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57
157
157화 킴벌라이트 (3)
만약 자연 상태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줍지 않을 것이다. –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 * *
다이아몬드.
4월의 탄생석이자 단단한 물질의 대명사. 희귀한 데다 세공도 어려워 고대부터 귀한 보석으로 여겨진 광물이 바로 보석의 제왕 다이아몬드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눈앞에 다이아몬드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 상태의 다이아몬드는 킴벌라이트라고 불리는 감람석 안에 존재하고 있는데다가, 다이아몬드 원석의 모습은 방해석이나 석영 같은 비교적 흔한 광물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다이아몬드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지식, 그리고 원석을 커팅할 수 있는 실력자와 그에 맞는 도구들이 필요하다.
만약 그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킴벌라이트를 만난다면 그 안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을 수도 없을뿐더러, 설혹 다이아몬드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 가치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나는 오늘 소라게 학원이라는 킴벌라이트에서 찾아낸, ‘피현득’이라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지고 출판사 글로비언을 방문했다.
나의 능력과 국내 굴지의 대형출판사 글로비언의 하드/소프트웨어가 합쳐진다면 피현득이라는 원석을 보다 더 가치 있는 보석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락-
흐음…
사락-
휴우…
말없이 원고를 넘기는 이어진 대표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살짝 찡그려진 이마와 꿈틀거리는 눈썹. 한쪽으로 기울어진 입술을 보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원래 집중하고 있을 때 짓는 표정과 실제 사람의 감정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지만…….
아무리 봐도 저건 지금 ‘나는 지금 보고 있는 글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떠신가요?”
내가 묻자. 이어진 대표가 원고를 내려놓으며 어색한 미소를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아까.
‘맨부커 상이나 노벨 문학상을 받고도 남을 작품입니다.’
라고 말해 놨었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런 걸로 삐지는 소인배도 아니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때였다.
그리고 그래야만.
‘내가 어떤 식으로 피현덕을 케어할지 확정할 수 있을 테니까.’
엊그제.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내가 피현득에게 물었을 때.
‘라고 합니다.’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입에서 탄성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황무지라니!’
피현득의 입에서 나온 작품의 제목은. 15년 후 그에게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가져다 줄 작품이자. 그로부터 10년 후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그의 대표작이었으니까!
때문에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선생님 그 작품 좀 읽어 볼 수 있을까요?’
그에게 원고를 한 번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네? 뭐 상관없긴 한데…아직 초고일 뿐이라서….’
그는 갑작스런 나의 요청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지만.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맨부커와 노벨문학상을 받을 작품을 25년 먼저 본다는 기대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 가 맞다면…정말 대박인데.’
하지만.
‘어?’
내가 피현득에게 받은 의 원고는, 얼마 전 내가 USB를 통해 엿보았던 그의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니 분명 가 맞긴 맞는데…이건 너무 러프하잖아.’
물론 이야기의 큰 틀은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태어나자마자 가상세계에 잡아먹힌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딘가 있을지 모를 구원을 찾아 헤매며 결투와 죽음을 반복하는 이들.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엔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주인공’
이 정도로는…부족했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가상. 꿈속의 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없는 몽환적인 공간에서의 헤맴을 통해, 현대인의 쓸쓸한 자화상과 심리를 그려 냈다. 이 작품은 정말 대단하다.]15년 후 그의 작품은 정말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은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었으니까.
‘아우라가 다르다고나 할까?’
때문에 나는 갈등했다.
이대로 피현득의 실력을 믿고 그가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정도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피현득의 작품에 내가 직접 끼어들어 그와 그의 소설을 연마(練磨)할 것인가.
전자를 따른다면 피현득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볼 수 있겠지만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그 결과가 만족스러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후자를 따른다면 시간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나 온전한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겐 이미 작품에 대한 가이드북이 존재했으니까.
그러니 능률적인 면으로 본다면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숨어 있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피현득을 케어하면 그가 15년간 작품을 가다듬으면서 겪을 시행착오 또한 사라질 수 있다.’
그러니 피현득이 한 작품을 내고 사라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섣부른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에휴, 차라리 지금 쓰고 있던 소설이 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나 혼자 고민할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나에게는 이미 ‘글로비언’이라는,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 집단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들에게 현재의 를 보여준다면, 그래서 그들의 평가를 들을 수 있다면, 과연 어떤 방법이 피현득에게 필요한 방법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전자, 그 반대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후자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괜찮으니까 느낀 그대로 한번 말씀해 주시죠?”
그러자.
