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74
174
174화 사략학원(私掠學院) (2)
달칵-
다기와 테이블이 마주치는 소리.
나는 고요히 피어오르는 차 안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략학원이요?”
그러자 내 앞에 있는 사내. 독고경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의, 그러니까 정부 측의 사략 학원으로 활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곤 기대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음…보아하니 방금 전 전까지 독고경이 내게 했던 어리석은 질문들.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사교육 시장이 어떤 것 같냐느니, 사교육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측의 규제가 필요한 것 아니냐느니, 하는 말을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날 떠 보려는 것이었겠지.’
그런데…가만히 생각해 보니 좀 어이가 없었다.
의도야 어쨌든 방금 전 독고경의 한 행동은, 어리석음을 가장해 나를 기만한 행위였으니까.
흠…마음만 같아선 지금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정부측 인사니까.’
그래도 일단은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옳았다.
감정에 휘둘려 결정을 내리는 것 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었으니까.
‘뭐 그전에 방금 전 독고경의 행위에 대한 확실한 사과 정도는 받아야 하겠지만.’
만약 그 정도도 못하겠다고 고개를 빳빳하게 든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일어난다.’
나는 기대 어린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독고경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말씀하셨던 ‘특별한’ 메뉴가 바로 이거였습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상당히 실망스럽네요.”
그러자 독고경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한 일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잔뜩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선생님의 본심을 한 번쯤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불쾌하셨다면 제가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사과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마음이 누그러졌다.
적어도 그가 자신의 체면과 위신 때문에 잘못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 못한 사람이랑은 절대 일을 같이 할 수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뭐 됐습니다. 어차피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요. 그나저나 그 사략학원이란 것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 데…아무래도 이름만 들어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러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독고경이 반색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 예. 이번에 저희 측에서 사교육 문제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 도입하기로 한 정책입니다. 마치 사략해적처럼 국가의 면장을 받아 사교육 시장의 과열을 막는 행위를 해 주시는 분들을 일컫는 말이죠. 뭐 정식으로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리곤 자세하게 ‘사략학원’이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략학원(私掠學院).
그것은 해국력 부족한 국가의 정부가 사략면장을 발부함으로서 자국 선박에게 경쟁 국가의 선박을 나포, 침몰 시킬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과 비슷한 정책으로, 정부측에서 특정학원을 공인.
[학부모 등골 휘는 학원비…월 평균 160만원 달해] [학원비 담합 어제 오늘 일 아니다…관련 규제 미비] [공정위, 학원비 담합등 불공정행위 조사…실효성은?]고액의 학원비를 담합하거나.
[외고 시험지 유출 전말…교사와 학원장이 짜고 범행] [시험지 유출 의사 아들은 왜 불법 과외학원에 갔을까] [‘유출된 시험지 풀어 준 의혹’ 무등록 학원 조사]편법을 동원, 서민들의 고통과 박탈감을 심화시키는 자들. 그리고.
[인천시 S학원 원장 ‘낮에는 자상한 원장님, 밤에는 무서운 야수’] [강남 대형학원 원장들 대부분은 ‘고액 체납’ 상태] [유명 강사 A모씨 ‘미성년자 성매매’로 불구속 입건]뛰어난 교수능력으로 자신의 부도덕을 가리고 있는 자들을 시장에서 제거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예전 사략해적이 그러했듯 상대방 함선에게 포격을 한다거나 백병전을 벌이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대가 달라지면 시대에 맞는 해결책이 있는 법.
‘학원비 고정을 통한 학원비 상승률 조절.’
‘지역,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초, 중, 고 인터넷 강의 시스템 구축.’
‘공교육 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학습 능률 향상.’
교육 시장에 맞춘 무기를 통해 사교육 시장을 비대하게 만든 주범들을 고사시키는 것이, 이 정책의 킬링 포인트였다.
흐음…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학원비 고정이야 애초에 우리 학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고, 인터넷 강의 시스템 구축도…소라게 아카데미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가이드라인을 잡아 봤었으니까.
그러니.
‘정부 측 캠페인을 통한 광고 효과’
‘인터넷 강의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모든 제반사항 제공’
‘정책 참여 정도에 따른 절세 혜택.’
‘교육 불평등 해소에 사용되던 정부 자금의 지원.’
정부가 제시한 반대급부만을 생각해 보면…제법 솔깃한 일이었다.
‘정부’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화가 같이 움직인다는 것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고경의 제안을 넙죽 받아들일 건 아니지만.’
나는 독고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흐음…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그러자.
“네? 어떤 부분이…?”
차를 마시고 있던 독고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 말을 받았다.
갑작스런 나의 말에 살짝 놀란 듯, 그의 손을 타고 찻물 몇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다른 건 아니고…방금 전에 ‘공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요. 물론 취지는 이해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부 측에서 공교육 시스템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도 사교육의 공교육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판국에 정부가 나서서 사교육을 공교육의 판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말을 한다면, 안 그래도 눈에 불을 켠채 나나 정부를 물어뜯을 궁리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빌미를 주는 것이었으니까.
