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60
160
160화 소라게에서 아침을 (3)
찰칵-
차에서 내린 박연서가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頂上) 문학상 시상식장 → 2F 대강당.]정상문학상의 시상식장을 알리는 입간판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랜만이네.”
그녀가 나지막히 읊조리며 고개를 들자, 붉은 벽돌로 지어진 정상문학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頂上) 문학관.
서울 종로구 통인동 154-XX번지. 정상 작가의 생가터에 자리한 건물로,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작가 정상(頂上)을 기리고자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만들어진 이곳애는 전시실, 북카페, 강당, 도서 공간는 물론 정상 작가에 관련된 자료, 구상 노트, 상장, 생전에 발표했던 원고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다.
“5년 만인가?”
박연서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서촌으로 데이트를 나온 연인, 수학여행을 나온 것이 분명한 학생들 그리고 그녀 자신처럼 홀로 문학관에 찾아온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바뀌었구나.”
그녀는 30년 전, 자신이 정상(頂上) 문학상을 수상했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1990년 정상(頂上) 문학상. 대상 박연서]문학관 입구부터 본관까지 수없이 흩날리던 플래카드와 게시판 위에 붙어있던 화려한 벽보들의 모습이 아스라이 눈에 보이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한♡자영] [서귀포 고등학교 3학년 8반 파이팅!] [애인 급구 010-XXXX-5038]게시판이 있던 그 자리에 놓인 작은 칠판. 켜켜이 쌓인 사람들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휴….”
박연서는 사람들의 흔적을 손으로 쓸며, 천천히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오전 11시]시상식이 시작하기까지 아직 1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낼 만한 시간.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로 그녀에게 충격을 선사한 작가이자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 있는 작가. 피현득이 정상(頂上)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상(頂上) 문학상.
35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학상. 그 긴 역사만큼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학상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이상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상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이 상을 수상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으니까.‘
그러니 그녀가 피현득을 만나기 위해서는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 사람들이 거의 없는 시간을 노려야만 했다.
’그때가 아니면 말 몇 마디 나누기도 힘들겠지.‘
하지만…….
“…….”
시상식장에 들어선 순간.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제35회 정상(頂上) 문학상 시상식]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시상식장 안은 이미 작가, 출판 관계자, 기자 등, 글밥 먹고사는 사람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 양반들이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어?’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거 큰일인데….’
사실 시상식이라는 것이 말이 좋아 시상식이지 수상자와 그 가족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선배님 OO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와 줘서 고마워 내가 OO상 할 때 꼭 갈게.’
‘그럼 저야 감사하죠.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서로 자리를 채워 주는 품앗이로서의 성격이 더 컸다.
‘이빨 빠진 좌석만큼 슬픈 것도 없는 법이지.’
그러니 시상식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아주 늦지 않게 와서 자리를 빛내 주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끼리 뒤풀이를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흐음….”
뭐 요즘처럼 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가는 시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시상식을 찾았다는 것 자체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이 많은 사람들 중 과연 누가 피현득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애초 계획대로였다면 몇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피현득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
‘이건 많아도 너무 많잖아.’
그러나 방법은 있었다.
그녀가 알아보지 못한다면 알만한 사람을 찾으면 되는 것이니까
‘문학상 담당자라면 대상 수상자 얼굴 정도는 알고 있겠지.’
박연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곧 시상식장 안쪽에 있는 담당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그런데…뭔가 이상했다.
“정환아 언제 오냐?”
“네…이제 좀 있으면 도착한다고 하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에이 십 분 전에도 그랬잖아?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전화해 봐.”
“…선생님…아까 전화 한 지 이제 10분 정도 밖에….”
”허허 궁금하니까 그러지, 내가 책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만 보니…….
‘신경승, 박봉신, 이위채….’
그녀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이들. 소위 원로 작가라는 칭해지는 이들 세 명이 문학상 담당자를 에워싼 채 그를 들들 볶고 있었다.
‘어휴, 저 진상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딱 그 꼴이네.’
박연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째 나이가 들어도 바뀌지를 않냐.’
일반인들은 원로 작가라고 하면 뭔가 탈속한 신선의 모습을 떠올리곤 하는 모양이지만…….
‘대부분 위장이지.’
사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 바로 작가, 그것도 원로 작가들이었다.
그러니 서른 초반의 담당자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저리 쩔쩔매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으이구. 하여튼 작가들 망신 다 시킨다니까.’
박연서는 이마를 찡그리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성격상 저런 모습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기도 했고, 또 그녀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선 담당자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나이 처먹고 아주 잘하는 짓들이다. 잘하는 짓들이야. 아니 왜 일 때문에 바쁜 사람을 못살게 굴고 있어?”
