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7
17
017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
교무실.
수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교무실 문이 쉴 새 없이 열렸다가 닫히고, 사방에서 스테이플러 소리가 들려왔다.
자료를 프린트 하려는 강사들로 복합기 앞은 이미 만원.
그 와중에 자료를 잘못 뽑은 강사들은 초조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못한 사람들은 옆 교무실로 달려 나갔다.
그 외에도 자신의 자료가 먼저 뽑히기를 기도하는 사람.
프린트를 포기하고 판서로 모든 것을 커버하려는 사람.
빔 프로젝터 자료를 미친 듯이 만들고 있는 사람들로 교무실 안은 분주했다.
나야 뭐 일찌감치 출근해서 필요한 자료들을 뽑아 놨으니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지만.
“토너 떨어졌어요! 토너! 토너! 그거 하얗게 찍히잖아! 확인 좀 해 가면서 해요! 아, 미치겠네. 빨리 해야 하는데.”
지각을 한 김원용 같은 이들은 복합기 앞에서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한편,
“······.”
나는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그 모습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 학원에 있을 때부터 아침 출근이 일상화되어 있던 터라, 오히려 오후 늦게 출근하는 것이 더 어색했다.
어떤 사람들은 괜한 짓을 한다고 만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수업 준비를 일찍 마쳐 놓고 학원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나보다 먼저 출근한 송민지가 사다 준 커피.
아까 복합기에 에러가 뜬 것을 처리해 주었더니 고맙다며 굳이 사다 준 것.
종이가 걸린 걸 치워 준 대가로는 다소 과하지만, 뭐 준다는데?
아무튼.
이제 나도 마무리 준비를 해야 했다. 아무리 수업 자료를 미리 프린트해 놨다고 해도, 수업 시작 전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필수였으니까.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소홀하게 여기는 순간부터 강사로서의 능력은 점점 떨어지게 마련.
그런데 그때.
스슥-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고개를 돌리자 쭈뼛거리고 있는 남학생 하나가 서 있었다.
어제 수업 때 맨 구석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던 녀석.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허세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학생이었다.
‘박수한’
머릿속으로 어제 확인했던 학생들의 인적사항이 스쳐 지나간다.
다른 교과는 잘하는데 유독 영어와 국어에서 약세를 보이는 녀석이었다.
수업 태도는 불량했었는데 의외로 점수가 잘 나와서 기억에 남았었다.
“왜?”
내가 묻자, 녀석은 짐짓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 아뇨, 그냥 뭐. 학생이 교무실 올 수도 있죠.”
땀이나 좀 닦고 이야기해라.
애써 여유로워 보이려는 녀석의 표정이 웃겼지만 굳이 내색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뭐 다행이네. 할 거 하렴. 중요한 일 아니면 수업시간에 이야기하고.”
그러자 녀석의 입이 달싹거렸다. 나올 듯 나오지 않는 녀석의 말.
하지만 듣지 않아도 알겠다.
어차피 어제 처음 본 사이니 이 녀석이 날 찾아올 일은 단 하나밖에 없다.
“왜? 성적 올리고 싶어?”
박수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치, 이걸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
“그럼 말하면 되지. 왜 쩔쩔매고 있어?”
그런데 내 말을 들은 녀석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뭔가 치욕적인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녀석은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 당연하죠. 근데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그런 건.”
아까와 달리 꽤나 반항적인 어조.
방금 전까지 쭈뼛거렸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의 변화였다.
하지만 뭐 녀석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는 나한테는 우스워 보일 뿐이다.
“그래서 알아서 하시겠다?”
반항적으로 변해 가던 녀석의 눈에 갈등의 빛이 서렸다.
“···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관종.
녀석이 걸려 있는 질병의 병명.
중2병의 진화 형태로 고등학교 때 발병하면 약도 없는 무서운 질병이다.
실제로는 특이한 사람이 아닌데 특이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을 뿐이라 이렇게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럼 왜 굳이 선생님 찾아온 건데?”
내가 장난스럽게 묻자, 녀석은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사실은···”
* * *
“자 봐. 너희 학교 국어 쌤 쪽지 시험에 목숨 걸지? 이런 사람 흔하진 않은데 그래도 맞춰줘야지 어쩌겠냐. 그러니까···”
수업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속성으로 알려 주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알려 주는 키워드 위주로 필기는 성실하게 하고 또···”
허세 가득한 녀석이라 평소에 필기도 잘 안 하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기타 문제가 되는 학습법을 코치해 준다.
