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73
173
173화 사략학원(私掠學院) (1)
드륵-
정갈한 새김의 창호문을 열자.
“오셨습니까?”
익숙한 목소리와 약간은 낯선 얼굴. 한국교육평가원 내부에 자리한 저승사자 독고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마주선 독고경과 짧게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테이블 위에 음식들이 세팅되었다.
화려하고 풍성한 상차림. 마치 꽃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갖춤새의 음식들을 바라보자, 눈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자, 일단 식사 먼저 하시죠.”
독고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맞은 편을 바라보자, 독고경이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그가 나를 초대한 것이니만큼, 내가 젓가락을 들길 전까진 식사를 시작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오늘, 독고경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녁이나 같이 하시는 게 어떤가 해서요. 혹시 선약이 있으신가요?’
‘아니, 그런건 아닙니다만. 저녁이요?’
‘네. 제법 ‘중요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어서요. 아마 들어보시면 대표님께서도 솔깃하실겁니다.“
그는 내게 저녁 식사 자리를 제안했다.
뭐 굳이 나가지 않아도 괜찮을 만한 제안이었지만. 처음 겪는 정부 쪽 인사라는 것이 살짝 궁금하기도 했던 데다가.
’그런데 그 ’중요한‘ 메뉴라는 게 어떤 건가요?’
‘하하, 그건 식사가 끝난 연후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말한 그 ’중요한’ 메뉴라는 것이 하기도 한 터라 그의 식사 초대를 받아들였다.
“음…혹시 그 ‘중요한 메뉴’라는 게 음식은 아니겠죠?”
내가 묻자.
“네 물론이죠. ‘중요한 메뉴’는 식사가 끝난 다음에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역시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막상 젓가락을 들자, 고민이 시작 됐다.
왜냐하면.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내 앞에 있는 것들 중 과연 어느 것을 처음으로 먹어야 할지 고민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제일 먼저 먹어야 할까?
새초롬한 모습의 지짐, 아니 담박해 보이는 너비아니? 그도 아니면 텁텁한 입가를 씻어 줄 시원한 나박김치?
그러다 결국…옥돌 위에 올라가 있는 전복 쪽으로 눈이 향했다.
은은한 조명을 받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전복찜.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이 오늘따라 유독 맛있게 보였다.
나는 젓가락을 움직여 전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 내렸다.
그러자 혀에 닿는 전복의 매끄러운 살결. 콧속으로 파고드는 새파란 바다의 향기. 아직 음식을 삼키기 전인데도, 벌써 음식을 삼킨 것 같은 착각을 들게 만드는 맛이 혀를 휘감았다.
“어떠신가요? 제 단골집 중에서도 제일 아끼는 곳입니다.”
그가 묻자, 나는 전복의 섬유를 하나하나 만끽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선하네요.”
해산물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아주 간단한 조리만으로 맛의 본위를 이끌어 낸 요리사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러자.
“다행이군요. 자 그럼 다른 음식도 한번 드셔 보시죠. 아마 다른 것들도 방금 드신 전복보다 못하진 않을 겁니다.”
독고경 감사가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단골집이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 마냥 저렇게 경계 없는 웃음을 보이진 않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젓가락을 움직여 나갔다.
그리고 독고경 감사도 나를 따라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뒤, 나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독고경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식사는 잘하셨나요?”
“네,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한 것 같습니다.”
진심이었다. 그간 이런 저런 비즈니스로 이런 자리에 자주 나가긴 했지만 이만큼이나 입맛에 맞는 집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하하하, 다행이네요. 제 나이 또래 분이랑 같이 온 적은 처음이라 약간 긴장했었거든요.”
“이런 곳에 자주 오시나 봅니다?”
“가끔 어르신들 모시고 오곤 합니다. 아무래도 조용한 곳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흐음, 어르신이라. 말 그대로 아버지와 벗이 되는 어른이나 그 이상 되는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그 ’어르신‘들이 맞겠지. 독고경은 ’큰집‘ 쪽 사람이니까.’
그렇게 잠시 내가 독고경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자, 그럼 식사도 다 했으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 볼까요?”
독고경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가 전화로 말했던 ‘중요한 메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살긋하게 피어오른 복숭아꽃 차의 증기를 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김 대표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까. 우리나라 사교육…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멈춘 채 독고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양반 지금 학원 강사에게 지금 사교육이 어떤지 묻는 거야?
마음만 같아서는 바로 ‘자아비판이라도 하라는 겁니까?’라는 말을 내뱉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막 식사를 끝내고 대화를 시작한 시점. 첫 대화부터 공격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는 어이가 없는 마음을 슬며시 내리누르며 천천히 그의 물음에 답했다.
“글쎄요. 좀 포괄적인 질문이라 대답하기 좀 곤란하네요. 음 굳이 대답해 본다면 사교육을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겠죠?”
그러자 독고경이 ‘아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그럼 질문을 바꿔서 말씀 드려보죠. 김 대표님. 아니 김 선생님. 솔직히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 규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뭐 두 번째 질문이라고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독고경의 얼굴을 보니 마치 나라면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캐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가 말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교육(私敎育).
