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53
153
153화 조물주 위에 건물주 (2)
‘빌어먹을 왜 전화가 안 오는 거야?”
군도(群盜) 빌딩 3층의 소유주 박근용은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 봐도 휴대폰은 묵묵부답. 기다리던 전화는커녕 그 흔한 스팸메일 하나 날아오지 않았다.
“젠장, 분명 내일 오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내일이 그가 ‘알박기’를 시도한 소라게 학원의 확장 오픈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띠리리링- 띠리리링-
요란한 16비트 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서둘러 전화를 들어 번호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02-71XX-1826]전화번호부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이 비슷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다.
‘사무실 전화인가?’
박근용의 입가의 안도의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면 그렇지 지들이 버텨 봐야 얼마나 버티겠어. 더 버텨 봐야 안 그럼 지들 손해인데.’
하지만 그가 통화버튼을 누르자.
[안녕하세요 고객님. 호구은행에서 위탁 받아서 연락드린 김OO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순간,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빌어먹을 이러면 완전히 나가린데.’
아무래도 소라게 학원 측에서는 쉽게 이 밀당을 끝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휴….”
그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놈의 특별조사만 아니었어도….’
모든 것이 다 올해 초 벌어진 특별 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특별 조사만 아니었다면 지금 그가 이렇게 초조하게 소라게 학원의 전화를 기다릴 일도. 그리고 알박기를 시도했을 리도 없었을 테니까.
사실 특별조사가 시작되고 대마학원 원장이 잡혀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그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대마 학원 원장이야 내 그럴 줄 알았지. 사람이 얼굴이 딱 범죄자상이었다니까. 내 참. 그러게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지 쯧쯧.’
그간의 경험상 지금은 좀 소란스럽더라도 대마 학원 이외의 학원에는 그 불똥이 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젠 LSD학원 원장이 잡혀 들어갔고 오늘은 굴라그 학원이 폐업 들어갔어요. 그리고 들어보니 차라투스트라 학원도 슬슬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데….’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가 부동산에 들를 때마다 들리는 소문. 그리고 특별 조사 결과 나온 이름들이.
‘허허 이거 다들 아는 사람들이구먼. 가만 보자 이 사람은 골프 한 번 친 적 있고 이 사람은 저번에 술 한 잔 했었나?’
이번 특별조사가 그와 전혀 무관한 일이 아니란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왜냐하면.
‘응? 아니 이 양반이 여기 왜 있어!’
그가 임대를 내주고 있는 학원의 원장도 그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허…사람 일 모르는 거라더니….’
상황이 그렇게 되니 그가 임대를 준 학원이 흔들릴 것은 이미 기정사실.
건물주에겐 호환마마 보다 더 무섭다는 공실(空室) 사태가 목전에 도래해 버렸다.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때부터 그는 발이 닳도록 부동산을 들락날락거리며 또 다른 호구…아니 견실한 임차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거 한 사장. 임대료 안 밀리고 성실하게 낼만한 사람 없나?’
하지만.
‘그게…박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요즘 대치동 부동산 경기가 올 스탑이라서….’
대치동의 경기는 하루아침에 급전직하.
일주일 전만 해도 내놓기가 무섭게 나가던 매물이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꿈쩍도 안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학원 건물 3층에 자리한 박근용의 매물이 나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꼭 학원이 아니어도 돼. 그냥 임대료만 잘 내면 레스토랑이든 뭐든 괜찮다니까? 아니 한 사장 그 정도 능력 되잖아? 아니야?’
때문에 박근용도 많은 것을 양보하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매물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종이 들어오는 것을 꺼렸을 테지만.
‘일단 급한 불은 꺼야하니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만은 어떤 직종이 들어와도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겐 한데…그럼 임대료는 좀 내리셔야하는 거 알고 계시죠?’
아무래도 그것만으론 현 상황을 벗어나기 힘든 것 같았다.
‘허허 이거 선수끼리 왜 그래? 그런 건 그냥 사부작사부작 잘 처리하면 되는 거지.’
때문에 그는 평소처럼 은근슬쩍 그 문제를 처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중개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리 그러셔도 조금은 내려야 할 텐데요?’
마치 ‘밑장 빼기’ 하지 말라는 듯이.
‘좋아 그럼 내가 인심 써서 10% 깎아준다. 나도 큰 결심한 거야. 그러니까 한 사장 부탁해!’
상황이 이쯤 되자 박근용도 배짱을 부릴 수만은 없었다.
이대로 못하겠다 버티다가는 자신의 건물이 ‘공실’이 되어 버릴 지도 몰랐으니까.
‘내가 메르스 때나 조류독감 때도 안 내렸던 임대룐데 이 정도면 들어올 만하지.’
그리고 나서 이 정도 양보라면 정말 금방 임차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렇게나 했는데 왜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벌써 몇 달 째 그의 건물은 공실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다.
‘아니 요즘 같은 시기에 임대료를 다 받는 게 말이나 돼요? 뭐요 바닥 권리금? 아니 대치동 경기 안 좋은 걸 뻔히 아는데 무슨 바닥 권리금을 달라고 해? 됐어요. 차라리 다른데 알아보고 말지.’
그의 욕심 때문이었다.
‘허허 박 사장님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좀 내리시는 게…옆 건물은 한 30% 내려서 벌써 다 계약 됐어요.’
보다 못한 중개인이 박근용을 살살 달래 보았지만.
‘…절대 안 내려!’
박근용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임대료가 아까우면 장사를 할 생각을 말아야지! 아니 내가 없는 가격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세금내고 나면 남는 거 없는 사람들이야. 안 그래 한 사장?’
아니 오히려 10%정도 내리겠다던 임대료를 원래대로 돌려놔 버렸다.
