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62
162
162화 보석 상인(相引) (1)
통조림.
일본어 칸즈메(통조림 かんづめ)에서 유래한 말로 마감이 다가와도 원고를 제출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작가들을 특정 장소에 가둬 글을 쓰게 하거나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근래에 들어 생긴 행위 같지만. 사실 멀게는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구약성서의 번역을 위해 72명의 유대인 번역가를 데려와 파로스 섬에 가둬 놓은 일부터.
가깝게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들이나 매니지먼트에 안에 갇혀 버린 웹소설, 웹툰 작가들의 이야기들까지.
통조림이라는 행위 자체는 동서양, 남녀노소,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타닥타닥타닥-
소라게 아트 센터 제 1 편집실에서도 한 사내가 통조림을 당하고 있었다.
타닥타닥타닥타닥타닥-
벌써 보름째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이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사람.
쓰고 있는 안경에 땀이 맺혀 새하얀 결정이 생기도록 열심히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피현득.
5년 차 국어 강사 출신 소설가이자 올해 정상(頂上)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였다.
“으….”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피현득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왜냐하면 오늘만 해도 벌써 9시간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키보드를 던져 버리고 집필실에 쓰러져 뒹굴거리고 싶었지만.
‘휴…내 업보지.’
그는 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작가님! 10분 넘게 키보드 소리가 안 들리던데…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봉순 씨…그게 아니라…어깨가 좀 아파서….’
‘이런…많이 아프신가요? 그럼 마사지기 좀 이용하고 하시겠어요? 아니면 병원으로?’
‘아…아니에요. 지금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집필실 주변 어딘가에 그가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귀신처럼 나타나 그를 닦달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휴…귀는 또 얼마나 밝은지….’
사실 편집자가 작가를 통조림하기 시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작가가 마감의 압박을 못 이겨 탈출을 한 전적이 있거나, 아니면 연재 경험 부족이나 게으름 때문에 시간 조절에 실패하는 일이 잦거나.
‘아니면 둘 다인 경우도 있지.’
피현득의 경우는 이 중 후자에 가까웠다.
피현득이 정상(頂上) 문학상을 수상 이후.
‘자아까니임! 아니 일주일 동안 5000자 밖에 못 쓰셨다고요오?!’
‘아…그건 제가 원래 글을 빨리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럴리가요! 분명 작업 때만 해도 하루에 5000 자씩은 꼬박꼬박 쓰시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요!’
‘그때는…그래도 미리 뼈대를 잡아 놨으니까요.’
‘그렇다고는 해도 일주일에 5000자는 정말…안 되겠어요. 이런 식이라면 올해 안에 단행본 마무리는 꿈도 꾸지 못할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고 안 나오는 글을 나오게 할 수는 없는 거 아닐까요?’
‘다 방법이 있답니다. 오늘은 일단 기다려 주세요.’
그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소설 집필을 회피하고 있었을 때.
오봉순이 웃는 얼굴로.
‘후후후, 작가님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셨죠. 오늘부터 통조림이에요. 지갑이랑 휴대폰을 한 달 뒤에 돌려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피현득을 통조림 시켜 버린 것이었으니까.
물론 처음부터 그가 순순히 통조림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도 생활이 있는 사람인데!’
하지만.
‘…작가님이 정 싫으시다면 안 할게요.’
시무룩하게 변하는 오봉순의 표정에.
‘나 도와주겠다는 사람한테 뭐 하는 짓이냐….’
그는 금세 무너져 버렸다.
‘에휴, 알았어요. 한 달 동안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못하게 꼭 잡아 주세요.”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몸을 배의 기둥의 묶은 오딧세우스처럼 순순히 집필실 안으로 들어갔다.
‘휴, 그래 한 달 정도야 참을 수 있겠지.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잖아. 피현득 넌 할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어.’
그러나 그 다짐도 잠시뿐. 벌써 이 주째 계속되는 감금 상황에…….
‘나가고 싶다. 시원한 생맥주에 치킨 뜯고 싶다. 치킨 뜯다가 골뱅이 소면 시켜서 소주 안주로 먹고 싶다. 그리고 나서 다음 날 점심 때쯤 일어나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다. 그리고 나서 또….’
그는 ‘탈주닌자’가 되기 직전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8시 30분]인간이 가장 잔인해진다는 시간이 도래한 순간.
툭-
그동안 그의 욕망을 가로막고 있던 사슬이 끊어져 버렸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춘 그는, 떨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문질렀다.
그리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난 여기서 나가겠어!’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한 잔…차가운 맥주 한 잔만 마실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다!’
무인 정권 시기에 자유를 꿈꾸었던 만적(萬積)이 이러했을까?
자리에서 일어난 피현득의 표정은 무척 결연해 보였다.
‘내 기필코 나가고 말리라.’
그러나.
‘딱 하루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찰칵-
피현득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집필실 문을 연 그때.
“작가님!”
그는 심장이 떨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오봉순의 크고 아름다운…눈동자.
그것을 본 그 순간.
‘끝났다….’
그는 자신의 짧은 탈주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잠깐! 화장실 나온 거예요!”
피현득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변명이 튀어나왔다.
곧이어 찾아올 오봉순의 잔소리를 줄이려면 이 방법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네? 왜 그러세요?”
그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어…엉? 저 쉬고 있어서 오신 거 아니에요?”
내심 당황한 피현득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아닌데요? 전 그냥 치킨이랑 맥주 시켰으니까 같이 먹자고….”
오봉순이 발랄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순간.
“그…그랬어요? 에휴 난 또….”
피현득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맺힌다.
‘휴, 다행이다….’
이대로라면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맥주에 치킨이라니! 그럼 나갈 필요도 없는 거잖아!’
