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179
179
179화 밧줄 춤 (2)
해적(海賊)
바다에서 배를 공격해 화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
바이킹, 왜구, 소말리아 해적 등, 인류가 처음 강과 바다를 통해 무역을 시작했을 시기부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나타나는 무법집단을 의미한다.
뭐 이렇게 보면 굉장히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 말인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일반적인 해적의 이미지라 함은…
대항해시대!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
발바롯사 형제, 바솔로뮤 샤프, 헨리 모건, 앤 보니, 에드워드 티치, 월리엄 키드, 존 에이버리 등.
카리브해와 인도양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던 해적들의 삶과 그들의 삶을 토대로 여러 매체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를 뜻한다.
때문에 일반적인 해적의 이미지는…
총과 칼.
외다리와 쇠갈고리.
대포와 럼주.
그리고 보물과 해골.
바다의 상마초 집단으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위험하고 거친 모습으로 그려지는 해적들의 삶이 실제로는 굉장히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
일견 무질서해 보이는 그들의 삶이 사실 나름 질서와 제도로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 바다의 무법자로 불리며 전 세계의 상선을 위협한다는 것은 곧 전 세계의 상권, 나아가 전 세계의 권력집단을 적으로 돌린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그러니 배 바깥의 법과 제도는 해적들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바로 나의 목숨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양의 재화였다.
때문에 수익을 분배하는 일이나 잡은 포로의 처우는 물론…선장을 정하는 일까지.
노예든 귀족이든 백인이든 황인이든 흑인이든, 배에 탄 그 순간 신분도 인종도 모두 다 사라지고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가진 해적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해적이란 집단은 개개의 이익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인 협의체와 같았다.
…마치 지금의 우리처럼.
“어떠신가요?”
내가 묻자,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용덕이 슬쩍 눈살을 찌푸린다.
“뭘 말하는 겁니까? 지금 이렇게 김 원장님 옆에 앉아 있는 걸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뒤통수 맞은 기분이 어떤지 묻는 겁니까. 뭐 그 두 가지 중 하나라면 그거라면 충분히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예. 기분 무지하게 더럽습니다. 됐습니까?”
가시처럼 날카로운 대답. 달려들기 직전의 멧돼지 같은 포즈였다.
하지만 내가 물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뭔가 오해를 하셨나 보네요. 전 그저 투표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은 것뿐이었는데.”
그러자 잠시 김용덕이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곤 이내 훽- 하니 고개를 돌린다.
“뭐 까 봐야 알겠죠.”
그의 말과 표정만 보아선 제법 자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떨리네,’
잘게 떨리는 손과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이 그의 긴장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슬쩍 웃으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후보 1번 – 소라게 학원 김준영] [후보 2번 – 정명 학원 김용덕]임시로 마련된 투표소와 투표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자 다들 줄 맞춰 주세요! 정확하게 이름 석 자를 다 적어 주셔야 합니다. 한 자라도 틀리게 적으면 기권표로 간주하니까 다들 틀리지 않게 적어주세요!”
임시로 뽑은 사회자의 말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
나는 제법 긴 투표 줄을 바라보며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아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김 원장, 이 원장, 박 원장! 당신들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아까 김용덕 원장이 회의장에 나타나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을 때.
‘원장님 그러지 마시고 회장직에 출마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나는 그에게 학원 협의회 회장직 선거를 권유했었다.
비록 내 이름으로 개최한 회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합당한 과정을 거쳐 회장에 선출되는 것과 자의적으로 회장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데다가.
‘뭐요? 출마-아? 내가? 이 짬에?’
그것이 김용덕 원장의 입을 꾹 다물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 좋아 까짓것 하지. 암 하고말고. 당신 보아하니 돈 꽤나 있다고 사람들 꼬드겨서 자신만만한가 본데,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내 제안을 들은 김용덕 원장은 두말하지 않고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장님들 저 김용덕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란 사람은 10년 전 서울 대치동 한복판에서 1타 강사로 활동했던… 현재는 500명 규모의 학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람… 다들 아시잖습니까. 회장직을 역임한 10년간 제가 단 한 번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움직인 적이 없다는 것을….’
아무래도 전직 1타 강사라는 칭호와 500명 규모의 대형 학원 원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자신감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 듯싶었다.
그러나.
“젠장….”
점점 짧아지는 투표 줄. 그 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초조함이 묻어났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됐나보네.’
분명 그가 전직 1타 강사 출신인 것도, 그리고 근 10년 째 500명 규모의 학원을 운영하는 것도, 마지막으로 그 동안 지역학원 협의회의 회장직을 역임해 온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
현재 내가 개최한 학원 협의회 회의에 참석한 사람의 수는 약 55명.
대부분 내 연락을 받고 새로운 협의회 구성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김용덕이 자신의 경력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승리 가능성은 희박했다.
‘뭐 내가 지금 와서 투표한다면 모를까.’
나는 김용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불안하게 떨리는 눈과 꽉 다물린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얼굴 어디에도 포기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는 끝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뭐…
‘존중해 줘야겠지.’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표가 시작됐다.
그런데?
임시 사회자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용덕. 김용덕. 김용덕…이거 세 표 연속으로 정명학원 원장님의 이름이 나왔네요?”
저승사자가 부르는 것도 아니고, 무려 3번 연속이다.
