DAY
“다들 준비 되셨죠?”
대치동 스타 강사 출신으로 불과 10년 만에 원생 500명 규모의 대형 학원인 ‘대마(大馬)학원’을 만들어 낸, 대치동의 살아 있는 전설 이경영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예. 원장님 준비 다 됐습니다.”
대마학원의 강사들이 딱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바로 1년 중 가장 긴 하루. 강사들의 기분이 하늘과 땅을 오가는 날인…수능 날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이 끝나고 나면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몇 명은 사라지고, 또 몇 명은 그 사라진 자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것이었다.
때문에 근 서른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바짝 긴장한 상태로 이경영을 바라보며, 곧 다가올 폭풍을 준비했다.
강사들의 눈빛을 본 이경영이 무거운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재작년이 지랄 맞았던 만큼 올해는…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평균 1등급이 꼭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다들 알고 계시죠?”
이경영이 말하자.
꿀꺽-
강사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이경영을 바라보았다.
이경영이 존대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 내용은 금방이라도 심장을 찌를 듯 날카로웠으니까.
사실 대치동에서 500명 이상의 대형학원을 만들어 냈다는 말은 곧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믿음을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벌써 몇 해째 정신 나간 난이도 수능 때문에 그동안 쌓아 왔던 학부모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었다.
‘원장님! 원장님만 믿으라고 하셨잖아요! 서율대 가능하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어떻게 하실 거예요!’
벌써 2년째, 평년 같았으면 능히 1등급을 받았을 만한 학생들도, 미친 난이도의 수능에 휩쓸려 평소보다 1~2등급 정도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데다가.
[올 수능, 지난해 기조 유지하도록…출제 높은 난이도 예상돼!] [9월 난이도 실제 수능에도 이어질까…영수 난이도 올라갈 듯] [수능 난이도, 섣부른 판단은 금물!]신문들이 이때다 하고 부정적인 기사들을 쏟아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학원 입장에서 받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나마.
‘에휴, 저희 학원은 이번에 완전 나가리예요. 아니 해마다 문제들이 점점 어려워지니…이러다가는 진짜 학원 문 닫겠다니까요.’
대치동에 있는 다른 학원들도 대마학원과 똑같이 갈피를 못 잡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악몽 같았겠지.’
그러니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평균 1등급을 달성해야만 했다. 1~2년은 ‘평가원의 난이도 조절이 실패했다.’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3년 연속 수능 대비에 실패한다면 이상 버틸 수 없을게 분명했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되면 학원비를 좀 내려야 하려나….’
학원비를 떨어뜨린다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각했을까?
평소였다면 학원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었다.
‘학원비라….’
학원비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소라게. 그 썩을 것들 때문에 사람들 눈만 높아졌어.’
사실 처음 소라게 아카데미라는 인터넷 강의 채널이 생긴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하루 이틀 버티다가 사라지겠지 뭐.’
이경영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학원이 무슨 자원 봉사 단체도 아니고 무료로 강의를 제공해선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음…죄송한데…저 그만 둘게요.’
‘아니 갑자기 왜?’
‘그게…요즘 인강 듣는 애들 성적이…올라가서…저도….’
‘…누구 인강인데?’
‘소라게 아카데미 인강이요.’
그의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금방 사라지기는커녕, 기존에 있던 인강 회사들의 파이를 차지하고 이젠 자신의 학원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게다가 요즘.
‘원장님. 그 김준영인가 하는 사람 있잖습니까? 그 사람…저기 은마 아파트 쪽에서 보이던데요?’
대치동 거리에서 김준영을 보았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김준영이 강사 자리를 알아보는 것은 아닐 테니, 아무래도 실강 학원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 것 같았다.
‘설마….’
위기감이 들었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상도덕도 없는 것들.’
그러니 이번 시험을 압도적인 격차를 벌려 놔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다가 쪼그라든 인강 업체들처럼 자신의 자리도 쪼그라들 테니까.
때문에 평년보다 더 오랫동안 학생들을 잡아 두고 강사들을 독촉. 강사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수능을 대비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출제된 수능 문제를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시간은 10시 55분.
