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78
178
178화 밧줄 춤 (1)
며칠 뒤, 지역 학원 발전 협의회 정기회의 날 아침.
“커흠…어 죽겠다.”
전날 과음이라도 한 것인지 잔뜩 불콰해진 얼굴을 한 김용덕이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허, 헉!”
“원장님! 오셨습니까!”
지역학원발전협의회 회의를 위해 대회의실을 세팅하고 있던 직원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김용덕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인간이 웬일로?’
평소 회의 시작 직전에야 느릿느릿 회의장으로 들어오던 김용덕이었기에 그가 이 시간에 나타날 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회의실에 들어온 김용덕은 직원들의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 안을 주욱 둘러보았다.
“거 참, 이제 시간 얼마 안 남은 거 몰라? 좀 빨리빨리들 해 봐 빨리빨리들. 아니 남들은 행사 시작하기 몇 시간 전에 다 준비 마쳐 놓는 다는데 어찌된 게 우리 학원 사람들은 매일 간당간당하게 준비를 해, 응?”
그는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사람들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순간 회의장을 세팅하고 있던 직원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아침잠을 줄여 가며 출근해 업무 외의 일을 처리하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 판국에 이런 소리까지 들으니 그나마 있던 의욕도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생각 같아서야 지금 당장이라도.
‘야이 돼지XX야 그렇게 잘할 것 같으면 니가 하지 왜 우리한테 시키고 난리야. 아니 술을 처먹었으면 평소처럼 곱게 처 주무시다가 들어올 것이지 괜히 어울리지 않게 일찍 들어와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휴우… 네….”
“알겠습니다….”
그놈의 밥벌이가 뭔지. 직원들은 김용덕의 눈을 피해 한숨을 내쉬며, 분주히 몸을 움직여 나갈 뿐이었다.
만에 하나 싫은 티를 내다가 걸리면…
‘뭐야? 지금 그 태도? 설마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허허 세상 참 좋아졌다. 나 때는 말이야 원장님이 시키면 그저 감사합니다하고….’
김용덕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잔소리가 나오는 것은 물론.
‘왜 띠꺼워? 그럼 나가셔야지. 뭐 안 그래도 우리 학원 들어오겠다는 사람 많은 데 굳이 여길 계실 필요 없잖아?’
운이 나쁘면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쓱싹쓱싹-
팔 근육이 끊어져라 회의장을 쓸고 닦는 것 밖에 없었다.
“에잉, 말하기 전에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면 좀 좋아? 이거 원 믿고 맡길 수가 없으니 원.”
김용덕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잔소리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대치동 최고의 학원 ‘소라게’ 인천상륙! 학원비 정가제. 고3 기준 언수외탐 4과목 1,000,000원]정명학원 근처에 소라게 학원의 분원이 개원을 했다.
그러자.
‘원장님 학원비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 애 대학만 잘 보내주세요! 최소한 SKY정도는 가능하겠죠?’
‘혹시 특강 같은 거 하실 거면 다른 사람들 말고 저한테 먼저 알려 주세요. 제가 괜찮은 엄마들 소개시켜 드릴 테니까. 아무렴 이상한 사람들 받아서 분위기 흐리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걸요?’
‘에이, 귀찮은 데 그냥 이번 년도 학원비 일괄 결제 해 버릴 게요. 그게 원장님한테도 편하실 테니까. 대신 저희 애 좀 잘 봐주세요.’
그전까지 정명학원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표하던 학부모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원장님 죄송한데 저희 애 오늘부터 학원 끊으려고요. 네? SKY요? 호호 그건… 뭐…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알아서 잘해 볼게요.’
‘원장님. 이번 달부터 특강 있던 거 못할 것 같아요. 다른 분들에게 홍보요? 어머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 호호 죄송해요.’
‘죄송한데 미리 결제한 학원비 환불 부탁드려요. 아, 힘드시다고요? 뭐 그러세요. 저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모두가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꿨다.
그리고는 마치 대조기에 썰물 빠져나가듯 순식간에 학원을 빠져나가 버렸다.
‘…….’
김용덕의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격이었다.
개중에는 근 3년간 얼굴을 봐오던 학부모들은 물론 같이 골프를 치며 친목을 다지던 사람들도 수두룩하게 있었으니까.
‘하, 젠장 그 동안 내가 들인 돈이 얼만데!’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장님 죄송하지만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학생들 수가…제가 강의를 진행하기엔 너무 적어서요. 네? 위약금이요? 물론 드리도록 하죠. 대신 깔끔하게 보내주십시오.’
그렇게 학부모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나자 능력이 되는 강사들이 빠르게 학원을 손절, 소라게 학원이나 근처 다른 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그러자.
‘헤헤 원장님 저는 언제까지나 원장님 곁에 남아 있을 겁니다! 충성충성충성.’
학원에 남은 강사들의 질 또한 급격하게 하락.
그나마 남아 있는 학생들마저 동요하게 만들었다.
마음만 같아서야 그런 강사들을 모조리 다 잘라 버리고 새 술을 담고 싶었지만.
