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61
161
161화 소라게에서 아침을 (4)
“피 작가님. 긴장되세요?”
내가 묻자.
“아니요. 그냥…조금 신기해서요.”
피현득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오늘 자신이 정상 문학상 대상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원 강사 면접을 보고 있었으니 저런 표정을 지을 만도 했다.
아직까지 그에게는 작가라는 이름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테니까.
하지만.
“이젠 익숙해지셔야 할거에요.”
왜냐하면 이제부터 그가 받을 상은 정상(頂上) 문학상 보다 더 크고 무거운 상들일 테니까.
그런데?
우리가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피현득 작가?”
누군가 피현득의 이름을 불렀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자.
“이번에 쓴 사람 맞죠?”
부원장님 연배로 보이는 사람 셋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피현득이 아는 사람인가 싶어 그를 바라보았지만. 눈을 끔벅끔벅 뜨며 고개를 젓는 폼이 피현득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때.
“아!”
옆에 있던 오봉순이 뭔가 기억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지금 말씀하신 분은 신경승 작가님이고 그 옆에 계신 분들은 박봉신, 이위채 작가님이에요.”
나와 피현득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
피현득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록 그들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그들의 이름 자체는 그리 낯설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험 지문에서 솔찮게 나오는 이름들이니까.’
“아니 그런데 저분들이 왜?”
피현득이 낮은 목소리로 오봉순에게 물었다.
그러나.
“피 작가. 혼 좀 내려고요.”
대답은 영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대답을 한 사람은 바로 신경승. 피현득이 했던 질문의 당사자였다.
설마 당사자가 대답을 할 줄 몰랐었는 지 피현득이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신경승을 바라보았다.
“네? 제가 뭘 잘못한 거라도…?”
신경승이라는 사람이 가지는 이름이 제법 무겁기 때문일까. 피현득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하긴 튜토리얼에 보스몹이 나타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본 신경승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 사람아.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쓰면 어떡해. 이건 뭐 심사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으니 다른 작가들한테 미안해서 혼났잖아.”
음…뭐 나름대로 농담을 하려고 한 거 같기는 한데…….
“…하하…그러셨군요….”
“……하하.”
그리 효과는 없어 보였다.
신경승도 그걸 깨달았는지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농담을 받아 주지 않은 나를 쳐다본다.
“그런데 이쪽은?”
마치 ‘넌 누군데 웃지도 않니?’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라게 아트 센터의 대표 김준영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소라게 아트 센터?”
신경승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소라게 아트 센터가 개원한 지 이제 한 달. 소속되어 있는 작가라고는 피현득 한 사람뿐이었으니, 그가 알고 있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것이었다.
“피 작가님이 소속된 창작 공간입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마 모르실 겁니다.”
내가 담담하게 소라게 아트센터를 소개하자. 신경승이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대표’씩이나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그러셨구나. 그런데 음…김 대표님. 작가들끼리 진솔한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좋겠는데 혹시 괜찮을까요?”
그래서일까 신경승의 태도가 약간 정중해진 느낌이었다.
‘흐음, 그나저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겠다라…당사자만 괜찮다면 상관 없기는 한테?’
피현득을 의향을 살피기 위해 그를 바라보자. 작가들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 피현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작가들과의 대화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긴 지금 우리들 앞에 있는 세 사람은 피현득이 태어났을 무렵부터 문인 활동을 해 오던 이들.
그의 입장에서는 마치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소년이 지미 헨드릭스를 마주한 기분일 것이다.
게다가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들은…문단 내의 흐름을 주도하는, 문단권력의 중심에 가까운 자들.
그러니 그들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작가들이라면 피현득이 친분을 쌓아놔서 나쁠 건 없었다.
‘작품을 심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니까.’
생각을 마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시죠. 아직 시상식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요.”
그러자.
“고마워요. 그럼 잠깐 이야기 좀 할테니 쉬고들 있어요.”
신경승이 피현득을 데리고 시상식장 한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한 이십 분쯤 지났을까?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피 작가. 혼자 글 쓰는 거 힘들지 않아? 내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 한번 소개해 줄까?“
처음 얼마 동안은 문학이 어떻고 예술이 저렇고 하는 소리가 제법 나오는 듯하더니, 신경승이 자신과 자신의 제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창작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뒤부터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뒷전으로 내팽개쳐져 버렸다.
그러고 나니 남은 것이라곤.
“한번 가 봐. 나도 고 작가가 이야기한 곳 어딘지 아는데 정말 괜찮은 곳이니까.”
“좋은 기회야, 피 작가. 이런 기회 정말 흔치 않다? 고 작가가 피 작가를 정말 좋게 봤나 보네.”
피현득에 대한 노골적인 회유뿐이었다.
‘이 양반들이 이제 보니….’
그제서야 왜 그들이 피현득에게 접근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긴 눈이 제대로 박혀 있는 작가라면 피현득의 소설을 보고 ‘뻑’가는 게 당연할 테니까.
하지만.
‘과연 그게 통할지는 미지수지.’
사실 개인이나 대학교, 지자체에서 해 줄 수 있는 지원이라야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 끽해 봐야 창작 공간이나 창작지원금을 지원하는 정도?
