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56
156
156화 킴벌라이트 (2)
“피현득 선생님. 합격입니다.”
내가 말을 마친 순간.
피현득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나는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합격이라고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와 심사의원들을 돌아볼 뿐이다.
하긴 그가 면접실 안으로 들어온 지 이제 5분. 그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곤 내 질문에 대답을 한 것밖에 없으니 그가 저렇게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저…전 아무 것도 안 했는데요?”
가까스로 표정을 수습한 피현득이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합격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그러자.
“…선생님…그래도 시강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마음에 드셨다고 해도 절차라는 게 있으니….”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내 옆에 앉아 있던 은솔 또한 조심스러운 어조로 내게 말을 건넨다.
슬쩍 돌아보니 다른 심사의원들도 은솔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 모두 기본적인 실력 정도는 확인해야 나중에 뒷말이 나오지 않겠냐는 듯한 표정이다.
‘흐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직 시강을 보지 않은 이상 피현득을 이대로 강사진에 포함시켰다가는 두고두고 뒷말이 나올게 눈에 선했으니까.
하지만.
‘강사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피현득을 강사로 쓸 생각이 없었다.
내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상 그를 그냥 ‘국어강사1’로 대우하는 것은 나에게도 그리고 대한민국에게도 크나큰 손실이었으니까.
‘7짜짜리 감성돔으로 매운탕을 끓여 먹는 짓이지.’
그러니 자리가 없다면…만들어야만 했다.
피현득은 당첨이 확인된 복권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내게 우려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는 심사의원들을 훑어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피현득 선생님을 일반 강사직에 합격시킨 건 아니니까.”
그러자 피현득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의 눈은 마치.
‘나랑 지금 장난 치냐? 원장만 아니면 그냥 확!’
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긴 방금 전 그에게 내 입으로 합격이라고 말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놀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피현득 선생님은 이번에 제가 새로 계획 중인 프로젝트의 중요 요인으로 활동하게 되실 겁니다.”
오직 그만을 위한 프로젝트가 계획되어 있었으니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전…강사로 지원한 건데….”
피현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상황인 만큼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 같았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원래 낚시란 잡으려는 물고기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휙- 낚아채는 것이 제 맛이었으니까.
나는 최대한 우호적인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란 걸 약속드리죠.”
그러자 그가 왜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하긴 물고기는 낚시꾼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며칠 전.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면접 대상자들의 명단에서 피현득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USB를 뒤져 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서.
[…2035년 4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장편소설 로 맨부커 상을 수상한 피현득 작가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204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피현득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는 시험 지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물론 동명이인일 수도 있었지만.
[1989년 6월 OO광역시 OO구에서 출생한 피현득 작가는 OO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지문에 나온 내용과 지원서에 나와 있는 개인정보를 교차 검증을 교차검증 해 본 결과.
‘빼박인데?’
99.99999%의 확률로 동일 인물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피씨 성에 현득이란 이름을 가진 89년생 6월생이 그리 흔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소설 써야 하는 사람이 왜 학원에 이력서를 넣고 다니는 거야?’
피현득의 나이는 올해로 서른. 국내 유명작가들 대부분이 20대 초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피현득처럼 단 한 질의 작품도 만들지 못한 작가가 나중에 대성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소설에 재능이 있고 열망 있는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소설 쪽으로 진로를 잡고 전력투구 하는 게 필요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의 처지가 이해가 갔다.
‘하긴 지방대 국문과 나와서 할 수 있는 일 뻔하지.’
국어국문학과.
다른 말로 굶는과.
4년 내내 취업과는 관계없는 학문을 수박 겉핥기로 배우는 학과이자.
의학 취업률 88%
치의학 취업률 86%
3. 한의학 78%
.
.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
104. 수학과 37%
105. 국어국문학 36%
전체 120개의 학과들 중에서 105위 취업률을 자랑하는 학과.
그리고 저 36% 중 대다수가 영세 출판사, 방송사 새끼작가, 학원 강사, 공부방 선생님 등을 전전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지 못해 1년 만에 직장을 탈주.
‘철밥통 가즈아!’
공무원 시험이라는 마굴에 빠지는 아름다운 곳이 바로 국문과였다.
‘국문과 5학년은 노량진으로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그러니 피현득이 지금처럼 강사 일을 하면서 소설을 계속 쓰는 것도 사실 놀랄 만한 일이었다.
밀어 주고 끌어 줄 만한 연고하나 없는, 문예창작과도 아닌 굶는과 출신 강사가 돈 한 푼 되지 않는 것을 죽자 사자 붙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순간, 나는 손발이 저릿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프랑스의 콩쿠르상과 영국의 맨부커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웨덴의 노벨 문학상까지.
소위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학상들 중에 2가지 상을 받은 사람.
진흙 속의 진주. 킴벌라이트 속의 다이아몬드가 제 발로 내 학원에 굴러들어 오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바로.
