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58
158
158화 소라게에서 아침을 (1)
“정상(頂上) 문학상 대상. 이 정도면 어떠신가요?”
내가 말을 마친 순간.
“네에?”
“허허, 거참.”
이어진 대표와 이영근 교수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판해 드리죠.”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하긴 정상문학상은 5천에서 1만 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신인문학상인 만큼. 그의 이런 표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니까.’
거기다.
“자네. 정상 문학상 대상 받는 사람들이 정말 신인들일 거라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괜히 아까운 시간 버리지 말고 빨리 그만두는 게 좋을 걸세. 그 상을 받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거든….”
이영근 교수가 말한 대로 대상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미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 소재 명문대를 진학, 그 후 창작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특별 트레이닝을 받은 성골 중의 성골들이었다.
물론 그들 이외에도 아주 가끔 좁은 문을 뚫어 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명문대 출신 진골들이지.’
그러니 끝내주는 학벌도 문단 권력을 꽉 쥐고 있는 스승도 하다못해 문예지 등단 경력이 있는 선배도 없는 피현득 같은 사람은, 성골은커녕 6두품에도 속하지 못한 잡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건 일반적인 경우에나 그렇다는 이야기고.’
피현득은 달랐다.
그는 문학계의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 혁명에 성공한 진승(陳勝), 오광(吳廣)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치고 있는 듯한 그의 재능에 범용한 자들의 편견이란 손쉽게 넘을 수 있는 허들에 불과했다.
‘물론 아직 좀 다듬어야겠지만.’
그러니.
“그럼 약속하신 겁니다?”
지금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어진 대표와 내기 아닌 내기를 하더라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어차피.
“물론이죠. 그나저나 대표님 다음 작품을 슬슬….”
승패는 정해져 있는 거니까.
* * *
며칠 뒤.
“자, 들어가시죠.”
문을 열며 말했다.
그러자 피현득이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바로 전(前) 굴라그 학원의 3층과 4층을 통째로 터 만든 문학창작 공간. 노벨상을 향한 나의 염원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집필실1] [집필실2] [집필실3].
.
십 수 개가 넘는 전용 집필실.
원래는 강의용으로 쓰였을 공간을 리모델링한 현대적 디자인의 공간이다.
피현득을 돌아보니.
“허어….”
서른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집필실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 지금 바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표정이다.
나는 슬쩍 웃으며 [집필실1]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서작업에 특화되어 있는 27인치 무결점 쿼드 모니터.
앉는 순간 그대로 잠들어 버릴 것 같은, 하지만 가격을 듣는 순간 잠에서 깨 버릴 것이 분명한, 450만 원짜리 퍼시드 마르쿠스 헤드레스트 의자.
손목 터널 증후군으로 절필 선언을 한 작가도 키보드 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로 만들어 버린다는 고급 기계식 키보드.
마지막으로 작가에 니즈에 맞게 환경을 설정할 수 있는 스탠드형 가습기와 미니 제습기까지.
작가를 위한 풀 세팅이 되어 있는 집필실의 모습이 나타났다.
순간.
“세상에….”
피현득의 입에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나는 그가 집필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게 한발 물러서며 그에게 말했다.
“모니터랑 의자, 키보드는 좋은 걸 사야 한다고 들어서요. 작업실은 많으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방으로 고르시고 저한테 말씀해 주시죠.”
그러자 피현득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집필실 안을 둘러본다.
그리곤 집필실 안에 있는 기기들을 한 번씩 건드리며 연신 감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직 소개해 드릴 곳이 남았으니 지금은 일단 일어나시죠.”
그러자 온탕에 들어간 할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헤드레스트 의자에 앉아있던 피현득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본다.
“네? 여기서 더 볼 게 있나요?”
더 볼 게 있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일어나시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자 피현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집필실이 몰려 있는 곳을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곧 50평 규모의 휴게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허어….”
오늘따라 유난히 피현득의 감탄사가 많이 들린다.
하긴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3층과 4층을 하나로 만든 50평 규모의 공간.
그 공간의 한쪽에는 안락한 소파와 초고화질 커브드 TV, 최신 게임기, 영화용 스크린 그리고…
눕는 순간 천국을 보게 된다는 무중력 안마의자가 ‘어서 나를 사용해 줘!’라는 듯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고.
한쪽에는 갖은 식재료와 술을 제외한 음료들, 계절의 맞는 과일들이 그득그득 차 있는 3대의 대형 냉장고.