족집게로 문제를 집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학습법을 체득시키는 것 역시도 중요하니까.
‘물고기도 주고 물고기 잡는 법도 알려 주는 격이랄까.’
그래도 타고난 머리가 있는 편이라 이해 자체는 어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가 남아 있다.
“그리고 너희 지금 수업하는 부분이 어문규범이니까 쪽지시험 전날 그냥 내가 알려 주는 부분 고대로 외워. 괜히 허세 부리지 말고.”
“아, 쌤 허세 아니라고요! 진짜 제가 맘만 먹으면, 이 학원에 있는 사람들 다···!”
녀석은 내 입에서 ‘허세’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다 뭐?”
내가 웃으며 묻자 녀석은 시선을 피하면서 중얼거렸다.
“애초에 쌤이 우리 학교 쌤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쪽지시험 문제까지 어떻게···”
하기야 뭐, 녀석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의심이긴 했다.
하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의심가면 하질 말든가. 근데 너희 국어 쌤 몽둥이 괜찮겠냐? 네 발바닥 때리다가 부러지겠다.”
“···아니 왜 몽둥이 걱정을 해요.”
“그러니까 허세 그만 부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나 해.”
녀석이 고개를 떨궜다.
주마다 쪽지시험을 봐서 틀린 개수대로 맞는다니.
박수한의 학교 국어 선생이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교육자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특유의 허세 때문에 필기 한번 해 본 적 없는 이 녀석에겐 쥐약과도 같은 처방이겠지.
녀석이 나를 찾아온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임시방편이나마 몽둥이를 피할 방법을 상담하기 위해서. 적어도 피하지 못한다면 답답한 속을 풀어놓기라도 하고 싶어서.
학원 강사인 나라면 함께 학교 교사를 욕해 줄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학원에서도 녀석의 편은 딱히 없었던 듯하다.
“이야 우리 수한이 공부도 하네? 김 쌤 대단한데요?”
자기 자리로 돌아오던 김원용이 수한이를 보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놀라움과 칭찬의 말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의 양팔에는 따끈따끈한 종이들이 가득하다.
다른 강사들의 애타는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안색이다.
“아니, 영어도 좀 그렇게 해 봐. 수업시간마다 꾸벅꾸벅 인사만 하니 나도 민망하다 야.”
“······.”
김원용의 말을 들은 수한의 입이 굳게 닫힌다.
아무리 수학, 과학이 먹어주는 이과라고는 하지만 언어 영역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어는 두말할 것도 없고.
그러고 보니 김원용이 수한의 영어 수업을 맡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녀석의 처참한 점수도.
‘30점대’
찍어도 나올 점수대이긴 했다.
녀석의 국어 점수도 문제이긴 했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영어였다. 적어도 국어는 평균보다 약간 낮은 정도였을 뿐이니까.
“그래 오늘은 몇 대나 맞았어?”
김원용의 말을 들은 수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몇 대나 맞았어?
몇 점이나 맞았어가 아니라?
들어보니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학생들의 시험 성적에 따라 체벌을 가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암암리에 ‘체벌감수 서약서’ 같은 걸 받는 학교가 있다고 하더니··· 수한이네 학교가 그런 학교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렇다면 녀석은 오늘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시험 몫의 매까지 맞고 왔다는 말이 된다.
어쩐지 허세 빼면 시체인 녀석이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했다.
사람이라면 하루에 두 번씩 벌어지는 매질에 견디기 어려웠을 테니까. 녀석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왜 말하기 부끄러워? 그러게 빠따 맞기 싫으면 선생님 수업도 좀 열심히 듣고 그래 인마.”
하지만 박수한을 나무라는 김원용의 모습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상대방의 약점을 살살 긁어내는 말투였으니까.
더군다나 학생의 성적 문제에서 강사가 도망치려는 태도라니. 굉장히 비겁한 모습이었다.
“······.”
박수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바로 옆자리인 김원용도 그런 박수한의 모습을 보았을 텐데 아무런 가책이 없는 표정이다.
오히려 프린트한 자료를 스테이플러로 찍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금 뭐 하세요?”
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김원용의 표정이 일변했다.