‘노벨 문학상’
사실 콩쿠르 상이나 맨부커 상 같은 경우.
‘콩쿠르? 맨부커? 음…맨부커는 그 OO작가가 받은 상 아닌가? 뭐? 어디서 개최하는지 아냐고?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2016년 국내 한 작가가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에서 수상을 하기 전까지 이런 상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노우벨사앙? 당연히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노벨 문학상은 그 인지도 자체가 달랐다.
1980년대 스웨덴 한림원의 요청을 받아 몇 차례 작가들을 추천한 이후 몇몇 국내 작가들이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매스컴에 거론되고 있는 덕분에.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1년에 한 번쯤은 노벨 문학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기 때문이었다.
뭐 그래도.
‘노벨상? 그런 거 받아서 뭐해?’
예전에 비해 노벨 문학상의 가치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일본.
1995년, 오에 겐자부로, 일본.
2012년, 모옌, 중국.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숙명의 라이벌들이 벌써 여러 명의 노벨상문학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이상.
‘일본한텐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고!’
‘중국, 일본은 다 타는 데 우리는 왜 못 타!’
‘문학, 번역, 교육 모두다 각성해야 해!’
아직까진 그 이름의 무게가 제법 무거웠다.
‘자존심은 중요하니까.’
그러니 피현득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개인의 영광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문화적 자존심을 지켜 주는 심볼이 될 수 있었다.
‘물론 25년 후에 일이지만.’
하지만…만약 내가 그 과정을 조금 더 빠르게 앞당겨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 낸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과연 어떨까?
그 효과는 학원 건물을 수십 개 세우는 것이나 TV광고를 수백 번 송출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불러일으킬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피현득을 어떻게 케어 해야 할지가 문제인데….’
피현득의 케어 방법을 확실히 찾아야만 한다는 것.
분명 피현득의 맨부커 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 세계를 전부 다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설픈 실력으로 피현득의 가이드를 자처했다가.
‘어…이 산이 아닌가본데?’
산을 잘못 오르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때까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아니 산이야 잘못 타면 도로 내려가 다시 오르면 그만이지만.
‘인생은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갈 수가 없으니….’
그러니 그 길을 찾아낼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비록 시간은 좀 더 걸릴지언정 피현득이 맨부커 상과 노벨 문학상을 타는 미래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하…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어?’
해법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USB에 피현득의 이름과 그가 쓴 소설의 제목을 검색한 순간.
[…창 밖에는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방 안은 수족관처럼 썰렁했다. 옷상자에서 막 꺼내 온 두꺼운 스웨터는 방충제 냄새가 남아 있었다…]국어는 물론.
[…A chubby fly was sitting on top of the window. Because of the lack of wind, Wet flag is an ancient Roman senator…]영어.
[…그는 수첩을 펼쳐 놓고 거기에 옮겨 적은 의 문장을 거듭해서 읽었다. 눈썹과 머리칼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땀을…]한국사 지문에까지 그의 생애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내용들이 모니터 안에 나타난 것이다.
‘좋았어! 이것만 잘 이용하면 충분히 케어가 가능하다.’
비록 분절되어 있는 정보들이었지만 각 부분마다 겹치는 부분과 겹치지 않는 부분들을 취합하고 나니, 제법 괜찮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졌다.
‘이제 남은 건…피현득을 낚는 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프로젝트죠?”
피현덕이 약간의 당황과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걸려들었어.’
나는 입질하는 물고기 홀치는 심정으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피현득 선생님 같이 재능 있는 작가들을 전폭적인 지원해서 작가로 데뷔시키는 프로젝튼데, 어때요, 생각 있어요?”
그러자.
“…….”
피현득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떠오른다.
분명 마음으로는 따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하긴 강사 면접 와서 갑자기 이런 제안을 받는 일이 흔치는 않지.’
하지만 아직 다른 지원자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 언제까지 피현득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휴, 이런 일은 다신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것을 감수하기로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현득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의 대사.
주인공이 거대한 위협 앞에서 떠올리는 말이었다.
분명 좋은 말이었지만. 솔직히 활자를 읽는 것과 소리 내 읽는 것은 그 오글거림의 층위가 달랐다.
물론 그조차 감수하고 뱉은 말이지만…….
“선생님?”
은솔은 물론.
“…허허.”
다른 강사들까지 벙 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확인하자.
‘이거 괜히 했나….’
약간 부끄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뜬금없는 말이 나온 것을 테니까.
하지만.
“어…어떻게?”
다행스럽게도 피현득에게는 제법 효과가 있었던 듯싶다.
좀 전까지 [YES vs NO]에서 NO쪽에 가까운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YES쪽에 가까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잠시 입을 열 듯 말 듯 고민하던 그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일단 한 고비는 넘겼고…한 가지만 더 확인하면 끝이었다.
나는 짙은 기대를 안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라고 합니다.”
피현득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빙고.
.
.
위에 나오는 지문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김연수 작가의
에서 인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