‘그 공인받는 학원이 어떻게 선정되느냐도 중요한 문제니…,’
그런데?
“아 그 부분 말씀이시군요. 걱정하지 마시죠. 안 그래도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내 말을 들은 독고경은 단 한 치의 걱정도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 뿐이다.
‘뭐지? 이 사람? 혹시 뭐가 위험한지 모르는 건가?’
“…실례가 안 된다면 그 방법이란 게 뭔지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내가 묻자,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해당 기업의 공개적인 경쟁을 통한 선정. 그리고 그를 통한 민간 자본의 공영화. 그것이 저희의 방법입니다.”
응?
민간 자본의 공영화?
순간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믿지 못하겠다는 모습이시군요. 하지만 믿으셔야 할 겁니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거든요.”
“…그게 가능한 겁니까? 아니 공공기업의 민영화에 매번 듣던 거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처음이라….”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그 방법이 제일 부작용이 적은 방법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뭐 정부 내에서도 우려를 표하시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이번에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 교육을 바로 잡지 않으면 앞으로는 영영 기회가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선생님…부디 저희와 함께 같은 길을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 * *
한참 동안의 침묵.
독고경의 제안을 들은 후 나는 심장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감성으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라는 사람은 이미 수십 수백 명의 학원, 강사, 직원들을 책임지고 있는 몸. 한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위험한 길을 택할 수는 없었다.
‘일단 대답은 보류하고 나중에….’
그런데 그때.
“선생님. 공교육의 몰락과 사교육 시장의 지나친 성장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식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리던 독고경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담담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그의 눈빛은 마치 끓어오르기 직전의 물처럼, 뜨거운 열기를 담고 있었다.
음, 뭐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해 온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물어온 이상 대답을 하는 게 예의였다.
“빈부격차의 계승 그리고 그를 통한 양극화의 심화겠죠. 아무래도 공교육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위로 올라가는 사람은 줄어들 테니까요.”
그러자 독고경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 그 약하디 약한 사다리마저 다른 이들이 차지해 버렸다는 것. 때문에 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아들, 아들의 아들까지. 그 위쪽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리곤 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하하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 것쯤은 뛰어난 능력과 노오오오력만 있으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라고요.”
냉소적인 그의 표정을 보니, 그가 평소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어떠했는지가 어렴풋하게나마 보이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런 자들도 있었다.
소위 ‘성공’했다는 자들의 삶을 증거로 나머지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삶을 모독하고 짓밟는 이들.
그 자신조차도 성공의 한 귀퉁이조차 밟지 못했으면서도 다른 이들에게는 성공을, 노오오오력을 강요하는 자들.
나 또한 그런 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었다.
그리고 독고경 그 또한 나만큼이나 그런 자들을 많이 보아왔던 것 같았다.
그러니.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이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나라는 지옥이 되 버릴 거라는 걸.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최소한 쓰러진 사다리라도 세워 보자는 게 저와 정부의 생각입니다. 일단 사다리만 잘 세울 수 있으면 굳건한 다리 또한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것이겠지.
“흠…….”
나는 불타오르는 듯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국에 있는 267만 4,227명의 초등학생, 138만 1,334명의 중학생, 166만 9,699명 고등학생들이 왜 밤낮 없이 코피를 쏟아 가며 공부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대학에 가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문적 성취? 자아의 실현? 그도 아니면 이 썩어빠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퍽이나.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아니 우리 사회가 진실로 대학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좋은’ 직장, 그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직장을 가지기 위한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전한 ‘우골탑’ 연평균 등록금 1,000만원 이상 사립대 19곳] [대학 등록금 우골탑(牛骨塔) 넘어 인골탑(人骨塔)] [국립대도 ‘인골탑’ 졸업하려면 등골 휘어]죽은 소의 뼈를 쌓아 올리는 것도 모자라, 부모의 뼈를 그 골수까지 바득바득 빨아 저 하늘 위에 토해 내고 있는 거겠지.
몹시도 슬픈 일이지만.
그래야만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만 남들보다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즉, 현대 입시 교육의 뱃속에는 물질만능주의, 천민자본주의 망령이 자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사교육 제도, 나아가 경쟁적인 입시 교육을 타파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선 먼저.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 더 나아가 돈을 적게 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인생, 인격이 가치 없는 것으로 판별되지 않는 사회, 인생의 목적과 가치는 입신출세로 환산할 수 없다는 사회.
그런 사회에 대한…전사회적인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인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모두가 다 경쟁 위주의 입시 제도를 옹호하고, 남들보다 위에 올라서는 것을 ‘바른’인간의 상이라 생각하는 사회가 계속된다면?
그렇다면…성공에 집착하는 이들이 사회의 대다수인 이상, 진정한 공교육의 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좋은’ 직장이라는 곳은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일 테니까.
그런데?
“김준영 선생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사람. 지금 그런 사회를 한번 바꿔 보자고 말하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