‘어? 갑자기 이게 왜 이래?’ 라는 표정,
박수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네? 아니 전 수한이가 영어 공부도 좀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거였죠. 이 쌤 말을 좀 웃기게 하시네요? 제가 뭐 잘못 했습니까? 누가 보면 제가 뭐 실수라도 한 줄···”
김원용은 순간적이나마 움찔했던 것에 발끈했는지 꽤 공격적으로 말한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줄 뿐이다.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수업 종 쳤는데 안 들어가셔도 되나 해서요.”
그러자, 김원용은 재빨리 벽시계를 들여다본다.
아차, 수업 시간이 조금 지나 버렸다.
파티션 곳곳에서 쿡쿡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김원용은 제풀에 찔린 것이 민망한지 허겁지겁 자료를 챙겨 사라졌다.
나 역시 굳어 있는 박수한에게 손짓하며 자료를 챙겼다.
“끝나고 따로 좀 와 봐라.”
* * *
수업이 끝난 후.
교실 안에는 나와 박수한 둘 만이 남아있다.
평소, 숨 쉬는 것에도 허세를 집어넣는다던 녀석. 하지만 오늘 녀석에게선 단 한 줌의 허세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 준비됐습니다.”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있을 뿐.
처음으로 교무실에서 자기편을 들어준 사람을 향한 불길일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편을 들어준 것은 아니다만, 늘 무시 받고 소외당했던 사춘기 여린 감성에게는 조금 의미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뭐 어쨌거나, 선생으로선 열의를 보이는 학생이 마냥 기꺼울 수밖에.
그래 오늘 너를 한 줌의 재로 만들어 주마.
불타는 눈동자로 칠판을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그 동안 녀석을 오해했던 같았다.
단순히 허세만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오늘 같은 진지함도 보여 줄 수 있는 녀석이었다.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필을 들었다.
오늘따라 분필이 손끝에 딱 달라붙는 느낌이다.
탁-
첫 착수.
“페이지 25. 두 번째 줄. 표준어 사정 원칙 제1장 제1항. 표준어란 한 나라의 공용어로···”
네 말에 따라 녀석의 눈이 책을 읽어 나간다.
녀석과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최대한 빠르게 내일 쪽지 시험에 나올 만한 부분을 체크해야 한다.
“···표준어의 원칙 중에 ‘교양 있는 사람들’과 ‘현대’ 그리고 ‘서울말’에 방점 찍어 놔. 이 부분이 의미하는 바는 순서대로 표준어의 ‘계층적’, ‘시대적’ 그리고 ‘지역적’ 기준이니까 알아두고···”
녀석의 눈이 연신 칠판과 책을 오간다.
나는 철저하게 족집게, 키워드 위주로만 읽어 내린다. 전부 미래에서 보고 왔던 시험문제들이니만큼 주저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몽둥이를 피할 수 있는 커트라인. 딱 70% 정도의 적중률을 보여 주마.
“일단 로마자 표기법을 외래어 표기법이랑 절대 헷갈리면 안 돼. 단순한 문젠데 의외로 많이 틀리니까 확실하게 구분하고 간다. 로마자 표기법은 누구한테 필요한 체계다? 바로 외국인 화자들이···”
가장 단순한 것부터 가장 복잡한 것까지. 키워드 위주로 단 시간 내에 정리해 나간다.
나도 내 앞의 녀석도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으니까.
탁-
“이제 국어는 끝.”
마지막 글자를 쓰고 분필을 칠판에 부딪쳤다. 부서진 분필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녀석이 고개를 든다.
“에에? 벌써요? 고작 이거만 외우면 된다구요?”
고작 이거냐며 허세를 부리는 녀석, 하지만 녀석의 팔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
“뭐, 더 할 수 있긴 한데. 그 팔로 가능 하겠어?
나는 녀석을 도발하듯 말을 걸었다. 그러자 녀석이 씩 웃는다.
녀석의 이마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당연하죠.”
기다렸던 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에게 이미 국어는 충분하다.
대신.
나는 국어책 속에 끼워 놓았던 프린트를 뽑아 들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내게 있어서도 시험과도 같은, 그리고 미래를 향한 첫 발자국이기도 한 한 장짜리 단출한 A4용지.
“쌤. 그건 뭐예요?”
녀석이 궁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입을 열었다.
“Transplanetary 태양에게서 가장 먼. Dwarf Star 난쟁이별. Sole 유일한. Gleamed 희미하게 빛나다.”
이내.
박수한의 눈이 크게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