조금만 있으면 특수응시대상자 중 맹인 수험생들의 언어영역 시험이 끝나고 시험지가 배포될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학생들이나 섭외한 사람들을 직접 시험장에 넣어서 문제를 복원해 오게 하겠지만.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바로바로 공개가 되는 덕분에 손쉬웠다.
‘물론 그만큼 차별성은 사라졌지만.’
그러니 요즘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수능 시험지를 분석해 배포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수험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우리는 전문적인 집단이다라는 걸 어필할 수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좀 쉬워야 할 텐데.’
그렇게 이경영이 수능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앗! 원장님 문제 떴습니다! 떴어요!”
강사들 중 한 명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기다리던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인쇄해 빨리!”
이경영의 지시에 사람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잉-
교무실 한 쪽에 있는 복합기가 돌아가고 곧 1교시 수능 문제지가 인쇄되었다.
“얼른 가져와 봐요!”
이경영이 소리쳤다. 1교시 시험은 언어영역. 그 해 수능 난이도를 잴 수 있는 척도인 만큼 서둘러 파악해야만 했다.
잠시 뒤.
“…평가원 이 놈들이 또.”
시험지를 쥔 이경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사들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 몫의 시험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들도 곧 이경영이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이런 짓을….”
분명 작년과 재작년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높은 난이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몇 해 동안 지속적으로 지탄을 받아 온 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킬러 지문들….’
수능 1등급을 위해서 꼭 맞아야만 하는 킬러 지문들이…사람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쳤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언어 시험에서는 그 어떤 기대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이건 솔직히 좀 너무했다.
‘가시리, 동동, 한시, 비문학지문 복합문제…이거 실화냐?’
우선 전체적인 구성이 화작-문법-비문학-문학의 일반적인 수능 언어 출제 구성을 따르지 않고 있는데다가, 국어 문법에서 지문+문제 형태 출제된 것과 독서+문학 복합 출제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중 가장 압권은.
[…비트겐슈타인이 1918년 쓴 는 ‘빈학파’의 논리실증주의를 비롯하여 20세기 현대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많은 철학적 논란들이 언어를 애매하게 사용하여 발생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언어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명료화 하는 것…]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에 대한 지문과 문제들이었다.
‘아니 무슨 수능에 논리철학논고가 나와!’
그렇게 이경영이 콧김을 내쉬며 문제들을 훑어보는 그때.
“원장님…죄송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정말 생각도….”
고3 국어 강사가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수능 대비를 할 때 해당 지문을 완전히 놓쳐 버린 것 같았다.
이경영은 잠시 국어 강사를 바라보다가 간신히 숨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일단 추이를 좀 지켜봅시다.”
만약 별거 아닌 지문이 나왔는데 놓친 것이었다면 당장에라도 큰 소리가 터져 나왔을 것이었지만…….
사실 자신이라도 설마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지문이었기 때문에, 강사들 앞에서 다른 강사를 대놓고 지탄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런데…원장님 큰일 아닙니까? 이번 지문이랑 문제 유형 못 잡았다고 학부모들이 난리를….”
이경영을 바라보던 강사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강사들이 슬쩍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았으니까.
‘낄낄빠빠 모르나? 아오!’
하지만 의외로…….
“괜찮아요.”
이경영의 표정이 괜찮아 보였다.
왜냐하면 그에겐…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난이도라면 다른 학원에서도 대비하지 못했을 테니까 뭐…그나마 킬러 지문들 제외하곤 난이도가 낮으니 그걸로 어필해 봅시다.”
그러자 사람들의 얼굴이 살짝 풀린다.
그랬다.
‘나만 아니면 된다!’
적어도 나만 틀린 것이 아니라면 괜찮다. 그렇게 되면 할 말이 있었으니까.
‘평가원 놈들 욕으로 때워야지 뭐.’
하지만 그는 미처 몰랐다. 예상이라는 것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믿음을 깨는 존재를 그가 방금 전 떠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 * *
[오늘 수능 봤는데…님들 오늘 한강 수온 몇 도임?]눈에 띄는 게시글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게시글을 터치하자.