그 옆으론 오픈 키친 형식의 조리시설, 홈바, 카페를 바로 옮겨놓은 것 같은 커피메이킹 기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어!’라는 듯한 공간. 굳이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거의 모든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편의시설이었다.
“작가님을 위해 준비한 거니까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러자 피현득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게…정말인가요?”
“그럼 물론이죠.”
혹자는 ‘작가는 배고파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게 말이야 당나귀야.’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밥 한 끼 먹지 않고 하는 노동이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듯.
창작 또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정신노동인 만큼. 창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그 외적인 것으로 풀어 주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머리는 머리대로 빠지고 작품은 작품으로 안 나오는 이중고를 겪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반발심리마저 싹트겠지, 원래 반란은 굶주림에서 나오니까.’
때문에 나는 최상의 육체에 최고의 글이 싹튼다는 신념을 가지고 내가 아는 최고의 시설을 구축했다.
“아, 그리고 운동기구들도 주문해 놓긴 했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혹시 운동하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센터 바로 앞에 있는 헬스클럽에 등록해 드릴 테니까요.”
뭐 아직 완성이 덜 끝난 부분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러자 피현득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보아하니 갑작스러운 자극에 영 정신이 없는 것 같다.
하긴 지난 5년간 원룸에 살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온 그로선 꿈도 꿔보지 못한 환경일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대표님,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그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그거야 당연히…….
‘노벨상이지. 맨부커 상도 겸사겸사 받으면 좋고.’
사실 내가 피현득을 케어하기 위해 포기한 것은 내 소유의 건물 두 층. 그리고 인테리어 비용 정도였다.
예전이었다면 제법 큰 지출이었겠지만…….
‘지금이야 뭐 그럭저럭 쓸만한 돈이지. 어차피 세금 덜 맞으려면 억지로라도 돈을 써야 하니까.’
그러니 지금 이 투자가 나중에 몇 십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을 알고 있는 내게 이 정도의 투자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당사자 앞에서 말할 수는 없는 법. 약간의 진실만을 내보인다.
“피 선생님의 재능이 아까워 보였거든요.”
이건 사실이니까.
그러자 피현득이 감동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던가?
그의 눈빛이 마치 지백(豫讓)을 마주한 예양(豫讓)의 눈빛 같다.
‘이미 계약서까지 쓴 마당이지만 그 마음까지 사로잡는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 * *
잠시 후.
“그런데…저 혼자 쓰는 건가요?”
감정이 가라앉힌 피현득이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이 넓은 공간을 설마 혼자 쓰는 것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요. 일단 주기적으로 청소해 주시는 분들이 오실 겁니다. 그리고 데스크 인원들도 상주시킬 거고요. 그리고….”
그런데 그때.
띵동-
나지막하게 들리는 벨소리. 피현득의 고개가 정문 쪽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도착했나 보군요.”
정문 쪽으로 돌아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저기…여기가 소라게 아트센터 맞나요?”
순정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얼굴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보니 음…얼굴은 어려 보이지만…나머지는 전혀 어려 보이지 않는다.
‘은솔? 음…아니야 은솔 쌤 보다 더….’
순간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이제 같이 일할 사람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수는 없는 법.
“인사하시죠. 이쪽은 피현득 작가님. 저희 소라게 아트센터의 첫 입주 작가십니다. 그리고…이쪽은 오봉순 편집자님. 센터 내에 상주하시면서 편집을 맡아 주실 분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피현득과 오봉순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그러자.
“핫!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소라게 아트센터에서 일하게 된 교정교열 편집자 오봉순이라고 합니다!”
오봉순이 활기찬 어조로 피현득에게 인사한다.
그런데?
이 사람 왜 말이 없어?
시선을 돌려 피현득을 보자.
“…….”
멍한 눈으로 오봉순을 바라보고 있는 피현득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피현득의 프로필이 머리에 그려진다.
피현득. 나이 30살. 5년 차 학원 강사. 연애 경력은…….
전무(全無).
남중, 남고 테크트리에 대학교 때는 알바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진성 모태(母胎) 솔로(solo)가 바로 그였다.
하지만 전에 이야기를 나눠 봤을 때 분명.
‘연애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일단 소설로 승부를 볼 겁니다.’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했었는데?
“작가님?”
내가 살짝 그를 부르자 그제서야.
“아…네? 하하? 처…처음 뵙겠습니다. 피…피현득이라고 합니다.”
그가 고장 난 로봇처럼 인사를 한다.
‘그런 거 신경 안 쓰기는 무슨. 보아하니 이미 정신줄 놨구만.’
