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54
154
154화 조물주 위에 건물주 (3)
“…제가 거기에도 건물이 있었나요?”
내가 말을 마친 순간.
눈앞에 자리한 인물. 자신을 박근영이라 밝힌 사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전.
‘아니 그러니까 직원 말고 대표님 좀 만나 보고 싶다니까? 왜 계속 안 된다는 말만 하는 거야?’
‘휴, 방금 말씀 드렸다시피 지금 대표님이 자리에 안 계세요. 저한테 용건을 말씀해 주시면 나중에 연락드릴 테니까….’
학원 데스크에서 소란이 벌어진 것을 발견하고 그를 원장실로 데려왔을 때만 하더라도.
‘대표님, 그러니까 대표님 입장에서도 제가 가진 건물을 매입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1, 2, 3, 4층을 모두 다 써야 학원 운영도 원활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바로 계약 하시면 딱 지금 시세에 딱 20%만 더 받겠습니다.’
얼굴 가득 자신감이 차 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표정이구만.’
그의 표정을 보니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꿈에도 생각도 못했었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적어도 이름 정도는 기억할 거라 생각했겠지.’
그동안 내가 대치동에서 매입한 대형학원 건물 수는 총 7채.
그 외에 자잘한 매물까지 다 합치면 십 수 개를 넘나드는 건물을 매입한 상태였다.
본래대로라면 140억 원 정도의 자금으로는 매입하기 힘든 수의 매물들이었지만.
‘금리가 그렇게 저렴할 줄 몰랐지.’
낮은 금리와 낮은 부동산 가격. 그것을 보는 순간 지름신이 강림해 버렸다.
그러니 박근영이 자랑스레 ‘군도(群盜) 빌딩 3층’이라고 말해 봤자. 나에겐 많고 많은 빌딩 중에 하나일 뿐. 굳이 신경 써서 관리를 해야 하는 곳이 아니었다.
‘어차피 매매야 실무진들이 다 처리했으니까.’
하지만 천천히 기억을 더듬다 보니 박근영이 말한 빌딩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흐음….’
얼마 전 소라게 프랜차이즈 사업이 한창 본궤도에 올랐을 무렵, 본격적으로 학원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던 때.
‘사실 그 층만 소유주가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전 학원 같은 경우에는 그 층만 임대해서 사용한 모양이던데…이번에는 임대도 매매도 못해 주겠다고 버텨서….’
이아린의 입에서 나왔던 건물의 이름이 박근영의 말한 건물의 이름과 비슷했었던 것이 떠올랐으니까.
‘이제 보니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만.’
나는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이제 기억나네요. 소라게 학원 5관. 그러니까 거기가 아마 테르모필레 학원이 있던 곳이죠? 왜 그 스파르타식 강의로 유명하던?”
그러자.
“그…그렇죠. 역시 기억하시는 군요! 하하 아무렴 그 큰 건물을 잊어버리긴 힘들죠. 아무래도 요즘 일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가까스로 신색을 회복한 박근영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는다.
방금 내 앞에서 20%를 외치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그의 얼굴에선 비 오듯 땀이 솟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욕심이 가득한 것을 보니 아직까지 매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한데, 제가 직원들에게 듣기로 분명 매매를 거부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러시는 거죠?”
나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 생각이 없었지만.
사실 그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내게 매매의사를 표명하기만 했더라면 나도 제법 긍정적으로 그 제안을 받아 들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 대치동의 부동산 시세 자체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만큼, 설혹 20%를 더 쳐 준다고 하더라도 매매가가 떨어지기 전 가격 매입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휴 그래서 지금도 매일 매매하실 의향이 있으시냐고 물어보고 있긴 한데…아무래도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저번에 아이린의 입에서 불만이 새어나왔을 때.
‘저쪽에서 어떤 연락이 와도 절대 받지 마.’
나는 그에 대한 처분을 이미 내려놓았다. 나는 내게 협잡을 시도한 사람의 제안까지 웃으며 받아들일 정도로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봐주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물어뜯으려 하겠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번에 내가 매입한 건물의 수는 대형건물만 따져 총 7채. 하지만 소유주의 수는 그 곱절이 넘었다.
그리고 그들 중 내 눈앞에 있는 박근영처럼 어이없는 협잡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중 협잡질에 성공한 사람은?
제로(0).
그중 단 한 사람도 내게 시세 이상의 금액으로 건물을 팔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협잡에 대응한 방식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버티기 힘든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택한 대응 방법은 간단했다.
그들이 알박기를 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획책하든 그저.
‘존버 하는 것.’
뭐 내게 ‘눈탱이’를 씌우려던 사람들이야 내가 먼저 애가 달아 어떻게든 매물을 매입할 것이라 생각한 듯싶었지만…
아니 내가 왜?
내가 대치동에 처음 발을 디딘 것도 아니고 이미 대치분원이라는 견실한 전진기지가 있는 이상 굳이 바가지를 써가면서까지 건물을 매입할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내게 필요한 것은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때문에 나는 내게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사람들과는 컨택을 일절 거부.
그 주변 매물들을 시세대로 매입하거나 아니면 시세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에 매입한 후, 주변 중개사들에게 해당 매물의 소유주와는 일체의 거래를 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흥,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콧방귀를 뀌던 사람들도 나중에 가선.