피현득이 바라마지 않던 것들 또한 모두 충족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그럼 전 글 쓰고 있을게요! 치킨 도착하면 말해 주세요!”
“네, 작가님! 그럼 파이팅이에요!”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 둘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이 잘 어울리네요.”
그 사람은 바로 박연서. 올해로 30년째 글을 쓰고 있는 원로작가이자 피현득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지난 2주간 우리 센터에 출퇴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
‘흐음, 그래요? 그럼 언제 한번 찾아가 봐도 될까요?’
정상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그녀가 내게 물었을 때.
‘…작가님이시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꼭 한번 찾아오시죠. 아마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녀의 방문요청을 흔쾌히 수락했었다.
그녀가 우리 센터에 옴으로서 우리 센터에 대한 공신력이 높아질 것은 물론, 원로작가인 박연서의 서포트 또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저돌적이었다.
‘그럼 내일 바로 찾아가 봐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시상식 바로 다음 날 소라게 아트 센터에 찾아온 그녀는, 그날부터 지난 2주간 거의 매일 센터에 출퇴근하며 피현득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를 해 주고 있었다.
본디 작품 집필이란 수 없는 퇴고와의 전쟁인 만큼, 박연서 정도의 안목과 실력을 갖춘 서포터의 코멘트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뭐 그녀의 이름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긴 했지만.’
나는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대로 오봉순과 피현득의 케미는 제법, 아니 생각보다 더 괜찮아 보였으니까.
“네. 사실 피 작가 쪽이 좀 일방적으로 끌려 가는 면이 있기는 한데…원래 그런 스타일이 어울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더 다행인 것 같아요. 원래 편집자랑 작가가 안 맞는 경우도 많은데…저 둘은 정말…이런 말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정말 알콩달콩해 보여서….”
그렇게 잠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박연서가 고개를 슬쩍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김 대표님. 그런데 요즘 피 작가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엄청나게 높아졌던데…혹시 피 작가도 알고 있나요?”
피현득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흠….’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가 물어본 문제는…약간 민감한 문제였으니까.
사실 얼마 전 시상식이 끝난 후.
[2020년 정상(頂上) 문학상 수상 작품집]수상작들을 엮은 작품상 수록집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 올해는 과연?]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대한 소비자의 외면, 과연 이번에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을까? 정상 문학상의 마지막 도전]처음 책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시장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 우리나라에 있는 문학상 수상집 중 최고 수준의 판매량을 보이는 책이긴 했지만.
최근 몇 년간 수상 작품들의 퀄리티가 하락하면서 판매량 또한 급전직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 연일 계속되는 호평] [작가들이 뽑은 2020년 최고의 소설 ] [이번 달 베스트셀러 1위는 ]부정적이던 반응이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문학상 자체의 네임벨류와 수록 작품 자체의 충실성 그리고…….
[별점 ★★★★★ : 이 작품은 현대인의 꿈(夢)이다. 매일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싶다.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진심으로 일독(一讀)을 권한다.]박연서 작가의 극찬까지 더해지면서.
[댓글 : 으아니! 박연서가 별을 5개나 주다니! 이건 산다!] [댓글 : 이게 꿈이여 생시여 박연서 사전에 별 5개는 없다 아니었어? 아무리 괜찮은 작품은 4개나 4개 반이 끝이었잖아] [댓글 : 선발대입니다. 이 작품 최고니까 꼭 읽어 보세요. 후폭풍이 일주일 넘게 갑니다.]초반 우려가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관심을 받는 작품의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품의 작가가 시장에서 받는 대우가 천양지차인 만큼, 작가라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니요. 일단 나중에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지금은 집필에 집중해야하는 상황이니까요.”
나는 그 사실을 피현득에게 아직 알려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반짝 인기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 내가 단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잘 생각하셨어요. 저도 그것 때문에 이야기를 꺼낸 거였거든요.”
박연서 작가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난 30년간 많은 작품, 작가들을 경험해 왔던 만큼, 그녀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았다.
“…….”
그 후로 잠시 그녀와 피현득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그 작가란 양반이 자기 권위로 제자를….”
“양심 없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언제가 한번은….”
그녀에게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어느 정도 남아 있었던 문단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런데 김 대표님 혹시 출판사 쪽에서 연락 온 건 없었나요?”
박연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보아하니 출판사와의 전속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피현득의 원고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본궤도에 오른 만큼, 이제 슬슬 전속계약과 출판을 준비해야 하긴 했다.
그러나.
“사실 연락이 많이 오긴 했습니다. 그런데…별로 마음에 드는 곳은 없더라고요.”
문제는 마음에 드는 출판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믿음사, 문학마을, 돌이불 등 문학 출판으로 유명한 출판사들에서 연락이 오긴 했었지만, 그들은 피현득이라는 작가를 그저 어느 정도 괜찮은 작품을 쓰는 유망주 정도로만 생각할 뿐. 그 이상의 지원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피현득 작가의 진실한 가치를 알고 있는 나로선 그들과 계약을 맺을 수 없었다.
“그래도 너무 늦기 전에 출판사 쪽과 컨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본적인 것들은 오봉순 편집자가 봐 준다고 하더라도 그 외에 다한 사항들은…아무래도 전문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물론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박연서 같은 사람이야 지금처럼 걱정스러운 얼굴을 할 뿐이지만.
“괜찮습니다.”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곧 연락이 올 만한 곳이 있거든요.”
제 가치에 맞는 가격을 주고 피현득을 데려가려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락 올 곳이요?”
“네. 그러니까 그곳이….”
그런데 그때.
띠링-
문자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잠시 박연서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글로비언 이어진 : 김준영 대표님. 혹시 지금 전화 통화 가능하신가요? 괜찮으시면…]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호랑이가 연락을 취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