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55
155
155화 킴벌라이트 (1)
소라게 학원 대치 분원의 면접 대기실.
“…언어라 함은…중얼중얼…음성과 음향의….”
”Thinking evil is making evil….“
“…구석기 시대와 중석기….”
수많은 강사들이 시강을 준비하고 있는 그곳에 딱딱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피현득.
지방대 국문과 출신의 5년차 국어 강사이자. 오늘 소라게 입시 전문학원에 면접을 보기 위해 모임 사람들 중 하나다.
‘휴, 내 처지야.’
사람들을 바라보던 피현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피현득 선생님 합격 축하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 – 대치동 굴라그 학원]‘됐다. 이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이제 다시는 초조하게 면접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그를 시기하기라도 한 것인지.
‘네? 뭐라고요? 학원이…망했다고요?’
그가 학원에 출근하기도 전에 학원이…사라져 버렸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이제 막 합격했단 말이야!’
일반적으로 강사의 황금기는 30~40세 사이.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결정된다 봐도 무방했다.
때문에 잠도 줄여 가며 빡세게 학원 강의를 준비. 대형학원 들어간 것이었는데…….
‘하…진짜 이게 말이 되냐고.’
피현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학원이 망함으로써 그 동안의 그 모든 노력들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래 대치동에 굴라그 학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찾아보면 괜찮은 곳이 있겠지.’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하고 동네 학원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지금 당장은 편할 수 있겠지만.
‘마흔 넘으면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고 땅을 치면서 후회하겠지.’
때문에 그는 특별조사에 연루되지 않은 학원들에 미친 듯이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고하셨습니다. 나중에 결과를 알려드릴 테니….’
현실은 가혹했다.
그가 지원서를 학원들 모두.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와는 같이 일을 하시기 힘들….’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를….’
‘어쩔 수 없이….’
탈락. 탈락. 탈락.
대부분 서류에서 탈락하거나 운 좋게 서류를 통과하더라도 면접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아니 이게 말이 돼? 다 탈락이라고?’
물론 평소라면 이 정도로 가열차게 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송도에서 수학강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대치동으로 학원을 옮길 생각인데 대치동 상황이 많이 안 좋다는 소문을 들어서요…정말로 그런가요?] [댓글1 : ㅇㅇ 오지 마세요. 요즘 대치동 진심 헬입니다.] [댓글2 : 이번에 대형학원들 싹 다 무너지면서 경쟁률도 높아지고 대우도 안 좋아졌어요] [댓글3 : 맞아요. 진짜 옛날에 비하면 강사 대우가…차라리 송도에 계속 계시는 게 낫습니다]대치동 학원가에 그와 처지가 비슷한 강사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대치동 학원가의 강사 커트라인이 급격하게 올라가 버린 것이 문제였다.
덕분에.
‘음…이 사람은 학벌은 좋은데 경력이 없네? 탈락.’
‘이 사람은 다 괜찮은데 나이가 너무 많아. 탈락.’
‘오, 이 사람은 제법 괜찮네. 합격.’
대치동 학원들만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마치 쇼핑을 하듯 강사들을 골라 뽑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남들보다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력이 어마어마한 것도 아닌, 게임으로 치면 ‘국어강사78’ 정도 밖에 안 되는 피현득으로서는…….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아후라마즈다님…제발 합격문자 한 통만 점지해 주십시오….’
휴대폰을 부여잡고 합격 문자를 기다릴 수밖에.
물론 한두 군데 지원서를 넣은 것이 아닌 만큼, 합격 통지가 온 곳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곳들은 대부분…….
‘일단 파트타임으로 일해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이상한 조건으로 그를 옭아매려는 곳이거나.
‘350이요? 에이, 요즘에 그렇게 받는 곳이 어디 있어요. 기본급 150만 맞춰 줘도 다들 하겠다고 난리들인데. 그러니까 선생님도 처음엔 200부터 시작하시는 게 어떠세요? 뭐 그 이상이야 비율로 가져가시면 될 테니까요.’
공과금을 내면 딱 떨어질 정도의 박봉을 주는 곳들뿐이었다.
‘아니 강사 수명 뻔히 알면서 200? 에라이 날강도 같은 놈들 차라리 그럴 거면 동네 학원을 가지.’
그렇기에.
[피현득 선생님! 소라게 학원입니다! 지원서 접수 되셨으니까. O월 OO일 오후 1시까지 소라게 학원 대치 분원으로 와 주세요! 시강 범위는…]처음 소라게 학원에서 메시지가 왔을 때.
‘소라게 학원이라고?! 진짜로?’
피현득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한창 지원서를 쓰고 있을 무렵.
‘이번에 소라게 학원에 강사들 추가 모집한다는데 거기 한번 넣어 보는 건 어때?’
‘응? 소라게? 에이, 내 학벌이랑 경력 알잖아. 이력서 접수하자마자 세절기에 갈릴 걸?
‘그 학원 강사 경력 별로 안 본다는 데? 나 믿고 한번 넣어 봐.’
전에 같이 일하던 강사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서를 넣긴 했지만.