물론 그것만으로도 밥벌이에 허덕이는 젊은 작가들은 솔깃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소라게 아트 센터의 케어를 경험해 본 피현득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걸 염두에 두기도 했고.’
그러니.
“감사한 말씀이지만…지금 있는 곳도 저한텐 과분한 곳이어서요.”
피현득으로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제안을 거절해 버릴 수밖에.
“아니 왜? 피 작가는 진짜 몸만 오면 된다니까? 다른 작가들은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곳인데, 허 참.”
“피 작가. 그냥 시설만이 아니야. 피 작가가 오케이만 하면 피 작가한테 도움을 줄 사람들도 소개 시켜 주고…”
예상치 못한 피현득의 대응에 약간 당황한 세 사람이, 피현득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열심히 입을 털어 보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지금 있는 곳에 만족해서요.”
피현득의 마음은 전역을 하루 앞둔 말년 병장마냥 단단했다.
‘전역이 코 앞인데 부사관 지원을 하겠어?’
그렇게 계속되는 회유에도 피현득이 흔들리지 않자.
“피 작가. 잘 생각해. 작가 인생 짧게 갈거 아니잖아?”
“그래. 어른들 조언 무시하다가 큰 코 다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고집 그만 부리고 우리 말 들어.”
“아니, 다 피 작가 잘 되라고 하는 소린데. 왜 말을 이렇게 못 알아듣나 쯧쯧.”
이젠 숫제 은근하게 협박을 하기 시작한다.
‘아니 나잇살께나 처먹은 양반들이 뭐하는 짓이야.’
풍문으로 작가들의 세계가 ‘닫힌 사회’나 다름 없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원로’라는 이름을 듣는 사람들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노답이구만.’
하지만 피현득으로서는 문단 내의 원로들을 함부로 하기 어려운 입장. 어쩔 수 없이 내가 일어나 처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난 문단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내가 막 피현득을 데려오기 위해 일어서려던 그 순간.
“나잇살 처먹고 뭐하는 짓거리들이야!”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나도 얼굴을 알고 있을 정도의 작가. 촌철살인의 칼럼으로 유명한 박연서 작가가 분노한 암호랑이 같은 표정으로, 노답 3작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박연서 작가의 서슬에 놀란 3작가가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니, 박 작가 미쳤어? 왜 갑자기 노망난 늙은이 마냥 소리를 쳐!”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망난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지 이 진상들아. 어떻게 나이 육칠십 먹고 새파랗게 어린 애 등 쳐먹으려고 발발거리고 있어, 응?”
박연서 작가는 눈썹하나 까딱이지 않고 으르렁거릴 뿐이다.
그러자 시상식장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3작가들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노인네들이 사고 치려고 하는데 박 작가님이 끼어들었나 봐.’
‘헐? 또? 나참 저 양반들 매년 이런 사고나 치니 날이 갈수록 떠나는 제자들이 많아지지.’
상황이 이쯤 되자.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정환아, 박 작가 몸 안 좋은 거 같은데 빨리 좀 모셔라.”
“허허, 내 참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네.”
그들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는 듯 주위 사람들을 보며 큰소리치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글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그간 좋든 싫든 3작가의 행태를 직간접적으로 봐 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쯧쯧…저 양반들 아직도 저러고 다니네.’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지.’
‘차라리 저 정성으로 글을 썼으면 노벨상이든 뭐든 탔었겠다.’
만년설처럼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박 작가. 이번에 아주 큰 실수 한 거야!”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시상식장 밖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그렇게 트러블 메이커들이 사라지고 나자 곧 시상식장에 평화가 찾아왔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잔뜩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피현득도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 그럼 이제부터 2020년 정상(頂上) 문학상 시상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께서는….”
시상식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잠시 후.
“2020년 정상(頂上) 문학상 대상… 피현득!”
사회자가 피현득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시상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현득이 흥분으로 얼룩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나이 서른 살. 생애 첫 대상을 손에 쥔 그의 얼굴 가득 웃음이 깃들고, 그는 눈물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톡톡-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슬쩍 돌아보니.
“김준영 대표라고 했죠?”
아까 성난 호랑이 3작가들을 을러대던 박연서 작가가 언제 그런 모습을 보였냐는 듯, 교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까 슬쩍 들었는데 지금 피 자가가 김 대표 회사에 머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정확하게는 소라게 아트 센터라고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있죠.”
“흐음, 그래요? 그럼 언제 한번 찾아가 봐도 될까요?”
보아하니 그녀도 아까 그 세 명처럼 피현득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음…아까 3작가들의 진상을 보고 난 뒤라 피현득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약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물론입니다. 작가님이시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박연서 정도의 작가라면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 정도의 공신력 있는 사람이 소라게 아트 센터에 먼저 찾아온다는 것만으로도, 소라게 아트 센터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잘하면 역으로 낚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박연서라는 노회한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쉽게 물지는 않겠지만……,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나는 슬쩍 웃으며 시상대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물지 않고선 못 배길 만한 미끼. 피현득이 우는 듯 웃는 표정으로 소감을 말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박연서에게 명함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꼭 한번 찾아오시죠. 아마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