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76
176
176화 사략학원(私掠學院) (4)
어두운 밤.
찰칵-
모두가 잠든 시간을 틈타 서재로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김용덕.
대형 입시 학원 [정명]의 원장이자, 올해로 5년째 지역 학원원장 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철컥-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서재 안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이 들어온 문의 잠금장치를 닫아건 뒤, 희미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 그곳에는…
‘늘 곁에 둔 듯 안전하게 보관하세요! 신의 방패 이지스 금고!’
성인 몸통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금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순간, 김용덕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흐흐흐.”
이것이야말로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의 사랑, 그의 행복…그의 믿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스러운 것. 오빠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는 첫사랑을 시작하는 소년처럼 발그레한 눈으로 금고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음 보자…비밀번호가 사, 이, 칠, 칠, 오, 육….”
먼저 12자리에 달하는 비밀번호를 누른 뒤, 양손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인식시켰다.
그러자.
[삐빅- 인증되었습니다-]딱딱한 목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금고의 문이 열리면서…….
금고 안에 있는 것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대충 봐도 수천 수억 단위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지폐 뭉치.
달러, 위안화, 엔화, 파운드, 유로화 같은 기축 통화들.
그리고 각종 채권증서와 증빙서류들까지.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들이 금고 안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바로…
[한국조폐공사 KOMOCO. FINE GOLD 999,9 1KG]스마트폰 사이즈의 번쩍이는 금속. 동서고금,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인류가 가장 귀하다고 여겨온 실물자산의 황제. 1kg에 4,380만원이라는 값어치를 지닌 귀한 몸.
황금이었다.
김용덕은 술에 취한 듯 몽롱한 눈으로 한국조폐공사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는 골드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혹시 떨어지기라도 할세라 조심스럽게 금고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번 달에는 얼마나 늘었을라나?’
그런데?
“에휴….”
금고에 있는 재화들을 밖으로 옮긴 뒤, 그 가치들을 헤아리던 김용덕의 입에서 별안간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6월 2,512,034,050원] [7월 2,532,056,150원] [8월 2,552,035,000원]재물이 모이는 속도를 보니, 이런 속도로는 60세 전까지 100억 모으기라는 그의 꿈이 요원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벌어서 어느 세월에 100억을 모아.’
물론 방법은 있었다.
그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지역 학원원장 협회에 압력을 행사해 학원비를 올려 버리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100억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빌어먹을 정부 놈들. 뭐 해 주는 것도 없이 맨날 규제만 해 대니….’
이번 정부 들어 강화된 규제들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물론, 다른 정권 때 같았으면 정부 측에서 규제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은근슬쩍 저질러 버렸을 테지만.
‘이번 놈들은 진짜로 해 버리는 놈들이니까.’
저번에 있었던 학원가 특별 조사로 미루어 보아, 이번 정부 놈들에게 걸리면 무조건 아웃이었다.
“휴…아니 내 학원 학원비를 내 맘대로 올리겠다는데 왜 지들이 나서서 간섭들이야.”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삶이 힘들어질수록.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질수록.
부모가 자식의 삶에 높은 기대를 가질수록.
사회의 경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쟁이 심화되면 학원비도 올라가지,’
그러니 이제 2년만 더 버티면, 아니 이번 정부의 레임덕이 올 때까지만 더 버티면, 그땐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생각대로 학원비를 책정할 수 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번 정부가 빡세게 규제했으니 다음 정부는 좀 풀어 주겠지.’
마치 새로이 왕좌를 차지한 젊은 숫사자가 전 왕의 새끼들을 모조리 물어 죽이듯, 다음 정부에서 전 정부의 정책들은 싹 다 물갈이해 버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 조금만 더 버티자.’
김용덕은 골드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곧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런데 그때.
따르릉- 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 시간에 어떤 놈이 전화질이야!’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김용덕이 허둥지둥 휴대폰을 찾았다.
그러자.
[정명학원 이덕윤 부원장]익숙한 이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김용덕의 얼굴이 팍 찌푸려졌다.
‘분명 이 시간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화를 씹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쫄보인 부원장이 이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분명 그렇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정도의 큰일이 생겼다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용덕은 한숨을 내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바로.
[죄송합니다. 원장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부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김용덕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저 그게…]“그게?”
[그게…음 그러니까…]하지만 부원장은 주저하는 어조로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순간,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후우…고혈압 조심해야지. 벌어 놓은 돈 쓰지도 못하고 가면 억울하니까.’
최근 혈압 조심하라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간신히 화를 가라앉혔다.
“그…그래 괜찮으니까 빨리 좀 말해 봐.”
[아, 네. 그게…저희 학원 옆에 빈 건물 있지 않았습니까?]빈 건물?
부원장의 말을 들은 김용덕이 빠르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자.
‘아…거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전에 지역 학원원장 협회에 반기를 들었다가 철저하게 몰락한 학원이 있던 곳이었다.
“그 전에 OO학원 있던 건물 말하는 거야?”
[네. 맞습니다.]“거기가 왜? 설마 거기 또 학원 들어온대?”
[네…]“그럼 협회 이름으로 공문 하나 보내놔. 언제 한번 인사나 오라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겠지.”
그런데?
[저…대표님…]“왜?”
