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45
145
145화 죄와 벌 (3)
“…경찰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파랗게 질린 황정현과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갑자기 교무실로 찾아온 불청객. 자신들의 신분을 경찰이라 밝힌 이인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하죠.”
* * *
잠시 뒤 원장실.
나는 두 사람에게 차를 내려 주며 말했다.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두 사람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죠.”
그리곤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내게 내민다.
[경찰공무원증]소속, 계급, 생년월일이 적혀 있는 공무원증.
이것이 위조된 것이 아니라면 신분은 확실했다.
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 사람들이 왜 찾아왔는가겠지….’
뭐 예상가는 바가 없진 않다.
내가 올린 게시글이 온 인터넷을 뒤집어 놓은 마당이다.
대치동에서 막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는 나 역시도 나의 저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아까 저한테 협조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확하게 뭘 협조해 달라는 겁니까?”
내가 묻자 두 사람 중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입을 연다.
“학원 문제 때문에 조사할 게 좀 있어서요. 왜 요즘 시끄러운 일 있잖습니까.”
역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짐작대로 특별수사의 불똥이 나한테까지 튄 모양이었다.
‘하긴 소라게 학원도 대치동에 있는 대형학원들 중 하나니까.’
흠, 그래도 그 동안 잠잠하기에 수사 리스트에서 빠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수사의 폭이 넓고 깊은 것 같았다.
물론 오래된 종양을 제거하는 일이니만큼 나름 반길 만한 일이긴 했지만.
‘전화라도 하고 오던가.’
그렇다고 지금처럼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까지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학원이라는 곳은 이미지가 중요한 곳이니만큼, 경찰들이 오고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평판이 떨어질 수 있었으니까.
“원래 출석 요구는 서면이나 전화로 이뤄지지 않나요? 갑자기 이런 식으로 찾아오시는 건 좀 당황스럽네요.”
때문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만큼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아, 그건…일반적으로는 그렇죠. 그런데 아무래도 사회적인 관심이나 뭐 이런 게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전화나 서면으로 통보하는 건 시일이 좀 걸리고 또….”
나와 말을 주고받던 수사관이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지금 이 상황이 제법 실례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나마 미안한 줄은 아니 다행이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범인들 사정 봐 가면서 이 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모두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나이 든 수사관이 의뭉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범죄자에게는 인권이 없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가 슬쩍 웃더니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연다.
“자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서에 가서 하시죠. 굳이 여기서 이렇게 시간 낭비 하는 것보다 빨리빨리 처리하는 게 서로 좋지 않겠어요?”
말하는 폼을 보니 빨리 경찰서로 가서 일을 진행하겠다는 눈치였다. 흠…아무리 봐도 참고인 조사를 하겠다는 건 아닌 것 같고, 피의자 심문을 하겠다는 것 같은데…….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이 하자는 대로 움직이겠지만.
“글쎄요. 지금 바로 갈 필요는 없지 않나요?”
나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그들은 영장도 없으니까.
그러자.
“김준영씨. 지금 저희가 상당히 배려해 드리고 있는 겁니다.
나이 든 수사관이 얼굴을 굳히며 내게 말했다.
누가 들으면 내가 당치도 않은 핑계로 경찰서 출석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일 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기관에서 개인의 신체, 재산에 대한 체포, 구금, 압수, 수색을 하려면 반드시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영장을 가져오기 전에는 내가 경찰서에 출석할 의무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영장 가져오셨나요?”
내가 묻자.
“…….”
그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그렇지 체포영장이나 구인영장이 그렇게 쉽게 발부되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내가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주의 우려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이렇게 쉽게 영장이 발부될 리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수사 체계는 기본적으로 불구속수사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수사관들의 동행요청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내게 피해가 될 것은 없었다.
‘뭐 내가 출석 요구를 계속 거절하면 모르겠지만.’
물론 나도 영장이 나올 정도로 오래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일단 경찰 측에서 나를 피의자로 인지하고 있는 만큼 최대한 빨리 혐의를 벗는 것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무기도 없이 경찰 조사를 받을 순 없지.’
자칫 잘못하면 수사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는 만큼 확실한 대비가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인다면 일이 길어질 테니까.’
그리고 내게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확실한 대비책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수사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레 오후쯤엔 시간이 괜찮을 거 같은데…그때 제가 서로 찾아가도록 하죠. 어떠세요?”
그러자.
“음….”
수사관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을 예상해 보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로서도 계속 나와 승강이를 하느니 차라리 내가 말한 일정에 맞추는 게 나을 것이다.
만약 내가 피치 못할 이유로 출석을 미룬다면 답답해지는 것은 그들이었으니까.
‘특별수사가 언제까지 이뤄질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이든 수사관이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연다.
“휴, 그럼 알겠습니다. 그럼 그날 뵙도록 하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대비책을 준비하는 것뿐이지.’
* * *
며칠 뒤.
“김준영 씨. 이제부터 김준영 씨의 피의자 조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경찰서를 찾았다.
그러자 전에 나를 찾아왔던 수사관들 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쪽이 내 심문을 맡았다.
“제가 하는 질문에 진술을 거부하셔도 법적으로 불이익을 받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혹여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굳이 대답해 주시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아무래도 조사 전 묵비권 고지를 먼저 하려는 것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범인을 체포할 때 미란다 고지와 함께 하는 것으로 많이 나오지만 사실, 피의자 조사를 할 때 고지하는 것이 묵비권 고지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으니까 그 점 유념하시고요. 아, 혹시 변호사 필요하신가요?”
흐음, 변호사라…….
순간, 이형태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변호사 부르실 거면 지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피의자 심문 때에는 피의자가 직접 진술해야 하는 만큼, 법정에서보다 변호사의 비중이 작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심문 때 변호사가 필요했다.