공교육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고려시대 최충의 문헌공도(文憲公徒)서부터 현재 내가 이끌고 있는 소라게 학원에 이르는, 국가가 관리하는 기관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말하는 투를 들어보니 독고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보다 지엽적인 의미의 사교육, 그러니까 1990년대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된 시기와 맞물려 활성화되기 시작한 사교육 시장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뭐…다들 알다시피.
[사교육 시장규모 2018년 기준 16조 8000억원] [우리나라 사교육비 OECD 평균 4배] [고등학생 자녀 월평균 사교육비 51만원] [1인당 사교육비 역대 최고치…오락가락 교육정책에 부담 가중]‘학부모와 학생에게는 지옥, 강사에게는 기회의 땅이지.’
그것은 내가 강사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사교육 제도의 모습은 굉장히 기형적이니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인구수 대비로 봤을 때 정상적인 규모가 아니긴 합니다.”
그러자.
“맞습니다. 인구대비로 봤을 때 현재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 규모는 정말 어이없는 규모라고밖에 볼 수 없죠. 아니 우리나라 보다 인구수가 24배 많은 중국이 130조 원 규모의 사교육 시장으로 세계 1위 사교육 대국으로 불리고 있는 판국에…허 참 16조 8000억원이라니요.”
독고경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 특히 사교육 시장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흠 그런데 이 사람…그 16조 8000억원 중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건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잠시 독고경을 바라보고 있자, 흥분을 가라앉힌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잇는다.
“휴,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사교육 시장 상황을 단순히 ‘학부모의 교육열’ 때문에 벌어진 일로 치부한 다는 점입니다. 진실은…그런 게 아닌데 말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과 같은 사교육 시장의 과열 양상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고 지금처럼 현역 중, 고딩들이 방과후에도 방학에도 학원에 가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5공화국 이후 과외 금지 조치가 풀리고 IMF사태 이후 사회안전망 붕괴 되면서 ‘공부 못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팽배. 거기에 정부의 무대책 교육 정책들의 더해지면서 현재의 사교육 열풍으로 비화된 것이었다.
그러니 독고경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사교육 문제는 강철로 만든 고르기어스의 매듭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러니 사교육 시장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한 상황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 사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사교육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하니 사교육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쉽게 착각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교육 시장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5공 때처럼 사교육 시장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지겠지. 5공 때도 권력자들은 그래 왔으니까.’
그러니 현재 비대화된 사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공교육의 정상화, 개혁이었다.
아니 말마따나 사교육 때문에 공교육이 생기는 게 아니라 공교육 때문에 사교육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러나.
[단기처방, 한국교육 망친다…원로들, 작심비판] [송OO ‘무너진 공교육, 혁명 수준으로 바꿔야’] [美선 AI 이용 맞춤교육…한국은 서당수준]내가 봤을 때 우리나라 공교육 제도의 개혁은 요원하기만 하다.
전인교육과 입시위주의 교육,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는 반신불수의 교육 정책.
구태에 매인 교사들의 경직된 수업 방식과 떨어지는 수업 능력으로 인한 추가적인 수업의 수요.
그리고 학생들의 숫자에 비해 지나치게 적인 교사의 숫자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독고경이 바라는 사교육 시장 개혁은 이뤄지지 않을 테니까.
“규제로 해결될 만한 문제가 아니죠. 그래서는 안 되는 문제이기도 하구요. 그러니 말씀하신 대로 사교육 시장의 비대화를 해결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공교육 제도의 개혁이 우선되어야만 할 겁니다.”
내가 말하자.
“그렇다면 바람직한 교육제도가 마련된다면 사교육 시장의 비대화, 교육 불평등 같은 요소가 사라질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독고경이 눈을 번뜩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허허, 이 사람 왜 아까부터 계속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그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식견은 있을 텐데?’
뭔가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나 또한 우리나라 공교육 제도가 정상적 방향으로 움직이길 바라는 사람 중에 하나인 만큼, 천천히 내 생각을 내보였다.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를 들이밀어도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이상 부유층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그러니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사교육 자체에 대한 무조건 적인 규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사교육에 대한 저소득층의 접근성을 높이거나, 사교육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정책이 필요하겠죠. 뭐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미 실타래가 엉키고 또 엉킨 이상 그 모든 걸 단번에 잘라 내기란 힘든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겠죠.”
어라? 약간은 발끈할 것이라 생각했던 독고경의 표정이 마치 마네키네코 (복을 부르는 고양이 まねきねこ)처럼 변해 있었다.
‘뭐지?’
그렇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이상한 질문을 연신 던진 것은 마치 ‘훼이크다!’라고 말하는 듯, 그의 표정은 일견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선생님 혹시 사략해적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응?
순간,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략해적(私掠海賊).
특정 국가로부터 특허장을 받은 개인이 선박을 무장시켜 적성국가의 상선을 노략질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어렸을 적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단어였다.
뭐 나 또한 소싯적에 PC게임 좀 해 본 몸이니만큼 당연히 알고 있는 단어였지만…….
아니 왜 지금까지 입에서 불을 뿜으며 사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사략해적이 대한 이야기를 꺼내?
나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물론.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러자.
“그럼 잘 됐군요.”
독고경이 짙은 웃음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바로.
“김 선생님. 혹시 저희의 사략학원이 되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