나는 피현득과 오봉순에게 보이지 않게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녀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괜찮은 편집자 한 명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그저께 글로비언에서 이어진 대표와 내기 아닌 내기를 한 이후. 그와 간단한 담소를 나누면서 내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네? 혹시 그 작품 쓴 사람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그런 거라면 굳이 다른 사람 찾아보지 마시고 저희 회사 사람들이랑 한번 해 보시죠? 저희가 보통 사이도 아니고 그 정도는 도와드려야죠.’
물론 그동안 내게 글로비언에서 책을 쓰면서 만난 편집자들도 제법 괜찮긴 했지만.
‘사람이란 원래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소홀한 법이지.’
어찌 됐건 그들은 글로비언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 글로비언이라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피현득의 작품에 자사에 작품만큼 심혈을 기울일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뭐 이런 일로 신세 지는 것도 달갑지 않으니까.’
그러니 차라리 경력 좋은 프리랜서를 구하는 게 나았다.
‘평판이 중요한 사람들이니 편집에 소홀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
“대표님! 그럼 지금은 피현득 작가님 한 분만 편집하는 건가요?”
내 눈앞에 있는 여성. 오봉순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흠…그런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분명 기왕이면.
‘아, 통조림 잘하시는 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었는데 그녀는 아무리 봐도…….
”피 작가님! 잘 부탁드려요!“
누군가를 쥐 잡듯 잡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하지만.
그 걱정은 모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 * *
며칠 뒤.
“@#$&@#$@??”
밖이 살짝 소란스러워 센터장실 문을 살짝 열고 무슨 일인지 살펴 보았다.
그러자.
“피 작가님! 지금 뭐 하세요?”
“헉. 커피 한 잔만 마시려고요.”
“흐음…그래요? 제가 가져다드릴 테니까 어서 쓰세요.”
“아니 그래도 벌써 5고 째인데…좀 쉬어도….”
“놉! 아직 5고 째인 거죠. 완벽한 작품은 없지만 완벽에 가까운 작품은 있는 거니까 더 열심히 쓰셔야죠. 어제 저랑 열심히 쓰기로 약속하셨잖아요.”
보아하니 피현득 작가가 집필실 밖에 나왔다가 오봉순 편집자에게 딱 걸린 것 같았다.
“에휴…이러다가 죽겠어요.”
피현득이 죽는 시늉을 하며 오봉순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자극하려 했지만.
“다년간의 경험상 사람은 이 정도에 안 죽는답니다. 단 죽을 만큼 좋은 작품이 나올 뿐이죠.”
성악설을 신봉하는 듯 단호한 오봉순의 말에 피현득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신경질이라도 한번 진하게 부리며 화를 낼 법한 상황이었지만.
“피 작가님. 휴식시간까지 앞으로 2시간 더 남았으니까 좀 더 힘내세요. 오늘은 제가 맛있는 거 해 드릴게요.”
적절히 흘러나온 오봉순이 목소리에.
“지…진짜요?”
피현득의 표정이 녹아내린다.
“그럼요. 그러니까 2시간만 더 파이팅 하세요. 아셨죠?”
그리고 나선 뭐. 밭 가는 황소처럼 오봉순에게 이끌려 집필실 안으로 들어간다.
“…….”
저 모습을 보자 이어진 대표가 내게.
‘통조림이요? 코끼리라도 통조림 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소개해 드리죠.’
라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 기억났다.
음…저 정도의 릴링(Reeling) 실력이라면 코끼리는 물론 흰긴수염고래나 브라키오사우르스도 통조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진 대표한테 나중에 고맙다고 해야겠구만.’
아무튼. 오봉순의 밀착 마크와 피현득의 분발 그리고 중요한 부분마다 조금씩 흘리는 나의 조언 덕분에 생각보다 진도가 빠르게 나가고 있었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다른 문학상들의 대상을 점쳐 볼 수 있지만.
큰 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
가장 큰 사냥감인 정상(頂上) 문학상 하나만을 바라보고 원고를 투고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상 10개를 받는 것보다 정상 문학상 하나를 받는 게 더 효과가 크니까.’
그리고 피현득이라는 보석은 누구나 다 살 수 있는 그런 보석이 아닌, 아무도 살 수 없는 그런 가치를 지닌 보석이 되어야 하니까.
자 이제 정상 문학상 원고 제출 마감까지 앞으로 1주일. 그 안에 모든 승부가 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연마한 보석이 과연 얼마만큼의 파란을 일으킬 것인가 지켜보는 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