‘저…저쪽 사장님이 식사라도 한번 할 수 없겠냐고….’
중개사들을 통해 항복의 표시를 해 왔다.
‘원래 한방 데미지보다 도트 데미지가 더 무서운 법이니까.’
물론 그 항복을 그냥 받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냥 팔겠습니다…원래 시세대로만 쳐 주시죠….’
‘5% 다운.’
‘아니 지금 가격도 정말 싼 가격이란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가지고 계시다가 그 가격에 파시던가요. 10% 다운.’
‘하, 거래가 장난입니까? 이건 뭐 차라리 안 팔고 말지….’
‘마음대로 하세요. 15% 다운.’
본디 저항을 하다 항복한 자에게는 그만큼의 ‘교훈’이 꼭 필요한 법. 오히려 현재 시세보다 더 낮은 금액으로 건물을 매입해 버렸다.
‘어차피 시세대로 내놓는다고 해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니까.’
뭐 아직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만간 정리되겠지.’
나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박근형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에게 물었다.
“이유가 없으신 건가요?”
그러자 비지땀을 줄줄 흘리던 그가 허둥지둥 입을 열기 시작한다.
“아, 그건 원래 내 아들…아니아니, 제 아들놈이 거기서 사업을 하겠다고 해서 그랬던 건데…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소라게 학원에 너무 미안해서….”
…강아지도 안 믿을 만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그럴 거였으면 우리 쪽에서 연락을 취했을 때 계약을 했겠지.
하지만.
“그러셨군요.”
일단은 말을 받아 준다.
비록 ‘손놈’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찌됐건 손님은 손님이었으니까.
그러자.
“하하, 역시 이해해 주시는 군요.”
뭔가를 착각한 듯 박근영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리곤.
“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매매 계약을…혹시 20%가 힘드시면 15%까지는 제가 어떻게….”
그의 입에서 또다시 매매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나는 슬쩍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내 말을 들은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저는 괜찮으니까 그냥 아드님 사업하셔도 된다는 말이죠.”
“네?”
“안 그래도 창고로 쓸 만한 건물을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그냥 그 건물 4층을 창고로 써야겠네요.”
순간, 박근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
“말씀 다 끝나신 거면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일이 좀 많아서요.”
나는 그가 생각을 계속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쳤다.
그러자.
“어…대표님! 잠시 만요! 할 말이 있습니다.”
박근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잡았다.
* * *
잠시 뒤.
“잘 처리된 모양이네요?”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은솔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은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그럭저럭 말이 통해서 말이죠.”
그러자 그녀가 살풋 웃더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든다.
“그럴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요? 아까 들어오다가 그 사람이 데스크에서 했던 말을 들었거든요.”
아…어쩐지 아까 박근영의 목소리가 크다 했더니 은솔 또한 그 소란을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러자.
‘…그냥 지금 시세로 팔겠습니다.’
참담한 표정으로 항복을 선언하던 박근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박근영 같은 사람이야 흔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서울에 손바닥만 한 땅뙈기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제법 여유롭게 사는 것이 가능한 만큼. 대치동이라는 커다란 상권에, 비록 한 층에 불과할 지라도 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힘으로 느껴지기 쉬웠다.
그러니 나 또한 그런 그들처럼 변하지 않게 항상 경계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아직 확장한 학원들이 오픈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액수의 돈이 법인 계좌로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조만간 은행에서 빌린 돈을 모조리 다 갚아 버릴 수 있을 정도?
그러니 이제부터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다면 눈 깜박할 사이에 세상 그 누구보다 더 무섭고 추한 괴물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선생님.”
은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강사들을 더 뽑으실 생각 없으신가요? 아무래도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은데…지금 있는 인원만으로는 좀 힘들 것 같아서요.”
흠…보아하니 내게 강사 인력 확충에 대해 물어보려던 것 같았다.
나는 은솔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학원 확장을 준비하다 보니 대형학원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본래 생각했던 학생들 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을 유치, 학원의 확장 오픈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미리 뽑아 놓은 강사들만으로도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 정도는 충분히 케어할 수 있지만. 여기서 더 인원이 늘어난다면 약간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미리 강사들을 확충해 놓는 것이 좋았다. 아무래도 타이트한 인력으로 학원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여유로운 인원으로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능률이 높을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은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강사들을 더 뽑을 생각이에요.”
그리곤 은솔 쪽으로 슬쩍 강사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내밀었다.
그러나 은솔이 눈에 이채를 띠며 내 쪽으로 다가와 명단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런 은솔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은솔이 시선을 따라 명단의 이름들을 훑어 나갔다.
그런데?
‘어?’
그 명단 안에 있는 이름 중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이 이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 이름은 바로.
‘피현덕’
한 번 들으면 여간해선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이었다.
‘피 씨가 흔한 성씨는 아니니까. 흠…그런데 내가 이 이름을 어디에서 봤더라?’
하지만 어디서 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아, 그래 그때 USB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어디서 봤었는지 생각났다.
그러자 바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15년 후인 2035년.
[피현득 작가! ‘맨부커 인터내셔녈 상’ 수상!]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두 번째로 맨부커 상을 수상하는 사람이자.
[맨부커의 남자 ‘피현덕’ 대한민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그로부터 10년 후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상을 수상하는 작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