의외로 김용덕의 이름이 많이 불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회의장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김용덕을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한 김용덕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허허 이거 참 많이 기대하셨을 텐데. 미안하게 됐네요. 뭐 원래 투표라는 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상황에 잔뜩 고무된 것 같았다.
하긴 초반 개표 결과가 이럴 줄은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으니까.
그러나…이변은 딱 거기까지였다.
[후보 1번 – 소라게 학원 김준영 49표] [후보 2번 – 정명 학원 김용덕 3표] [무효 3표]이름이 3번 불린 김용덕을 위해 49제라도 지내는 것처럼 딱 49표가 나왔다.
압도적인 득표차로 내 승리가 결정 되자.
“젠장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용덕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뭐야…저 진상 설마 지금 뭐하려는 거야?’
‘으이그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어째 나잇살 처먹고 저런….’
‘쯧쯧 사람이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아야지.’
대세는 이미 기운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김용덕에게 질책어린 시선을 보내며, 표정으로 그의 진정을 요구했다.
“…….”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한 김용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더 이상 변화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휴…”
그렇게 짧은 한숨을 내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잠시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힘없는 발걸음으로 회의장 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나는 김용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뭐 해적의 삶이 제법 민주적이라고 하긴 하지만, 사실 해적은 해적. 그 본질은 범법자들이었다.
그러니 존경을 잃고 선장 자리에서 쫓겨난 해적의 말로는…그리 아름답지 않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채 강제로 묶여 널빤지 위를 걷거나.
아니면 결과에 승복한 뒤 교수대 아래에서 ‘밧줄 춤’을 추던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이승탈출 넘버원급의 선택지만이 주어지는 것이 바로 해적선 선장의 끝이었다.
‘원래 해적의 삶이란 그런 법이지.’
그러니 만약 내가 사략선이 아닌 해적선의 선장이 되는 순간 나 또한 저렇게 될 수 있었다.
‘원래 사략선과 해적선은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니까.’
그렇게 잠시 김용덕이 남기고 간 소란이 수습하고 난 뒤.
“이상으로 제1대 인천 지역학원발전협의회 회장으로 소라게 학원의 김준영 원장님이 당선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짝짝짝-
“회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회장님만 믿겠습니다.”
“충성충성충성.”
박수소리가 회의장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정중하게 인사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고 뽑아 주셨으니 저도 최선을 다해 우리 협의회가 갈 길을 찾겠습니다.”
길고 길었던 투표의 막이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
.
.
개표가 있던 날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사무실에 남아 특강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따르릉- 따르릉-
확인하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특별감사 독고경]나와 한 배를 탄 남자의 이름이 액정 위에 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인천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건 것 같았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천천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선생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수화기 너머에서 독고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쾌활한 목소리가 그의 기분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이제 슬슬 그 동안의 성과가 가시화 되고 있는 시기였으니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인천지역 대표학원인 J학원의 원장 K모씨 ‘수십 억대’ 탈세] [구리시 학원협의회의 ‘학원비 담합’ 뿔난 시민들 경찰 조사 촉구] [의정부시 학원협회 회장 ‘지난 5년 간 담합’ 인정].
.
그의 입장에서는 그가 꿈꿔왔던 세상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것일 테니까.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고생이랄 게 있나요. 그저 평소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요.”
그러자 그가 당치도 않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열심히 해 주신 덕분에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효과가 드러나고 있는 걸요. 모두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뭐 나로서도 그리 나쁘지 않은 평가였다.
현재 사략학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앞으로 정부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흐음….’
그의 말 중에서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벌써 가시적인 효과가 날 정돈가요?”
벌써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정도로 효과가 빠른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의 활동에 의해 몇몇 지역의 협회나 학원 원장들이 척결되긴 했지만, 사실 국가 전체로 보면 미미한 정도의 변화가 아닐까?
내가 묻자 독고경이 흥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뭐 대한민국 전체로 봤을 땐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의미를 가질만한 정도의 변화는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나 서울 경기권에서는 유의미한 데이터가 집계되고 있으니 조만간 매스컴을 통해 관련 내용을 기사화 시킬 계획입니다.]‘매스컴을 통한 굳히기라….’
그 말은 이제 슬슬 사략학원의 첫 번째 페이즈가 마무리되어 간다는 말이기도 했다.
흐음 그렇다면…한 가지 기대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된 거 아닌가요?”
그러자.
[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다음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습니다. 제가 관련된 링크를 보내드릴 테니 한번 확인해 보시죠]독고경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띵동- 띵동- 띵동-
메시지들이 연이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독고경이 보낸 링크를 터치하자.
[정부. 초중고 인터넷 강의 시스템 구축 시사!] [총 사업비 1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교육 사업!] [민간기업의 공영화? 정부 ‘공개입찰로 사업자 선정하겠다’]1조원이라는 거대한 자금이 투입된 국책 사업에 대한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확인하셨나요?]“…네. 확인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 관련 자료를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검토하시고, 준비하시죠.]전화는 곧 끊어졌다.
나는 눈을 감고 방금 보았던 숫자를 떠올렸다.
1,000,000,000,000.
1조원.
그리고 국책 사업.
고지(高地)가 가까웠다.
그동안 아무도 깃발을 꽂지 못했던 미개척지.
신대륙이 코앞이다!