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71
171
171화 오즈의 마법사 (2)
끼익-
차에서 내린다.
뜨겁게 내리 쪼이는 초가을의 햇살 아래로.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충북혁신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마치 게임 ’심즈‘의 그것처럼 계획화된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 건물의 입구로 들어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안으로 들어서자 대리석으로 치장된 바닥과 눈이 눈부신 조명. 원목으로 마감된 벽면 등. 5성급 호텔 정도는 싸대기를 후려칠 정도로 세련된 로비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 세금이…여기로 향하고 있구나….’
절로 위장이 쓰려지는 풍경이었다.
수익이 많아질수록 세금도 높아진다고, 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제법 많은 액수의 세금을 납부했었으니까.
‘세금이 좀 합리적으로 쓰여야 할 텐데.’
그렇게 잠시 내가 우리나라 세금의 활용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그때.
“김준영 대표님?”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김준영 대표님 맞으신가요?”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하나가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평가원 측에서 보낸 사람인 것 같았다.
하긴 건물의 넓이를 보니 안내하는 사람이 없으면 꽤나 헤맬 것 같긴 했으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제가 김준영입니다.”
그러자.
“아 역시, 김 대표님이 맞으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 김진명입니다.”
그가 환한 미소를 띠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바로 명함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 1팀 김진명 대리]흐음, 대리라…….
공무원으로 치면 7~8급 정도 되는 대우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직위로만 보면 평가원 측에서 나름 성의를 보인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슬쩍 봐도 손님 마중 나올 정도의 짬밥은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명함을 갈무리하며 김 대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표정을 확인한 김진명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그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뒤.
김 대리의 안내를 받아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앞서 걷던 김진명 대리가 회의실 문에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자.
“아, 오셨군요!”
마치 ’나는 공기업 간부다‘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과 체형, 옷차림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나는 김진명 대리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차현철이라고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들이 내게 악수를 청하며 순서대로 내게 명함을 건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 차현철 부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 이OO 과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본부 백OO 과장].
.
그렇게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후, 회의실 내 인원들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정면에 앉은 사내가 내게 말을 건네왔다.
“이렇게 회사로 직접 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요즘 내부 규제가 좀 강화되어서 저희가 직접 찾아 뵙기가 힘들어져서요.”
해태처럼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선이 굵은 얼굴 상. 많이 웃는 사람 특유의 구부러진 입꼬리까지.
불화(佛畫) 속에 나오는 포대화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름이 아마…차현철이라고 했었지?’
음…사실 생김새만으로 사람을 판별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었지만.
‘왜 사람은 40대 이후에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으니까.’
얼굴만 봐서는 제법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아무렴 이제부터 같이 일할 사람이 ‘천룡인’처럼 생긴 것보단 포대화상처럼 생긴 게 훨씬 더 나을 테니까.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뭐 오래간만에 드라이브 한 셈 치면 되니까요.”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가끔 충북까지 찾아오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그 뒤로 간단한 차를 마시며 평가원 사람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학원이 대치동에 있으시죠? 저도 예전에 대치동에서 공부를….’
‘저희 애도 이번에 새로운 학원을 좀 알아보고 있는 데 혹시….’
‘하하, 소라게 아카데미가 처음 생겼을 때는 정말 놀랐는데….’
그러다 잠시 후.
탁-
“김 대표님.”
부장이 자신이 마시던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순간,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며 웃고 있던 사람들이 부장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역시 사람이 위치가 있다 보니 무게가 잡히는구만.’
보아하니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차를 한 잔 마시며 그를 바라보자, 차진철 부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 저희가 이번에 대표님을 이렇게 모시게 된 건…대표님께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아니,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섭니다.”
“네. 아마도 그럴 거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제 생각에는 지금 하실 제안이 왠지 수능 출제에 관련된 이야기인 것 같은데…혹시 맞나요?”
“아……. 역시, 대표님께서도 짐작하신 모습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제가 대표님께 드릴 제안이 바로 그겁니다.”
“흐음,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아무래도 저는 공교육 쪽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텐데요?”
