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75
175
175화 사략학원(私掠學院) (3)
타닥타닥-
쉴 새 없이 손가락이 움직인다.
그러자.
마치 쇠를 벼려지듯 조금씩 조금씩, 두서없는 정보에 불과했던 것들이 일정한 형식을 갖춘 자료로 변모해 나가기 시작.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가이드 자료(언어영역)1회]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가이드 자료(수리영역)1회]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가이드 자료(외국어영역)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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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크고 아름다운 무기로 화했다.
‘좋아.’
나는 만들어진 자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소라게 아카데미, 스쿨, 학원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 나의 비밀병기였다.
이제 남은 것은 강사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자료의 강의를 진행할 수 있게 만드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준영 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자료들을 USB 내에 저장한 후,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에잇!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썹을 살짝 찌푸린 김연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요 며칠간 격조했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그랬으니 저렇게 불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것이겠지.’
사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라 시간이 좀 없긴 했다.
소라게 아카데미, 소라게 스쿨, 소라게 학원의 각 분점들. 그 모든 것들을 케어하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만 했으니까.
“쳇, 너무해. 언젠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더니 요즘엔 강의만 하고 슥 사라지기나 하고!”
나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 그동안 좀 바빴어.”
그러자.
“흥, 그렇게 바쁜 사람이 어제 다연(茶宴)에 다녀와요?”
녀석이 쌜쭉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순간, 나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나와 독고경이 다연에서 저녁 식사를 한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응? 너 내가 다연 다녀온 줄 어떻게 알았어?”
내가 묻자.
“훗. 저한테 믿을 만한 정보통이 있거든요. 어때요, 살 좀 떨리죠?”
녀석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집게손가락을 까딱이며 나를 바라본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당황한 모습을 보이길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뭐.
“어제 아버님도 다연(茶宴)에 오셨었니? 아쉽네, 인사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뻔하다면 뻔한 일이었다.
어제 저녁 식사에 나온 음식들을 보니 딱 연아네 아버님 취향을 저격하는 음식들이었으니까.
‘아마 사업 파트너랑 같이 오셨었겠지.’
김연아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비밀이야. 그래, 그건 그렇고 수능까지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어때? 떨리진 않아?”
순간, 김연아가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진짜 쌤! 수험생 앞에서 수능 이야기하기 있기에요 없기에요? 정말 너무해!”
그리곤 방방 뛰어 오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보아하니 내 옆구리를 잔혹하게 꼬집어 버리겠다는 의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녀석의 행동패턴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림도 없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녀석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으아 치사해! 반칙이야!”
녀석은 내 팔에 매달려 바동거릴 뿐이었다.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누가 선생님 놀리려고 하래? 자업자득이야.”
잠시 후.
“에고 죽겠다.”
제풀에 지친 김연아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강사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긴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가깝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동은 하지 못할 테니, 그들의 표정이 일견 이해가 갔다.
‘아무리 내가 탈권위를 지향한다고 해도…조금은 불편한 게 있겠지.’
나는 김연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어깨쯤 오는 키에 작은 얼굴. 흑백의 구분이 명확한 눈동자를 가진, 19세 소녀가 내 눈 안에 들어왔다.
녀석을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입에서 절로 탄성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녀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모든 강사들의 계륵, 학원가의 폭군이었으니까.
‘그땐 정말 장난 아니었지.’
하지만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언어영역 1등급] [외국어영역 1등급] [수리영역 1등급] [사회탐구영역 1등급]소라게 학원 내에서도 최상위 티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겠지.’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왜욤? 새삼 보니까 너무 귀엽고 예쁜 것 같아서요?”
녀석이 잔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녀석, 칭찬 좀 해 주려 했더니….’
아무래도 피지컬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으니. 말로써 나를 당황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백년은 이르다, 이 녀석아.’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 뿐이었다.
“너 이빨에 고춧가루 끼었다. 아까 떡볶이 먹었지?”
김연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으아! 쌤 진짜 매너 좀!”
그리곤 티 나지 않게 고춧가루를 제거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띵동- 띵동-
갑자기 메시지가 도착했다.
‘누구지?’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자.