‘몇 명이나 지원했냐고요? 그게…5명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섯 명 모두 초짜들이라….’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고를 내기가 무섭게 들어오던 이력서들이 이번에는 뚝 끊겨 버렸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있는 강사들이라도 잡고 있는 판국.
‘학원을 멈출 수는 없으니….’
뭐, 그렇다고 김용덕이 그 모든 변화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부원장에게 소라게 학원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하더라도 나름의 자구책을 준비했었으니까.
1. 다른 학원 강사들을 빼 온다.
‘아 네. 김OO 선생님 맞으시죠?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에 저희 정명학원에서 선생님께 아주 중요한 제안을….’
2.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한다.
‘어머님. 아시잖아요. 소라게처럼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학원 비일비재 하다는 거. 생긴지 4년도 채 안 되는 학원에 아드님 보내셨다가 만약에 큰일이라도 나면….’
3. 학원 원장 모임을 선동한다.
‘원장님들. 아시죠? 저희가 이 바닥 이렇게 가꾸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여기서 밀리면 쥐꼬리만 한 학원비로 근근이 연명하는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 거니까. 정신들 바짝 차리세요. 혹시라도 흔들리면 끝 입니다 끝이에요!’
하지만.
‘네? 이직이요? 그럼 급여 500으로 맞춰 주실 수 있어요?’
‘저희 애는 거기 안 보내요. 끊습니다.’
‘원장님…저희도 살아야하지 않습니까.’
그 모든 방법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 버렸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소라게라는 이름이 가진 힘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휴우….”
김용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치킨 런(Chicken Run).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져 소라게 학원 원장에게 자신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래. 들어보니까 요즘에 이곳저곳 미친 듯이 확장을 했다니까 가용 자금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내가 미친 듯이 달려들면 아마…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자고 하겠지.’
물론.
‘하 그냥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으로 은퇴할까?’
이쯤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포기하면 싸움에서 진 개가 될 뿐이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제 손 안에 있는 것을 빼앗겨 본 적 없는 김용덕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였다.
‘이렇게 된 이상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이다.’
김용덕은 벽면 한쪽이 자리해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10시 40분]회의 시작까지 앞으로 20분 정도가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그를 지지하는 지역 학원 원장들과 그의 필생의 대적, 소라게 학원의 원장 김준영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결착이 나겠지.’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가올 결전을 준비했다.
그런데?
[10시 45분] [10시 50분] [10시 55분].
.
[11시 05분]아무리 기다려도…원장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왜 안 오는 거지? 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11시 10분]조금 더 기다려 보았지만.
“…….”
아무도 회의실 문을 열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큰일이다.’
김용덕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수군거리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들 또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젠장 어떡하지?’
그런데 그때.
덜컥-
회의장 문이 열렸다.
순간, 김용덕의 얼굴이 화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설마 다들 안 오기야 하겠어?’
그러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그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빨리 나와 보세요!”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부원장이었다.
.
.
.
“처음 뵙겠습니다. 상생학원의 원장 김OO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본토학원의 원장 이OO입니다.”
“영광입니다. 특급학원의 원장 박OO입니다.”
.
.
쉴 새 없이 악수를 청해오는 사람들.
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하며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혀 나갔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익숙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엊그제 정명학원에서 연락이 왔을 때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지역학원발전협의회 회의 참석 요망. 2020년 9월 30일 수요일 오전 11시까지 정명학원 2층 대회의실. 인천시 송도동 지역학원발전 협의회 회장 김용덕]그동안 제법 많은 곳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선전포고는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허, 이 양반 살려는 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동안 제법 온건한 방법으로 학원을 운영한 것이 원인인 듯싶었다.
때문에 나는 이 기회를 빌어 본보기를 만들어 버리기로 했다.
김용덕이 개최하고자 했던 행사를 내가 먼저 주최해 버린 것이다.
‘새로운 지역학원 협의회를 만들 생각입니다. 네 전에 있던 협의회 같은 강압적인 담합기구는 아니고….’
그러자 학원들 중 상당수가 내 계획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참여 의사를 내보였다.
아무래도 그 동안 정명학원의 강압적인 통치 방식에 불만을 가졌던 이들이 꽤나 많았던 것 같았다.
‘뭐 이번 기회에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보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잠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누군가의 고성이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김 원장, 이 원장, 박 원장! 당신들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흥분한 고릴라마냥 콧김을 내뿜으며, 회의에 참석한 원장들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음…정황을 보아하니 아마도 저 사내가 바로 정명학원의 원장 김용덕인 것 같았다.
‘누가 말을 해 준 것 같네?’
하긴 김용덕이 이 지역에서 활동한 기간을 보면 그러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원래 김용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김용덕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환영합니다. 김용덕 원장님.”
“…!?”
그는 나를 노려보며 콧김을 쒸익 뿜어낸다.
하지만 별달리 난폭한 행동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런 김용덕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러 오셨군요. 맞습니다. 투표권은 행사해야 하는 것이죠.”
“…뭐? 뭔 소리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는 그에게, 나는 손바닥을 들어 자리 한 켠을 권했다.
하지만.
“…???”
김용덕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치다.
나는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자, 오늘 이 자리는 선장을 뽑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사교육이라는 이름의 한 배를 탄 처지.
무릇 배에는 선장이 필요한 법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