일단 변호사가 피의자 심문 장소에 자리하고 있고 없고에 따라 조사관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질 뿐더러, 심문 중간 중간에 피의자가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것을 막거나, 상담을 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 마친 만큼, 굳이 이형태라는 카드를 꺼내 들 필요는 없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굳이 여러 사람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까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흐음, 알겠습니다. 대신 수사에 협조만 잘 해 주신다면 빨리 끝내고 보내드리겠습니다.”
수사관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뒤.
“이름.”
“김준영,”
“나이.”
“33살.”
“현 주거지.”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직업,”
“입시학원이랑 재수학원 원장.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 유학책임회사 소라게 대표.”
“…저…준영 씨 간단하게 대답해 주시죠.”
“소라게 입시학원 원장입니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 * *
‘이건 말도 안 돼!’
경력 10년차 베테랑 수사관 최현철은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사실 처음 김준영의 피의자 조사를 맡았을 때만 하더라도 최현철은 김준영의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소라게 학원 정도의 규모를 가진 학원 치고 털어서 먼지 않나오는 학원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강의에 TK채널, 노량진 대치동? 흐흐, 딱 털리기 쉬운 것들만 있네. 이번 일만 확실하게 처리하면 인사고과에 큰 플러스가 되겠구만.’
물론.
‘영장 가져오셨나요?’
약간의 굵은 가시가 있긴 했지만.
‘뭐 어디 드라마 같은 거 보고 한 말이겠지.’
때문에 김준영이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왔을 때. 그는 꿈에도 그리던 경위 진급이 그리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남은 것은 피의자 조사를 통해 그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더 물어보실 것 없나요?”
그 꿈은 금방 깨져 버렸다.
상대는 전혀 물렁물렁하지 않았다.
재벌가의 총수, 전직 고위 관료, 닳고 닳은 군인.
마치 수없이 많은 취조에 응해 본 베테랑을 보는 느낌이다.
“…….”
그가 피의자에게 범죄사실의 경위와 구체적인 내용 등을 물어볼 때마다.
‘김준영 씨, 대마학원 원장 이경영 씨와는 어떤 관계십니까?’
‘대마학원 원장님이요?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대치동에 있는 분이니까 오다가다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인사 한번 한 적 없는 사이니까요.’
‘그런가요? 흐음…저희가 입수한 증언에 따르면 두 분이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혀요.’
단호하게 대답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그럼 모월 모일 어디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아, 그때라면 강남에 있는 OO이라는 일식집에서 요튜브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을 땝니다. 이번에 TK에서 새로 런칭한 강의 채널에 대한 이야기를 좀….’
‘…그래요? 그럼 그 만남 이후에는 뭘 하셨죠?’
‘그 이후에는 TK텔레콤 사람들을 만나서 일정을 조율했죠. 그리고 일반적인 사업 이야기를….’
‘그럼 그 다음 주 주말에는 뭘 하셨는지?’
‘음, 그때가 경주-울산 지진이 났었을 땐가요? 그날 바로 버스를 몰고 경주 방어리로 내려가서 강의를….’
‘그 다음엔….’
‘그땐….’
.
.
그가 입을 열자마자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알리바이.
‘그럴 줄 알고 영수증을 미리 챙겨왔죠. 아 이건 같이 있던 분의 확인서와 서명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공증은 못 받아 왔네요.’
그리고 그 알리바이를 입증해 줄 수 있는 증거를 볼 때마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최현철은 입술을 질끈 물어뜯으며 김준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준영의 최현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 지 반듯한 자세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또 질문을 하자마자 알리바이랑 증거를 쏟아내겠지.’
최현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3시간이 지나가고 있었건만 건진 것이라곤…….
‘대마학원을 저격한 게 김준영 씨였다니….’
의외의 성과뿐이었다.
그 이외에 원래 건드려 보려했던 혐의들은 나오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이건 뭐 내 속을 읽는 것도 아니고.’
순간, 최현철은 오싹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마음을 읽는다면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미리 안다면 지금처럼 바로바로 답변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두려워졌다.
최현철이 팔뚝에 돋아 오른 소름을 쓸어내리며 김준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제 끝난 건가요?”
김준영이 가벼운 미소를 띠우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그렇게 장장 5시간에 걸친 피의자 조사가 끝난 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현철 수사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 그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놀랄 만한 변화였다.
5시간 전 조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너의 죄를 불어라!’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이…이젠 뭔가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내가 민원을 넣을까 봐 그러는 건가?’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공무원들에게 민원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으니까.
내가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많이 피곤하시죠?”
그가 어색한 표정으로 내게 다시 말을 건넸다.
뭐 나도 사람인 이상 5시간에 걸친 경찰 조사가 힘들긴 했다.
아무리 연강으로 단련된 몸이라고 해도, 경찰서라는 낯선 공간 피의자 심문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5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나마 어떤 질문이 나올지 다 알고 있었으니 이 정도지.’
그래도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것 치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모두다 USB 안에 있는 질문과 증거를 사전에 확인, 준비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슬쩍 웃으며 최 경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좋은 일 하시려다 그런 건데요 뭐.”
그러자 그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이렇게 흔쾌히 악수를 청해 올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하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악수는커녕 인상을 찌푸리며 한시라도 빨리 경찰서를 떠나고 싶었을 테니까.
‘자길 심문하던 사람이랑 웃으면서 마주보긴 힘들 테니.’
그러나 나는 그에게 악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니까.’
그렇게 나는 최 경사와 악수를 나눈 뒤 경찰서를 벗어났다.
그러자.
수서 경찰서 정문 밖으로 바로.
No Man’s Land.
무인지대.
주인 없는 땅으로 변한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떤 방법으로 이 땅을 요리하느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