그러자.
“어, 어? 이게 누구야? 박 작가?”
“웬일이야? 원래 이런데 안 나오잖아?”
“그러게? 한 오 년 만인가?”
담당자를 들들 볶고 있던 이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그녀가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았던 만큼. 그녀의 등장이 무척이나 의외였던 것 같다.
그러니 담당자가 한숨을 내쉬며 슬쩍 물러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박연서를 바라보고 있겠지.
박연서는 담당자가 뒤로 물러나며 바라보며, 일부로 목소리를 높였다.
“웬일은 무슨. 그냥 이번에 시간이 나서 한번 온 거지.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있기에 젊은 사람을 그렇게 을러대?”
그러자 작가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작가, 신경승이 의뭉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긴, 오랜만에 대물 한번 낚아 보려고 그러는 거지.”
“대물?”
“이거 왜 그래? 박 작가도 이번에 심사 봤으면 알 거 아니야.”
신경승의 말을 들은 박연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묻자. 신경승이 짙은 웃음을 내보였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담당자에게 피현득에 대해 물었을 때.
‘다른 분들도 다 오신대요. 이번 시상식에…그 피현득 작가 때문에.’
그제서야 그녀는 작가들이 왜 담당자를 채근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정환이가 말했던 심사의원들이…이 노인네들인가 보구만….’
박연서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작가들을 바라보았다.
‘…채신없는 늙은이들인 줄만 알았는데…이제 보니 승냥이들이었어.’
아무래도 세 작가들 또한 그녀와 비슷한 생각으로 이 시간에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표정을 보니 박 작가도 비슷한 생각이었나 봐? 이야 그놈이 난 놈은 난 놈이야 천하의 박연서가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들다니. 하긴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놈 잘만 키우면 용(龍)이 될 놈이니까.”
신경승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너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듯한 표정. 공범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저 인간이….’
신경승의 표정을 본 박연서가 차가운 시선으로 신경승을 쳐다보았다.
문단 내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에만 혈안이 된 이들. 젊은 작가들의 재능에 업혀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자들에게 저런 시선을 받는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헛소리….”
때문에 그녀가 한마디 하려 입을 연 그 순간.
“아, 예. 작가님 지금 도착하셨다고요? 네네 그 길로 쭉 들어오시면 됩니다.”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담당자에게 향했다.
“뭐야? 혹시 걔?”
박봉신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묻자,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도착해서 막 올라오고 있다고….”
그러자 담당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이고, 전화할 곳이 있었는데 깜박했네.”
“어? 아, 나도 그러고 보니 사람들한테 인사를 안 했구먼.”
“…여기 화장실이 어디지?”
세 마리의 늙은 하이에나. 용을 낚으려는 낚시꾼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어휴,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더 꼴불견이 되어 가냐….”
그들을 바라보던 박연서의 입가에 쓴 웃음이 맺혔다.
잠깐이었지만 저런 자들과 드잡이질을 하려고 했었던 자신이 몹시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멈춰서 있을 수는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그녀 또한 피현덕을 만나러 이 자리에 온 것이었으니까.
‘음…나도 슬슬 움직이긴 해야 할 텐데.’
그러나 지금 막 올라온다는 연락을 받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피현득의 얼굴을 아는 것도 아니니만큼, 자칫 잘못하면 눈앞에서 피현득을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안전장치는…….
“정환이 너도 빨리 가 봐야 하지 않아? 저러다가 늙은이들이 사고라도 치면 큰일이잖아?”
바로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네? 아, 괜찮아요. 좀 천천히 가셔도 될 거에요.”
담당자는 전혀 급할 것 없다는 듯 여유를 부린다.
담당자의 이런 안일한 태도에 박연서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태도였으니까.
‘아니 그러다가 저 진상들한테 홀리면 어쩌려고.’
그녀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담당자에게 물었다.
“너…혹시 저 노인네들 믿는 거니?”
그러자.
“에이, 설마요. 그냥 제가 알아본 게 있어서 그런 거예요.”
담당자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했다. 저 세 진상을 믿지 못한다면 바로 달려가서 피현득을 커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박연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알아들을 수 있는 대답을 기대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뭘 알아 봤다는 거야?”
그러자 담당자가 볼을 긁적이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게…제가 알아보니까. 피현득 작가가 지금 소속된 것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거기가 좀 어마어마한 곳이라서…아마 먼저 간 세 분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피현득 작가 꿈쩍도 안 할 거예요”
“…저번엔 문하생 아니라면서? 혹시 출판사 소속이야?”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리곤 잠시 말을 삼키던 그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라게 아트 센터. 김준영이라는 사람이 대표로 있는 곳 소속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