‘어차피 이번 특별 조사만 끝나면 돼. 그때가 되면 내가 이기는 거야. 뭐 30%를 내렸다고? 하 나중에 가봐라 땅을 치고 후회하지.’
그러나.
‘아니 왜 특별 수사가 연장 되냐고!’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학원가의 문제에 특별수사 기간이 연장되면서 그의 꿈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내가 너무 오바 했나….’
그러던 중.
‘사장님 그 소식 들으셨어요?’
박근용은 중개인에게서 한 가지 흥미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소식?’
‘그 소라게 학원 있잖아요? 소문에는 거기 대표가 이번에….’
그 소식은 바로…소라게 학원의 대표가 이번에 제법 큰돈을 융통해 대치동 학원들을 대거 매입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거다.’
박근용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라게 학원이 학원을 매입한다라…그럼 높은 확률로 군도(群盜)에 컨택이 들어올게 분명해.’
건물 입지 면에서나 인테리어 면에서나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그럴 확률이 훨씬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다면.
‘이 기회에 뽕을 뺄 수 있다.’
그때부터 그는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중개인의 인맥을 통해 소라게 학원의 계약 진행 상황을 청취.
소라게 학원이 자신의 매물이 있는 건물 전체를 매입할 계획이란 것을 파악했다.
그 뒤.
‘그러니까 한 사장 나만 잘 도와주면 이번에 한몫 단단히 잡게 해 준다니까? 아니 내가 뭐 범죄 저지르자고 하는 거야? 그냥 조금 밀당을 하자는 거지 안 그래?’
중개인을 살살 꾀어 자신의 계획에 동참시켰다.
그리고 나서 소라게 학원 측에서 연락이 왔을 때.
‘아, 네? 어디요? 소라게? 아 거기 요즘 광고 봐서 잘 알아요. 그런데 갑자기 왜? 아 건물이요. 음…뭐 시세만 잘 쳐주신다면야 저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야죠. 네네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처음에는 지금 당장이라도 계약이 가능한 것처럼 부드럽게 전화를 받았다.
그리곤.
‘아…이거 어쩌죠? 제가 내일 급한 일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은데. 혹시 토요일은 안 될까요? 네? 대리인이요? 아이고 제가 그런 걸 좀 못 믿어서….’
시간을 질질 끌었다.
중개인을 통해 군도학원 3층을 제외한 다른 층의 계약이 거반 끝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결국.
‘박 사장님 다른 층은 다 도장 찍었답니다.’
기다리던 때가 도래하자.
‘아이고 이거 못 팔 거 같은데? 우리 아들이 이번에 사업을 좀 해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아비라고 있는 게 모르는 척 할 수도 없고. 이거 미안해요.’
순식간에 말을 바꿔 버렸다.
어차피 아쉬운 것은 소라게 학원일 테니까.
‘4층짜리 건물에서 3층이 빠지면 학원이 잘 돌아 가겠어? 분명 연락이 오겠지.’
그의 궁극적인 계획은 이대로 버티고 버텨 전 학원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임대 계약을 맺던가. 아니면 그 동안의 손실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받고 매물을 정리하던 가였다.
‘여기서 한 밑천 잡아서 빌딩 하나 올리는 거야.’
그런데?
“이것들이 미쳤나?”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벌써 내일이 소라게 학원의 동시 오픈일임에도 불구하고 소라게 학원 측에서는 가타부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니 이것들이 장사하기 싫은 건가?”
그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이번 일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박근용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결국.
“빌어먹을 좋아. 니들이 안 온다면 내가 간다.”
초조함을 버티지 못한 박근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다간 초조함 때문에 앉은 채로 죽어 버릴 같았기 때문이었다.
“기다려라 이놈들!”
간단하게 신색을 정리한 그는 한달음에 소라게 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꿀꺽-
막상 소라게 학원 앞에 다다른 순간.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발걸음이 호랑이를 눈앞에 둔 것처럼 우뚝 멈춰 섰다.
[소라게 학원 대치분원 제1관] [소라게 학원 대치분원 제2관] [소라게 학원 대치분원 제3관] [소라게 학원 대치분원 제4관].
.
사방을 가득 메운 소라게 학원의 간판들과.
‘…An immoral man is punished…중얼중얼.’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중얼중얼.’
‘…동양척식 주식회사의 설립은…중얼중얼.’
.
.
어마어마한 수의 학생들 그리고.
[소라게 학원 (용산1-2)] [소라게 학원 (동작1-2)] [소라게 학원 (금천1-1)].
.
그들을 실어 나르는 수많은 버스의 행렬을 보는 순간.
압도되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소라게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만 했지 실제로 소라게 학원에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던 터라, 이 정도인 줄을 몰랐었다.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대치동 빌딩 한 층도 제법 가치가 높은 것이었지만.
‘클라스가 다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렇게 위세에 짓눌려 물러섰다가는 정말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그에게는 아직.
‘군도(群盜)빌딩 3층’
협상의 키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그가 학원 건물이라는 인질을 꽉 잡고 있는 이상 유리한 것은 자신이었다.
순간 찌그러들었던 그의 심장이 다시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소라게 학원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이놈들아 그래도 아직까지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다! 내가 건물주의 위대함을 보여주마.”
그리곤 마치 술을 마신 듯 불콰해진 얼굴로 당당하게 걸음을 옮겨 나갔다.
하지만.
김준영 원장의 앞에 선 순간.
그동안 알박기, 밀당을 해오며 모진 악다구니를 썼던 박근용은 전신에 힘이 쫙 빠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네? 어디 건물 3층이요? 제가 거기에도 건물이 있었나요?”
김준영의 말을 듣는 순간.
‘아니 이게 뭔 소리야!’
달아올랐던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