[글로비언 이어진 : 김 대표님! 부탁하셨던 자료, 대표님 메일로 보내 놨습니다. 음, 혹시 몰라서 다른 자료들 사이에 숨겨 놨으니까 폴더 내에서 숨김 표시 해제하시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참, 파일 암호는 [2806***12]니까 혹시 더 필요하신 자료가 있으시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보내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그간 기다리고 있던 메시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 드디어!’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마음속으로 이어진 대표에게 감사를 표했다.
왜냐하면 내가 이번에 이어진 대표에게 부탁한 것이, 이어진 대표의 입장에서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일이니까.’
그러니 그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그가 보내준 자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해야만 했다.
‘좋아,’
나는 이어진 대표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송한 뒤, 바로 메일을 확인했다.
그러자.
[인물 프로필 – 독고경(2020년 기준)]내가 이어진 대표에게 부탁한 자료이자, 글로비언의 숨겨진 저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어진 대표가 보내준 자료를 다운 받으며 천천히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제.
‘김준영 선생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독고경이 내게 ‘사략학원’ 참여 여부를 물어봤을 때.
‘죄송합니다만 조금 더 생각해 본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잠시 유보했었다.
‘아니 왜….’
‘음, 분명 말씀하신 제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아무래도 조금 갑작스러워서….’
나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인 만큼, 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긴 했지만.
‘감정적으로 결정한 일은 틀림없이 실패하기 마련이다.’
-칭기즈칸-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앞날을 결정할 만큼 내 인생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도, 그렇다고 그 모든 위험을 차지하고 독고경의 제안을 수락할 만큼 독고경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휴,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죠. 그럼 생각이 정리되시면 바로 연락 주시는 겁니다.’
‘네. 그야 당연하죠. 그럼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꼭 연락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뒤로 나는 독고경과의 만남이 끝나자마자 독고경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님. 혹시 독고경이라는 이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독고경에 대한 정보를 통해 그가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인지, 그가 말했던 것들이 사실인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네? 독고경이요? 흐음…잠시 만요. 독고…독고라…아 혹시 평가원 특별 감사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아시는 군요.’
‘하하 아무래도 저희 같은 회사일수록 그런 정보에 민감해야 하니까요.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이신지?’
‘아, 이번에 그분이랑 만날 일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혹시 정보가 있으면 좀 보내 주실 수 있나요?’
‘아, 그게…음…다, 당연히 해 드려야죠!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최신 정보까지 전부 다 업데이트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어진 대표에게서 독고경에 대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이걸로…독고경의 제안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 지 판단해 볼 수 있겠지.’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이어진 대표가 보내준 자료를 클릭했다.
그러자 내 눈앞에 독고경에 대한 인적사항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나타났다.
이름 : 독고경.
출생 : 1984년 4월 23일. 인천광역시 중구 신생동 21-1.
현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27길 12.
가족관계 : 아버지 독고성(1990년 사망), 어머니 김혜란(1999년 사망), 동생 독고연.
학력 : 인천 신중 초등학교 졸, 신중 중학교 졸, 미추홀 고등학교 졸. 서율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베를린 자유대학교 정치학 석사.
경력 : 2018년 민주정의당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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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독고경의 프로필을 확인한 순간.
“허….”
내 입에서 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출생지가 인천광역시 중구? 거기다 부모님도…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을 혼자서 키웠다? 그런데 또 학력은 서율대 학사에 베를린 자유대 석사?’
‘독고경’이라는 이름 석 자에 붙어 있는 인적사항이란 게…….
‘이런 미친…조물주 이 XX야 제발 밸런스 패치 좀 하라고!’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휴….”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독고경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나니 엊그제 그가 왜 그렇게도 간절한 목소리로 말을 했던 것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긴 이 정도 환경에서 서율대 학사에 베를린 자유대학 석사를 딴 거라면 그럴 만하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없는 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아는 만큼.
독고경이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좌절을 겪었을지. 또 어떤 굴욕을 겪었을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독기를 품었을지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륵-
나는 천천히 프로필 속 독고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보다 두세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김준영 선생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진 속의 독고경이 나에게 묻는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이제 더 이상 대답을 회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천천히 생각을 정리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좋아 한번 해 보자.’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것.
전심전력으로 부딪쳐 보겠다는 것.
오래전 생각했었던 거대한 힘. 그것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
그것이다.
결심을 굳힌 나는 전화를 들고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그러자 곧.
[…네,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독고경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혀끝에 힘을 주었다.
그리곤 마치 도장을 찍듯 한 자 한 자 새겨 나갔다.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