[아무래도 그게…그…좀 힘들 것 같습니다]“뭐가 힘들다는 거야? 그냥 간단하게 양식 갖춰서 보내면 되는구만. 왜 이젠 그런 것도 못하겠어?”
[아니요. 당연히 할 수는 있죠. 그런데…그게 이번 학원은 좀 유명한 곳이라…]말끝을 흐리는 모습이 이름이 좀 있는 학원인 것 같았다.
음…가끔 이런 경우도 있긴 했다.
제법 규모가 큰 학원들의 분원 같은 경우.
‘저희가 인사를요? 왜요?’
본원의 위세를 등에 업고 지역 학원원장 협회를 우습게 보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요? 뭐 그럼 자알 버텨 보세요.’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도 강에서는 악어를 조심해야 하는 법.
그런 이들도 서너 달 버티다 보면 알아서 고개를 숙인 채 원장 협회에 가입하곤 했다.
‘지역 사회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부원장의 지금 같은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또한 김용덕과 함께 수많은 학원들을 겪어 왔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 웬만한 학원들이라면 이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도대체 어느 학원이길래 그렇게 걱정을 하는 거야?”
그러나.
[저 그게…이번에 들어오는 학원이 소라게 학원이라…]부원장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는 순간.
‘뭐? 소라게? 이런 미친….’
김용덕은 부원장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라게 학원’ 그곳은. 지난 3년간 알음알음 덩치를 키워온 학원이자.
인강 점유율 50%.
200여 개소에 달하는 전국 프랜차이즈 망.
서울 소재 명문대 합격자 다수 배출.
학생들의 성적 신장률 1위.
대치동 대표학원.
올해 들어 어마어마한 기록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학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용덕이 운영하고 있는 정명학원 또한 지역 내에서는 제법 이름이 있는 학원이긴 했지만, 소라게 학원의 위명에 비하면…
‘웰터급과 슈퍼헤비급의 차이지.’
김용덕은 자신의 손발이 저절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 오던 학원들과는 체급을 달리하는 상대라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간단히 체급 차이를 인정하고 물러나 버리면…….
‘정명학원도 소라게 앞에서는 뭐 별거 없네?’
‘그러게 평소에는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만….’
‘아니 이럴 거면 굳이 정명학원 원장이 회장을 할 필요가 있나? 그냥 소라게 분원 원장이 회장직 맡는 게 낫지?’
그가 지금껏 쌓아 올린 것들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그러고 보니까 정명학원도 깨끗하지는 않지 아마?’
역으로 잡아먹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강한 짐승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한 절미 고깃덩이로 전락하는 것이 바로 이 바닥이었으니까.
“괜찮아. 소라게 학원이라고 뭐 다르겠어? 일단 공문 보내보고 말 안 들으면 평소처럼 압박해 보자고. 정 안되면 단체로 수업료라도 인하하던가 하면 되니까.”
때문에 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목소리로 대응책을 제시했다.
부원장 또한 그의 살점을 노리는 상어들 중 하나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원장님 그 방법도 좀…]그가 애써 내놓은 대응에 부원장이 또 딴지를 놓는다?
상황이 이쯤 되자.
“아 또 왜!”
그의 입에서 절로 높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부원장의 말을 듣는 순간, 애써 잡아 놓았던 평정심이 다시금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제가 들어보니까 소라게 학원의 수업료가 저희 학원 수업료의 반 정도라고…]부원장의 말을 듣는 순간.
“뭐어? 그게 말이 돼?”
김용덕은 화를 내는 것도 잊은 채 그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부원장의 말은 충격적이었으니까.
‘허허….’
현재 정명학원의 학원비는 언수외탐을 모두 합쳐 18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였다.
그러니 부원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라게 학원에서는 100만원 남짓한 돈으로 언수외탐 네 과목을 모두 다 책임진다는 소리였다.
이쯤 되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니 반값이라고? 미친 거 아니야?’
순간, 그는 두려워졌다.
‘가만, 혹시 이러다가 소라게 학원이 올해 수능에 대박이 나면….’
그렇게 된다면…60살 이전까지 100억 원을 모아 은퇴하겠다는 그의 원대한 꿈은 순식간에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
‘이거 100억은커녕 잘못하면 있던 돈도 까먹겠는데?’
식은땀이 정수리에서부터 뿜뿜 터져 나왔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을 해 보자.’
김용덕은 평소 학생들에게 하던 대로 자신을 다그쳐 보았다.
‘그래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살 수가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생각을 하자 용덕아 생각을 해.’
그러자.
‘일단 평소 하던 대로 먼저 강사들 빼돌려 오고…그다음에 학생들이랑 학부모들 불안감 좀 조성해서 구워삶고, 다른 학원 원장들 좀 을러서 참여하게 만들면…음…그럭저럭 잘 될 것 같은데?’
순식간에 나름 괜찮은 계책이 만들어졌다.
‘그래 구관이 명관이지 괜히 새로운 방법 찾는다고 미적거리다가 큰일 나는 법이니까.’
“부원장. 내일 낮 12시까지 원장 협회 사람들 죄다 우리 학원으로 모이라고 해. 혹시라도 늦는 사람이 있으면 재미없을 줄 알라고 단단히 말해 놓고. 알았지?”
뭐 문제가 있다면…….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적이 지금까지는 차원이 다른 체급의 적이라는 것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