“뭐…사실 대표님 말씀대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좀 있긴 했습니다. 아무래도…그동안 전례가 없었던 일이니까요. 하지만 대표님. 저희라고 언제나 똑같을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곤 잠시 숨을 돌린 뒤 천천히 말을 잇는다.
“게다가…대표님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이번 신경승 사건을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응? 무슨 소리지?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그 있잖습니까. 신경승 작가 때문에 수험생들이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던 때. 이렇게 이야기하기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사실 그땐 저희도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아무도 사건이 그렇게 커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아, 어쩐지 그때 정부 쪽 인사들이 너무 조용하다 했더니만…이제 보니 교육부나 평가원도 사태 파악이 늦었던 것 같다.
‘그러니 한참이 지나도 성명 발표가 안 나왔겠지.’
내가 입을 다물고 반응이 없자, 최현철 부장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그런 상황에 대표님이 딱 나타나셔서 진화를 해 주시니 저희로선 정말 감사할 수밖에 없었죠. 저희 대신 초기 대응을 해 주신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곤 바로 내게 제안 던진다.
“그러니까 김 대표님. 올해 수능에 저희와 함께 일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는 대표님께서 검토위원직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거였나?
아무래도 내가 착각을 한 것 같다.
그동안은 영락없이 출제위원직을 제안할 줄 알았으니까.
검수위원.
다른 말로는 검토위원.
326명에 달하는 수능 출제 관련 인원 중 74명이라는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이들이었다.
뭐 일반적으로 외부에 많이 알려지는 이들은 문제를 직접 출제하는 출제의원들이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것들이 검토위원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흐음….’
나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 자리라면 내가 전에 했던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수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검토위원은 출제위원들이 출제한 문제가 수능에 적합한지 아닌지 판별하는 이들이었으니까.
‘부담감도 덜 하겠지.’
하지만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평가원 측에게 왜 내게 하필 검토의원직을 제안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음……. 그런데 왜 하필 저에게 검수위원직을?”
“…사실 이번 수능 출제 문제들 중에 상당수가 신경승 사태에 관련된 이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지라…거기다 전부터 내외적으로 그런 새로운 인사들을 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도 했고요.”
“아니, 벌써 문제 출제가 시작됐나요?”
“그게…사실 올해 수능에는 만전을 기하고자….”
아무래도 올해는 평가원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러니 평년 같으면 슬슬 출제위원들의 명단을 정리할 시기에 벌써 출제를 시작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올해는 그게 독으로 작용한 것 같구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면 말이 됐으니까.
“그럼 기간은 얼마나 되는 거죠?”
“그게…지금부터 수능 날까지니까 딱 두 달 정도 되겠네요.”
역시나…….
“음…두 달이라….”
내가 잠시 고민하듯 말을 흐리자.
“대표님.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사교육 업계 최초입니다, 최초. 그 타이틀이 얼마나 클지 잘 아시잖습니까. 그러니까….”
부장이 애가 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흠, 글쎄 어떻게 할까?
나는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의 검토.
분명 출제의원의 위상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분명 좋은 자리였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자리를 생각해 보면,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은 자들 중에서도 최고라 일컬어지는 자들이 제안 받는 것이 바로 수능 출제, 검토위원 자리였으니까.
그러니 이번에 내가 이 제의를 수락한다면, 학원 강사로는 사상 최초로 수능의 문턱을 넘는 것. 대한민국 사교육계에 있는 그 누구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타이틀을 단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음, 이렇게만 보면 분명 이 기회를 잡아야 할 것 같긴 하지만…그 기간을 듣자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놈의 시간이 문제지. 영락없이 두 달을 갇혀 있어야만 하니….’
사실 지금처럼 항창 상승세를 타고 있을 때의 두 달의 가치는 그렇지 못할 때의 20년의 가치와 맞먹었다.
그러니 섣불리 ‘OK’사인을 보낼 수도 없었다.
‘분명 후회할 거란 말이지.’
그렇게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왜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내가 너무 한정적인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시간이 아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선택지를 고르면 그만 아닌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아 잘 됐군요. 그럼 바로 일정을 말씀드릴….”
부장이 반색을 하며 내 말을 받았다.
그는 내가 장고 끝에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장내의 분위기가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신 역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내가 그들에게 제안한 것은 제3의 선택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