[하 슈바 3년 동안 한 달에 300씩 학원에 꼴아 박으면서 공부했는데…이번에 비트겐슈타인 그 새끼 때문에 다 망했음. 아, 엄빠한테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하냐…] [2019-11-29 10:51:59 조회수22 추천123 반대11]이번 수능에 대한 불만과 피로를 담고 있는 글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댓글12 : 인정. 비트겐슈타인 이름 여섯 자 보는 순간 멘붕했자너…] [댓글33 : ㅇㅇ 차라리 중세국어 지문이 나오는 게 낫지, 철학 지문은 진짜 너무 힘들더라…] [댓글41 : 이쯤 되면 평가원 놈들 욕먹는 거 즐기는 거 아니야?]게시물을 작성한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한 댓글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다들 이번 시험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의견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댓글61 : ㅋㅋㅋ그래도 다들 어려웠으면 별 상관없는 거 아님? 내 친구 중에 대치동 1타 강의 듣는 놈 있는데 그놈도 틀렸거든]그리고 그 밑으로 그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문과 문제가 어렵다는 말은 그만큼 변별력이 확실하다는 말. 문제 자체가 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만큼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물론.
[댓글67 : ㄴㄴ 꼭 그렇지도 않음. 이번에 수능 특강 중에 비트겐슈타인 거로 한 곳이 있었거든]그건 어디까지나 예외가 없을 경우에만 통용되는 사실이지만.
[댓글69 : 으잉? 그걸 짚은 곳이 있어? 어딘데?] [댓글71 : 아니 제법 유명한 덴데? 정말 몰라?] [댓글72 : 모르니까 물어보지…나 학원 실강만 주구장창 들었는데 비트겐슈타인에 ‘비’자도 못 들어봤다…] [댓글76 : ㅠㅠ 불쌍…소라게 수능 특강에서 나왔었는데 한 번이라도 좀 보지…]보아하니 소라게 아카데미의 강의를 들었던 수험생인 것 같았다.
나는 슬쩍 웃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요즘 사업적으로 일이 많아지면서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일들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신경을 쓰고 또 어느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는 잡아 줄 순 있지.’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예전보다 강의를 하는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그릴 시간 정도는 있었으니까.
‘이번 수능 특강에 고려가요 비중 높여 주시고요. 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도 한 번씩들 정리해 주세요.’
범위와 유형을 한정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킬링포인트’였다.
뭐 그 덕분에.
‘아니…원장님 어떻게 아신 거예요?’
‘허, 정말 신기 있으신 거 아니야?’
‘원장님…아니 대표님…견마의 충성을….’
기존 소라게 학원 강사들과 인강 강사들의 반응이 좀 뜨거웠지만.
그래도 앞으로를 생각하면 긍정적인 현상이었다.
나에 대한 강사들의 충성도가 높아질수록 내가 가진 학원의 장악력 또한 공고해질 테니까.
나는 슬쩍 웃으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이미 USB를 통해 어떤 문제가 나올 지는 다 알고 있었지만, 실제 학생들이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법인만큼, 입시 사이트에서 수험생들의 반응을 살펴보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곧.
쾅-
“선생님!”
수능을 본 학생들이 학원으로 올 시간이었으니까.
교무실 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박수한과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김자영.
그리고 같은 시험장에서 시험을 본 올해 고3 학생들이 교무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 8시 40분에서 오후 17시 40분까지. 지난 12년간의 세월을 건 한판 승부를 마치고 온 용사들.
그들의 두 눈에 담겨 있는 빛을 보니 그 승패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는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듯. 입을 꾹 다물 고 있는 이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그러자.
“…흐윽.”
감정이 복받쳐 오른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학생들과 밝게 웃는 학생들. 그들 모두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안아 주며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학원을 개원하고 맞는 세 번째 수능 그리고 소라게 아카데미를 만들고 나서는 처음 맞는 수능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대치동을 향한 진격.
물론 그 길 옆에는.
[TK 서민영 : 김 대표님. 그럼 계획대로 내일 런칭하겠습니다.] [요튜브 장훈 : 대표님. 광고주들과 조율 끝났습니다. 개원하시는 타이밍에 맞춰 바로 시작할 예정입니다.]든든한 지원군들 함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