이어진 대표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받는다.
“흐음…솔직히 말씀드리면…이대로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소설이라는 게 자기 만족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소재라던가 감각 같은 부분은 눈여겨볼 만하지만….”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원로 작가 이영근 또한 고개를 흔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다양성을 운운하면서 이야기들 하는데, 솔직히 잘 쓴 소설과 못 쓴 소설은 구분되어야 하는 거거든. 그런데 이 소설은…아직 그런 면에서 모자란 부분이 많이 보인다고 봐야겠어.”
두 사람의 냉정한 평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기대했던 바다.’
웃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사실 그냥 방임하는 것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거든.’
시행착오.
물론 중요한 것이다. 장인이란 수천수만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기술을 닦아 나가는 법이니까.
‘필요한 시행착오와 그렇지 않은 시행착오는 구분해야 한다.’
아무리 시행착오가 중요하다지만 어린아이에게 쇠와 망치만 던져 주고 칼을 만들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설혹 그 어린아이가 천고에 다시없을 천재라서 어떻게든 칼을 만들었다손 치더라도, 그 시간과 노력은 스승이 존재할 때보다 갑절의 갑절은 더 들 것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나는 피현득이라는 도제(徒弟)가 제대로 된 장인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했다.
‘이미 어떤 식으로 성장할지도 알고 있으니까.’
흐음, 그럼 이제 케어 방침은 정해졌고 이제 남은 것은…출판사 글로비언의 지원을 받는 것인데.
슬쩍 시선을 돌려 이어진과 이영근을 바라보자.
“하하, 그래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습니다. 구성이나 문체만 약간 손보면 괜찮을 것 같거든요. 안 그런가요, 이 교수님?”
“어? 뭐, 그렇지 나름 볼만 하긴 하니까. 물론 문체나 이런 것들은 시간을 두고 충분히 조탁(彫琢)해야겠지만.”
아까와 달리 작품에 대한 립서비스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소라게 학원이 글로비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큰 만큼. 일방적인 비판은 지양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칭찬이 바로 지원으로까지 이어질 것 같진 않았다. 원래 비즈니스란 그런 법이니까.
흐음…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짙은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분명 조금만 가다듬으면 출판도 가능하다는 말씀이죠?”
그러자 이어진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는다.
“하하, 그럼요.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마치 이 정도의 립서비스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대부분은 이쯤에서 눈치껏 빠질 테니까.’
하지만 가끔은 그 립서비스를 조심해야할 때도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래요? 잘 됐네요. 그럼 이 작품 출판하시죠.”
가끔은 나 같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네에?”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을 들은 이어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아니 당신은 눈치도 없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나.
“이 작품. 조금만 다듬으면 가능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아니 그건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분명 자신의 입으로 출판 가능성에 대해 말해 놓은 것이 있는 만큼.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게 내가 노린 것이기도 하고.’
사실 원래 아무리 뛰어난 세공사라도 좋은 세공기구가 없다면 보석의 가치를 온전히 보존할 수 없었다.
물론 돈이야 충분히 벌고 있으니 비싸더라도 성능만 좋다면 무조건 구입해 버릴 수 있겠지만.
‘좋은 건 대부분 비싸지만 꼭 비싼 게 좋은 건 아니니까.’
그러니 글로비언이라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기구를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선 이 정도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어진 대표가 도와달라는 듯 이영근을 바라본다.
그러자.
“김 대표 사실 말이나 바른 말이지 이 정도 쓰는 작가들은 널리고 널렸네. 물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 조탁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이영근이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뭐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헤밍웨이 같은 경우 를 탈고하기까지 39번의 퇴고를 가하기도 한 만큼. 퇴고란 작가와 원고간의 지리한 싸움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있는 한 그럴 걱정은 없지.’
왜냐하면 이미 내 손 안에 의 가이드북이 있었으니까.
다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게 문제지.’
그렇다면 조금 다른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원래 본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웜업(warm up)을 하고 가야. 본 게임에서 훨씬 더 좋은 성적이 나오는 법이니까.
나는 생각을 정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상(頂上) 문학상 대상.”
그러자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정상(頂上) 문학상.
요절한 천재 소설가 정상(頂上)을 기리는 상으로 중편 및 단편 소설에 관해서는 대체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현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치고 이 상의 대상을 못 받은 작가가 없는 만큼. 이 상을 수상했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의 재능을 담보하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물론 같은 경우 장편 소설이기 때문에 이 문학상에 도전할 수 없었지만.
‘피현득의 작품이 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