‘에이, 설마 되겠어?’
그리 큰 기대를 가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아후라마즈다님…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 면접을 보기위해 소라게 학원에 도착한 면접 대기실 문을 열었을 때.
‘집은 어디로 얻을까? 학원 근처가 좋겠지?’
그는 절망에 빠져 버렸다.
‘이런 미친….’
왜냐하면.
‘저 사람은 굴라그 넘버 1이었는데? 저 사람은 테르모필레 수학 팀장? 허 LSD학원 본부장도 있잖아?’
면접 대기실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 강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이 사람들이랑 어떻게 경쟁을 하라고….’
쪼렙이 던전에 들어왔는데 레벨999 몬스터들이 가득한 상황.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면접실 한 쪽 구석에 찌그러져 한숨을 내쉬었다.
학벌이면 학벌. 경력이면 경력 어느 것 하나 그들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또래 강사들 중에선 강의력이 제법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이 사람들 앞에선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지.’
대기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강의력이 출중하기로 소문난 사람들. 그러니 이제 막 대치동에 발을 들인 피현득이 비벼 볼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순간 짙은 회의가 그를 그의 머리를 잠식했다.
‘차라리 다 포기하고 동네학원으로 돌아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그래도 꽤 받으면서 소설이나 마음껏 쓸 수 있을 텐데….’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강사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5년.
‘10년 안에 빌딩 하나 올린다!’
처음 강사 일을 시작할 때에는 제법 거창한 꿈도 가지고 있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다 보니 강사 일을 시작할 때의 포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밥벌이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뿐이었다.
‘에휴…망생이구만 망생이야.’
그런데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한다.’
그 말은…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말이자 그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이 하는 말.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었다.
순간.
두근두근두근두근-
쪼그라들었던 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까지 해 온 게 있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그러자 텅 비어 있었던 피현득의 가슴에 뜨거운 기운이 맺혀 나갔다.
‘까짓것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한번 해 보자.’
그렇게 그가 다시금 의지를 다지고 있을 때.
찰칵-
“다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파리한 안색의 여성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 그럼 1번부터 10번까지 저를 따라오시고 나머지 분들은 잠시 대기해 주세요.”
그녀의 말을 들은 피현득이 주먹을 꽉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받은 번호는 4번.
이제 잠시 후면 이 대기실에 있는 이들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될 것이었다.
분명 떨리는 일이었지만.
‘할 수 있다. 그래 할 수 있다.’
방금 전처럼 절망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한다.’
그의 머릿속에 감도는 말이 그에게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4번 면접자 분.”
“네?”
“3번 분 면접이 곧 끝날 테니까 그분 나오면 바로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눈 깜박할 사이에 그의 차례가 다가왔다.
피현득은 마른 침을 삼키며 손바닥에 배인 땀을 바지춤에 닦아냈다.
‘좋아 준비는 완벽해.’
그가 오늘 시강할 내용은 기본 문법과 자유 문학 작품.
오늘만을 기다리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터라 자신 있었다.
‘시강만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소라게 학원 국어 파트에 지원한 4번 면접자 피현득입니다.”
면접실에 들어간 그가 시강을 하기 위해 단상 위에 올라선 그 순간.
“잠시 만요.”
그의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왜?’
소라게 학원의 원장이자 소라게 유한책임회사의 대표. 그의 고용주가 될 지도 모르는 사람인 김준영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피현득은 의아한 눈으로 김준영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김준영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강 시작하시기 전에 한 가지만 물을 게 있습니다.”
그러자 면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김준영을 쳐다보았다.
물론 시강을 할 때 질문이 나오는 일이야 흔한 일이었지만.
‘일반적으로 질문은 시강이 진행되는 중이나 시강이 끝난 다음에 나오는 거니까.’
하지만 굳이 반대할 만한 일도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피현득을 바라볼 뿐이다.
꿀꺽-
사람들의 시선 앞에 선 피현득이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피현득 선생님.”
“네?”
준영이 기대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소설 써요?”
순간, 피현득은 자신의 팔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의 은밀한 취미.
치열한 5년간의 강사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삶의 원동력.
그의 열망을 처음 보는 사람이 정확하게 짚어 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자신의 과 때문에 그런 건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국문과 출신 국어강사가 한두 명도 아닌 이상 그럴 리가 없었다.
거기다.
‘분명 소설 쓰냐고 물어봤어. 시도 희곡도 아니고 소설로….’
그는 살짝 질린 표정으로 김준영을 바라보았다.
‘소라게 학원 원장이 신기가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하지만 이 자리는 그의 시강 겸 면접 자리였다.
그러니 아무리 사소한 질문이라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야만 했다.
‘왜 물어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답은 해야겠지….’
“네…가끔 취미삼아 쓰고는 있습니다만….”
그러자.
“역시….”
김준영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피현득 선생님. 합격입니다.”
피현득의 합격을 결정해 버렸다.
피현득이 멍한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그가 면접실 안에 들어온 지 이제 10분.
그동안 그가 한 것이라곤 김준영에 질문에 대답한 것이 다였으니까.
‘아니,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